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24
124 철의 계산수(3)
“허어, 자네는 정말로 많은 것을 아는구먼.”
한동안 대화하고 나서 골즈버러 제독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바다에 관해서는 내 오늘 잘난 척 좀 해도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닙니다. 제가 어찌 제독님에 비하겠습니까.”
태선 역시 예의를 차린 말이었지만 바다에 관한 골즈버러의 경험이나 식견을 존중하는 건 진심이었다.
태선이라고 해서 과거 일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 전까지 골즈버러라는 인물이 있다는 정도만 알았지 정확히는 몰랐는데··· 짬밥이 어마무시하네.’
아버지부터 해군성 수석 서기였단다.
그리고 1805년 생인데···1812년에, 당시 해군 장관인 폴 해밀턴에 의해 중함병으로 임명되었다고 하는데.
“제독님은 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해병인 진짜배기 바다사나이가 아닙니까.”
“이거 이야기 한번 잘못 꺼냈다가 놀림거리가 됐군. 실제로 바다 생활 시작한 건 열한 살 때 네이비 야드라고 했잖은가.”
골즈버러가 이렇게 둘러대는데도 이건 또 이거대로 대단한 일이었다.
형식적이라도 알음알음 일곱 살 짜리에게 임명을 한 것이나··· 정식으로 복무를 시작한 나이가 열한 살이라는 것이나 말이다.
“제가 보기에는 그게 거기입니다만. 아무튼 지중해, 멕시코, 브라질, 대서양···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바다가 됐든 강이 됐든 배를 타고 온 세계를 누비고 다녔으니 말입니다.”
“하핫, 뭐 그거야 사실이긴 하지. 내 동생 녀석이 자네처럼 그걸 인정해야 하는데.”
거기에 그가 슬쩍 언급하며 지나가는 그의 동생 존 R 골즈버러도 그랬다.
“아까 동생 분도 해군 장교라고 하셨죠?”
“장교는 무슨 놈의 장교. 그 코흘리개 녀석은 내가 보기에 아직 갑판이나 닦고 있어야 해. 형을 존경할 줄도 모르고 자기가 최고라지.”
···라고 여느 형제처럼 투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생도 어쨌든 해군 장교였다.
즉 그야말로 대대로 해군 가문이라 함은 바로 골즈버러가를 말함이리라.
‘그래서 더 잘 됐어.’
바다에 대해 그만큼 가치를 중히 여기고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됐다.
자신이 준비해온 전략은 필연적으로 더 잘 먹힐 것이다.
‘준비해온 무기는 두 가지···슬슬 그 중 첫 번째 걸 꺼내볼까.’
“말이 나온 김에 내가 진짜 업적 다운 업적을 내세운 것이 스물다섯 살 때였거든. 해도를 수집하고 기지 건설을 제안해서 흩어져있는 해군 기지의 중앙 집중화를 하면서 호위함을 타고 태평양을 순항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던 태선은 마침 태평양 순항이라는 말이 들리지마자 나섰다.
“태평양 순항이라···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다니.”
“하하, 그게 바로 바다의 매력이지. 어지간히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없고는 불가능하거든.”
태선은 조심스레 골즈버러의 눈치를 살폈다.
정신력과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방금 전 골즈버러의 말에 자신이 이제 막 꺼내려 하는 개념은 반대될 수 있기에. 일단 잽부터 날려보기로 했다.
“예, 피지컬 중요하지요. 하지만 어찌 사람이 한 다리로만 선답니까? 지성이라는 또 하나의 다리가 있어야 탄탄하게 서지 않겠습니까?”
“좋은 지적을 해줬군. 흔히 사람들이 바다 사나이들은 멍청하다고 착각한단 말이야.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도!”
‘다행이군.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하는 반응인데.’
“그러고 보니 자네도 미국에 올 때 태평양을 건너왔댔지? 그렇다면 이해하겠군. 바다를, 특히 밤에 바다를 보면 얼마나 시커멓고 막막한가.”
“예, 맞습니다. 무저갱 속에 내던져진 것 같죠. 거기에 날이 맑아도 파도가 배를 흔드는데 폭풍마저 오면 지옥이죠.”
거기에 맞장구도 쳐주고.
“그렇지. 특히 그렇게 폭풍이라도 오면 제일 곤란한 건 좌표를 잡는 건데···육지와 달리 바다 한가운데 지표로 삼을 게 뭐가 있겠나.”
“예, 그렇잖아도 저도 그게 궁금했었습니다. 바다에서는 길을 잃으면 끝장인데 무엇이 항해를 가능하게 했는지.”
“그게 바로 항해술이지. 경도와 위도라는 게 있는데······.”
‘나왔다!’
자신이 살살 유도하기야 했지만 다행히 골즈버러의 입에서 원하던 키워드가 쉽게 나와주었다.
“김을 빠지게 해서 송구스럽습니다만 고향이 대양 건너에 있다 보니 공부해서 저도 해답을 얻었지요. 별자리나 달 궤도를 이용한다죠.”
“에이, 이 사람! 그 정도는 모처럼 잘난 척을 좀 하게 해주게 내버려두지 그랬나.”
골즈버러의 투정에 태선은 고개 숙여 미안함을 표했다.
“그리고 독일 천문학자 토비아스 마이어라는 분이 높은 정확도로 매년 미묘하게 바뀌는 달 궤도를 측정하는 계산법을 고안했다고 들었습니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그걸 항해연감으로 발표한다고.”
그러면서도 태선이 이어서 계속 말하자 골즈버러는 점점 이 정도로 알 줄은 몰랐다는 듯 얼굴에 뜻밖이라는 감정이 번졌다.
“킴 사장님···거기까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하긴 조선···이라고 하셨죠? 나중에 태평양을 다시 건너갈 생각도 있으시다면 그만큼 알 법도 하군요.”
존 로저스와 조지 후커도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이들이 보기에는 대화의 흐름이 우연히 흘러간 것 같지만 태선이 세심히 드리블한 결과였다.
그리고 잘난 척이나 하자고 이렇게 공을 들인 건 아니었다. 본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솔직히 저는 영국 해군이 전세계를 누비며 바다의 주인으로 행세할 수 있는 건 바닷길을 인도해주는 그 공식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거 하나만으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지.”
골즈버러가 중얼거렸고 안 그래도 존 로저스와 조지 후커는 해군 장교답게 마침 이 화제로 전에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는지.
“그래도 중요한 건 역시 경험이라고 봅니다. 경험이 충분히 누적되면 그 노하우로 커버되지 않겠습니까. 영국 해군에는 그 경험이 풍부하고요.”
“로저스 대령님 말도 일리는 있지만 계량된 명확한 데이터는 바로 그 경험의 차이를 완화해 주거든요.”
“하아, 자넨 또 그 소리인가. 나도 그건 인정은 하는데 그 데이터라는 건 전파될 수가 있지 않은가. 그리니치 천문대의 항해연감을 우리가 보듯 말이야.”
그리고 골즈버러 제독은 말리기는커녕 흐뭇해하며 부하들의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름 해군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토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골즈버러 제독은 매일 이 둘의 토론을 봤겠지만 오늘은 다른 결과를 보시겠군.’
제3의 변수인 태선이 같은 자리에 있기에.
“두 분 말씀이 다 맞고 일리 있습니다만 한 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이변이 일어난다면요?”
문득 꺼낸 이변이라는 말에 존 로저스와 조지 후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즈버러 역시 더욱 흥미롭다는 듯 살짝 자세를 바꾸었다.
“이를테면 그리니치 천문대 계산수들이 일제히 공식과 데이터를 들고 다른 나라로 가버린다거나···혹은 미국이 다시 영국과 전쟁을 한다거나.”
“킴 사장님 말씀은 즉 어떤 식으로든 영국이 항해연감을 제공해주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보자는 것이로군요.”
“동맹이라도 남의 주머니에 있 는 이상 우리 수중에 있다고 단언할 수 없는 일이죠.”
존 로저스는 불만스러운지 입술을 삐쭉거렸다.
“그건 너무 극단적인 가정을 하십니다.”
“에이, 로저스 대령님! 극단적으로 가정을 해봐야죠. 얼마 전 전쟁만 해도 남쪽이 그렇게 전쟁을 일으키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반면 조지 후커는 옳다구나 싶었는지 기세를 한층 높였다.
“아니, 그거야······.”
‘여기서 더 밀어붙여서 괜히 로저스 대령과 사이를 소원하게 할 필요는 없지.’
자신이 하려는 말과 반대가 되겠지만 적절한 선에서 존 로저스의 기도 세워줘야 했다.
“솔직히 로저스 대령님 말씀대로 제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설령 항해연감을 제공받아도···항해 경험이 없는 선원뿐이면 대양 항해는 무리겠지요.”
“아니, 킴 사장님. 방금 전까지는 말씀을 잘하시더니 왜 또 그런 말씀을···.”
조지 후커가 서운해 했지만 태선은 애써 못 들은 척 외면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경험은 경험대로 갖추며 우리가 그리니치 천문대가 그러하듯 달 궤도의 계산이 가능하여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면요?”
“우리가 자체적으로 달 궤도 계산이 가능해진다?”
이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영국에서 받아서 쓴다고 생각해왔을 테니까.
‘무리도 아니긴 해. 이 시점에서 미국은 독립한 지 100년도 안 됐고 기초 과학 분야 내공은 유럽을 따라갈 수 없지.’
그중에서도 영국, 그 영국에서도 난다 긴다 하는 자만 모여있는 그리니치 천문대, 심지어 거기서도 계산수를 오랜 시간 갈아넣어야 한다.
심지어 계산에 아무리 작은 실수라도 있어서는 안 됐다.
그 작은 실수가 다음 계산에 누적되면서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바다 위에서 참사를 만들 테니까.
‘하지만 해석 기관···본래 역사보다 좀 더 개선된 것인 덕분이라서인지는 몰라도 완성되면 가능하거든.’
“우리가 자체적으로 그걸 할 수 있게 된다라···좋긴 하군요. 남의 것을 받아서 쓰는 것과 우리 스스로 가지고 쓰는 건 전혀 의미가 다르니까.”
“비싸서 그렇지 지금도 존 해리슨의 항해용 정밀 시계를 구비하면 가능하긴 합니다만.”
조지 후커가 존 해리슨의 항해용 정밀 시계를 언급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골즈버러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나도 그 건은 검토해봤지만 무리야. 값이 비싼지 어떤지를 논하기 이전에 애초에 제작이 어렵다더군. 보급이 안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결국 답은 돌고 돌아 불가능하다는 것.
“그게 됩니다.”
···이라고 자기들끼리 결론 내리기 전에 태선이 말했다.
“?”
그 말에 골즈버러 제독, 존 로저스, 조지 쿠퍼가 동시에 태선을 쳐다봤다.
“하하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회사 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어떤 계산기가 있는데 자랑하려고 제독님을 뵙고자 청한 것입니다.”
“계산기를 자랑하려고? 혹시 그 계산기가 방금···?”
“예, 그 계산기로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항해연감에 싣는 달 궤도의 계산이 가능해집니다.”
‘가능하다’는 말에 태선은 유독 힘을 실었다.
“그 계산기의 이름은 해석 기관이라고 하고, 바로 여기 프레보스트 배비지 씨가 연구소에서 제작 및 연구의 총괄을 맡고 계십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께서 이론적으로 완성하셨고 태선이 개선할 힌트를 줘서 그대로 완성해나가고 있을 뿐이죠.”
프레보스트 배비지가 멋쩍게 웃으며 겸손하게 말했으나 앞서 태선이 거나하게 뿌려둔 떡밥 덕분에 제독과 두 해군 장교의 반응은 달랐다.
“오, 이거 옆에 계신 분이 그렇게 대단한 분이었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억양이 다른데 영국에서 오셨습니까?”
“···해석 기관이라. 사실 궤도 계산은 이미 영국에서 받고 있는지라 당장 달라질 건 없겠지만···하나하나를 우리 자체적인 걸로 대체해 나간다면 분명히 더 강해지겠지요.”
한마디로 호들갑이었다.
“잠시만요! 잊어서 안 될 게 장치라고 했다는 건···?”
더구나 그 와중 조지 쿠퍼는 예리하게도 단순히 달 궤도의 계산이 된다는 사실 그 이면을 간파한 듯싶었다.
“예, 기계 장치입니다. 예상하신 대로 다른 계산에도 얼마든지 쓸 수 있죠.”
아직 지금 시점에서는 쓸 일이 있으려나 싶기는 하지만 슬쩍 던져두는 것도 괜찮으리라.
기실 컴퓨터가 발전한 기원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를테면 암호 작성이나 해독에도 상당한 계산을 요하는데 거기에 쓸 수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