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44
144 옥수수밭(1)
하이럼 맥심, 그 유명한 맥심 기관총을 만드는 발명가이자 군수 사업자.
그렇지만 사실 처음에는 전기 기술자였다고 한다.
“14살에 마차 수리 공장의 견습공으로 들어가서 기술을 배우다가 이직해서 램프용 가스 연소법도 독학하고 전등이나 그런 전기 기구 개량도 했다던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등이나 그런 걸 수리해서 생업을 이으면서 이런저런 발명품을 만들던 모양이었다.
“···다들 잘 듣고 있지?”
“넵!”
그리고 태선은 자신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아는 지식과 아울러 샬롯을 통해 조사시켜 알아낸 정보를 꼬치꼬치 아치볼드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영국에 건너가서 돈이 되는 걸 만들려고 했고, 그게 바로 맥심 기관총이었고.’
물론 미래에 일어날 일은 신중을 기해, 그 사건으로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성격과 취향은 일러주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렇군요. 사장님께 말만 들었는데도 어떤 사람인지 손에 잡힐 듯 알 것 같아요. 그냥 아는 것만 아니라 그 정보들에서 다시 성향을 도출해내시는 것도 대단하고······.”
아치볼드는 일단 말해주니 들으면서도 감탄했다.
뉴욕에서 메인주로 가는 몇 시간 동안 떠들어댄 태선도 솔직히 대단했지만.
그걸 집중력을 잃지 않고 듣는 아치볼드도 아치볼드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렇게 다 듣고 감탄하는 것 자체도 꽤 대견스러웠다.
‘아부만 하는 녀석이었으면 경청하는 척은 하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겠지.’
그런데 가끔 녀석이 하나를 말해주면 반문하면서 더 묻거나 할 때가 있었다.
방금 자신이 정보로부터 다른 정보를 도출해냈다는 평가 아닌 평가를 했던 건 그래서 나름 내린 결론일 터였다.
그런 점만 해도 역시 S급 자질로 볼 만하다.
하긴 본래 역사에서 록펠러의 오른팔 자리는 꽁으로 따낸 것이 아니었을 테니까.
“슬슬 다 왔다.”
“그 사람 가게까지 다 꿰고 계시는군요. 사장님은 어떻게 이런 걸 다 아세요?”
어떻게 알긴.
“이건 샬롯이 알아낸 거다.”
사실 살롯이 본격적으로 복귀한 건 아니었다.
아이를 보모를 겸하는 마리에게 맡겨두고, ‘이건 내 힘의 50퍼센트만 개방한 것이다.’ 같은 느낌으로 절반 정도만 복귀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지. 어쩌면 메인주라 더 찾기 쉬웠는지도 모르고.’
메인주의 주도인 뱅고어에 샬롯의 외삼촌인 푸어 형제가 살고 있으니.
더구나 그 푸어 형제가 어디 보통 인물들인가.
특히 헨리 푸어와 그 아들, 즉 샬롯에게 외조카가 되는 부자는 나중에 스탠다드 앤 푸어스의 원조가 되는 회사의 대표다.
‘그 전에는 법률 사무실을 했으니 사람 찾는 데는 도가 텄겠지. 실제로 전이나 지금이나 그 도움을 많이 받고 있고.’
부릉──!
덕분에 바로 찾았다.
“다 왔다.”
“맥심 전기사업소라. 동네에 수리점으로 한두 곳쯤 있을 것 같은 곳이네요.”
가게에서 좀 떨어진 공터에 차를 세워두었다.
SGM의 활약으로 미국 동부에서는 이제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어 주차할 자리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걸어야 하긴 했지만 걸으면 되지.
그렇게 걸어서 맥심의 가게로 가는 동안 태선은 문득 걸음을 멈춰섰다.
“왜 그러세요?”
태선은 웃으며 아치볼드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존, 들어가기 전에 할 이야기가 있다. 정확히는 네게 맡길 일이 있지.”
“넵, 뭐든 말씀하세요!”
“처음에 널 스카우트 할 때 크게 쓰겠다고 했지. 내가 없을 때 개리슨이 사령탑을 대신 맡아주고 있지만 실제로 몸으로 뛰는 부분은 개리슨이 대신해주지 못해. 누군가는 젊은 피가 그걸 대신해줘야 하지.”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전략실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래,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그런 면에서 이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 맥심 씨의 처지를 봐도 그렇고 네가 내걸 수 있는 조건도 그렇고 말이다.”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다 아치볼드가 뒤늦게 뭔가 이상하단 걸 깨닫고는 태선을 쳐다봤다.
“제가 걸 수 있는 조건이요?”
태선 사장님이 아니라 제가요?
“네가 하다 잘 안 되면 내가 나서겠지만 맥심 씨를 멘로파크 연구소로 스카우트하는 이번 건은 네가 해보거라.”
“예? 이렇게 갑자기 제가요?”
“뭐 나도 차 타고 오는 동안 네가 생각보다 맥심에 대해 말해주는 걸 잘 알아듣고 더 묻고 하기에 즉흥적으로 든 생각이기는 한데······. 잘할 것 같거든.”
그리고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기회도 그렇고 위기도 그렇고, 중요하고 위급한 사건은 예고 없이 갑자기 오는 법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맞닥트리는 것도 경험이 되겠지.
‘뭣보다 녀석에게는 큰 경험이고 큰 사건이겠지만······. 만에 하나 녀석이 실패하더라도 내가 수습할 수 있고 설령 일이 잘 안 풀려도 타격이 크지는 않아. 대안도 있고.’
오히려 그 대신 아치볼드가 좋은 경험을 얻게 된다면 그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산.
탁──!
태선은 넋이 나간 듯한 아치볼드의 등짝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고는 녀석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걸으며 말했다.
“그럼 이번 계약에서 최종적으로 걸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말해주마. 그걸 염두에 두고 처음에 무슨 조건을 걸어서 어떻게 협상을 하고······.”
“자, 잠시만요. 수첩 좀 꺼낼게요. 적어둬야 할 거 같아요.”
“그래, 그래. 하지만 맥심과 이야기할 때는 누가 말한 걸 옮겨다가 하는 티는 내지 마라. 그리고 오면서 내가 말해준 맥심 씨에 대한 정보도 잘 숙지해서 협상에 임하고.”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맥심의 가게로 가는 동안 태선은 말하고 아치볼드는 긴장한 채 열심히 적었다.
·
·
·
“넌 여기 왜 있냐?”
“그냥요.”
모델t 문간에 등을 기대고 선 두 청년.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은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에이, 웨스 형도 제가 같이 있으면 좋잖아요.”
“그야 그렇긴 하지. 농기계 정비할 때도 네가 있어서 편했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근데 조금 늦으시네?”
웨스팅하우스는 회중시계를 보고 다시 기차역에 시선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이래서 고속도로를 깔자고 하신 거였나.”
“도로는 이미 깔고 있잖아요.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더 나왔어요?”
에디슨의 눈이 반짝였다.
그걸 보며 씩 웃는 웨스팅하우스.
예전에는 서열 차이는 있었어도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같이 일했었다.
그렇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이제 제너럴 스완 모터스의 사장이 되었으며 간부 회의에도 참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런 웨스팅하우스를 보는 에디슨의 눈빛은 선망하는 그것이었다.
“나왔지. 동서횡단!”
“동서횡단이요? 그러니까 미국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고속도로요?”
“그래, 태선 사장님이 장기적으로 그 건을 추진하자고 하셨어. 아니, 벌써 실제로 추진되고 있지.”
“오, 그거 엄청 좋은데요! 자동차를 타고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가다니, 크으!”
“그렇지? 거기에 또 우리가 만드는 디젤 엔진으로 화물차가 나오면 물류······.”
뿌우우우────!
웨스팅하우스도 말을 끊으며 기차가 들어왔다.
기차 시간을 보면 필시 태선이 저걸 타고 왔을 터였다.
“미안하다. 기차가 조금 연착이 됐네. 어, 에디슨도 같이 와있었냐?”
잠시 후 수행원으로 아치볼드를 대동한 태선이 콜럼버스역에서 나왔다.
“디젤 엔진 건은 아주 중요한 일이잖아요! 저번에 말씀드렸듯 농사는 전투······.”
“하하하, 에디슨 너도 열심히 일해서 웨스처럼 한자리하고 싶다는 거지?”
“윽! 아니라곤 못 하겠네요.”
에디슨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전생에서 남의 아이디어 가져간 일이 있어서 조금 불신했었지.’
그래서 멘로파크 연구소에 두면서도 혹여 다른 연구원들의 아이디어를 가져갈 때를 대비해서 주시했다.
솔직히 하려고 하면 훔쳐 갈 기회도 있긴 했었을 거다.
‘물론 그랬으면 바로 응징의 철퇴를 맞았겠지만.’
본인도 그걸 알아서 아예 생각을 접었는지.
아니면 같이 하는 웨스팅하우스가 옆에서 좋은 영향을 줘서인지 모르겠으나 에디슨은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제법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엔지니어로서도 그렇지만, 특히 전생에서 상업화하는 능력이 특출났던 만큼 다른 팀이나 연구원에게 그런 조언을 잘 해줬다.
‘이만큼 일을 해줬는데 아무것도 안 해주면 오히려 그 탓에 엇나갈 수 있으니 감투 하나 주기는 해야겠어.’
“제가 문 열어드리겠습니다. 타시죠!”
엄연히 수행원인 아치볼드가 있지만.
사실 아치볼드에게도 그런 행동은 안 시키겠지만, 심지어 기사처럼 자동차 뒷문을 열어주는 에디슨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웨스팅하우스가 차를 몰며 물었다.
“메인주를 들렀다 온다고 하셨죠. 메인주에 가셨던 일은 잘되셨어요?”
“이 녀석이 잘 처리해준 덕분에 생각보다 더 잘 풀렸다.”
태선의 손이 옆자리 아치볼드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는 걸 보면 이 녀석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사람 하나를 스카우트하러 갔었거든. 너희처럼 엔지니어다.”
“엔지니어요? 거기에 태선 사장님이 직접 스카우트하러 가셨다면······. 아, 저 옛날에 시골집 살 때가 떠오르네요.”
“근데 너만큼 어리진 않아. 너희들의 경우에는 내가 운 좋게 일찍 스카우트한 케이스였고.”
청년 시절에 영입해서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키워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스물다섯인데······. 이번에 영입한 연구원은 아치볼드 네가 소개하면 어떠냐?”
“제가요?”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네 수완으로 스카우트했잖냐. 여기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도 엄연히 연구소 소속이고.”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스카우트 건을 맡기다니 아치볼드 너를 엄청 믿으시나보다.”
“우리랑 같이 연구소 들어올 건데 소개도 해줘. 기왕 하는 거 어떻게 말빨로 휘감아서 스카우트했는지도 말해주고.”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판이 일단 깔리자 아치볼드는 빼지 않았다.
“크흠, 하이럼 스티븐 맥심이라는 분인데, 만나러 가기 전에 사장님이 그 사람 경력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어요. 웨스 형이나 에디슨 형처럼 일찍 업계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던데······.”
그리고 시작되는 아치볼드의 보고······. 아니, 사실 청자가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이라 그런지 무용담을 푸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고 보면 딱 한 살씩 터울이 나는 세 사람이었다.
‘보기 좋네. 이 세 명이 나중에도 잘 어울려야 할 텐데.’
아치볼드는 정치적인 수완을 곁들인 경영 쪽, 아치볼드는 엔지니어, 에디슨은 엔지니어이되 상업화 방면 쪽에 각각 역량이 있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시너지가 크게 난다.
기실 태선이 아치볼드에게 직접 말하라고 한 건 이런 사적인 자리를 빌어서 친해지기를 더 바라는 면도 있어서였다.
“와, 너 대단한데! 맥심 씨가 넘어온 것도 당연하다.”
“아니에요. 솔직히 누가 갔어도 킴 스탠다드 오일을 뒤에 업고 스카우트를 하는데 넘어오지 않을 리가요.”
“아냐, 그래도 달라. 뭐랄까 방금 전에도 말하는 거 들어보면 언뜻 태선 사장님 말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었거든?”
“오, 맞아. 저도 그랬어요. 물론 태선 사장님에 비할 순 없지만 아무튼 왜 너한테 그 일을 맡기셨는지 알겠어.”
그리고 호텔에 도착할 쯤에는 자신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아치볼드에 한층 더 호감을 느꼈는지 셋은 친밀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다른 간부들은 서른 살의 새뮤얼을 제외하면 다들 중년인데 이 셋만 청년이라는 사실도 한몫했겠지만.
‘친해질 시간은 이만하면 충분히 줬고.’
“그럼 30분 뒤 내 숙소로 오거라. 내일 농기계 테스트 모델 운용 건에 대해서 들어보자.”
태선은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에게 그렇게 말한 뒤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씻고 나서 직접 차를 타서 막간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사이 젊은이 셋이 들어왔다.
“다들 편하게 앉아라. 그거 보고서지?”
“넵, 여기요. 하루만 더 시간을 주셨으면 아치볼드에게 보여줘서 수정을 받았을 텐데······.”
팔락──!
받자마자 소파 상석에 앉아 페이지 넘기는 태선을 보며 웨스팅하우스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웨스팅하우스가 나한테 직접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리는 건 처음인가.’
어설프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부분을 지적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허례허식 빼고 실질적인 부분에 시간을 집중해서 투자할수록 디젤 엔진과 농기계 관련 사업은 추진력을 얻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필요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실질적인 부분에서 웨스팅하우스가 생각보다 더 잘해줬는데.’
끝까지 대충 훑고 나서 태선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마침 옥수수 수확철이라 되어있군. 용케도 자기 밭에 테스트 모델로 수확하는 걸 수락한 농사꾼을 섭외했구나.”
“운이 좋았어요. 자동차 연구소에 같이 일하는 녀석의 아버지가 여기서 크게 옥수수밭을 한다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농사꾼에게 수확물은 소중할 텐데. 망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잘 줬겠지.”
“넵! 보시면 아시겠지만 테스트 모델로 완성한 건 옥수수용 콤바인, 옥수수용 바인더를 각각 두 대, 트랙터를 한 대 테스트 모델로 제작했든요.”
“보고서에 굴착기도 있던데 이거는?”
훑어보는 와중에도 눈썰미로 굴착기를 짚어낸 태선이 묻자 웨스팅하우스가 안 그래도 말하려 했다는 듯 답했다.
“굴착기는 농장에 공사를 할 때는 필요한데 지금 수확철에는 필요성이 덜할 것 같아서 그 대신으로 콤바인과 바인더를 더 생산했어요.”
‘일리가 있군.’
“그래서 그걸로 테스트하는 걸 보여주면서 협력을 구했는데 오히려 더 설득할 것도 없이 관심을 크게 보이시더라고요. 심지어 그게 또 어떻게 소문이 퍼져나가 가지고 내일부터 보일 테스트에 주변 농가에서도 구경하러 온다고 성화라던데요.”
다소 두서가 없긴 했지만 다 말하고 나서 웨스팅하우스는 괜히 어색하게 웃었다.
“결국 뭐 제가 한 건 딱히 없었는데 농기계를 보고 저절로 설득이 된 거죠.”
“그것도 대단한 거지. 말 한 마디 필요 없이 보는 것만으로 설득이 된다면 그것만큼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게 없으니.”
칭찬을 듣자 웨스팅하우스는 곧바로 공을 돌렸다.
“저야 그냥 만들었을 뿐이고 출력을 감당할 수 있는 디젤 엔진부터 시작해서 콤바인이든 바인더든 사장님이 기본 개념을 제시해주셨잖아요.”
“그래도 그걸 구현하는 엔지니어의 공은 무시할 수 없어.”
태선은 일어나서 웨스팅하우스에 이어 에디슨까지 직접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아무튼 그 기계들로 직접 옥수수 수확을 테스트할 내일이 기대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