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11
111 됫박(2)
“제가 온 건 휴전이나 화해 제안하려고 온 이유는 아니니 기대하지 마시길.”
“무슨 헛소리를! 어이없군. 저번에 분명히 자네를 고사시키겠다고 말했을 텐데?”
모건은 밀리지 않기 위해 같이 기를 세웠으나 갈증이 났다. 불덩어리를 삼킨 듯 속이 매우 타들어갔다.
이 놈이 먼저 화해나 휴전 제안을 하러 온 줄 알고 내심 한숨 돌릴 수 있을줄 알았는데···그러면 대체 왜 온 것인가.
“남의 집에 불을 질러놨는데 자기 집에 더 큰불이 붙으니 기분 어떠십니까.”
“자네의 그 가소로운 저항을 말하는 거면 어이가 없군. 내가 모르리라 생각했나.”
“자신이 잘 묻어뒀다고는 생각하고 있었겠죠. 로비해서 입막음을 잘해놨다고는 생각했는데 문제가 터져서 안 되셨습니다.”
하나 같이 약점이라고 여긴 부분을 찔러 들어오자 모건은 열불이 났다.
그런데 그런 속내를 보이면 그것은 그것대로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모건이었다.
“······.”
그래서 표정을 감추고 화를 삭이느라 그는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하면···초조해하는 감정을 놈에게 들킬 것 같았다.
“왜 왔냐면 조금 괴롭히러 왔는데 역치를 높여두면 다음에 재미가 없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드리겠습니다.”
헌데 이 놈은 그런 속내도 파악했다는 듯 지껄인다.
다만 그 와중에 계산이 굴러가기는 했다.
놈의 계획인지 아니면 또라이의 광기인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자신은 훨씬 더 곤란해진다.
“이대로 계속 하면 몇 년, 어쩌면 10년도 넘게 걸릴 거야. 하물며 그 시간이 지나 재판에 이겨봤자 얻는 건 본래 자네의 자산이었던 것이지.”
그래서 막 나가려는 태선의 걸음을 붙잡기 위해서 도발하듯 말을 던졌다.
다행히 통한 건지 태선이 돌아보자 모건은 조금이라도 그를 압박감을 느끼게끔 머릿속에 떠오른 키워드를 조립했다.
“반면 나는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며 자네를 소모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자네가 불러모은 멍청이들이나 재무부와 전쟁부를 동원해서 건 소송 몇 건쯤? 훗.”
그저 가소롭기만 하다는 듯 비웃음도 섞어주고.
“그런 일이 여태 한두 번이었는 줄 아는가.”
“벌인 짓이 많았으니 물론 많았겠지요.”
“그래, 그리고 이미 내가 구축한 세력은 견고하다네. 그 또한 시간을 흘려보내면 없던 일이 되거나 벌금 몇 푼 내겠지.”
“예, 예. 물론 그러시겠죠. 물어뜯기···그게 목적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태선은 이제는 측은하다는 눈빛마저 보내고 있었다.
“왜 잘 아는지 아십니까. 저 역시 모건 씨와 같거든요.”
“뭐라고?”
“내 것을 지키겠다거나 하는 의도가 아니라 저도 그냥 모건 씨를 물어뜯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라서요.”
‘뭐···뭐라고? 이 미친 놈이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늘 남에게 을러대기만 했지 면전에서 이런 말을 듣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반론조차 없었다.
“몇 년? 10년이요? 하하, 스케일도 작으십니다.”
“뭐?”
“그 정도로 망하지 않겠지만 못해도 10년 이상 꾸준히 모건 씨를 물어뜯어 드리겠습니다.”
하물며 이어지는 태선의 말에는 등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지만 모건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모질게 압박했던 이들에게 내가 이런 느낌이었나’ ···하는 생각을 말이다.
“뭐 그래도 조언 하나만 드리자면 약점을 더 만들기 싫으면 지금부터라도 협잡질 같은 건 그만두시고요.”
그런 모건을 향해 태선은 한마디를 더 남기고는 정말로 화해라거나 휴전 따위 관심 없다는 말을 증명해주듯.
“그럼 다음에 또 보죠.”
미련조차 없이 나가버렸다.
***
“하하하, 왜 혼자 갔나. 나도 부르지 그랬나. 그 얼굴을 꼭 봤어야 했거늘!”
율리시스 그랜트는 집무실이 떠나갈 정도로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문제는 체이스 재무장관의 집무실이라는 점이었다.
“그랜트 장군, 그래도 이제는 육군 최고 통솔자인데 체통을 지키시죠.”
“예, 뭐 그러기야 해야겠지만 그래도 이번 일은···그야말로 정의가 바로 선 일 아니겠습니까.”
사실 방금 전에 그랜트 장군에게 핀잔을 주긴 했지만.
체이스 재무장관 역시 동감하는지 표정에 은은하게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긴 전쟁 중이라 당시에는 손을 못 댔지만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되니까요.”
“맞습니다. 그나마 총기 사용법을 숙지 못한 건 군인들의 미숙함이라 쳐도 총기 불량 탓에 다치거나 하는 건······.”
직접 병사들을 지휘했던 당사자라서인지.
방금 전에는 웃고 있었지만 모건이 저지른 부정을 상기하자 화가 치밀어오르는지 그랜트는 목소리가 살짝 격앙되었다.
“자기 배를 불리자고 고의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건 반역과 같지 않습니까.”
“맞는 말일세. 젊은이들의 목숨을 대가로 자기 부를 불리려 하다니···. 하물며 그 와중에 금괴 투기로 우리에게 전황이 불리해지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고 행동했지.”
이제는 체이스 재무장관도 그랜트 장군의 말에 아예 대놓고 동조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태선도 타이밍을 봐서 한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일이 아닙니다. 기실 이번에 두 분께서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았으면 묻혔을 겁니다. 이미 모건이 도처에 로비를 해뒀을 테니까요.”
“음, 그렇지. 그 자라면 또 무슨 수를 써서 무마시키려고 할지 모르지.”
“같은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파고들어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태선의 말에 그랜트 장군과 체이스 재무장관은 자못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둘의 시선은 태선이 데리고 와서 그 옆자리에 동석하고 있는 이를 향했다.
“제이크 벌링게임 씨라고 하셨지요? 부디 이번 소송은 잘 부탁드립니다.”
그 중년 남자는 바로 제이크 벌링게임이었다.
아울러 KSO, 킴 스탠다드 오일이 모건에게 건 소송을 맡고 있었다.
재무부나 전쟁부와 육군이 모건에게 건 이 소송을 정식으로 수임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이 소송전의 콘트롤 센터는 킴 스탠다드 오일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우리쪽의 대표 변호사로 고용한 제이크가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지.’
어찌 보면 몇 년 동안 청나라에 가 있던 제이크로서는 화려한 복귀전을 치르는 셈.
다만 이게 몇 년 해서 끝날 일도 아니기에 너무 부담을 줄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늘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늘려야 했다.
‘그래야 모건이 더 괴롭기도 하고 협잡질을 못 꾸밀 테니까.’
큰 벌을 받더라도 사건이나 소송이 끝나버리면 그 문제에서 해방되게 된다.
그보다는 어떤 벌을 어떤 수준으로 받을지 미지수로 남겨두면서 있는 거 없는 거 계속 끌어모아 처벌 스택을 높이는 편이 훨씬 압박감 클 테지.
“제이크, 두 분 말씀은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죄에 대한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예, 안 그래도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하나의 선례를 남기는 것이겠죠.”
역시 머리 좋은 양반이라 그런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잘 파악하고 있다.
“해서 전에도 태선이 이야기 해줬지만, 단기간에 결과를 낸다거나 그런 데는 연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두 분께서도 부디 이해해주십쇼.”
“하하하, 이해라니. 오히려 그러는 것이 정상이지.”
“나 역시 그리 생각하네. 성급하게 굴다 놈이 빠져나갈 틈을 주는 것보다 치밀하게 하는 게 낫겠지.”
체이스나 그랜트도 납득했고 태선은 슬슬 오후 스케줄도 소화해야 하는 터라 일어섰다.
“벌써 일어나는가?”
그랜트 장군은 아쉬워하는 반응이었다.
“차기 사업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는데 오늘은 중요한 테스트가 있어서요.”
“그런가. 그런 거라면 당연히 보내줘야지.”
혹여 그랜트가 더 잡을세라 체이스가 나섰다.
“태선이 뭔가 할 때마다 이 나라가 몇 발자국씩 나아가지 않습니까. 우리가 돕지 못할망정 그걸 막아서는 곤란하겠지요.”
“하긴 그렇죠. 그럼 오늘은 이만 헤어지도록 하고 종종 또 만나세나.”
“물론입니다. 제가 조만간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인사하는데 태선은 불현듯 어떤 생각이 들었다.
차기 사업은 곧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동차 선전을 위해 도로 주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이 올라왔을 때 일종의 홍보 수단으로 구상해둔 아이디어가 있었다.
‘오늘 테스트만 예정대로 잘 된다면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조만간이야.’
그렇다면 슬슬 그 떡밥을 뿌려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참, 마침 오늘 뵌 김에 평소 저를 잘 도와주셔서 두 분께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만.”
“선물?”
이제 막 나가려는 차에 선물이라니. 하물며 빈손인데 대체 무슨 선물이란 말인가.
그랜트 장군과 체이스 재무장관이 오히려 호기심이 드는지 쳐다봤다.
“물론 당장은 아닙니다. 곧 드리겠습니다.”
“그리 기대하게 만들면 웬만한 것으론 만족하지 못할 테니 단단히 준비하게나.”
농담이겠지만 짐짓 그랜트 장군이 이렇게 말했으나 태선은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받았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을 받으실 겁니다.”
“자네가 그 정도로 말하다니 굉장히 기대되는구먼.”
이번에는 체이스 재무장관이 중얼거렸다.
사실 애초에는 그랜트 장군에게만 선물할 생각이었지만 뭐 체이스 재무장관에게 주어도 홍보 효과는 있을 터.
‘나쁠 것은 없겠지. 어차피 차츰차츰 셀럽들에게 마케팅 수단으로 선물할 생각이었으니까.’
더구나 그보다 먼저 오늘 테스트가 성공하는 것이 우선이니 말이다.
***
보안 겸 안전을 위해 금속가공공장 주변에 매입한 토지를 울타리로 둘러친 일대.
“······.”
맑게 개어 하늘은 파랗고 구름이 둥실둥실 떠가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의 턱에는 수염이 거뭇거뭇했다.
“오늘이군.”
지난 며칠도 아니고 몇 주 동안 면도를 못 했기에.
하지만 그런 건 웨스팅하우스에게 상관없었다.
“오늘만은 무조건 성공한다.”
겉모습만 봐서는 폐인 같지만 눈빛은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났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심지어 해가 바뀌는 동안 이 주행 코스를 얼마나 달렸던가.
시행착오를 겪고 문제를 찾아내서 부품을 고치고.
“···그걸 못 해도 수백, 아니 수천 번 반복했지. 노트만 해도 창고를 가득 채웠고.”
그리고 태선이 내걸었던 최소한의 조건.
도로주행을 해도 안전할 것. 마차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유용할 것.
웨스팅하우스의 직감은 드디어 오늘에서야 그 조건을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꿀꺽──!
다만 그럼에도 잠시 후에 막상 태선이 와서 테스트 결과를 봤을 때 실패하면 어쩌나.
웨스팅하우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 있었군.”
그때 뒤에서 조셉 스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조셉 아저씨? 존 소장님이랑 샘 아저씨도 같이 왔네요. 에디슨까지?”
상념에 깊이 빠져있는 터라 연구소 식구들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직 테스트는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한 시간이나 남았어도 웨스 넌 여기 있지 않겠냐.”
“가장 긴장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웨스 형, 여기 와있어도 우리는 같은 연구소 패밀리라고요!”
다들 한 마디씩 건네는 말에 웨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다들 도와준······.”
다만 고맙다는 말을 채 다 하기도 전에 웨스팅하우스의 얼굴이 굳었다.
웨스팅하우스의 시선은 연구소 패밀리의 뒤를 향했다.
“한 시간 전인데 어째 다들 먼저 모여계셨군요.”
그리고 거기에 금발 미녀를 대동하고 서 있는 훤칠한 외모의 남자는 바로 태선이었다.
“어라, 언제 왔는가. 그랜트 장군님과 체이스 재무장관님을 만나러 갔대서 딱 맞춰 올 줄 알았거늘.”
존 엘리스 박사가 대표로 물어봤지만.
태선의 때 이른 등장에 다들 같은 의문을 품고 있는지 뜻밖이라는 눈빛이었다.
“웨스가 얼마나 긴장이 많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일찍 와서 격려나 해주려고 일정을 서둘렀습니다. 연구소 분들은 어째 단체로 일찍 와계셨군요.”
태선이 둘러보며 묻자 다들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하는 게 비슷하구먼. 우리도 그렇다네.”
“하긴 태선과 우리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같이 해왔으니 비슷해질 법하긴 합니다.”
존 엘리스 박사와 조셉 스완의 말을 들으며 동의한다는 듯 태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웨스팅하우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째 모두 배려해서 일찍 왔는데 이렇게 다 모이니···벌써 테스트 분위기가 돼서 오히려 부담되겠구나.”
“아뇨, 전혀 아니에요! 다들 와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웨스팅하우스는 살짝 태선의 눈치를 봤다가 비록 수염은 덥수룩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소년 같은 미소를 얼굴에 띤 채 반쯤 농담으로 말했다.
“실수해도 봐주실 거잖아요? 여태까지 실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다 봐주셨듯.”
“이 녀석이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실패할 생각부터 하냐?”
태선 역시 짐짓 녀석에게 꿀밤을 먹이면서도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실수해도 봐줄 거지만. 그러니 부담 없이 해라.”
“헤헤, 넵! 그런데 방금 실수 운운한 건 농담이고 사실 자신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웨스팅하우스의 눈빛도 그렇지만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그런 결의를 봤는데 더 물어보는 건 불신한다는 반응이니 실례일 터.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럼 기왕 모두 이렇게 모였으니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시작하도록 할까?”
물론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웨스팅하우스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덧붙였다.
“만에 하나 예상을 벗어난 일이 생기더라도 일찍 시작하면 같이 의논해서 고치고 한 번 더 테스트해볼 수가 있잖니.”
“오, 맞아요. 그것도 좋네요!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이란 건 있으니까요. 그럼 바로 자동차 가지고 올게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웨스팅하우스는 금속가공공장 바로 옆 차고지로 달려갔다.
“······.”
태선은 담담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아예 무덤덤하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부디 성공하기를.’
이내 차고지의 전면 문이 열리고 웨스팅하우스와 인부들이 밀고 나오는 건 21세기 역사에 있던 포드의 T 모델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러프한 차체의 자동차였다.
늘 도로주행을 하는 위치에 자동차를 세웠다.
달칵─달칵─부르르르릉──!
키 몇 개를 꽂은 뒤 시동을 걸자 이내 들리는 엔진음.
이후에도 몇 가지를 더 점검하더니 웨스팅하우스가 핸들을 잡은 채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소리쳤다.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