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13
113 맑은 날의 드라이브(2)
“허어, 이 원반 같은 걸로 조종을 하는 건가? 느낌으로는 좌우로 돌리면 방향이 바뀌나? 신기하군. 밑에 페달도 있구먼.”
그랜트 장군은 아예 벌써 운전석에 올라타 있었다.
‘그래, 그랜트 장군이라면 저럴 줄 알았지. 아니, 안 저랬으면 실망했겠지.’
육군사관학교 시절부터 다른 종목에는 흥미도 없었고 점수도 좋지 않았는데 딱 하나 두각을 보인 것이 승마였단다.
“하하, 걱정마시죠. 왜 이런 넓은 부지를 구태야 매입했는지 말씀드렸던가요?”
“아, 설마 운전을 할 수 있게 해주려는···?”
“바로 그거였습니다.”
태선은 고개를 돌려 체이스를 쳐다봤다.
“혹시 체이스 장관님께서도 운전하시겠습니까?”
“음, 흥미가 없는 건 아닌데 혼자서는 불안해서. 그랜트가 운전하면 같이 타는 정도로만 만족하고 싶군.”
“예, 그럼 그랜트 장군님이 운전하시고 저와 체이스 장관님 그리고 엔지니어로서 웨스가 같이 타지요.”
“하하,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본래 모델T는 2인용이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바퀴를 더 튼튼하게 하는 걸 비롯해 몇 가지를 개량했고 그 가운데 하나는 4인승이 됐다는 것이었다.
“자, 웨스팅하우스라고 했나? 시동을 걸어서 조작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게나.”
“예, 일단 시동은 제가 걸어뒀으니 가장 오른쪽 페달을······.”
웨스팅하우스의 지시에 따라 그랜트 장군이 조작하자.
부릉──부르릉───!
곧 네 사람이 탄 모델T는 뒤에서 밀기라도 한 것처럼 바퀴가 앞으로 굴렀다.
하지만 뒤에는 샬롯뿐이니 그녀가 밀었을 리는 없었다.
“오, 정말로 가는군, 속도도 높아지고 있어.”
하물며 마침내 창고를 나와 움직이기 시작하자 슬슬 속도가 붙고 있었다.
이어서 어떻게 하면 기어를 바꾸어 속도를 올리는 등 웨스팅하우스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그랜트는 이미 재미를 붙였는지 알아서 능숙하게 차를 몰았다.
‘오, 이 정도면 생각보다 더 운전을 잘하는데.’
준비는 갖췄지만 오늘 바로 실행에 옮길지 말지 고민하던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그랜트 장군의 운전 실력이 이만하면 오늘 당장 하더라도 괜찮을 듯싶었다.
“그랜트 장군님, 실은 이 부지에서 옆으로 빠지면 얼마 전 완공한 워싱턴 외곽쪽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됩니다.”
“오,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이 된다고?”
“예, 거기는 마차도 잘 안 다닙니다만 가보시겠습니까?”
조수석에 앉은 태선이 옆에 비치해둔 곳에서 지도를 꺼내자 그랜트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드리웠다.
“크흠, 체이스 장관님은 그···괜찮으십니까?”
다만 뒷자리에 탄 체이스의 의향이 어떤가 싶어 물어본 모양인데 답은 바로 나왔다.
“물론이지. 아스팔트 도로를 이래서 만들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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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과 벤은 시골에서 같이 동반해서 입대할 정도로 절친한 친구였다.
전쟁터에서 위험한 순간도 겪었지만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어떻게든 버텨냈다.
“벤, 그때 기억나냐? 너 총알 맞아서 고향에 편지 전해달라며 그럴 때 날씨가 딱 이랬잖아.”
“으잉? 너 뭘 잘못 기억하고 있는데? 내가 아니라 네가 그랬었는데.”
“너 무슨 소리야?”
가끔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전쟁 후 워싱턴에 상경하여 같이 지내고 있는 두 청년이었다.
“됐다. 아무튼 얼른 전구 기술이나 배워서 우리도 일자리를 구해보자고.”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만 되면 최고 좋지. 록펠러 일렉트로닉스는 사람이 갈려나간다더라.”
“어째 천지 차이냐.”
그렇게 메릴랜드 주정부에서 스완 제너럴 일렉트록닉스와 연계하는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러 가는 그때.
부르릉──!
멀리서 어렴풋이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전쟁터에서 총성과 포성을 들으면서 소리에 다소 민감해진 벤이었다.
그런 탓에 흠칫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반대로 총성과 포성으로 인해 한쪽 청각을 잃은 클락은 반응이 없었다.
“왜 그래? 갑자기 긴장한 표정이 되어서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저쪽에서 말이야.”
“에이, 소리는 무슨······. 나야 한쪽 귀가 먹었지만 반대로 넌 너무 민감하게 굴어···응?”
부르르릉────!
클락이 핀잔을 주려는 그때 그도 멈칫했다.
그나마 멀지 않은 한쪽 귀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도 들었지?”
“어···어.”
낯선 소리에 의아해하는 건 클락과 벤만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
“공장에서 들은 기계 소리 비슷한 것 같긴 한데···여긴 공장 없잖아.”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두리번거리고 소곤대는 가운데 얼마 전에 완공한 루이스 스트리트 아스팔트 도로의 블록 끝에서 뭔가 시커먼 덩어리가 돌아나왔다.
마차···였다면 당연히 말부터 보여야 했을 터이거늘.
“뭐···야, 저건? 말이 없는 마차잖아.”
“말이 없는데 마차라고 부를 수가 있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무슨 말인지 너도 알잖아.”
“그래. 말이 없는데도 저절로 바퀴가 굴러다니고 있네.”
하지만 클락과 벤이 시선을 뗄 수 없는 건 신기해서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
부르르르릉───!
검은 광택을 내는 탈 것이 묵직한 소리를 내면서 점점 가까워지자 둘은 언제 떠들었냐는 듯 침묵했다.
대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가 탈 것을 따라 돌아갔다.
“멋있다.”
간신히 벤이 중얼거리자 클락도 간신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묵직한 소리도 그렇거니와 외형도 그렇고 저것이 움직인다는 것이 그렇고.
“저기 배의 키 같은 걸 잡고 있는데 저걸로 조종하나봐.”
마침 탈 것이 가까워져 옆을 지나치는데 보인 바로는 조종을 하는 것인 듯했다.
자신도 저걸 조종하고 싶은 동경심과 부러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체 누구길래 저런 걸···엇?!”
그리고 뒤늦게 탈 것을 조종하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자 클락은 새삼 또 놀랐다.
“왜? 혹시 아는 사람이야?”
벤이 묻자 클락은 혹시 잘못 봤나 확인하려는지 바로 옆을 지나칠 때까지 유심히 봤다.
빵빵─!
그때 뜻밖에 탈 것이 경적을 울리면서 속도를 차츰 늦추더니 고개를 빼고 있는 클락과 벤의 앞에 멈추었다.
“보급 군복 신발이군. 자네들 군인인가?”
“전쟁 끝나고 전역했습니다.”
저 희한한 탈것을 타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때깔이 잘 사는 사람 같았다.
아니, 애초에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군복 차림이고 어깨의 휘장에 별이 몇 개나 붙었다.
꿀꺽───!
벤이 자못 긴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전역했구먼. 고생 많았네. 지금은 어딜 가는 겐가?”
그에 비해 질문을 받았거늘 클락은 답하기는커녕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하, 이쪽으로 조금 더 건너가면 메릴랜드 주라서 거기서는 전구 수리 교육을 받을 수가 있거든요. 클락, 너무 그렇게 쳐다보면······.”
벤이 자기라도 대답하다 보다못해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는데 그때 클락이 대뜸 물었다.
“호···혹시 그랜트 장군님 아니십니까? 전쟁터에서 뵌 적 있습니다. 신문에 난 얼굴도 몇 번이나 봤고요.”
“오, 날 알아보는구먼. 자넨 관등성명이 어찌되나?”
“영광입니다, 장군님! 클락 상병입니다!”
그랜트 장군···이라는 말이 나오자 벤도 손에 들고 있던 전구 수리 교보재를 놓치고는 이미 전역도 했거늘 경례를 올려붙이며 목청을 높였다.
“못 알아뵈서 죄송합니다, 그랜트 장군님. 저 역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벤 상병입니다!”
그랜트 장군은 흐뭇하게 그 둘의 얼굴을 마주 보더니 이마 옆에 척 손을 붙여 둘의 경례를 받아주었다.
“그래, 아까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나?”
“예. 전쟁 끝나고 돌아와서 저는 귀가 먹었고 이 녀석은 너무 민감해졌는데 마침 심리 치료도 해주고 교육도 해준다고 해서 다행이었죠.”
“그것도 그랜트 장군님께서 힘을 써주신 덕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클락과 벤의 말에 그랜트 장군은 고개를 젓더니 옆자리에 앉아 있는 태선의 어깨에 친근하게 손을 얹었다.
“감사는 이 친구에게 하게. 그건 이 친구가 이룬 업적이니까.”
“아, 그렇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감사드립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태선은 싱긋 웃더니 그랜트 장군이 그랬듯 뒤에 앉아 있는 체이스를 보며 말했다.
“뒤에 계신 분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겁니다. 재무부 장관님이시거든요.”
“하하, 이제 아니지. 6월에 사임했지 않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못내 기분이 좋았는지 체이스는 참전자 청년들을 격려했다.
“아무튼 우리 세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을 모아 만든 것일세. 부디 자네들도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서 다시 사회에 적응해주게.”
“넵!”
“예, 알겠습니다.”
잠시 멈춰서 둘과 이야기를 나눈 사이 어느새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나 신기한 탈것을 타고 있는데다가.
“그랜트 장군님이시래?”
“정말이야? 오, 정말이잖아. 신문에서 봤어.”
다름 아닌 그 탈 것을 조종하는 사람이 전쟁 영웅 그랜트 장군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더 있다가 행인분 아니라 근처의 상가나 카페나 식당에 있는 사람들마저 다 몰려나와서 길이 막힐지도 몰랐다.
부르르릉──!
“그럼 우린 가보겠네.”
다시 시동을 걸며 그랜트 장군은 살짝 아쉬워했다.
“자리만 충분하면 자네들을 태워줬으면 좋으련만 어쩔 수가 없구먼.”
“아닙니다, 이렇게 장군님을 뵈어서 격려를 받은 것만 해도 힘이 되었습니다.”
“꼭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두 청년의 힘찬 대답에 그랜트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허허, 태선 방금 들었나? 저 청년들 하나는 소리에 너무 민감해졌고 하나는 한쪽 귀가 멀었다고 했었지.”
“예, 그랬었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타깝지. 허나 그럼에도 자네가 제안한 프로그램 덕분에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었잖나. 난 그게 너무 좋구먼.”
문득 꺼낸 그랜트 장군의 말에 체이스 역시 동감했다.
“나 역시···그 안건에 힘을 실으면서도 올바른 일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니 이 가슴으로 뭐랄지···뜨거우면서도 따뜻한 것이 느껴지는구먼.”
“맞아. 자네는 우리에게 선물이라며 이 자동차를 줬지만···솔직히 나는 자동차보다 자네가 청년들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준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었네.”
아무리 군인이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명령으로 인해 병사들이 돌진해서일까.
그래서 다친 병사들에게 마음의 부채를 지고 있었는지 그랜트 장군은 평소 이런 생각을 안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자동차를 선물로 주고 드라이브를 나왔는데 분위기를 다운시켜서야 곤란하지.
“하하, 그러면 자동차 선물은 없던 이야기 할까요?”
“어···엉? 이 사람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나. 준 건 준 거지.”
기실 핸들을 직접 잡고 운전해보니 자동차도 탐 났던지.
아까 전의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그랜트 장군이었다.
덕분에 다시 농담과 가벼운 말이 오가며 분위기가 밝아진 가운데 웨스팅하우스만은 표정에 진지한 결의가 깃들었다.
‘···멋있다.’
새먼 포틀러스 체이스, 율리시스 그랜트를 보는 조 웨스팅하우스의 눈은 동경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그것으로 인해 큰 기여를 하고 그것을 뿌듯해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태선 사장님이 있다니 존경스러워.’
마지막으로 태선에게 시선이 닿았을 때는 감동의 눈물이라도 흐를 정도였다.
차가 달리는 중이라 바람에 날려가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정말로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렸을 지도 모른다.
‘나도 반드시 태선 사장님 같은 분이 돼야지. 처음 만났을 때 하신 말씀처럼.’
기실 지금 움직이는 이 자동차를 완성한 것도 거의 태선의 덕분인데.
이것이 이 나라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막 벅차올랐다.
물론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태선이 좋은 방향으로 쓰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웨스팅하우스는 다짐했다.
‘태선 사장님, 저는 목숨이 다하더라도 끝까지 사장님과 같이 가겠습니다.’
***
그랜트 장군과 체이스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한 며칠 뒤.
“태선, 워싱턴 쪽에 기사가 나왔어요.”
샬롯이 몇 부의 신문을 가져와서 태선에게 건넸다.
[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자동차를 타고······. ] [ 워싱턴 외곽 루이스 스트리트에 출연한 자동차, 그 주인은 전쟁 영웅······. ]기사는 하나 같이 그랜트 장군을 다루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꼭 헤드라인 키워드에 자동차를 끼워넣고 있었는데.
사실 자동차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샬롯과 개리슨이 워싱턴의 신문사를 돌면서 힘써준 보람이 있었네요.”
“신문사를 찾아가긴 했지만 그쪽에서도 기삿거리를 줘서 고맙다고 그러더라고요.”
워싱턴의 신문사에 정보를 뿌려둔 것이었다.
아울러 워싱턴의 소식이라도 수도인만큼 곧 뉴욕을 비롯해 필라델피아나 피츠버그나 각 주 대도시 주요 신문에도 기사가 날 터였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듣기로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 반응도 좋아요. 호기심을 많이 보인다며 문의가 오기도 한다네요.”
예상한 반응이었다. 아울러 다음 행보를 미리 준비해두기도 했고 말이다.
‘계획대로야. 그럼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