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23
123 철의 계산수(2)
태선의 하루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멘로파크 연구소 방문이었다.
그건 어언 여름도 지나 한가을에 접어든 오늘도 마찬가지.
“사장님 오셨어요!”
그리고 태선만큼이나 자주 와서 태선을 맞는 녀석이 있었다.
“웨스, 너는 자동차 공장에 부속으로 연구소도 지어줬는데···아무리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지만 어째 여기 연구소에 더 자주 보이는 거 같냐?”
“그게 예전 습관이랄지 뭔가 새로운 걸 연구할 때는 여기 연구소가 더 편해서인지 감이 살아나서요.”
얼굴에 기름때 잔뜩 묻힌 채 답하는 청년은 다름 아닌 웨스팅하우스였다.
“그리고 거기서는 저 혼자 있지만 여기는 존 소장님도 있고 새뮤얼 형도 있고···뭣보다 사장님을 뵐 수 있잖아요.”
마지막 말을 하고는 새삼스럽게 쑥스러웠는지 웨스는 괜히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에디슨도 부려먹을 수 있고요.”
“아, 웨스 형! 저도 이제 제 밑으로 조수들이 있다고요.”
그러자 웨스팅하우스와 같이 물결 무늬의 원반 금속을 만지작거리던 에디슨이 반박했지만 표정을 봐서는 진심으로 기분 나빠하는 건 아니었다.
“이 자식이 어딜 형님 말에 토들 달아. 군소리 말고 거기 터빈에 기름칠이나 잘해.”
“···알았어요. 아무튼 다음에 공장에 가면 제가 제안한 아이디어대로 자동차 테스트 같이 해주셔야 해요.”
오히려 웨스팅하우스를 친형처럼 믿고 따르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시너지 효과라도 났는지 모르겠지만 증기 터빈도 예상보다 진전을 보이는데.’
좋은 일이었다. 증기 터빈이 개발된다면 ‘대양’이라는 제약을 한결 덜 수 있기에.
다만 배는 증기 터빈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선박 쪽도 같이 엮어서 발 빠르게 움직일 계획을 짜둬서 다행이야.’
사실 오늘 연구소에 들른 건 기술 개발을 점검하거나 힌트를 주거나 하는 여느 때 의례적인 이유와 달랐다.
“그럼 하던 것 하고 있거라. 오늘은 프레보스트 씨를 만나러 와서 말이다.”
“배비지 아저씨는 저쪽 따로 마련해주신 연구실에 있어요. 집중력이 장난 아니시던데요.”
에디슨이 가리킨 곳은 얼마 전에 한쪽 구석에 따로 마련한 장소였다.
프레보스트 배비지와 정식 계약을 하고 그를 위해 특별히 별도의 장소를 꾸려줬다.
‘특별히 조셉이 쓰는 연구실 바로 옆에 말이야.’
그리고 지금 그 연구실로 들어가보니 태선이 택한 전략은 주효했다.
미리 조셉에게도 진공관에 관련한 아이디어를 말해주면서 미끼를 흔들어준 덕분이었지만.
“오, 태선 아닌가. 안 그래도 마침 잘 왔네.”
“조셉 씨와 진공관 관련한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2진법 배열을 해서 계산했을 때 진공관 필라멘트 내구도 소모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 최소한 계산량에 대해서요.”
밖에 있는 웨스팅하우스나 에디슨이 젊음과 행동력에 기반하여 뭔가 만들고 시행착오를 겪는 타입이라면.
‘여기는 엔지니어 느낌 빼고 연구자 느낌 확 풍기네.’
벽을 채운 칠판에는 무슨 공식이나 계산 수식이 빼곡했다.
그렇다고 이곳에 하드웨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벌써부터 진공관을 만들어보고 계시는 겁니까. 전 그저 개념을 말씀드렸을 뿐인데.”
작은 사이즈로 만들다 깨진 유리 조각이나 여러 가지 절연 소체까지.
진공관을 만들다 실패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만들지 않을 수 없잖나. 그리고 미리 연구한 덕분에 큰 성과가 있었어. 전구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필라멘트에서 전기를 끊었다가 다시 방출하게 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어노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금속판이······.”
‘서류에 간단히 필라멘트와 함께 캐소드와 플레이트 개념을 언급해두긴 했지만 벌써 저걸 알아채는 단계까지 다다랐나.’
과연 한 시대를 풍미한 발명가답게 적절한 힌트가 주어지면 실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곧잘 해답을 알아낸다.
‘이 정도면 당장은 뭘 더 알려줄 필요는 없겠어.’
사실 컴퓨터 개발에 있어 진공관은 걸음마에 불과했다.
그 이후 0과 1의 전환을 더 자유롭게 해주는, 말 그대로 의미의 트랜지스터부터 시작되는 다음 테크.
그 개념을 알려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묻어뒀다.
괜히 급하게 가려다 앞의 단계를 건너뛰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거기다······.’
태선은 시선을 옮겨 연구실 한쪽 있는 거대한 기계 장치를 보았다.
수많은 톱니바퀴와 부품이 결합되고 조립되었으나 곳곳의 상태를 봐선 명백하게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다.
“것보다 해석 기관을 벌써 저만큼이나 만드셨군요. 연구소에 들어오신지도 얼마 안 되셨는데 연구 진전이 빠르네요.”
“이 다음 갈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기세가 오르더군요. 하물며 킴 사장님이 지원까지 있으니까요.”
태선은 해석 기관 쪽으로 다가가서 상태를 살피다가 슬쩍 프레보스트 배비지에게 물었다.
“말이 나와서 말입니다만 저번에 제가 말씀드린 그 ‘견적’ 기억나시는지요.”
“아, 해석기관으로 그것의 계산이 가능한지 말이죠?”
프레보스트 배비지는 안 그래도 태선이 오면 그에 대한 답을 주고 싶었는지 해석 기관 옆에 수북하게 쌓인 서류를 뒤적거려 뭔가를 꺼내며 말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예, 가능합니다!”
슥────!
뭔가가 복잡하게 계산된 결과지를 태선에게 건네주는 프레보스트의 표정에는 뿌듯해하는 심정이 드러났다.
“헌데 해석기관으로 그것의 계산이 가능하더라도 의미를 가지는 건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에서나 쓸법한데 거기서는 굳이 이것을······.”
“예, 물론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안 쓰겠죠. 여태 그러했듯 계산수를 쓰면 되니까.”
이른 바 계산이라는 노가다에 사람 갈아넣는 것. 그렇게 갈려나가는 이들을 계산수(計算手, Computer)라고 불렀다.
“하지만 굳이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해석기관을 받아들이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설득해야 할 곳은 따로 있거든요.”
설득할 곳···거기가 어디냐는 듯 프레보스트 쳐다보자 태선은 마침 책상 한편에 보이는 배 모형물에 다가갔다.
“배 만드는 곳, 특히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가장 큰 손이라 할 수 있는···해군입니다.”
***
한바탕 비가 내릴 듯 우중충한 날씨의 노퍽 해군조선소.
“만나서 반갑소. 존 로저스 대령이오.”
안색이 좀 창백해서 그런지 오히려 상대를 서늘하게 만드는 인상의 소유자.
존 로저스 대령이 태선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태선 킴이라 합니다. 남북전쟁에서 대령님의 활약상은 익히 들었습니다만 직접 마중 나와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하하, 킴 사장님이야말로 사업가임에도 전구로 게티즈버그 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고 들었소만.”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칭찬이 기분 좋긴 했는지 존 로저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다만 솔직히 말해서 태선은 존 로저스가 남북전쟁에서 한 활약에 대해 대충 알 뿐 그리 잘 알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전쟁의 네임드인 율리시스 그랜트나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나 남측의 로버트 리와 어깨를 견줄 정도는 결코 아니었기에.
“그리고 이쪽은 우리 회사 전략실 실장이자 비서인 샬롯 로렌스이고 이쪽은 프레보스트 연구원입니다.”
같이 온 샬롯과 프레보스트 배비지를 소개해주면서 슬며시 눈치를 살피니 봐라.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에요, 로저스 함장님.”
“···저도 큰 영광입니다.”
태선을 따라 영광이라고 립서비스를 하는데.
“하하, 이거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쑥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존 로저스는 이런 칭찬에 내성이 약한지 잘 먹혀들었지만 태선에게는 영혼 없는 칭찬이라는 것이 훤히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 로저스 대령···이 사람의 이름은 의미가 있지.’
다른 나라라면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어서는.
‘신미양요 당시에 미국 사령관이 바로 이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은 대령이지만 1869년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아시아 함대의 사령관이 된다.
그 뒤는 한국사에서도 익히 배우는 바와 같이 초지진과 광성보를 점령했다가 조선의 강력한 저항에 후퇴.
‘물론 내가 있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아무튼 뜻밖에 그를 노퍽 해군조선소에서 보게 되다니 이도 인연이란 건지 모르겠다.
“아, 여기 계셨군요. 글라우커스 호의 점검이 이제 막 끝나서 늦었습니다.”
그 사이 또 한 사람의 장교 차림의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쯧, 그냥 부하에게 맡겨둬도 될 것을 하여간 자기 손으로 직접 안 하면 성에 안 차서는.”
존 로저스는 짐짓 핀잔을 주면서도 그런 성격이 싫지는 않았는지 그를 소개해줬다.
“어서 오게. 이쪽은 조지 쿠퍼 대위입니다.”
“쿠퍼 대위님이셨군요. 태선 킴이라고 합니다.”
“아, 킴 사장님! 하하하, 유명하시더군요.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죠. 특히 군납 비리가 있는 모건을 한 방 먹여주고 있다죠. 하하하, 응원하고 있습니다! 힘내십쇼!”
유쾌하게 말하는 조시 쿠퍼와 악수하면서도 태선은 아까 존 로저스에게 느낀 감정을 새삼 다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지 쿠퍼도 존 로저스와 함께 아시아 함대 소속으로 신미양요로 강화도 땅을 밟는 미국인이기에.
‘신미양요가 일어나지 않는 액땜이라고 보면 되려나. 원래 역사에서는 조선과 엮이는 이 미국 군인들이 나와 먼저 만나게 되는 건 말이지.’
“자, 그럼 안으로 가시죠. 골즈버러 사령관님이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존 로저스 대령이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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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M 골즈버러. 본래 역사에서 1865년 지중해 전대 사령관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워싱턴 해군기지의 사령관이 되어 은퇴할 때까지 말년을 보내고.
‘그런데 지금은 대서양 전대 사령관이 되었군. 원래 지중해 전대가 대서양 전대 소속이긴 했지만 역사가 살짝 바뀌었네.’
자신의 개입으로 1년 일찍 남북전쟁이 끝난 나비효과 때문이려나.
다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은 태선에게 좋게 작용했다.
“자네가 태선 킴이군. 언제고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자네가 먼저 보자고 할 줄이야, 하하!”
골즈버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태선을 맞아줄 정도로 반겨주었다.
하기야 다른 사업가에 비해 태선은 군복 납품부터 시작해 전구를 이용한 여러 기여까지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어쩌면 당연한 거려나.’
거기에 지금은 무려 그랜트 장군과 함께 부상이나 PTSD로 고통받는 참전자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번 만남에서 원하는 걸 얻으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
나이 많은 군인 아저씨들을 그냥 얼굴 보고 수다나 떨자고 찾아왔겠는가.
슬슬 선박 관련 사업에 손을 대기 위해서였다.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남북전쟁이 막 끝나 군인의 위세가 오른 이 시점에서는 그 후광을 입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더구나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이라고. 아직은 해군력이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밀리지만 포텐을 잘 터트리면 해외 진출에 군의 백업을 받을 수 있거든.’
그리고 해외 진출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태선에게 있어서는 필연이었다.
애초에 한국인···이 시대로 치자면 조선 출신으로 열강에 짓밟히게 될 국운을 바꾸고자 하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또 하나는 석유 사업을 위해서였다.
기실 겉으로 보기에 자동차 사업이 주력인 것 같지만 그 내실을 살펴보면 연료인 석유로 꾸준히 이익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 윤활유에 아스팔트 도로에 쏠쏠하다.
‘석유를 다른 나라에 팔기 위해서든···다른 지역의 유전에 손 대는 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선 쪽도 먹고 간다.’
그걸 위한 협상을 하고 자신들을 백업하기 위한 아군으로 포섭해두기 위해 이 미팅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한 준비는 당연히도 갖춰온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