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15
115 새로운 시대로(2)
체이스의 후임으로 재무부 장관이 된 윌리엄 피트 페센든은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깔끔하군.”
전쟁 시작 때만 해도 재정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전비가 필요한데 은행에서는 대출을 거부하고, 돈을 찍어냈더니 통화량이 늘어나 결국 액면가만 떨어졌다.
그러던 것이 어찌저찌 전비 마련을 성공했고 더구나 전쟁이 끝난 지금은 은행에 대출을 요구하기도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재건 사업을 시작한 지금이 재무장관이 된 내게는 딱 좋은 타이밍인데.”
기실 의회 법안이 통과되어 재건 사업도 시작했겠다 대출도 낼 수 있겠다 치적을 세우기 딱 좋지 않겠는가.
“다만 의원님···아니, 이제 장관님이시죠. 장관님은 어차피 얼마 안 있어 다시 의회로 돌아가시지 않으십니까.”
그때 비서 알렉스의 말에 페센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못내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셨다.
“빠르면 내년 초에 상원으로 돌아가서 재건위원회에 합류하겠지만···음!”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급진파의 찰스 섬너 의원님을 누르고 얻은 자리 아니십니까.”
“엄밀히 말해 내정된 것이지 확정된 건 아니잖나.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어.”
본래 급진파였으나 온건파로 선회하여 당내 양쪽 파벌을 아우르는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는 페센든이었다.
다만 공화당, 휘그당, 야당을 오가며 30년 넘는 정치 인생을 살아왔기에 잘 안다.
“이럴 때일수록 더 확실한 뭔가가 필요해.”
특히 이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직감이 든다.
뭔가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끝까지 마칠 필요는 없다. 기실 지금 시작하는 숱한 재건 사업도 단기간에 끝날 것들은 거의 없다 봐도 무방했다.
“내 이름을 걸고 시작만 한 거라도 괜찮을 텐데 이 기회에 할만한 사업이 뭐 없나.”
중얼거리는데 비서가 회중시계를 보더니 넌지시 말했다.
“사실 전임 비서나 현재 재무부 직원들에게도 두루두루 물어봤더니 태선 킴의 사업을 눈여겨보라더군요.”
“태선 킴···아아, 안 그래도 마침 오늘 오후에 그랜트 장군과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함께 만나기로 하지 않았던가.”
“오후라고 하셨지만 20분만 지나면 시간입니다.”
20분 뒤라는 말에 시간이 그렇게 됐냐는 듯 페센든 재무장관이 흠칫했다.
“자료들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군. 워낙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뭣보다 신기한 게 막 전쟁을 시작할 시기부터 태선 킴이라는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단 말이지.”
“오, 그게 정말입니까?”
진심인지 아부성 발언인지 모르겠지만 비서의 리액션에 페센든은 들고 있던 자료 중 하나를 건네주었다.
“전쟁 초기 은행이 대출을 거부했을 때, 제이 쿡과 태선 킴이 직접 채권을 팔아 전비의 기초 자금을 마련했더군.”
“정말이군요. 먼젓번에 제출한 보고서도 솔직히 예사롭지 않더니 과연···.”
페센든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간추려서 서랍에 대충 넣어두었다.
곧 있을 만남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듯 책상 위는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돈이 꽤 들어간다는 점이나 행동을 규제하는 법안이 수반되어야 하는 점이 신경 쓰이는데 그래도 태선 킴이 인물은 인물이란 말이지.”
“예, 전임 체이스 재무장관님부터 시작해서 다른 직원들도 추천하는 걸 보면, 이유가 있겠죠.”
“거기에 오늘 동행하는 이가 그랜트 장군에··· 급진파의 영수 찰스 섬너 위원이라니.”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던 페센든은 비서에게 턱짓을 했다.
“자네는 그만 나가있게. 손님들이 간단한 면면도 아닌데 마중해야 하지 않겠나.”
“예, 그럼 손님들 오면 기별 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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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락──사라락───!
봤던 자료이지만 페센든은 면밀히 검토했다.
“···해서 운전면허제 시행 및 운전 관련 법규의 정착과 이를 위해 시범 도시를 워싱턴으로 한정하여 들 비용을 최소로 산정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선의 설명이 곁들어지고 있었기에.
“이 제도를 정책화시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뭔가? 이 자료만 봐서는 애매한데.”
아울러 이 자료들은 미리 제출해놨던 것이고 검토했었다.
미팅 전에 읽어보며 가진 궁금증에 대해서도 태선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솔직히 당장 돈이 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만 장기적으로 운전 규범에 대한 인프라를 정착시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득을 가져올 겁니다.”
“그래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득이라는 건···좀 애매한데.”
그러다 이렇게 중얼거리면 그랜트 장군이 나서곤 했다.
“허허, 페센든 장관님! 제가 요새 태선의 모델T를 타고 다니는 건 아시지요?”
“예, 당연히 압니다. 저도 시승해봤고 저 역시 차가 가지고 싶은 사람이라 자동차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방금 중얼거린 건······.”
“태선의 말로는 대량 화물을 운송하는 차부터 농사를 돕는 차에 군사용으로 쓰는 차까지 다양하게 나올 거랍니다.”
그랜트 장군은 슬쩍 태선의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보고서에 없는 내용인지라 더 자세히 이야기해도 되는지 태선의 동의를 구하는 모양인데 태선은 괜찮다는 듯 옅게 웃었다.
‘어차피 그랜트 장군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라 해봐야 그리 전문적인 것도 없고 애매하기는 매한가지지.’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말하는 자의 입장과 위치였다.
‘똑같이 애매한 말이라도 그랜트 장군이 말하면 말발이 더 서기 마련이거든.’
“···방금 말했듯 그런 전방위적인 분야에서 기여하게 되는데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건 당연하지요.”
“확실히 그렇겠군요.”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그런 장면을 보니 태선은 실소가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뭐 나도 방금 전에는 애매하다고 말은 했어도 자동차의 성능이 이 정도나 되면 필연적으로 성행할 거고 운전 법규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에 동의하고는 있었습니다. 다만······.”
어떤 말이든 역접의 접미사 다음이 중요한 법.
“면허 발급이나 운전자 교육 같은 부분이야 국민들이 감내할 비용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비용들 있지 않습니까.”
촤라라락───!
꽤나 면밀히 살펴봤는지 페센든 장관은 직접 그 페이지를 펼쳐보였다.
“이 신호등 체계의 구축이 가능은 한 겁니까?”
“제가 대표로 있는 회사라 조심스럽지만 SGE에서 맡으면 가능합니다.”
신호등의 원리에는 고정식, 시간제어식, 감응식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서 태선이 제안한 건 가장 간단한 고정식이었다.
이름 그대로 고정된 시간 주기에 따라 불빛이 녹색과 빨간색으로 바뀌는 방식.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지주 설치, 신호등 지주 설치, 전구의 연결, 고정식 신호 전환을 위한 전선 장치 등···기술적으로 들어가자면 복잡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저희 전문가가 몇 번이나 검토를 마쳤습니다.”
말하며 태선이 살짝 눈짓을 하자 샬롯이 종이를 건넸다.
“그리고 이게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최종 검토를 마친 그 보고서입니다.”
···라고 건네줬지만 사실 페센든 의원이 봐도 기술적인 부분은 알아먹지 못할 터였다.
아니, 애초에 이걸 가지고 있어봤자 달리 검증받을 곳도 없으리라.
이 시대에 이쪽 분야는 태선이 사실상 미개척 분야를 뚫어서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서 검토를 받으려면··· 다시 우리쪽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
“음, 일단 시간 날 때 봐두도록 하죠. 그리고 또 하나 아스팔트 도로가······.”
방금 샬롯을 통해 건네받은 보고서를 챙겨두면서 페센든 장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시범 도시를 워싱턴으로 둔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 재건 사업에 한 발 들여놓고 확장할 생각 아닙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군요. 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자동차가 있는 이상 도로가 넓혀질수록 전체의 이득 역시 늘어나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그 아스팔트 도로 건설 비용도 정부가 부담하게 될 텐데··· 사업 규모를 어느 정도로 보고 있습니까?”
‘역시 이 양반은 재무 전문가가 아니라 질문이 좀 엉성하네.’
이쪽에서 잭을 통해 철저히 준비한 게 무색할 정도로.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전임 체이스도 처음부터 재무 분야 전문가는 아니었다.
짬밥이 그렇게 만들어줬을 따름이지.
더구나 공화당쪽 인사로 동행한 찰스 섬너에게 따로 언질 받지는 않았지만 전생했기에 태선은 알고 있었다.
‘페센든은 1년도 안 채우고 상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야. 재건위원회인가 뭔가로.’
그럼에도 그냥 대충 있다가 가려고 하지 않고 자신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심지어 이것저것 물으며 의욕을 보여주었다.
타이밍이 좋으니 이참에 치적을 내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잖아.’
더구나 이렇게 치적을 내려 하는 편이 사업을 제안하는 입장에서는 더 반가웠다.
하물며 태선이 제안하는 운전법규 같은 건의 경우에는 당장 돈이 되기보다 공익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고 그 효과조차 멀리 봐야 했다.
‘이건 진짜로 대의를 위해서 아니면 포퓰리즘 아니면 치적 내려는 거 아님 잘 안 하지.’
그게 딱 아다리가 맞았다.
“당장은 워싱턴, 뉴욕, 필라델피아, 피츠버그···각 주의 주도 정도의 이동량이 많은 도로를 순차적으로 고려 중입니다.”
그래도 이런 질문이 나올 걸 예상해서 미리 목록을 뽑았고 공사에 들어갈 비용도 잭을 통해 계산해왔다.
그걸 들이밀자 아무래도 자료의 량이 많다보니 페센든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양이 많다는 건 공사할 곳도 많다는 뜻이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니 말이다.
“······음, 그러니까 이게.”
페센든은 겨우 입을 열었다.
“······이게 시작이란 말이죠? 주도의 몇몇 도로만 이 정도란 말이니까?”
“예, 정확하십니다.”
즉 지금 받은 보고서에 산출된 비용에서 몇 배, 몇십 배는 더해진다는 건데.
“음, 비용이 천문학적이군요. 물론 당장 한 번에 다 하는 건 아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비용은 크겠지만 그로 인한 이득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이득은 계속 이어진다······. 그래도 이 정도로 자금이 들어간다면 차라리 철로를 까는 편이?”
이 또한 예상했지만 철도 이야기 나왔다.
철도 가지고 설득하려면 한나절을 더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피곤해지는 상황은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페센든 장관님, 이게 고민할 일입니까.”
때마침 전쟁 영웅 그랜트 장군의 백업까지 더해졌기에.
“기차는 제약이 많습니다.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물자의 보급이란 면에서는 여느 경제적인 현상과 다를 바 없는데 저는 철로의 제약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건 전쟁이었고······.” 라는 반박을 그랜트 장군의 면전에서 나올 리는 없었다.
“하물며 철로가 파손된다? 그걸 보수하기 전에 기차는 아예 달릴 수도 없지만 도로는 깔아두면 좋은데 약간 파손이 돼도 자동차는 달릴 수가 있다 이 말입니다. 태선의 모델T를 타면서 느꼈는데 험지를 주파할 때는 오히려 쾌감마저··· 어흠, 아무튼 험지로도 다닐 수가 있거든요.”
더구나 어조가 좀 강해서 그렇지 사실 그랜트 장군의 말이 맞기도 했다.
뭣보다 철로가 있어야 달릴 수 있는 기차에 비해 자동차는 운행이 비교적 자유로우니.
하물며 모델T는 본래 역사에서도 험지 주파 성능이 제법 괜찮았지만 지금 모델T는 태선이 신경을 더 썼다.
‘여기서 디젤 엔진 개발에 성공하고 용적량을 늘리면 트럭도 나올 수 있어.’
거기에 디젤이 나오면 지금까지 운행되던 기선에서 선박에도 혁명이 인다.
트럭에서 선박으로 이어지는 물류의 테크트리 완성.
해외로 놓고 봐도 큰 혁명을 가져오겠지만 미국 내부로만 보더라도 남북을 가로지르는 미시시피 강을 운하처럼 쓰기에 메리트가 컸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자신감이 태선의 얼굴과 눈빛에서 그대로 배어나고 있었다.
“······.”
잠시 그 얼굴을 보며 말이 없던 페센든 재무장관은 동석은 했으되 여태 조용히 있던 찰스 섬너에게 시선을 옮겼다.
“의회는 어떻습니까? 이 사업이 들어가겠습니까?”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주 유력하고요.”
그리고 찰스 섬너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답했다.
“민주당과도 협의중에 있습니다만 그쪽도 반대는 안 하는 분위기입니다.”
기실 찰스 섬너는 공화당 급진파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지금은 공화당이 여당이며 비록 대통령은 온건파인 링컨이 되었지만 목소리는 급진파 쪽이 더 컸다.
‘태선 킴도 저렇게 자신감에 차있고 그랜트 장군도 저렇게 강변을 하고······. 그나마 의원들이 자기 몸보신에 소극적이기 마련인데 저렇게 나온다니.’
무게 추가 어디로 기울었는지는 확실했다.
‘괜히 각을 세우느니 이쪽 흐름에 적극적으로 가세해서 나도 같이 치적에 숟가락 얹는 편이 훨씬 유리하겠어.’
“그렇게 확실하다면···예! 저 역시 대통령님께 보고하고 예산 편성에 미리 감안할 수 있도록 추진······.”
페센든은 엘리트 정치 코스 출신답게 판단이 서자마자 어중간한 태도는 버리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아니, 이런 일은 빠를수록 좋지요. 내년까지 기다릴 것 없이 긴급 예산으로 바로 진행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