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17
117 새로운 시대로(4)
“···어떠한가? 왕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 일은 반드시 필요하네.”
흥선군 이하응, 아니 이제는 아들이 왕이 되어 대원군이 된 그가 부르기에 운현궁에 갔더니 넌지시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자네가 그 중책을 맡아주었으면 하는데.”
철종이 죽고 아들을 왕위에 올린 지 불과 1년도 채 지나지가 않았다.
그렇건만 대왕대비 조씨와 힘을 합쳐 안동 김씨를 축출하고 여러 개혁을 단행하고 있었다.
‘장차 서원이나 비변사를 폐지하겠다는 뜻이나 서얼들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 밝히신 건 훌륭하나······.’
그 일이라면 자신이 자처해서라도 일을 맡아 나라의 기틀을 다질 터였다.
하지만 지금 흥선대원군이 자신에게 맡기려고 운을 뗀 일은 경복궁 중건이었다.
“애초에 지금 하는 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뭔가? 왕실 권위가 바로 서기 위함이네. 아울러 세도가가 득세한 건 왕실 권위가 약해서 그랬지.”
‘왕실의 권위···대원군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물론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한다.
조선은 왕정 국가이니 어찌 감히 양반이 그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다른 이들에게 말은 안 해도 예전부터 막연하게 국본은 민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고 있었다.
개화에 대한 지식을 더 쌓을 수록 그러했으며 특히나.
‘몇 년 전 김태선이 간 미국이라는 나라···그 나라는 우리 조선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었지.’
하다못해 세종대왕 같은 그야말로 철인군주가 나타나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전하···가 과연 세종대왕과 같은 만사에 능한 군주의 자질을 가지셨는가.’
몇 번을 생각해봐도 흥선대원군의 차남 이재황···전하가 된 소년은 범재였다.
더구나 나이도 이제 겨우 열두 살이며 결혼도 안 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세종대왕을 위해 앞길을 닦아준 태종···흥선대원군이 능력이 범상치 않기는 하나 태종에 비할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해서도 박규수는 회의적이었다.
그러하거늘 지금 시기는 태종이 기틀을 잡고 세종이 정치를 펼쳤던 때보다 비할 바 없이 위태로운 정국이었다.
‘내부 단속만 하면 될 일이 아니야. 조선 초기에도 명의 눈치를 봐야 했겠으나···서구 열강은 그들과는 전혀 다르다.’
뭣보다 직접 오경석과 함께 청나라에 가서 서구 열강이 이권을 침탈하는 현장을 직접 보고 사정을 듣지 않았던가.
영길리국에 수도 북경이 함락당하고.
민중은 수탈당하고 황제는 도망을 쳐서 칩거를 했는데 쿠데타가 나서 엉망이 되어버렸다.
조선의 앞날에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허나 지금 조선이 서구에게 당할 수 있는가?’
“이보게, 병판. 아니, 환재! 어찌하여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답이 없으신가?”
해서 지금은 경복궁 중건 같은 걸 신경 쓰지 말고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박규수는 말을 올리려고 했다.
그 말을 흥선대원군이 듣기 좋게 말하려 해봤으나···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언을 올렸다가는 좋게 들을 성격은 아니었다.
‘김좌근과 김홍근 두 분 정승께서 국정 간섭을 막기 위해 대원군 자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면서 숙의한 걸 알고···여태 앙심을 품고 있으니.’
하물며 그 둘은 그나마 정승이고 이하응이 어려운 시절에 도와줘서 괜찮았지.
예전에 서원에서 모욕당한 일을 기억해뒀다가 아들이 즉위하자마자 일을 저질렀다.
화양동 서원의 유사를 잡아 죽이고 그 고지기에는 아직도 그 때와 똑같이 대우를 하겠냐고 추궁하면서.
“대원위대감께서 그런 뜻이 있으셨다니 제가 맡겠습니다.”
그렇기에 박규수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옵고 전에 말씀드린 서구 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자세한 정세를 알아보는······.”
대신 대원군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이재황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몇 번이나 이야기했던 화제를 슬쩍 꺼내보았으나.
“아아,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세. 먼저 왕실 권위를 바로 세우고 나라의 기틀을 잡는 일이 먼저이니.”
일축당했다. 그저 속으로 한숨만 삼킬 뿐.
‘아들을 즉위시키기 전에는 이렇지 않았거늘.’
자신과 함께 청나라나 일본으로부터 들려오는 외국 정세에도 관심이 많았다.
배워야 하고 그것이 나라의 힘이 된다는 사실에 관심을 보여주었건만 지금은 왕권 강화에만 눈이 뒤집힌 사람 같았다.
‘그렇게 강화한 왕권으로 개화를 확고히 밀어준다면 틀린 수순은 아니긴 한데······.’
솔직히 말해 미덥지 못했다. 강화된 왕권으로 서구 열강이 접근해왔을 때.
청나라처럼 몰락하지 않도록 정국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아, 그리고 조대비께서 자네 이야기를 어찌나 하시던지 지금 사헌부대사헌 자리가 비던데 어떠신가?”
“···그리고 경복궁 중건을 위해 내년에 영감도건제조를 겸하게.”
“···그러고 보니 자네도 몇 년 뒤에 외직 순환을 해야 하는데 어디가 좋은가?”
그 탓에 대원군이 하는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대원위대감,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래, 살펴 가시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고 대원군의 거처인 운현궁을 나설 때까지 박규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대원군이 정권을 잡았으니 지금으로서 뜻을 펼치기 위한 최선의 길은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다.’
다행히 방금 운현궁에서 대원군도 말했지만 고종이 집권하며 자신의 출셋길은 열렸다.
흥선대원군이 차남을 왕위에 올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왕실의 최고 어른.
대왕대비 조씨가 자신을 천거하면서 좋게 봐준 덕분이었다.
‘병조판서가 됐고 대원군은 조만간 나를 대사헌에 올리겠다 했지. 더구나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중히 여기는데 내가 그 감독을 겸한다면······.’
정승에 이르는 관직은 아니겠으나 권력은 결코 낮지 않으며 뭣보다 왕실 실세인 대원군과 조대비의 신임과 총애를 동시에 받게 된다.
‘그걸 기반으로 서구 열강이 접촉해왔을 때를 대비한 준비를 해둬야 해.’
그런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가마가 집에 다다랐다.
“오셨습니까요, 대감마님. 편지가 왔습니다요.”
대문을 지나 사랑채로 들어가려는데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는 하인이 넙죽 허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뭔가를 내밀었다.
‘이건?’
조선에서 보기 힘든 재질의 종이로 단단히 밀봉된 걸 보자 박규수는 바로 알아보았다.
‘김태선의 편지군.’
편지는 하나가 아니라 세 통이었다.
자신뿐 아니라 오경석과 태선의 누나인 김태희에게 가는 편지들도 인편을 통해서 자신에게 전달되어서였다.
“이 편지는 천거에게, 이건 박말복의 집에 전해라. 박말복의 집은 가는 김에 돈도 챙겨주고 생활에 어려운 점이 있으면 물어봤다가 도와주고.”
“예, 알겠습니다요.”
기실 태선의 남은 가족은 자신과 오경석이 잘 챙겨주겠노라 약속했다.
오경석은 그 약속을 지켜서 의주에 사는 김태희와 그 남편 박말복을 한양으로 데려와 집도 주고 하인도 붙여주었다.
‘하지만 태선이 전해주는 바다 건너의 소식들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물론 태선에게는 가족들이 비할 바 없이 중요하겠지만.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는 자신에게는 이 정보의 가치는 값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박규수는 얼른 사랑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열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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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한가. 매번 볼 때마다 놀라운 소식의 연속이군.”
제도, 과학, 정치 등. 무엇 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다.
사람들이 투표로 뽑은 대통령이 나라를 통치한다고 하지 않나.
‘물론 이건 절대로 입밖으로 내면 안 되겠지만.’
다른 이들의 귀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반역죄로 목이 날아갈 일이었다.
해서 이 내용은 자신과 오경석만 봤고 그 편지는 곧바로 불태워버렸다.
그렇지만 그 충격은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있었는데 특히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그러했다.
‘아예 왕위에 오를 정도로 권세를 누렸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투표 제도를 정착시켰다지. 그 이후로 10여 명이나 대통령이 바뀌었고.’
아울러 그가 설명한 다른 기물도 놀랍지만 특히 기차와 전구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쇠로 만든 커다란 탈 것이 소나 말을 통하지 않고도 저절로 달린다니.
하물며 전구는 등불 따위와 비교도 안 될 밝기로 밤에도 빛을 내뿜는다고 한다.
‘더구나 그 전구는···미국에서 전구의 발명과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기여하는데 태선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했었지.’
거기다 나라가 청나라 못지않게 큰데 남과 북으로 갈리어서는 흑인 노예 폐지를 두고 싸우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개방된 사상을 가진 박규수였지만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내 입장으로 바꿔보자면······.’
집안에서 부리는 노비들의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노비를 부리는 다른 양반들과 나뉘어서 전쟁을 벌일 수 있느냐.
···는 건데 여태 받은 통의 편지들 하나하나 그런 소식을 몇 개나 담고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이 편지를 보낸 자가 김태선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군.’
누가 자신을 놀리려고 지은 가짜 편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건 아니었다.
‘내용 중에는 나와 오경석만 아는 것도 있고 자기 누이에게 보낸 편지도 그렇고······뭣보다 대통령에 대한 정보는 장난이라 하기는 과해.’
이건 보낸 사람이나 전한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목이 날아갈 것인데 그럴 리가.
만약 누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쓴 것이었다면 진작 그렇게 됐을 테고.
툭─!
그 생각에 잠시 잠겨있는데 그때 작은 책자가 떨어졌다.
“이건······편지 말미에 언해를 첨부했다는 그 책자인가.”
미국에서 쓰는 문자에 대해서는 전에 받은 편지에도 언급이 있기야 했다.
알파벳이라는데 한자보다 훈민정음과 비슷하다고 했었다.
“문자를 조합하지 않고 그대로 늘이는 건가.”
그런데 대충 언해를 보니 훈민정음과도 달랐다.
“그리고 단어도 많지만 문법에 대해서는···음, 이건 천거와 만나서 의논을 해봐야겠어.”
천거 오경석에게 전달하도록 명한 편지도 자신의 것만큼 두툼했었다.
그러니 그도 이 영어 언해를 받았을 터.
“그 나라를 보다 잘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말을 배워야 해. 베이징에서 서양인들의 태도만 봤어도 그랬었지.”
언젠가 그들과 자신들이 마주 앉아 협상해야 할 날이 온다면···영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정적인 차이가 될 터였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많은 것이 다를 거고.”
역관인 오경석은 물론 말해주지 않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박규수는 직접 찾아가서 말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오경석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나갈 채비를 하거라. 천거의 집으로 가자.”
한 시도 지체하고 싶지가 않았다. 귀가해서 편지를 다 읽자마자 박규수는 다시 가마를 준비시켜서는 집을 나섰다.
***
“SGE의 자동차사업부에서 별개의 회사로 독립시키면서 스완 제너럴 모터스 매출이 나날이 급속히 오르네요.”
샬롯이 조수석에 앉아서 이런저런 보고를 했다.
‘그야 그렇겠지. 지금만 봐도 그렇잖아.’
지금 태선은 모델T를 몰아 비포장 길을 달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마차였다면 꽤나 엉덩이가 아팠겠지만.
모델T는 차축의 완충이나 쇼파에도 신경을 써서 엉덩이가 아프기는커녕 험로를 달리는 스릴마저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 공장도 새로 두 곳을 늘렸고 부품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은 곳은······.”
이후에도 샬롯은 보고를 이어가다가 태선을 보더니 슬그머니 물었다.
“듣고 있는 거 맞아요? 이거 중요한 내용인데.”
“예, 다 듣고 있죠. 샬롯이 해주는 보고인데 제가 안 들을 리 없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사실 귀 기울여서 듣는 건 아니긴 했다.
‘자동차 쪽도 사업의 큰 가닥은 이미 잡아뒀어. 여기서부터 한동안은 내가 손을 대지 않아도 저절로 잘 굴러갈 거야.’
그렇지만 지금 가서 하려는 일은 달랐다.
태선은 기차로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시에 도착했는데 샬롯과 둘이서 왔지만 화물칸에 특별한 것을 실어서 왔다.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토마스 스콧과 친분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화물칸에 통째로 실은 건 바로 모델T였다.
‘아마 자동차에 대한 소문은 이미 오하이오주에도 파다하게 퍼졌을 거야.’
다만 실물을 보여주는 건 또 의미가 다르지.
그리고 동부 도시에 비해 오하이오 주가 중부에 위치하긴 했지만 결코 가치를 낮잡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랜트 장군도 포함해서 남북전쟁의 북군 장군들이 여기 출신이 많지.’
그리고 제조업도 발달하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농업과 광업 역시 많이 발달한 곳이었다.
‘미국이야 그럴 일이 없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식량이 중요해.’
일단 식량을 퍼다 조선에만 대도 다른 분야가 발전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그리고 자동차를 만들었으니 디젤 엔진을 만들어 농기계를 만들면 식량 생산량은 혁신적으로 늘어날 터였다.
‘온 김에 오하이오주에서 내 영향력도 키워두고···자동차 공장을 지을 부지도 알아봐두고.’
다만 단지 식량만 놓고 봤다면 더 좋은 주가 있었다.
공장을 짓는 안건만 놓고 봤더라도 오하이오주보다 더 나은 주가 있었다.
그럼에도 오하이오주를 택한 것은 가장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앞의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동시에 대체 불가능한 이점이 있어서였다.
‘대통령 선거에 오하이오주 선거인단의 영향력이 크지.’
오하이오를 잃으면 선거에서 진다는 징크스가 있을 정도이니 어련할까.
하물며 지금의 경우에는 그랜트 장군이 오하이오주 출신이라 이곳에서 민심을 얻어두면 태선에게는 더욱 유리하게 무기로 써먹을 수 있는 이점도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앞의 것들 못지않게 태선이 오하이오주에 오기로 결심한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