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967)
967화. 하늘을 뒤덮는 불꽃 (7)
어쩐지 놀랍지 않은 이야기라고, 연위는 생각했다.
‘이상했다.’
삼교는 중원 무림을 잡아먹기 위해 각기 다른 영역을 공략했다.
사음교는 광동을 기점으로 여러 지역에 세작과 고수를 파견했고, 광혈교는 중원 침공의 진입지인 사천의 민생과 무림 세력을 좀먹었으며, 신화교는 황궁을 담당했다.
광혈과 사음이 무림을, 신화가 황궁을 담당하니 언뜻 신화교가 튀어 보일 수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작 튀는 건 광혈이었다.
광혈은 애초에 자신들의 전력을 제대로 투입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비왕 공손비룡이 광혈교의 사제장이었지만, 처음부터 중원에서 활동했던 마인이니 제외해야 한다.
오히려 광혈은 중원을, 이 세상을 하나의 실험실로 보는 것 같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들은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기 위해 죽은 혼을 불러내 타인의 몸에 부여했다. 정작 광혈교의 진짜 마인들은 강호에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신화교와 싸워 왔다.’
신화교는 황궁을 맡았는도 이상할 정도로 무림맹과 자주 얽혔다.
실제로 그들이 무림의 일에도 관여했기 때문이지만, 각자 공략하는 곳의 특성을 생각하면 중원의 고수들이 자주 부딪치는 고수는 사음교 측이어야 마땅했다.
‘호정은 사음교의 호법이란 자와도 싸웠다고 했다.’
음제 하은교와 만났을 때, 사음교 출신 마인들이 그녀를 이용해 기이한 병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연호정이 싸운 자가 바로 호연씨를 쓰는 호법이었다. 나아가 광동성의 야율씨와 소씨 여인과도 싸웠으니, 사음교의 마인들과도 제법 부딪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지금껏 삼교를 알고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벌였던 싸움 중엔 신화교의 교도들이 유독 많았다.
“위험하고, 때로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했던 신화교도들의 공세는 사음교주의 명령을 그대의 아들이 하달한 것이로군.”
“명령 하달이라…….”
기천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가 차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셈이지. 도대체 얼마나 과감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폐관을 끝낸 후 그간 귀교가 무슨 행보를 벌였는지 알아보지 않은 것이오?”
“알아볼 수조차 없었지. 이미 모든 실권은 아들에게 넘어가 있었으니까.”
“신화교는 힘이 절대 가치를 지닌다고 하셨소. 아무리 실권이 아들에게 가 있더라도 교주가, 그것도 교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아무도 그대에게 그간의 일을 전해 주지 않았단 말이오?”
“내가 죽어 가고 있다는 말은 그새 까먹었나?”
“……?”
“나의 무공은 한계가 있네. 수명이라고 했지만, 나의 수명은 곧 무공과 연관되어 있지.”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팽무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공을 쓰면 쓸수록 수명이 줄어든다는 것이오?”
기천웅이 팽무강을 바라보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의 눈빛에도 팽무강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으로는 그를 조금 동정하고 있었다. 신화교라는 집단 때문에 중원이 많은 피를 흘렸지만, 한 사람의 아비로서 자식의 반란을 겪었으니 아무래도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다네.”
더 상세하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연위는 거기까지 건드리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초식 수련도 하지 않는 것이 무림인이다. 지금 기천웅이 자신의 상태를 스스럼없이 밝힌 것만으로도 많은 약점을 보여 준 것이었다.
“문제는 그걸 내 아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지.”
“어떻게 말이오?”
“신화교의 무공은 그 근본이 하나라네. 극에 이르면 서로를 잡아먹을 수도 있지. 달리 말하면, 서로의 상태를 알아볼 수도 있다는 뜻이네.”
“무공의 근본이 하나라도 상단전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말을 하던 연위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기천웅이 쓰게 웃었다.
“나는 내 아들의 화안(火眼) 앞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네.”
“대체 어쩌다가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 모르겠소.”
“욕심이지.”
기천웅이 담벼락에 머리를 기댔다.
“욕심은 양날의 검이야. 사람을 발전하게도 하고 퇴보하게도 하지.”
가만히 그의 말을 듣던 연위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즉, 당신은 우리와 힘을 합쳐 사음교를 무너트리고 신화교를 본래대로 되돌리려는 것이로군.”
“틀렸네.”
“음?”
“신화교는 더는 존재해서는 안 될 집단이야.”
두 사람이 놀라서 기천웅을 내려다보았다.
세운 무릎 위에 올려 둔 팔을 접은 기천웅. 코앞에 둔 손에서 일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막강한 화기(火氣)가 느껴지면서도 이상하게 뜨겁지는 않았다. 기의 특성과 압력을 조절하는 능력이 가히 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신화교는 멸망해야 하네. 모두가 죽을 필요는 없지만, 더는 그런 기괴한 교리 아래 많은 사람이 뭉쳐 있어선 안 돼.”
“…….”
“나는 황제에게 중원에 우리만의 세력을 갖추겠다고 말했네. 그것이 문파가 될지 가문이 될지는 아직 몰라. 하지만 만약 그러한 조직이 탄생할 수 있다면, 적어도 향후 백 년은 우리의 조직이 세상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네.”
팽무강이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과연 그게 가능할 것 같소?”
아들의 반란에 쫓겨오다시피 한 신화교주가 중원에 새로운 문파 혹은 가문을 만든다?
이 소문이 퍼지지 않을 리 없었다. 언젠가 모두가 알게 될 사실인데, 중원 무림이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그저 그렇게 해 보는 거지. 그냥 이대로 사라져 버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러기에는 지금껏 쌓아 온 우리의 유산이 너무 아쉽지 않겠나.”
“으음.”
연위가 말했다.
“그대의 마음이, 혹은 그대의 유지를 이어받는 사람의 능력과 씀씀이가 좋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오.”
기천웅이 쓴웃음을 지었다.
“후계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겠군.”
“다른 모든 게 문제라도 후계 문제만큼은 생각보다 쉬워질 거라고 보오.”
“설마하니 재능 있는 중원의 아이에게 나의 무공을 전수하란 말은 아니겠지?”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면, 안 된다고 고개를 저을 거요?”
“…….”
“그 방법이 아니더라도 그대에게는 이미 모든 것을 물려줄 자식이 있잖소.”
순간 기천웅의 눈이 흔들렸다.
팽무강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의선각주 기우희?”
연위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대가 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소. 다만 우리가 볼 때, 기 의원만큼 곱고 강인한 품성을 지닌 사람은 찾기 어렵소이다.”
“…….”
“불은 강하지만 금방 꺼져 버리지. 불과 어울리지 않는 외유내강의 성향을 지닌 아이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더욱 좋은 결과를 내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해 보오.”
“……우희는.”
기천웅이 다소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희는 잘 지내고 있나?”
“충분히 잘 지내고 있소. 그 자신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대우라고 한다면야 충분히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말씀드릴 수 있소.”
“그런가.”
“그 아이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살았소. 피부색이 다르고 눈빛이 달라도 기 의원의 고귀한 행동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소.”
“…….”
“우리 모두 큰 빚을 졌지. 그러고도 천명이 다해 죽은 환자 앞에서 미안해하는 성품을 지녔으니, 어찌 그 아이를 나쁘게 볼 수 있겠소?”
“그래.”
기천웅이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야.”
“딸이 보고 싶소?”
“보고 싶지.”
반사적으로 던진 질문이지만, 곧바로 보고 싶다는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많은 자식을 보았네. 교주가 되기 전부터 그랬어. 내 자식들이지만, 내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제각기 쓰임새가 있는 방향으로 키워졌다네. 나도 그랬었으니,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지.”
“…….”
“우희는 달라. 그 아이는 내가 교주가 된 이후 얻은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지.”
“그게 문제가 되오?”
“절대 문제 될 게 없지. 어미의 출신 성분만 아니었다면.”
“…….”
“절대 권력을 쥔 교주라도 주변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어. 고귀한 혈통은 유지되어야만 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네.”
연위의 눈이 깊어졌다.
사랑을 입에 담는 신화교주. 설마하니 신화교주를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도, 그의 목소리에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애틋한 감정이 묻어 나올 줄도 상상 못 했다.
“아이의 어미는 강한 사람이었네. 자신의 위치를 알면서도 주변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강인한 사람이었어. 그런 면이 내게 인상적이었지.”
“…….”
“하지만 우희를 제대로 챙길 수는 없었네. 이미 자라나 용과 호랑이가 된 자식들은 나의 반응 하나하나에 민감했지. 처첩을 얼마나 두든 상관없지만, 같은 자식이라면 혈육의 정을 나눌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야.”
“그렇구려.”
“어떤 자식보다도 사랑했지만, 그 애정의 백분지 일도 보여 준 적이 없었어.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다네.”
기천웅의 눈이 일렁였다.
“폐관에서 나온 후 얼마 뒤에야 깨달았네. 내가 사랑한 부인은 죽었고, 우희는 고독한 싸움에서 이기지 못해 대륙으로 도망쳤다는 걸.”
“…….”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네. 하지만 분노가 지속되면 될수록…….”
“상단전이 문제를 일으켰군.”
“……그래. 복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 그리고 그런 나의 상태를 내 아들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어.”
“…….”
“결국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전부 내 잘못이야. 아닌 말로, 아들을 죽이자면 그럴 수 있었네. 함께 죽는 거지.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라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와중에도 손이 나가지 않더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떠나 기천웅이 겪은 비극도 남들 못지않았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하네.”
일렁이던 기천웅의 눈에 다시 불이 붙었다.
“차갑게 식은 머리로 교내를 둘러보니, 난장판이 된 와중에도 나를 따르는 이들이 있었네.”
“…….”
“나는 그들 모두를 데리고 나와 신화를 해체하고 사음교를 멸망시킬 거라네. 잠시의 분노를 참고, 더 확실한 복수를 천명하게 된 것이지.”
연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거칠어진 호흡으로 말을 끝맺은 기천웅이 힐끔 연위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참 희한한 사람이군.”
“나 말이오?”
“본래 이런 이야기, 황제에게도 하지 않았다네.”
“영광이오.”
“그리 강경하게 나오면서도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여는 재주가 있군. 알거지가 되어도 어디 가서 굶어 죽을 일은 없겠어.”
팽무강이 피식 웃었다.
기천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했던 사적인 얘기는 다 묻어 두게. 남들이 들어서 좋을 것 없으니까.”
“그리하겠소.”
“이제 내게 더 궁금한 건 없나?”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읍시다.”
“말해 보게.”
연위가 저 멀리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전에서 가까운 곳에 굉장한 고수가 있소. 들끓는 화기가 인상적인데, 당신이 데리고 온 사람이오?”
“본교의 호교신장(護敎神將)이라네. 수뇌부 중 유일하게 나를 배신하지 않은 사람이지.”
“그랬구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기천웅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어전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기천웅을 보며, 팽무강이 말했다.
“아군도 적군도, 피부색이 다른 이국인도 결국 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오.”
“…….”
“연가주?”
“음? 아, 말씀하셨소?”
“허허,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시오?”
“아, 조금 걸리는 게 있어서 말이오.”
연위가 다시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호교신장이라…… 이상하군. 왠지 흐리멍덩해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