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16
116 새로운 시대로(3)
“축하드립니다, 라이온스 경. 합격하셨습니다.”
태선이 건넨 운전면허증을 받으며 라이온스 경은 침착하고 무덤덤한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 드디어 나도 운전할 수 있게 됐구먼.”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태선에게 드디어 모델T의 판매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기뻤다.
-바로 구매하겠네. 지불은 어떻게 하면 되나? 어서 내 돈을 받아가게.
그날 이런 말을 하며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발급 받은 백지수표를 건네주었다.
그가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특명전권을 받은 대사였지만 백지수표는 그의 성격상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동차를 앞에 두고서는 원칙을 깨고 지갑이 열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라이온스 경. 당장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날 돌아온 말은 태선의 답은 이랬다.
기실 미국의 고관대작조차 라이온스 경에게 이런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태선의 태도는 아주 강고했다.
-안전을 위해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은 분에게만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어서요. 그렇지만 라이온스 경이라면 금방 합격할 수 있을 겁니다.
-크흠, 그런가.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해야지. 그래, 그 면허증은 어떻게 얻을 수 있나?
-필기 시험과 실기 시험이 있는데······.
필기 시험은 도로 주행을 위한 규칙을 본다고 했다.
내용이 그리 어렵지도 않았거니와 머리가 좋은 라이온스 경에게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그건 그렇고 라이온스 경처럼 실기 시험을 완벽하게 하신 분도 드물겠군요.”
“하하, 내가 어디 여길 한두 번 와봤나.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실기 시험은 방금 태선에게 답한 것처럼 필기보다 간단했다.
운전하지 못해 안달이 나서 날마다 시승하러 왔기에 오히려 이렇게라도 핸들을 잡을 기회가 생기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자, 그럼 이제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거겠지?”
“예, 물론입니다. 댁으로 탁송해드릴 수도 있고 아니면 직접 여기서 운전해서 갈 수 있도록 드릴까요?”
“당연히 지금 바로 운전해서 가야지, 하핫!”
“그럼 같이 가시죠.”
태선은 앞장서서 라이온스 경을 데리고 공장 옆에 위치한 차고지로 들어갔다.
쭉 늘어서 있는 모델T는 양산형이라 모두가 똑같았기에 이 중에서 뭘 고르더라도 사실 똑같겠지만.
“원하시는 걸로 고르시죠. 자동차는 다 똑같지만 번호표는 다르거든요.”
“그런가. 음, 보자. 오, 저 번호판이 마음에 드는구먼.”
정말로 꿈에 그리고 그리던 물건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기껏해야 숫자의 나열이라는 사소한 것일지언정 라이온스 경은 벌써부터 특별한 애착이 생긴 모양이었다.
“드디어 내 차가 생기다니···허허허!”
가지고 싶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웃으며 라이온스 경은 차가 자신의 앞으로 인도되기를 기다렸다.
부르르릉───!
이내 태선이 직접 자동차를 몰아와서 라이온스 경 앞에 멈춰세웠다.
“여기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지만 차 번호와 주인을 연동하여 추후 서비스를 해드릴 생각이라 번호는 마음대로 변경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나야 더 좋구먼. 애초에 이 번호가 마음에 들어서 고르지 않았겠나.”
태선이 건넨 키를 받자마자 라이온스는 차에 올라탔다.
내리면서 태선은 시동을 끈 터였다.
첫 시동을 거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위해서였고 전략은 주효했다.
부르르르릉───!
“크으, 이 맛이지! 내 차라 그래서인지 기분이 더 특별하군.”
이제는 어떤 칭찬이든 무슨 말을 하든 라이온스 경에게는 장애물에 불과하리라.
중요한 건 핸들을 잡았으니 이대로 운전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라이온스 경.”
“고맙네. 그럼 가보겠네.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언제 한 번 날을 잡게나. 식사 한 번 같이 하세나. 기다리겠네.”
“알겠습니다. 나가는 길은···라이온스 경이라면 따로 더 설명해드릴 필요가 없으실 테죠.”
시승을 많이 하러 와봤기에 코스를 꿰고 있었다.
시승 코스에서 도시 외곽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되는 길로 직접 나가본 적은 없지만 위치를 알고는 있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길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저 길로 나갈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리고 모델T를 몰고 차고지에서 나온 라이온스 경은 시승 코스를 따라서 익숙하게 차를 몰아가다 옆으로 빠졌다.
가두리 양식을 당하던 물고기가 처음으로 바다로 가는 기분이 이러할까.
“드디어···나왔다. 차를 타고 밖으로 나왔어.”
자신의 것이 된 모델T가 울타리가 쳐진 시승 구역을 빠져나와서 도로로 접어들었다.
“하하하하···흐하하하하하!”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자신을 아는 다른 이가 봤으면 상상도 못할 모습.
그렇지만 기분은 그 정도로 상쾌했다.
뺨을 스치며 속도가 그대로 느껴지는 바람도 그러하지만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승차감은 적당한 긴장을 주면서도 편안한 것이 묘했다.
“어이쿠, 빨간불··· 시험 본 게 정말로 나오는구먼.”
다만 그 와중에 신호등을 주시하는 건 깜빡하지 않았다.
흔한 건 아니지만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사거리나 건널목에는 으레 신호등이 있었고 횡단보도라 해서 사다리 표시가 있었다.
그러면 멈췄다가 녹색불로 바뀌면 가야 한다···는 내용이 시험에서 얼마나 나왔던가.
‘솔직히 공부하게 하려는 것보다는···말만 바꿔서 계속 같은 내용을 묻던 걸 보면 강제로 주입시키려는 기분이었지.’
솔직히 태선에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기분이 조금 나쁘기는 했었다.
영국에서 자신은 귀족이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미국에서는 영국 여왕의 특명 전권을 받은 대사인데.
감히 자신에게 특정한 행동 방식을 강요하려고 한다고?
‘···하지만 태선이 시키는 걸 믿고 하기를 잘했지. 그렇게 한 이유가 있는 거였어.’
라이온스도 미래를 보는 식견이 있는 인사였다.
자동차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다만 자동차는 점점 더 늘어나는데 운전 규범이 없다면 그야말로 개판이 될 것이다.
마차는 그나마 말이 달리는 것인데 지능이 좋은 동물이라 전적으로 마부에게만 안전이 달린 것은 아니었다.
반면 자동차는 그와 달랐다.
‘미리 약속된 공통의 규범이 없으면 부딪치기 딱 좋아. 특히 속도가 붙어 신난 상태라면 더 그러하고.’
이런 라이온스 경의 생각을 뒷받침해주기라도 하듯 마침 빨간불을 받아 멈춘 사이, 꺾이는 골목에서 초록불을 받은 다른 자동차가 앞으로 지나갔다.
끄덕────!
멈춰 서있는 자신을 향해서 에티켓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지나가는 이는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내각의 고위 관료인데 하긴 지금 자동차를 가진 이들은 나름대로 난다긴다 하는 이들일 터.
‘그래봤자 지금처럼 공통의 규범을 공유하지 않으면···고위 관료이고 귀족이고 간에 교통 사고는 피할 수 없지.’
그 사이 꺽이는 골목에서는 빨간불로 바뀌고, 자신이 달릴 앞쪽의 도로에서는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었다.
부릉──!
다시 시동을 걸고 달리면서 라이온스 경은 여전히 감탄했다.
“참으로 대단해. 간단하지만···그러면서도 이런 정교한 규범을 만들다니.”
처음 모델T를 타봤을 때 영국에 돌아갈 때 꼭 가져가서 전파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라이온스 경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추가되었다.
“자동차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야. 자동차가 있으면 교통 법규도 같이 수입해야 해.”
그리고 그에 관해서 최고의 전문가는 태선이었다.
“태선을 꼭 초빙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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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영국에 진출한 안건에 대해서도 미리 계획을 짜두도록 하지요.”
“영국···말인가?”
태선이 영국을 언급하자 조셉은 반가워하면서도 뜻밖이었는지 슬쩍 물었다.
“괜찮겠는가. 아무리 사업이 나날이 번창한다지만···자동차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한 달도 안 됐지만 시작이 늦지 않았습니까. 뿌리를 깊이 박느라요.”
“하긴 자네가 자동차 사업만큼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지.”
어쨌건 저번 보일러에 이어 자동차로 영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못내 반가운지 조셉의 눈빛에는 의욕이 넘쳐흘렀다.
“그런데 물량이 될까요? 저번에 제가 한 걱정이 무색하게··· 밀려드는 주문을 보면 지금 공장만으로는 미국 내수 감당하는 것도 힘들어서요.”
그때 스완 제너럴 일렉트로닉스 산하 자동차사업부 공장장을 겸하고 있는 웨스팅하우스가 조심스레 발언했다.
“그래, 그 말은 웨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어차피 자동차를 영국으로 운반하는 건 무리가 아니겠느냐?”
“어···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증기 터빈···도 아니고 증기 기관으로 돌아가는 이 시대의 선박으로 자동차를 몇 대 이상 옮기는 건 무리였다.
그나마 소음이 심하더라도 출력이 좋은 디젤 기관을 쓰면 모르겠는데 아직 디젤 엔진은 개발하지 못했다.
“우리가 모든 걸 독점할 순 없다. 그건 인정해야만 해. 유럽에서도 자동차를 연구하는 발명가가 있을 거다. 특히 공업으로 유명한 독일이 나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즉 유럽은 현지 생산으로 넘긴다는 말씀이시군요.”
조셉의 말에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엔진 같은 부품을 그쪽에 공급해서 이득을 보는 전략도 있으니까요.”
“호오, 확실히 그런 식이라면 완성된 자동차를 팔지 않더라도 마치 조각조각 파는 것 같은 효과가 있군요.”
“생각해보니 그러면 소비자들에게 직접 파는 것보다 더 안정적으로 팔 수 있는 거 아녜요?”
이른바 B2B라는 것.
“그렇게 됐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전략을 짜봐야죠.”
태선은 웨스팅하우스와 조셉 스완이 흥분하기 전에 미리 진정시킨 뒤 말을 덧붙였다.
“아울러 신호 체계를 위한 신호등이나 그 전기 공급을 위한 발전소라거나······. 영국에 세운 스완 제너럴 일렉트로닉스와 연계하면 아주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만···.”
“···?”
웨스팅하우스나 조셉으로서는 혹여 문제라도 있을까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그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아까도 살짝 언급했는데 선박의 기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선박의 기능이라면···운송량 말씀하시는 겁니까?”
“속도나 안정성도 있지만 운송량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죠.”
말하며 태선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서랍에서 노트 몇 권을 꺼내서 가져왔다.
“그리고 자동차의 출력이 엔진에 의해 좌우되듯 선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선은 그걸 조셉과 웨스팅하우스에게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연구하고 사업화 가능하도록 완성하는 건 두 분에게 맡길 수밖에 없지만··· 그걸 위해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저도 그동안 열심히 연구하여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이건······ 터빈 기술이군요.”
보자마자 노트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뭔지 알아봤는지 조셉이 중얼거렸으나 반응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음, 원리야 그럴듯하지만 기술적으로는 피스톤식 증기기관보다 효율이 좋지 않아서 거의 안 쓴다지요.”
넌지시 조셉 스완이 하는 말처럼 증기 터빈의 효율을 최대한으로 뽑아내기 위해서는 밀폐식 설계나 소형화라거나 그런 부분에서 선행이 필요했다.
‘1897년 전까지는 어떤 발명가도 그걸 못 했지.’
그걸 해낸 이는 영국에서 해운증기터빈회사를 운영한 찰스 파슨스였다.
유체 속도 변화에 의해 압력 차로 기포가 생기는 것을 공동 현상이라 한다.
이게 증기 터빈의 작동에는 좋지 않은데 찰스 파슨스는 이 현상이 문제라는 걸 발견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대처 방법을 고민했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비밀리에 이런저런 개선을 해나가 마침내 1897년 그의 비장의 발명품을 내놓는다.
‘그리고 큰 사고를 쳐버리지.’
빅토리아 여왕 60주년 기념식에서 왕족, 귀족, 제독, 외국의 사절단 등을 모두 모아놓고 관함식을 열었다.
전함과 순양함이 2열로 늘어서서 지나가는데 찰스 파슨스가 만든 증기 터빈 배가 그 사이로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서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무슨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지.’
더 웃긴 건 여왕이 참석한 관함식에서 웬 이상한 배가 끼어들었으니 그나마 날렵하고 빠른 경비정들이 잡으려 나섰는데 택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찰스 파슨스의 배는 빨라도 그냥 빠른 수준이 아니라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빨랐기에.
‘찰스 파슨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유럽으로 진출···더 나아가서 조선으로 더 자유롭게 오가기 위해서 이 기술은 한시라도 빨리 개발되어야만 하거든.’
그리고 자동차를 개발하며 엔지니어로서 한 단계···아니, 몇 단계나 성장하고 공부한 웨스팅하우스라면 할 수 있을 터였다.
“웨스, 자동차가 육로에서 이 나라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면 선박은 미국에서 거둔 결실을 전세계의 인류에게 전파할 수 있는 길이 될 거다.”
“미국을 넘어서···전세계의 인류에게요?”
“그래, 전세계 인류에게.”
그냥 입에 바른 말이 아니라 사실이기는 했다.
제국주의자들로 인해 침략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물리적으로 세계가 가까워지며 선진 제도와 문물을 전파 받기도 했기에.
그리고 태선은 자신이 관여하는 이상 제국주의 침탈은 최대한 막으며 선진 문물 전파에 힘쓸 생각이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 나도 사업적으로 돈은 벌고.’
자신이 돈을 벌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으니.
‘아무튼 영국이나 유럽도 그렇지만 조선이라. 드디어 다시 가볼 날이 가까워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