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32
132 유다(3)
층층이 접혀있는 천공 카드 다발이 프레보스트의 손길에 따라 한 장씩 개량형 해석 기관에 입력되었다.
드르르륵────!
그와 함께 보조 진행자가 옆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레버를 돌렸고 톱니바퀴가 돌면서 천공 카드가 빨려들어갔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운 해석 기관의 옆에는 수십 개 계기판이 붙은 출력 장치가 있었다.
사삭──사사삭────!
출력 장치 앞에 서있는 건 잭이었다.
정확히는 잭을 포함해 그를 보조하는 몇몇의 재무팀 직원이 함께였다.
그들이 하는 건 자료와 계산 결과의 대조였다.
“앗, 죄송합니다. 방금 23번 계기판에 결괏값을 놓쳐서······.”
“내가 파악하고 있었으니 당황하지 말고 이어서 해.”
문제가 있다면 계산이 워낙 빨라서 막대한 데이터가 동시에 나오니 대조만 하는데도 간혹 데이터를 놓치는 것.
‘의외의 복병이네. 전생의 컴퓨터처럼 결괏값이 저장되는 게 아니니.’
물론 최종 결과만 알아도 상관없으면 괜찮겠지만 정교함을 중시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 면에서 숫자와 재무에 밝은 잭이 이 작업을 주도해서 다행이었다.
잭이 직접 보조로 뽑은 직원들도 머리가 좋고 명석하지만 가끔씩 실수를 한다.
그때마다 잭이 커버친 것이 며칠 동안 몇 번은 있었다.
“···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천공 카드를 투입하고 빈손을 보이며 프레스소트 배비지가 선언했다.
“일단 도중에 멈추지도 않고 오류도 안 났고 작동 자체에는 문제가 없군요.”
계산이 잘못됐을 리 없으니 사실상 성공적인 테스트였다.
“며칠 걸린 것도 자료를 참고로 천공 카드를 만드느라 늦어진 것뿐이니 시간도··· 굉장히 혁명적이군요.”
“그 계산 과정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점검한 잭 씨도 대단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프레스보트와 잭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인사를 했다.
‘일단 해석 기관의 작동은 성공적이었고.’
이건 좋은 신호였다. 지금도 프레스보트와 스완은 진공관의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테스트 성공은 해석 기관의 업그레이드에 귀중한 자양분이 될 터였다.
‘다만 그건 차차 말해주고.’
지금 당장은 그보다 우선할 일이 있지 않겠는가.
“잭, 해석 기관으로 계산한 결과의 검토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조금만 기다려주면 돼. 실시간으로 계속 체크했으니 잠깐만 기다리면 될 거야.”
이미 잭은 보조 직원들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연구실 한쪽 커다란 테이블에 늘어놓고는 무슨 매직아이처럼 눈알을 좌우로 빠르게 굴려댔다.
그러면서 몇 군데 동그라미 표시로 체크하기도 하면서 이내 잭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역시···태선 자네 예상이 맞았어. 뭔가 안 맞아.”
일부러 잭이 신경 쓰지 않도록 약간 거리를 떨어트리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이제 계산도 끝났고 태선은 바로 옆으로 다가갔다.
“정확히 어떻게요?”
기다렸다는 듯 잭은 아까 전에 군데군데 체크한 동그라미를 하나씩 가리켰다.
“윗줄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가 증자하는 동시에 주가가 변동하며 반영된 SGE와 SGM 주가총액의 변화야.”
“그러면 그 바로 아랫줄의 수치가 해석 기관으로 계산한 결과겠군요.”
“그렇지 여기까지 보면 증자하면서 주가도 올라 계속 주가총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사실 오늘 해석 기관의 계산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에 태선뿐 아니라 스완과 다른 직원들도 와있었다.
어느새 브리핑처럼 모두 모여들어 잭의 설명을 경청했다.
“···내가 동그라미 친 곳에도 보면 알겠지만 군데군데 차이 나잖아. 우리가 실제로 주문해서 증자한 것보다 주가총액이 더 적다는 말이지. 즉 그만큼 주식이 많아야 해.”
“그렇다는 건 주식거래소가 계산을 잘못했거나······.”
“그도 아니면 누가 그 차이만큼 SGE와 SGM의 증권을 위조해서 챙겼다는 뜻이 되겠지.”
아무래도 잭은 지금 계산 자체에만 정신이 몰려있어 쉽게 말했지만.
그 말의 의미를 따져보면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데 클라이막스는 따로 있거든. 여기부터가 WCSS를 인수할 무렵인데······.”
“그럼 주식이 늘어난 건 증자해서겠죠.”
“그리고 동시에 주가가 폭락하면서 주가총액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요동을 치는데 숫자로만 봐도 난리도 난리가 없지. 이 난리통 속에서!”
탁──탁──탁───!
잭이 동그라미 표시한 몇 군데를 짚으며 아주 어려운 숨은 그림 찾기를 해내기라도 한 듯 희열에 찬 눈빛을 번뜩였다.
“우리가 증자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주가가 폭락했다가 회복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 주식 숫자가 크게 비어. 워낙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동이 심해서 가려졌는데 확실해.”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되면 우연은 아니군요,”
태선의 말을 끝으로 잭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뒤늦게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살짝 흠칫했다.
“자···잠깐만! 그러면 이거 단순히 거래소 말단 직원이 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예, 이 정도 일을 은밀히 꾸밀 수도 있을 뿐더러 입막음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이 있어야 하죠.”
“젠장, 이런 수작을!”
그때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스완이 소리쳤다.
아무래도 태선과 공동 대표인데다 무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사이니 스완이 저리 열을 올릴 만도 했다.
“깜짝이야. 진정하세요, 스완 아저씨.”
“웨스, 넌 화도 안 나냐? 너도 스완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인데 지금 거기도 이런 수작질에 걸려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기야 하지만요······.”
웨스팅하우스는 혼자 스완을 말릴 길이 보이지 낳자 도움을 구하듯 태선을 쳐다봤다.
“스완 씨.”
“후우, 미안하네. 내가 좀 흥분했었군.”
태선이 자못 이름을 부르자 아무리 화가 났어도 애써 화를 누르는 스완이었다.
“아뇨, 충분히 화를 내실 만도 합니다.”
다만 태선은 오히려 그런 스완의 화를 말리기는커녕 같이 흥분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분노를 공감해주었다.
“WCSS를 매입하고 나서는 분명히 모건의 입김이 묻어 더 노골적이 됐을 겁니다.”
잠시 말을 멎으며 태선은 조선소를 매입하기 전에 표시된 동그라미들에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그 전부터 이런 수작질이 있었다니. 어처구니 없고 저도 화가 나네요.”
“그렇지! 이번 일이 아니면 모르고 계속 당하고 있을 것이···콜록콜록!”
하도 열을 올리다 사레가 들렸는지 스완이 기침을 하자 웨스팅하우스가 급히 물을 떠다가 가져다주었다.
벌컥벌컥 냉수를 마시면서 스완이 진정할 시간을 잠시 준 뒤 태선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모건이 들쑤셔줘서 오히려 도움이 됐군요. WCSS 매입도 원래 탄탄한 회사가 모건의 협잡질 탓에 우리가 매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건데······.”
“음, 그래도 그건 대출금을 떠안게 됐잖나.”
“사실 그만큼 크고 기반이 탄탄한 조선소는 그런 조건이라도 구하기 어려울 겁니다. 더구나 대출금도 당장은 갚더라도 결국 받아낼 거니까요.”
태선은 테이블 놓인 계산 결과지에 서신을 던졌다.
“특히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생긴 이상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고요.”
“하기야 그렇긴 하지. 모건은 자기가 친 덫에 오히려 자기가 걸리게 된 셈이군.”
“하나 덧붙이자면 덤으로 우리에게 은밀하게 수작을 걸던 쥐새끼도 같이 잡게 됐고요.”
잭은 계산 결과를 말한 뒤로 조용히 있었으나 아까 희열감에 젖어 신나게 떠들어댄 부담을 아직도 느끼는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쥐새끼라기에는···좀 사이즈가 크지 않나?”
“그렇겠죠. 그러고 보면 그 밑으로 딸린 놈들도 좀 있을 테니 차라리 바퀴벌레라고 해야 더 맞으려나요.”
바퀴벌레 운운하며 태선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다만 모두 오랫동안 태선과 함께해왔기에 태선이 정말로 화나면 오히려 역정을 내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웃으면서 속내를 알 수 없게 굴 뿐이다.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처절한 응징으로······.’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정교한 함정으로 몇 배로 갚아준다.’
‘내가 믿고 따르는 사장님이지만 그런 점은 무섭지.’
모두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태선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잭, 일단 이 자료를 나중에 법원과 뉴욕주식거래소에 증거 자료로 제출할 수 있도록 잘 꾸려주세요.”
“알겠네. 다만 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나중이라는 건···서두르지 않아도 되나?”
주섬주섬 계산 결과지를 챙기는 잭을 도와주며 태선은 좋은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회사는 견딜만한 수준이니까요. 거기다 아직 이 정도 증거로 섣부르게 찔렀다가 적을 움츠러들게 해서 허탕을 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음, 하긴···여태 이렇게나 우리 주식을 좀먹고 있었으니.”
새삼 생각해봐도 전율이 돋는지 스완이 중얼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모건이 어지간히 닦달한 결과겠죠. 모건이 그런 재주 하나만큼은 비상한 작자니까요. 이 조심스러운 바퀴벌레가 한 탕 크게 저지르게 할 정도로요.”
“저기 바퀴벌레가 여러 마리라면서요. 그러면 대장은 아빠 바퀴벌레가 맞지 않나요?”
“하하, 웨스가 예리한 지적을 해주었구먼.”
“그럼 애비 바퀴로 합시다.”
이야기하는 사이 모건과 작당하여 주가를 조작해서 증권을 빼돌린 작자의 코드네임은 애비 바퀴벌레로 굳어졌다.
“애비 바퀴벌레···딱 맞는 별명이군요.”
태선도 그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무력하게 당하면서 이대로 무너질 것처럼 보이면 ‘이게 통하네?!’ 싶어서 더 적극적으로 나올 겁니다.”
“아예 무너져서 다른 놈들이 우리의 잔해를 나눠가지기 전에 자기들이 선점하려고 달려들 거라는 말이지?”
“예, 더구나 모건이 끼었으면 더욱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그럴수록 더 놈들에 대한 정보를 찾기 쉬워질 겁니다.”
블록을 하나씩 쌓듯 태선이 차례대로 일의 수순을 말해주자 다른 이들도 이 문제의 매듭을 풀어갈 수순이 얼추 보이는지 저마다 한마디했다.
“주식거래소에 그 정도 영향력을 끼칠 자는 한정적이지.”
“아멕스 경비대에 그런 쪽으로도 소양이 있는 분들도 꽤 있으시다던데 이번에 일을 맡기면 되겠군요.”
“모건과 접점도 따져서 교차 점검도 해야겠지요.”
“거기에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매각할 것처럼 하면···어쩌면 그 미끼를 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같이 있다 보니 어째 이 사람들이 나랑 생각하는 게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거 같네.’
태선은 잭, 스완, 웨스팅하우스의 말을 그저 듣기만 하다가 아치볼드를 짐짓 봤다.
“들었지? 기밀 안건으로 저 내용대로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도록 해. 물론 안나에게도 보고해두도록 하고.”
“넵! 그리고 아멕스 경비대 인력을 쓴다고 하셨는데 에릭 대장님에게는?”
“그 건은 네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말해야지.”
태선을 중심으로 묶인 회사 그룹에서 그도 나름대로 임원, 간부급이니 말이다.
“말 나온 김에 나가자마자 아멕스에서 웰스 씨와 파고 씨도 만날 겸 에릭 대장도 만나서 이 건에 대해 의논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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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이죠.”
에릭 스미스는 맡겨만 달라는 듯 건치를 드러내보이며 웃어보였다.
“그 주식거래소에 우리가 미행할 자들 명단만 주면 누굴 만나고 점심에 뭘 먹는지도 알아내겠습니다.”
“아니, 그걸로 되겠나? 에릭 녀석 대장이 되더니 내가 키울 때보다 물러졌어.”
다만 그 소리를 듣자 윌리엄 파고가 끌끌 혀를 찼다.
“그러게 말일세, 파고. 할 거라면 하루에 오줌을 몇 번 누는지까지 알아내야지.”
헨리 웰스는 한 술 더 떴다. 물론 농담이기야 하겠지만.
‘아니, 그래서야 흥신소 뒷조사인데······.’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시킨 일이 그게 맞긴 했다.
뭣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 할 거면 미지근해서는 곤란해. 어차피 불법도 아니고 확실히 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