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10
110 됫박(1)
“내가 편지로 미국에 돌아온다고 미리 전했는데 너무 깜짝 놀라는 거 아닌가.”
“이거 아무래도 편지보다 제이크가 먼저 온 모양이네요.”
어쩐지 조선에서는 편지가 왔는데 제이크의 소식은 없더니 그렇게 됐나보다.
어쨌든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21세기에서 전생을 했기에 태선에게 미국에 오기 이전의 인연은 거의 없었다.
‘있어봐야 누나 태희와 매형 박말복 그리도 동생 태경이가 전부였었지.’
그 외에 따지면 오경석이나 박규수 정도이려나.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제이크 벌링게임을 만나니 옛 친구를 만난 듯 싶었다.
“이봐, 태선. 차라도 한 잔 내줘야지. 미국 와서 성공했다고 친구를 이렇게 계속 세워두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반가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건 제이크 벌링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샬롯, 차 좀 내와줘요.”
“네. 정말로 태선이 고향에서 만난 친구였다니 최고로 좋은 차로 내올게요.”
“엄밀히 말해 태선의 고향은 조선이고 저와는 청나라에서 만났지만 말입니다, 하하.”
자못 샬롯에게 이런 농담도 하며 제이크 벌링게임은 태선을 따라 사무실로 갔다.
“편지로 자네가 성공했다고 말은 했지만 이렇게 큰 회사일 줄이야.”
“제이크가 배편을 구해주고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겁니다.”
“아냐, 어느 정도의 성공이라면 몰라도 이 정도 성공은···늦냐 빠르냐의 차이지 자네는 그냥 성공할 운명이었던 거야, 하하핫!”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정말 기분이 좋은지 제이크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자네를 보고 뿌듯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저 역시 제이크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성공이라. 그래, 성공 좋지.”
그때를 회상하는지 제이크는 허공을 보다 중얼거렸다.
“하지만 성공한 것보다 당시 내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네.”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아냐, 자네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오기 전에 자네가 하는 사업에 대해서 이래저래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러고 보면 제이크 벌링게임은 사촌인 앤슨 벌링게임을 따라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법률가라 들었건만.
어째 처음 천진항에서 봤을 때 화공을 옹호하던 것도 그렇고 지금 눈물마저 살짝 글썽이는 것을 보면 사람이 참 감정적이고 감성이기도 한 듯싶었다.
“흔히 도둑 남작이라 불리는 협잡꾼들과 달리···돈만 좇는 탐욕스러운 사업가들과는 확실히 다르더군.”
“아무래도 전구에 대해 들은 모양이시군요.”
“전구도 그중 하나였지만 그것만 말하는 것은 아닐세.”
남북전쟁에서 기여, 기차 사고를 줄인 공기압 브레이크 시스템, 참전자를 위한 심리치료상담소 지원 등등······.
“···한 사람의 사업가가 그 모든 일을 했다니 누가 믿겠나. 더구나 그 사람의 시작이···내 도움으로 미국에 왔다고 생각하면 하느님의 안배인가 싶어 감동이 북받쳐온다네.”
나중에는 성호를 그으며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듯 두 눈시울에 촉촉해져 있었다.
“자, 여기 차를 내···어머, 이분은 왜 울고 계시는 건가요?”
그 모습에 마침 차를 내온 샬롯이 흠칫 놀랐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워서 그러십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계셔서인지 제 기억보다 많이 감성적인 분이 되셨네요.”
“자네 말대로인 모양일세. 아무래도 청나라에서 세상의 거친 면을 많이 봐서인지······.”
샬롯이 내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감정을 수습한 제이크는 담담히 말했다.
“태선 자네처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이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거든.”
“에이, 아닙니다. 저는 사업가입니다.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분명히 사실이겠으나 돈을 버는 능력을 타고 났을 따름입니다.”
“그게 바로 세상의 순리이자 신의 안배 아니겠는가.”
‘어째 청나라가 아니라 인도 사원에서 수행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말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제이크는 독실한 크리스찬인 듯싶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자네는 그 능력 덕분에 존재 자체만으로 주변에 큰 힘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네.”
“제이크 벌링게임 씨랬나요. 그건 이분 말씀이 맞는 게 저 역시 평소 그렇게 느꼈거든요.”
샬롯까지 거들고 나오자 태선으로서는 마냥 부정하기보다 어깨를 그저 으쓱거렸다.
‘흠, 이런 프레임이 씌워져서 기대감을 크게 가지면 곤란한데 말이지.’
“그리고 나 역시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없다···라고 하면 기만하는 말이겠지. 다만 내 그 능력을 세상에 유익하게 써야 하겠다고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게 됐네.”
“확실히 제이크의 능력이면 저보다 세상에 더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분명히 그렇겠지요.”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법률 전문가에 외교적인 소양도 있고 훌륭한 인성도 갖추었으니.
‘앤슨 벌링게임이 주청미국대사로 가 있으니 제이크도 외교 쪽으로 활약하려나. 아시아 일에 관심도 많았었으니.’
태선이 그렇게 생각할 때.
“하하, 섭섭하게 왜 그리 말하는가. 자네 지금 법률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나?”
뜻밖에도 제이크가 법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모건과 록펠러와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며? 몇 년···아니, 어쩌면 10년도 넘게 걸릴지도 모르는 복잡하게 뒤얽힌 소송전 말이야.”
“민망하군요. 거기까지 들으셨습니까.”
“당연하지. 은사님인 하버드 로스쿨 크리스 교수님도 뵙고 오는 길이네. 변호사들이 몇이나 떠났다는 소식도 들었고.”
거기까지 말한 뒤 제이크 벌링게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것이야말로 본론인지 헛기침을 하곤 입을 열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아직 일자리를 못 구했거든. 변호사로 써주겠는가.”
“제이크를···변호사로요? 하버드대 로스쿨 나오셨다는 말을 듣기야 했지만.”
“하하, 내가 청나라에 오래 있어서 감이 떨어졌을까 염려되는 거라면 걱정말게나.”
왠지 우려하던 바를 정확히 찔렸기에 태선이 뜨끔하여 어색하게 웃는 사이 그가 말했다.
“법학은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네. 더구나 내가 맡는다고 혼자서 하는 일은 아니거든.”
‘맞아, 그러고 보니 앤슨 벌링게임도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이었고 방금 전에 로스클 교수를 만나고 왔다고 했으니 그쪽으로 인맥이 두텁겠군.’
마침 공교롭게도 제이크 벌링게임이 오기 전까지 고민하던 문제가 아니던가.
“변호사 인선에 고민 큰 모양인데 내가 해결해줄 수 있네. 베이징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나를 믿어주게.”
이어지는 그의 말에 태선은 이윽고 손을 내밀었다.
“물론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모건은 새로운 소송장 읽고 나서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이거지.”
책상에는 손에 쥔 것 외에도 새로운 건수로 태선을 괴롭힐 소송장이 대여섯 개나 더 있었다.
“이것까지 넣으면 벌써 스무 건이 넘습니다만 건수를 더 찾아볼까요?”
앞에 서 있는 비서의 말에 모건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넣어야지. 변호사 통해서 그대로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비서가 나가자 모건은 책상 한쪽에 세워둔 아버지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의 사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틀렸습니다. 태선 킴이라는 그 아시아 놈은 수완은 조금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얕은 수준입니다.”
기실 놈이 앨버트 왕세자 부부의 처소에 보일러를 설치한 이후로 아버지의 편지에서 그 빌어먹을 아시아 놈의 언급될 때마다 얼마나 신경 쓰였던지.
“주제도 모르고 나대며 기껏해야 운이 좋았던 걸 자기 실력이었던 줄 아는 놈.”
하지만 것도 이제 끝이었다. 자신의 올가미에 오랜 기간에 걸쳐서 점점 말라 비틀어져 죽을 테니까.
“쌓아놓은 돈도 있고 그랜트 장군이나 몇몇 유력자와 친하니 얼마쯤은 버티겠지. 그렇지만 버티면 버틸수록 더 괴롭게······.”
달칵────!
연극 배우도 아니고 모건이 승리감에 취해 혼자 중얼거리는 그때 문이 열렸다.
아까 나갔던 비서인 줄 알고 호통을 치려고 했으나 뜻밖에 모건이 고용한 변호사였다.
“모건 씨, 마침 계셨군요.”
더구나 비서를 통해 기별을 넣지도 않고 들어와서는 다급히 말했다.
“빌머, 자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하면······.”
“태선 킴 그놈이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뭔가 했더니 그건가. 뭐 예상했던 거 아닌가. 밴더빌트의 진술이 신뢰성 없이 보이기 위한 자료들도 준비했잖은가.”
모건이 목에 빳빳이 힘주고 자못 의기양양하게 굴었으나 변호사 빌머의 구겨진 표정은 펴지지를 않았다.
눈치 빠른 사람답게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모건은 즉시 자세를 바꾸며 다그치듯 물었다.
“우리가 대비 건 외에 다른 소송을 걸어온 건가?”
“예. 우리가 대비한 건에 대해서도 물론 걸어왔지만···놈이 우리가 하는 방식을 그대로 돌려주려는 듯합니다.”
“우리가 하는 걸···그대로 돌려준다고?”
빌머는 가져온 서류들을 모건의 책상에 흩어놓았다.
“급한 대로 입수한 것만 가져왔는데 모건 씨가 과거에 기업사냥을 한 이들과 비밀리에 접선했던 모양입니다.”
“뭐···뭐야? 그놈들을 무슨 피해자로 삼아서 대신 고소라도 하겠다고?”
“그런 거 같습니다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은 따로 있습니다.”
빌머는 흩어놓은 서류를 뒤적이더니 서류 하나를 들춰내서 가장 위에 올려뒀다.
“전쟁부와 재무부와 육군이 공동으로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전쟁에 불량 무기를 공급한 건이라는데······.”
그 순간 부릅 뜨인 모건의 눈을 마주하자 빌머는 흠칫 말을 멈추고 말았다.
“젠장, 돈을 얼마나 받아 처먹어놓고는 이걸 무마하지 못 해! 무능한 의원 놈들 같으니!”
그의 분노는 의원들을 향한 것이었으나 빌머는 괜히 주눅이 들어서 눈치를 보다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전생 시기에 채권 거래와 금의 밀수에 관한 건도 있습니다.”
“그런 개 같은! 그래, 킴 그 아시아 놈이 재무부 장관이나 그랜트 장군과도 친하게 지냈지. 그들을 구워삶아서 그렇게 나오시겠다?!”
애초에 자기가 전쟁 시기 저지른 일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보복당했다고 생각하며 도리어 억울해하는 감정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났다.
“어찌할까요? 태선이 직접 걸어온 소송이나 재무부와 전쟁부에서 걸어온 소송이나 증거 자료와 증인을 철저히 준비한 듯싶습니다.”
빌머가 물었지만 모건은 침묵한 채 답하지 않았다.
만일 별 것 아닌 일이면 소송으로 공격할 때 그랬듯 방어할 때도 압도적인 자금과 인맥으로 시간을 질질 끄는 전략으로 나가라고 했을 터였다.
다만 이 건에 대해서만은 경우가 달랐다.
‘빌어먹을···하필 이 시기에 그걸로 걸어오다니.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전쟁부와 재무부에서 걸어온 건은 무마시켜야 해.’
이건 자칫 의회 조사까지도 번질 수 있었다.
보일러 특허 수십 건으로 소송을 거는 일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물며 자신이 사냥 기업의 피해자들이 건 소송도···다른 때였다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이 각개격파 했을 터였다.
‘하지만 전쟁부와 재무부의 소송에 태선 킴이 얹혀진 터에 그것까지 얽히면···도매금으로 불리하게 진행될 수가 있어.’
사실 자신의 입지를 지탱해주는 기둥 중 하나는 자신이 건재하다는 인식이었다.
로비로 돈도 많이 뿌렸지만 그건 자신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인식이 여기저기에 깔렸기에 기능한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소송이 들어오는데 그게 다 굵직한 거라 무너질 듯 보여봐라.
‘그 건들 중 하나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둑이 무너지듯 하나씩 다 터져버리게 될 거야.’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직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모건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직은 초반 싸움을 하고 있지만 자신은 판에 이미 대마를 깔아두고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수를 잘못 깔았다가는 그 대마를 잃게 된다.
“모건 대표님···?”
빌머가 재차 묻자 모건은 정신 사나워서 잠시 조용하고 있으라고 말하려 했으나.
“대···대표님, 킴 사장님이 만나러 왔는데요?”
밖에서 비서가 전혀 뜻밖의 소식을 알려왔다.
“뭐라고?”
“SGE와 KSO의 킴 사장님이 만나러 왔다며 기다리십니다.”
지금 자신의 머리를 아프게 만든 장본인인 태선 킴이 여기 왔단다.
‘뭐지? 그놈이 왜··· 설마 휴전이라도 하자고 왔나?’
방금 자기쪽 변호사 빌머가 전한 소식대로라면 실컷 반격을 퍼부어놨는데?
화해하자고 할 리가 없다···? 그런 생각이 들더가도 이내 또 다른 방향의 생각도 들었다.
‘아니, 놈 역시 압박은 받고 있을 거야. 그리고 자기가 밀릴 때 화해를 제안해봐야 먹히지 않을 테니 송곳니를 보여놓고 유리한 위치를 점해서 휴전 협의하려는 걸 수도 있어.’
그렇다면 자신도 못 이기는 척 그 손을 잡아주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른 건이면 몰라도 잘 무마했다고 생각한 전쟁 시기 불량 무기 납푼 건과 금괴 투기 건을 캐내다니.
이건 아킬레스 건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희석시킬 수 있으면 몰라도.
전쟁이 갓 끝난 지금 당장은 이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들여보내게.”
다만 그런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협상에 좋지 않으므로 모건의 목소리는 퉁명했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원래 만나주지 않으려 했지만 저번에도 말했듯 자네 능력을 높이 사고 있지. 그래서 어떻게 대응하나 궁금해서······.”
“모건 씨, 여전히 혓바닥이 길군요. 쪼들리고 있는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으니 굳이 감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순간 모건의 눈에 불똥이 튀는 듯싶었으나 태선은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 옅게 웃었다.
“제가 왜 찾아왔는지 궁금하시겠죠. 알려드리죠, 제가 왜 찾아왔느냐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