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Gaiden (7)
외전 7화. 1592 남해전쟁. (7)
거기다 이순신이 올린 보고서의 문체가 문제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순신과 같은 날틀 모함파의 지휘관들조차 쓴 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이러니 이 친구가 정치를 못 한다고 하는 거지…..”
이순신이 올린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일본이 벌이려는 군사행동이 기책(奇策)으로 보이지만 이는 표면만 본 것이다.
-조금만 더 깊이 살핀다면 철저하게 병법의 정석을 따르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런 주장에 맞춰 근거까지 제시했지만, 그것조차 자세하게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즉, 이순신이 올린 보고서를 한 줄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다.
-이 정도도 모르다니! 병법도 제대로 공부 안 하고 헛소리만 해댄다!
“물론, 이 친구가 진짜 이런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니겠지만….”
“이 친구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 모두 자기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마구 잘라 먹는다는 것.”
때문에, 해군 참모본부의 참모들은 물론이고, 합참의 참모들까지 일제히 분기탱천한 것이었다.
원균은 아예 ‘이순신을 죽여 버리겠다!’라고 길길이 날뛸 정도였고.
이에 국방부와 합참의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는 ‘이순신 교체’에 관한 말이 슬금슬금 돌기 시작했다.
“이순신이 능력이 좋은 이는 맞지만, 너무 큰 소란을 만들고 있소이다.”
“맞소. 자고로 군의 장수가 가져야 할 능력 가운데 인화(人和)도 중요한 법인데….”
-이순신은 너무 독불장군이다.
-장수들의 관계를 망가뜨린다.
전함파의 고위층들은 이런 핑계를 대며 이순신의 경질에 관한 운을 뗐다.
이에 날틀 모함파의 고위층들도 발끈하며 뒤받았다.
-틀린 말도 아닌데 반응이 과하다!
-자기들이 멍청한 것을 왜 남 탓하나!
다시 한번 두 파벌이 거세게 충돌하기 시작하자, 이주는 바로 국방부와 합참의 ‘높으신 분들’을 모조리 불렀다.
“짐이 재미있는 말을 들었소. 요즘 나이 먹은 분들이 재미있게 논다고 말이오.”
“송, 송구하옵니다!”
“쯧쯧!”
이주가 혀를 두 번이나 차자 불려온 이들은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그렇게 바짝 엎드린 인사들의 정수리를 노려보며 이주는 말을 이었다.
“현장의 장수가 지적한 문제를 다시 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서 쫓아낸다? 참 잘하는 짓이오. 잘하는 짓이야.”
“송, 송구하옵니다!”
“신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송구하면 송구할 일을 만들지 말고! 용서를 빌기 전에 잘못을 안하면 될 일 아닌가! 국방에 관한 일이요, 국방!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도 모자란 일이 국방인데! 듣기에 거슬리는 소리를 했다고 자리에서 밀어낼 궁리부터 해? 그런 경들을 믿고 제국의 방비를 맡겨야 하는가!”
“송, 송구하옵니다!”
“이순신과 원균이 자리를 맡은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소! 그런데도 인사 이동을 운운하다니 경들은 지금 짐을 능멸하려는 것인가!”
이주의 노성에 불려온 이들은 머리를 바닥에 붙이며 대답했다.
“천지신명에 맹세코 신들은 그런 역심을 품은 적이 없사옵니다!”
“신들의 충심을 믿어 주시옵소서!”
“짐이 계속 주시하고 있겠소.”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다시는 폐하께서 염려할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흥! 말은 잘하지! 짐이 명하겠소. 경들은 앞으로 품에 사직소를 품고 다니시오. 만약,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짐은 바로 그 사직소를 가납하겠소. 알겠소?”
이주의 경고에 모인 이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명, 명심하겠사옵니다!”
“가서 일 보시오!”
근정전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죽다 살은 기분이오.”
“후우〜. 과연 씨도둑질은 못 한다더니, 그 핏줄은 어디 안 갔구려.”
“어쨌거나 당분간은 입조심 해야겠소.”
“동감이오. 적어도 내년까지는 조심해야겠소.”
이주가 ‘1년’을 언급했기에 내년이 될 때까지는 조용히 있기로 결심한 ‘높으신 분들’이었다.
한편, 근정전에 홀로 남은 이주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명령을 내렸다.
“원균과 이순신을 부르라. 아! 동시에 부르지 말고 원균부터 부르라.”
“예, 폐하!”
* * *
이주는 원균과 이순신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3 기동함대 사령관이 제출한 보고서를 어떻게 생각하나?”
“헛소리입니다! 일견 남이 놓친 것을 짚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억지만 가득할 분입니다!”
“그러한가?”
“그렇습니다! 제주도는 해안을 따라 충실한 방비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서귀포는 그 위치 때문에 정면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고, 이에 더욱 방비를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원균은 피를 토하듯이 그렇게 생각한 근거를 이주에게 보고했다.
‘철저하게 전함파의 입장에서 본 것이로군.’
원균의 설명을 평가한 이주는 원균에게 명했다.
“장군의 의견은 잘 들었다. 일본이 여전히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제주도와 장군의 제2 기동함대가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어야 함은 변함이 없다. 짐은 장군만 믿겠다.”
“맡겨만 주시옵소서!”
“믿어 보도록 하겠네.”
“예!”
기세등등해 사라지는 원균을 바라보는 이주의 시선은 복잡했다.
“장수가 자신만만한 것은 보기가 좋지만, 너무 과한 것 같단 말이야…. 그 책 때문에 생긴 선입견일까?”
다음 날, 이순신을 맞이한 이주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장군이 보낸 보고서를 잘 읽었소. 하지만, 짐이 병법을잘 아는 것이 아니니 몇 가지를 물어보겠소. 일본이 사용하리라 예상하는 작전이 기책이 아니라 정석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적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한 정석은 적의 전력을 압도하는 전력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보면 일본은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제국의 총력과 일본의 총력을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2 기동함대와 서해 함대의 전력만을 놓고 본다면 일본이 우세합니다.”
“제주도가 일본의 코앞이라고는 하지만,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제2 기동함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정면에서 들어와야 한다. 그렇다면 기습은 무리이지 않은가?”
“날틀을 사용한다면 한 시진(약 2시간)도 안 걸립니다. 또한 제주도의 항구를 공격하는 방향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의 대답에 이주는 원균과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이순신은 철저한 날틀 모함파의 시각에서 바라봤군.’
“일본이 12월을 넘겨서 공격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그러면 일본은 필패입니다.”
“이유는?”
“병사들이 지치기 때문입니다. 10월에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훈련이 시작되면 이를 경계하는 아군 병사들조차 많은 심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이순신의 지적에 이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12월을 예상하게 된 것이지.”
“이는 공격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비밀을 철저히 지킨다고 할지라도 알 만한 병사들은 상황을 다 알게 되고, 그럼 긴장해 심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그렇군….”
이후, 이순신을 내보낸 이주는 작게 중얼거렸다.
“꼬장꼬장하군…. 하지만, 원균보다는 믿을 만해…..”
이순신과 원균을 놓고 비교하던 이주는 피식 웃었다.
“만약에 일이 이순신의 생각처럼 흘러간다면 차기 해군 참모총장은 물론이고 총참모장은 이순신이 되겠군. 그렇게 되면 괴로울 사람 많이 생기겠는데?”
* * *
10월이 되자, 일본 해군은 예정되었던 연합함대 훈련을 시작했다.
구마모토에 집결한 일본 해군은 나가사키와 사세보를 오가며 훈련을 진행했다.
이에 제국과 명은 구축함들을 파견해 공해(公海)에서 진행되는 연합함대 훈련을 감시했다.
일본 해군의 공식적인 훈련이 끝나자, 제국 해군은 잠수함들을 파견해 은밀히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11월이 지나 12월로 들어설 때, 이순신은 잠수함 부대 사령관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사령관에게 부탁할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사령관 밑에 있는 잠수함 함장들 가운데 가장 잘 숨는 함장 셋을
골라주시오. 맡겼으면 하는 일이 있소.”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고르면 됩니까?”
“이틀 안에 가능하겠소?”
“가능합니다.”
이틀 뒤, 세 명의 함장들이 이순신을 찾았다.
“귀관들이 할 일이 있다.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명하십시오.”
“지금 아군 잠수함들이 일본 연합함대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정보에 따르면 사세보와 나가사키에 정박한 일본 연합함대의 전선들이 해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예. 소관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설명에 잠수함 함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 역시 해당 임무를 맡아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상부에서는 일본이 우리가 알아챘다는 점을 알아내고 포기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게 쉽게 포기할 정도면 시작도 안 했을 일본이다.”
이순신의 말에 함장들은 고개를 끄덕 였다. 일본인들의 교활함과 끈질김은 유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부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일본 연합함대의 전선들이 각자의 소속지로 돌아갈 때까지 감시할 예정이다. 귀관들은 상부에서 내린 임무가 중지되고 이틀 뒤부터 사세보와 나가사키를 감시한다. 귀관들이 감시할 것은 수송선이다.”
“수송선입니까?”
“그렇다. 수송선이 각자의 모항으로 돌아간다면 일본인들이 포기한 것이 맞겠지. 하지만, 계속해서 사세보와 나가사키에 머무른다면 일본은 반드시 일을 칠 것이다. 때문에, 귀관들에게 이번 임무를 맡긴 것이다. 제국 해군 잠수함 부대에서도 제일 잘 숨는 것으로 유명한 귀관들이라면 일본 해군에게 걸리지 않고 살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할수있겠나?”
자신들이 맡아야 할 임무의 중요성을 알게 된 함장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곧 눈을 빛내며 이순신에게 대답했다.
“맡겨 주십시오!”
함장들의 이구동성에 이순신은 바로 명했다.
“그럼 바로 준비하게.”
“옛!”
사흘 뒤, 사세보와 나가사키, 구마모토에 머무르고 있던 일본 해군의 전함과 날틀 모함과 같은 주력함들이 항구를 떠나기 시작했다는 무선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추적하겠음.
제국 해군의 잠수함들은 사세보와 나가사키를 떠나는 일본 함대의 뒤를 은밀히 따르기 시작했다.
제국 해군 잠수함과 일본 해군 구축함 사이에서 진행되는 ‘유서 깊은 숨바꼭질’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추적을 맡았던 제국 해군 잠수함들은 비슷한 내용의 무전을 송신했다.
-일본 해군 모항 도착.
그리고 하루 뒤.
-임무해제. 귀환할 것.
명령을 수신한 제국 해군 잠수함들은 조용히 귀로에 올랐다.
“제국놈들이 넘어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슬슬 준비하도록 하지.”
제국 해군을 속여넘겼다고 확인한 일본 해군은 마지막 준비에 들어 갔다.
다음 날 밤, 세 척의 제국군 잠수함이 각기 사세보와 나가사키, 구마모토에 숨어들었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잠망경을 올려 군항을 살핀 잠수함들은 다시 몸을 빼내어 멀찍이 물러났다.
일본 해군의 탐지 범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거리까지 물러난 잠수함들은 이순신에게 보고했다.
-수송선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음.
-수송선들은 떠나지 않았음.
“수송선들은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모의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빌어먹을.”
평소에는 입에도 담지 않던 욕설을 내뱉은 이순신은 빠르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로 보고해. 일본 해군의 수송선들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이야.”
“예.”
“그리고, 함대는 언제든지 출항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내 놓고.”
이에 참모 하나가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하지만, 각하. 며칠 있으면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이번 일본 연합함대 훈련이 늦게 열린 덕에 병사들의 휴가도 늦어졌습니다. 이에 성탄절 휴무를 기다리는 병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게….”
“장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성탄절은 넘어가도록 하지. 대신, 군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확실하게 포상금과 추가 휴가를 제공하겠다.”
“알겠습니다.”
이순신이 제안한 대안에 문제를 제기한 참모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에 관한 평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이 ‘확실한 신상필벌’이었다.
오죽하면 이순신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걸어 다니는 군법법전’이었다.
-이향 황제께서는 공정함과 확실한 신상필벌을 강조하셨다. 나는 이를 확실하게 지킬 것이다.
초급 지휘관 시절부터 입에 달고 다닌 말을 이순신은 철저하게 지켰다.
덕분에 지휘관이 이순신이 온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하 간부들과 병사들은 입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얼굴은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확실하게 보상받으니까.
* * *
12월 23일 해 질 무렵.
사세보와 나가사키, 구마모토에 정박하고 있던 수송선들이 일제히 닻을 올렸다.
구마모토 남서쪽 시모코시키 섬 주변에서 집결한 수송선들은 느린 속도로 남진을 시작했다.
12월 24일.
각자의 모항에서 은밀히 출항한 일본 함대의 전선들이 수송선단에 합류했다.
제주도에서 남동쪽으로 1,200리(약 42이:이) 떨어진 구치노시마 섬에서 결집을 완료한 일본 함대는 제주도를 향해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북서진을 시작했다.
12월 25일. 동이 막 틀 무렵.
서서히 하늘이 밝아지고 있을 때, 사세보와 인근의 일본 해군과 육군 항공대 기지에서 전투기들과 폭격기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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