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Gaiden (43)
블랙기업조선 외전 43화(1229/1230)
외전 43화. 제국 풍물기. (8)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만의 사망.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년에 50명이 죽었다는 소리였다.
제국의 민간 사회와 제국군에서 이런저런 질병이나 사고로 죽는 이들의 수에 비하자면 얼마 안 되는 수였다.
하지만, 도전록과 잡상록을 놓고 벌어지는 첩보전이라면 그 경우가 달랐다.
도전록과 잡상록이 그저 그런 기록물이 아니라는 것은 제국인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다.
제국력 144년(1592년)에 벌어진 ‘남해전쟁’에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노렸던 것이 도전록과 잡상록이었고, 지금도 틈만 나면 도전록의 공개를 요구하는 외교 서한을 보내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었다.
공개적인 건만으로도 이런 상황일진데, 안 보이는 곳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질문은 조금씩 민감한 부분으로 향했다.
-저 묵성으로 남기는 것을 보면 밀위의 신원은 비밀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신원, 특히, 죽은 이들을 아는 이들은 같은 밀위 이외에 황제와 황태자뿐인가?
“그렇소. 작전을 진행하다가 희생된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것은 황제와 황태자의 책무 가운데 하나요.”
-밀위에서 일하는 이들이 무슨 일을 행했는지 기록은 있는가?
“당연히 있소. ‘밀행록(密行錄)이라 하오. 이 기록은 작전이 벌어졌던 시기의 황제와 밀위의 담당자만이 읽을 수 있소.”
-밀위를 운영하는 예산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선은 황실. 나머지는 기밀이오. 하지만, 이것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소. 제국의 예산에서 불법으로 빼 가는 예산은 단 한 푼도 없소.”
-밀위는 제국 내부에서만 활동하는가?
“아니오.”
* * *
이렇게 밀위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제국은 물론이고 많은 나라에서 난리가 났다.
가장 많은 말이 나온 것은 명과 유럽이었다.
황제가 언급한 것 가운데 요동 전쟁과 서해해전은 명도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명의 관리들은 물론이고 역사학자들까지 나서서 명의 사서를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무엇인가 의심스러운 사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덕제 시절 동창 소속의 환관들 이십여 명이 동시에 실종되어 버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주목된 것은 비슷한 시기 제국-당시에는 조선-에서 51구역의 기술 유출을 시도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51구역의 기술을 몰래 빼 가려던 배후로 명의 상인이 있어 추적했지만, 행방이 묘연해졌다.
“혹시….”
“혹시가 아닌 것 같은데?”
-51구역의 기술을 노린 명과 당시 조선의 첩보전.
이것이 명과 제국의 역사학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어서 뒤집힌 나라들은 유럽의 나라들이었다.
“우리도 무엇인가 좀 찜찜한 일들이 좀 있었지?”
“그렇기는 한데…. 명처럼 확실한 기록이 없으니….”
결국, 유럽의 경우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지지부진한 결말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수많은 음모론의 시작점이 되었다.
* * *
시간이 지나면서 혈기 넘치는 젊은 제국인들 사이에서는 묘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밀위가 될 수 있을까?”
-신분을 숨긴 채 제국과 황제의 안녕을 위해 세상을 무대로 움직이는 이.
-운이 나빠 목숨을 잃더라도 황제와 황태자는 자신을 기억해 준다.
-황제와 황태자가 기억해 준다면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괜찮은 삶 아닌가?
-잘해야 관리나 상회에서 온갖 서류에 치이거나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는 삶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밀위의 삶이 위험하더라도 낫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많은 젊은이들이 밀위가 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밀위 요원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서류에 치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작전에 나서는 이들의 수는 잘해야 기십을 넘지 못하는데, 그 선발 과정을 생각한다면…. 어후!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네.”
그렇게 제국의 젊은이들을 뜨겁게 만들었던 ‘밀위 열풍’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이들도 나이를 먹었다.
“자네, 그때가 기억나나? ‘밀위’가 되겠다고 설치고 다니던 때 말이야.”
“참으로 혈기 넘치던 시기였지.”
과거를 회상하던 노인들이 ‘혈기방장하던 시기에 벌였던 치기 넘치는 일’이라고 쓴웃음을 짓던 때, ‘밀위’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 * *
제국력 240년(1688년)
제국의 서점가에 풀린 단 한 권의 책이 제국을 뒤흔들었다.
당시 영화계를 주름잡던 한 여배우의 자서전이었다.
매우 뛰어난 외모와 끼를 가진 여배우였다.
그리고, 그 뛰어난 외모와 끼만큼이나 온갖 소문의 중심이 되었던 여배우였다.
거기에 문제의 여배우가 영화계에 진출했던 과정도 범상치 않았다.
제국 육군 군학원을 졸업하고, 착호군 육성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인재였다.
그랬던 그녀가 초관-현대의 중위, 대위-에서 권관으로 진급하기 직전 ‘모종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군문을 나와 영화계에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영향인지 그녀는 ‘활극 영화’에서 인기를 쌓기 시작했고, 이어 다른 분야의 영화에서도 주연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기 여배우라고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아까 언급한 ‘소문’이 문제였다.
제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유력 인사들-대부분이 남자였지만, 여자들도 있었다-과 엮인 ‘추문’이었다.
심지어 촬영 도중에 사라져 엉뚱한 곳에서, 의외의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까지 있을 정도였다.
제국 초기라면 바로 벌을 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유해져서인지 아니면 증거라 해 봐야 함께 자리하는 사진이 전부고 확실한 물증이 없어서인지 그저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때문에,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군대를 나와야 했던 ‘모종의 불미스러운 사건’도 비슷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돌고 있었다.
그런 소문과는 별개로 화려한 외모와 끼, 연기력을 무기로 그녀의 입지는 탄탄했다.
그랬던 그녀는 갑자기 해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린 다음, 45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녀가 죽기 한 달 전, 서점가에 그녀의 자서전이 풀렸다.
그리고, 이 자서전이 파란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파란을 불러온 것은 자서전의 제일 첫머리에 적어 놓은 문장 때문이었다.
-나는 밀위의 실행 요원이었다.
-여기에 적은 일은 황제 폐하께 재가를 받아 공개하게 된 것이다.
-본래라면 온갖 추문과 악명을 남기고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나였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이를 밝혀 오명을 씻으라 하셨으니, 황제 폐하와 제국을 위해서라면 수백 번을 다시 죽어도 은혜를 갚을 수 없다.
자서전에는 그녀가 군학원을 거쳐 착호군으로 있을 때, 밀위가 된 경위가 적혀 있었다.
“황제 폐하와 제국을 위해 귀관의 명예를 버릴 수 있는가?”
“만약,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귀관의 앞날은 온갖 추문과 비난이 가득할 것이다. 종국에는 귀관의 가족들도 귀관을 버릴 것이다. 귀관이 죽었을 때, 아무도 귀관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귀관이 앞으로 일할 곳의 동료들과 단 두 명은 귀관을 기억할 것이다.”
“그 두 명은 황제 폐하와 황태자시다.”
이후, 그녀는 ‘모종의 불미스러운 이유’로 군을 전역하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밀위가 된 다음의 일이 적혀 있었다.
힘들기로 소문난 착호군의 훈련 과정이 우습게 보일 정도의 훈련을 받은 다음,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꼼꼼한 적성 검사와 인성 검사를 거쳤다.
그 과정을 통과한 끝에 그녀는 밀위의 실행 요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자격을 얻자마자 외국어 습득 과정이 이어졌다. 잠꼬대도 외국어로 할 정도로 강도 높은 교육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야 실행 요원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실행 요원이 된 이후, 그녀는 배우라는 위장 신분을 이용해 여러 비밀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기에 파란을 불러온 것이었다.
시작은 진위 논쟁이었다.
그녀가 비밀 작전에 관해 적은 부분이 문제였다.
자세하게 적은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작전을 했었다.’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적은 그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작전들은 기밀이다. 때문에, 나는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고, 밝히지도 않겠다.
다음으로 화제가 된 것은 ‘살인 면허’였다.
-황제가 살인을 허가한다는 증명서.
그 외에도 작전 수행 과정에서 만났던 다른 나라 첩보원과 쌓은 애틋했던 기억 같은 내용도 화제가 되었다.
다음으로 화제가 된 것은 작전 도중 유명을 달리한 요원의 장례였다.
위장 신분으로 근무 중인 곳에서 ‘업무 중 사망’ 또는 ‘불의의 사고’로 처리되어 장례식을 치르는데, 밀위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미복을 걸친 황태자가 몰래 참석해 망자에게 예를 올렸다는 것이었다.
* * *
문제의 자서전이 워낙에 큰 파장을 일으켰기에 당대 황제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다.
-과연 그녀가 밀위의 실행 요원이 맞는가?
“밀위에 관해서는 짐도 함부로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말은 할 수 있다. 지금도 밀위의 검은 별은 늘고 있다.”
-그럼 그녀가 자서전에서 언급한 작전들은 실재한 작전이 맞는가?
“자서전을 보면 상황께서 황제로 계실 때 벌어진 일이다. 짐은 확인할 권한이 없다.”
-그렇다면, ‘살인 면허’라는 것이 있는가?
“대답을 거부하겠다. 하지만, 살인은 마음대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장례식 참석은?
“예전에 밝혔듯이, 밀위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황제와 황태자의 의무다.”
두루뭉술한 황제의 대답이었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니, 사실이다!
* * *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제국에는 다시 한 번 더 ‘밀위 열풍’이 불었다.
‘밀위’가 되겠다고 군문을 두들기거나, 육군과 해군의 특수군 과정에 도전하는 이들이 급증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화려함이 가득한 연예계의 최고 배우’와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갈리는 아슬아슬한 사선 위의 첩자.’라는 극명하게 갈리는 두 개의 신분을 가진 인생,
-조국의 안전을 위해 세상을 돌아다닌다.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내려지는 ‘살인 면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온갖 요소가 다 있었기에, 곧 ‘밀위’를 주요 소재로 삼은 패관소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제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문제의 자서전은 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자서전에 따르자면 다른 나라에도 밀위와 같은 첩보기관이 있었다.
타국에서도 이에 영감을 받은 작가들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으로 하나의 장르가 탄생했다.
‘첩보물’의 탄생이었다.
새로운 장르인 첩보물은 소설만이 아니라 영화에서도 인기 소재가 되었다.
* * *
이렇게 ‘첩보물’이 넘쳐나면서 밀위를 포함한 각국의 첩보기관은 난감해졌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람들의 촉이란 의외의 부분에서 정확하단 말이야.”
여러 첩보물에 나오는 이런저런 공작 작전 가운데 실제 작전들과 놀랍도록 유사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에 놀란 각국의 첩보기관들은 정보가 누출된 것이 아닌지 조사했지만, 누출된 것은 거의 없었다.
이런저런 소문, 어떤 사건의 기록에 작가들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놀랍도록 실제와 유사한 모습이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놈들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거잖아?”
“반대로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저놈들도 알아챌 수 있다는 소리지.”
첩보물에서 묘사되는 작전들과 이 작전들이 들통나는 과정에 경각심을 가진 각국의 첩보기관들은 새로운 작전의 계획과 실행, 조직의 운영을 다시금 검토하기 시작했다.
“가만, 여기서 나오는 이 장비들 말이야. 괜찮아 보이는데?”
“잘하면 실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반대로 이런 첩보물에서 나오는 온갖 비밀 무기와 장비들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무기들과 장비들이 탄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