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36
136 협잡질 위의 클래스(3)
밤늦은 시간인데도 사무실 천장에 달아놓은 전구 불빛은 좀처럼 꺼지지를 않았다.
부스럭────!
전구 불빛이 내도록 불을 밝히듯 그 아래서 서류를 들추는 중년 남자 역시도 그랬다.
“······.”
뻑뻑 얼마나 피워댔는지 자욱하게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남자는 꽁초만 남은 담배를 끄려고 재떨이를 찾았다.
그렇지만 책상 한쪽을 더듬어봐도 재떨이는 없다.
챙그랑───!
그러다 컵을 밀치는 바람에 유리 조각이 흩어지고 식어버린 커피가 퍼졌다.
“젠장!”
남자는 욕을 내뱉으며 유리 파편과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커피를 보았으나 치울 생각 전혀 없는지 이내 외면해버렸다.
“후우, 그나마 자료에는 쏟지 않아서 다행이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발로 대충 유리 파편이나 커피를 밀어냈다.
그러고 재떨이를 찾으려는지 책상에 온통 어질러진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 바람에 한쪽에 불안하게 쌓였던 서류 뭉치가 무너지며 「연방검사 리차드 하몬」이라 박혀있는 명패가 드러나며 자리 주인의 이름을 내보였다.
“빌어먹을···항상 바쁘면 늘 뭐가 꼬인다니까.”
그나마 서류가 무너지면서 명패와 함께 꽁초가 잔뜩 쌓인 재떨이가 어딨는지 보이게 된 건 다행이려나.
궁시랑대며 리차드 하몬 연방검사는 꽁초를 재떨이에 비비고 자료들을 수습했다.
책상 한쪽에 다시 대충 쌓아놓고는 보다 만 자료를 다시 면밀히 훑었다.
“음, 조금 어지럽기는 하네.”
그가 지금 맡은 사건은 뉴욕증권거래소의 조작 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데다 얼마 전 지명된 제임스 스피드 법무부 장관도 주목하고 있는 건이었다.
아울러 무려 록펠러가 내부고발자였다.
-록펠러가 증거까지 다 가져왔다죠. 이번 건의 결과는 사실 정해진 거나 다름없군요.
-검사장은 따놓은 셈이군요. 이거 미리 축하드립니다, 하몬 검사장님.
-이미 실적으로는 검사장에 내정된 거나 다름 없으실 텐데 스피드 장관님 라인이라 확실히 푸시해주시는군요.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이러했다.
자신이 차기 검사장이란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건은 공적을 주기 위한 것이라나.
“하아, 개뿔 같은 소리!”
자신도 처음 이 건을 맡았을 때는 그럴 거라고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고.
“결정적인 게 없어. 결정적인 것이······.”
정황상 자료는 확실하고 록펠러가 증인까지 확보해서 명단을 넘겼다.
만약 소환하면 모건이나 저스틴의 수작을 밀고하는 증언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 이야기도 되어있다고 했다.
아마 보통의 적수라면 그 정도만으로 충분했겠지.
“하지만 모건이나 저스틴은 달라. 모건이 몇 번이나 변호사 군단을 꾸려서 빠져나가거나 감형을 받았으니.”
심지어 페이튼 저스틴은 이 비슷한 의심을 받은 전적이 몇 번이나 있었음에도 막상 기소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켕기는 게 있을수록 방어는 더욱 철저한 법이겠지. 하지만···이번에 그걸 뚫을 판이 마련된 것도 맞아.”
실제로 록펠러의 고발 이후 그가 준 자료를 토대로 모건과 저스틴을 몰아붙였다.
언론에 터트려서 큰 이슈를 만들고 은폐하려는 움직임을 섣부르게 취하지 못하도록 팔을 묶어뒀다.
이제 결정타를 먹어야 할 차례인데···막상 그걸 앞두고 하몬 검사는 망설이고 있었다.
“검사이기에 이쯤 파면 내 눈에는 보인다. 어디로 반격이 들어오면 내가 곤란할지.”
즉 이 한 수를 썼을 때 가장 찌르지 않기를 바라는 약점···물론 사건마다 매번 그런 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건에는 그런 약점이 있어 리처드 하몬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후우, 지금 제대로 기소에 들어가기 전에 설계를 잘못하면 앞으로 계속 귀찮아져. 다시 한번 재구성해보자.”
하몬 검사는 사무실 한쪽의 코르크 보드 앞으로 갔다.
모건과 저스틴을 중심으로 증거와 증인들과 여러 사건들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색이 다른 가느다란 실로 이어서 관계도를 표시하고 있었다.
손에 든 보고서와 시선을 옮겨가면서 비교한다.
“일단 모건 쪽에 붙여둔 A1부터 A7까지···저스틴 쪽에 B1부터 B6까지···둘이 연결된 C1부터 사건은···솔직히 말해 작아.”
즉 그냥 인정해버리되 다음 사건으로 연결점이 될 부분에 대해서만 부정하면?
그 사건의 사소한 부분을 하나씩 연결하여 섬세하지만 큰 그림을 완성하려는 입장에서는 짜증이 난다.
그런데 모건이나 저스틴은 그런 걸 할 줄 아는 자들이었다.
“지금쯤 모건과 저스틴도 변호사들을 죄다 모아서 이런 식으로 전략을 짜고 있겠지.”
거기에 증인의 증언을 어느 포인트에서 인정해서 인용하되···어느 포인트에서 부정해야 궁극적으로 불리한 국면을 은근히 빗겨갈지도 알 것이다.
그저 우연히 놈들이 그걸 못 하기를 바라고 안일하게 전략을 짜면 기껏 유리하게 만든 판이 깨진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이 앞에서 무슨 짓거리를 해도 이 건에 대해서만 확실한 증거가 나와버리면 끝장인데.”
탁──!
시원하게 풀리길 바라는 마음에서인지···괜히 하몬 검사는 코르크 보드 끝에 놓인 한 사건을 주먹으로 세게 때렸다.
태선 킴의 WCSS 인수 건을 두고 모건의 갑작스러운 대출 폭리부터······.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한 태선 킴의 SGE와 SGM 증자가 얽힌 복잡한 사건이었다.
“문제는 저기 쌓인 자료 중 절반은 이 건 관련이겠지.”
하물며 이건 법적인 문제 이전에 금융, 주식, 사업 이슈가 뒤섞여있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모건과 저스틴이 최고 전문가.
자료도 방대한데 그걸 또 어디를 파고 들어서 가지고 놀지 누구보다 저치들이 잘 아는데 어찌할지.
“기댈 수 있는 곳은 그나마 태선 킴이나 WCSS에 자료 제공을 요청해서 그걸로 어떻게든 해보는 건데···하아!”
말인즉 정의의 심판을 내릴 승부수가 다른 사람의 손에 기대기만 해야 한다는 건가.
하물며 그것도 잘 풀렸을 때 이야기지.
이제 회사를 인수한지 1년도 안 됐는데 뭘 알겠나.
“···최악의 경우는 놈들이 지루하게 끄는 수작에 걸려서 늘어지다 유야무야 핵심적인 혐의는 빠지는 건데.”
어금니를 꽉 물더니 하몬 검사의 시선이 WCSS 건과 실로 연결된 지점으로 다다랐다.
“그렇게 되기 전에 던질 승부수는 저것뿐이야.”
거기 꽂힌 핀으로 고정된 메모지에는 ‘위조 증권’이라고 적혀있었다.
정황으로 보건대 저스틴과 모건은 태선 킴의 SGE와 SGM의 위조 증권을 가지고 있는 듯싶었다. 록펠러의 증언으로 바도 그러했고.
즉 압수 수색하여 그들이 숨겨둔 위조 증권만 확보한다면 그대로 게임은 끝난다.
또 다른 외통수인 셈이나 총알은 단 한 발뿐이었다.
“후우, 마치 야수를 사냥하는 것 같군. 한 발로 맞추지 못하면 내가 끝이라니.”
이쪽은 록펠러가 포섭한 내부자를 통해 놈들이 위조 증권을 어디 숨겼는지에 대해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다만 그걸 또 모건이나 저스틴이 알아서 조치를 취하면 그 한 번의 기회는 도리어 자신에게 역풍으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 어떤 수를 택하든 100퍼센트 승률은 장담할 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하몬이 중얼거리는데 그때 별안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음?”
혹여 며칠 동안 철야하느라 잘못 들었나 싶어 하몬 검사는 문을 쳐다봤다.
밤늦은 시간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퇴근했고 자신만 이번 건으로 골머리를 썩이느라 남아있었을 따름.
이 늦은 시간에 이 사무실에 찾아올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밖에서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을 터이거늘···?’
똑똑똑────!
다시 소리가 들렸다. 환청 따위가 아니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저는 태선 킴이라고 합니다만.”
이어서 문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리처드 하몬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태선 킴이라고?!’
그 이름을 모를 리 있겠나. 기실 방금 전만 해도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후의 두 수 가운데 하나로 태선 킴에게 자료를 요청하는 고민하고 있었는데.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찾아오다니 의외였다.
록펠러도 언질을 했었고 가까운 시일내로 수사 관련으로 만날 생각이었는데 저쪽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반갑습니다. 들어오시죠.”
하몬은 직접 문을 열어서 검은머리 훤칠한 인상의 사업가를 맞아주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고 계셨군요.”
“킴 사장님이야 이미 잘 아시겠지만 이번 건을 맡은 이상 한 시도 소홀히 보낼 수 없어서요.”
하몬 검사는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머쓱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한 번 부를 생각이었는데 좀 갑작스럽군요. 미처 정리를 하지 못해 사무실이 청결하지가 못합니다. 괜찮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정의 구현을 위해서 바쁘셔서 그러신데 이건 흠이 안 되죠.”
그래도 하몬은 접객용 소파 한쪽을 치우고 앉더니 맞은편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보다도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오셨다는 건 급하고 중요한 용무가 있어서라 봐도 되겠군요.”
그리고 그 급하고 중요한 용무는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지 하몬 검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모건과 저스틴이 이 같은 위기를 맞은 건 사실 처음은 아닐 겁니다.”
“예. 산전수전을 겪고도 살아남은 자들이니 그만한 수완과 처세술이 있겠죠.”
“그 탓에 겉보기에 하몬 검사장님이 단번에 사건을 해결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속내···더구나 태선이 방문하기 전까지 딱 그대로의 상황을 짚어내자 하몬은 내심으로 살짝 놀랐다.
그럼에도 겉으로 베테랑 검사답게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태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라고 저희쪽 법률 담당이 말해주더군요. 제이크 벌링게임이라고.”
“오, 벌링게임이 킴 사장님과 같이 있었군요. 어쩐지 잘 아시더라니 그래서였군요.”
“하몬 검사님과 하버드 대학 선후배 관계였다고 하더군요.”
스윽────!
말하며 태선은 커다란 서류 뭉텅이를 몇 개나 꺼내놓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DMA, 혹시 개인적인 친분으로 이번 건에 대해서 뭔가 청탁을 하시려는 거라면······.”
“하하, 그럴 리가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벌링게임이 하몬 검사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라 그러더군요.”
사업가가 연방검사인 자신을 찾아와서 뭔가를 건네면 대개는 뇌물이었다.
그렇거늘, 물론 이번 건은 케이스가 특이했지만 태선 킴의 발언은 더 종잡기 어려웠다.
‘······혹시?!’
너무 자기 좋을 대로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순간적으로 뇌물이 아니면 사건의 증거인가 싶기도 했다.
“저스틴을 궁지로 몰아넣을 자료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맞았다.
“우리 쪽에서 증권거래소에 요구한 SGE와 SGM의 증자 물량과 그에 따른 주가 변동 그리고 저희가 따로 입수해서 실제로 반영된 기록을 대조한 차이를 정리해둔 자료입니다.”
“이거 양이 상당하군요.”
다 볼 엄두가 안 난다는 듯 하몬이 중얼거리자 태선은 머쓱하게 웃었다.
“일부만 가져왔고 훨씬 많습니다. 가져와봤자 당장은 다 못 보실테니까요.”
“하기야 그렇겠지만. 아무튼 이걸 가지고 왔다는 건 차이가 있어 그렇겠군요.”
태선은 일말의 주저함 없이 끄덕거렸다.
“아주 큰 차이가 있지요. 거래소를 압수수색한다면 이 거래 담당의 최종 결재 라인이 누군지 알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만 하면 외통수로 충분할 테고요.”
“그 최종 결재 라인은 물론 페이튼 저스틴이겠지요.”
하몬은 자료를 챙기면서도 넌지시 물었다.
“헌데 양이 상당한데 언제 준비를 다 하셨는지.”
“저희 쪽에서 개발한 해석 기관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하몬은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 시대에는 들어본 사람이 드물겠지.
자칫 그래서 해석 기관의 증거로 채택에는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정치력만 더해진다면 충분히 신뢰성이 있다고 밀어부칠 명분이 해석 기관에는 있었다.
“본래 영국의 배비지 씨가 왕립협회의 지원을 받아 개발했던 것을 제가 그 아들 프레스보트 배비지 씨에게 투자해서 완성한 계산기입니다.”
“오, 그랬군요. 영국 왕립 협회의 지원까지 받았다니.”
왕립 협회 이야기가 나오자 납득하는 하몬이었다.
실제로 명실 공히 영국 왕립 협회의 이름에는 그만한 위력이 있으니 하몬의 납득도 그럴만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남은 자료들도 조만간 받을 수 있겠는지요?”
“저희 쪽 경호원을 통해 보내드리겠습니다.”
“덕분에 확실하게 놈들을 얽어맬 수를 갖췄군요.”
십년 묵은 체중이 내려간 듯 하몬의 표정이 밝아졌다.
“스피드 법무부 장관님도 관심이 많으시다면서요. 세간의 관심도 그렇고요. 더구나 우리 회사가 한쪽의 당사자인데 최선을 다해 도와야죠. 검사님이 밤늦게까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요.”
간결하게 용건을 딱 끝내자 태선은 일어섰다.
“잠잘 시간까지 아껴가며 수사하시는 분께 제가 시간을 빼앗는다면 예의가 아니겠죠.”
엉거주춤 같이 일어나면서 리처드 하몬은 첫 만남에 받은 인상부터 그랬지만 마지막까지 태선에게 다른 사업가와는 다른 인상을 받았다.
보통은 검사, 그중에서도 실세이며 탄탄대로 달리는 자신을 만나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며 환심을 사려 하건만 이 사람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딱 용건만 하고 일어나다니. 물론 사건이 잘 해결되는 것 자체가 킴에게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딱히 자신에게 더 유리하게 해달라거나 그런 말 한두 마디 정도는 자료를 건네준 입장에서 할 법도 한데.’
“그럼 이만.”
그는 정말 용건만 마치고 사무실을 나가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되니 어쩐지 하몬이 먼저 이렇게 보내기가 아쉬워서 뒤따라 나가 그를 불러세웠다.
“민망하군요. 다른 때였다면 같이 차라도 하면서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데, 이번 사건이 끝나면 한번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