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45
145 옥수수밭(2)
부르릉──!
차가 달리는 양쪽 옆 옥수수밭은 햇볕을 받아 황홀하리만치 금빛으로 빛났다.
아직 아스팔트가 깔리지는 않았지만, 마차로 곡물을 실어 나르던 까닭에 도로는 제법 상태가 좋았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 엄청난 스케일이구나.”
“네, 저도 놀랐다니까요. 농기계 실험하려고 처음 왔을 때 농장주인 마리노 씨가 얼마나 경고를 했는데요. 실수로라도 옥수수 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저 안에 갇혀 죽은 사람도 예전에 제법 있었대요. 시체는 아직 못 찾았다고 그러던데 겁주려고 한 말이겠죠, 하하.”
웨스팅하우스의 말에 장단을 맞추던 에디슨에게 아치볼드가 말했다.
“그거 농담 아닐 텐데요.”
그 말에 흠칫하는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
‘그러고 보니 아치볼드 녀석 오하이오 리스버그 출신이었지.’
“진짜로?”
“네, 저희 집은 목사였지만 근처 농가가 있었는데 진짜로 실종된 사람이 있었어요. 저도 어릴 적에는······.”
아치볼드가 어린 시절 오하이오주에서 자랐던 썰을 푸는 사이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 밭을 지나서 창고가 보였다.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농장 주인인 로드리게스 마리노라고 합니다. 아들이 신세를 지고 있다죠. 잘 부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옥수수밭 스케일만큼이나 커다란 창고 앞에 서 있는, 마찬가지로 풍채 좋은 두 남자가 인사했다.
“이쪽은 우리 회사에 자동차 연구팀 소속으로 있는 팔머 마리노라는 친구예요.”
이름도 그렇고 외모도 이탈리아계인 듯싶었다. 로드리게스가 이민 1세대, 팔마가 정착하고 난 다음의 2세대겠지.
‘실제로 이 시대에 기회를 찾아 유럽에서 미국에 건너온 사람들도 제법 있으니.’
그건 아무려면 상관없고.
“반갑습니다, 마리노 씨. 팔머라고 했나. 자네도 반갑네. 옥수수밭이 너무 보기가 좋군요. 잠시만 같이 걸을까요?”
“저야 킴 사장님 같은 분과 같이 이야기 나누면 영광이지만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바로 기계를 안 봐도 괜찮으신지요?”
“저야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보면 되니까요. 미리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이 점검할 시간도 필요할 거고.”
태선이 옆을 보자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이 팔머와 함께 창고로 갔다.
팔머가 상주하며 농기계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을 테니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터였다.
‘이만한 농장 주인이라면 지역에서 입김 없을 수가 없어. 부리는 사람도 상당할 테고······. 잘 풀리면 농기계를 팔든 임대해주든 해야 할 텐데 좋은 관계를 다져둬서 나쁠 건 없지.’
하물며 저번에 왔을 때도 생각했지만 오하이오주는 그랜트 장군의 고향이며 선거에서도 요충지였다.
“먼저,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리노 씨. 애지중지 키운 옥수수밭을 망칠 수도 있는 일인데요.”
“하하하. 아들이 만든 기계라는데, 애비로서 이런 거라도 도와야죠.”
창고에서 멀리 가지 않는 선에서 주변 옥수수밭을 거닐며 로드리게스 마리노는 자랑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더구나 보시면 아시겠지만 옥수수밭이 엄청나게 큽니다!”
“예, 차를 타고 옥수수밭을 지나오는 데에만 워낙 시간이 걸려서 끝이 안 나는 줄 알았습니다. 저 안에서 길을 잃은 사람도 있다면서요.”
“예, 저기 잘못 들어가면 진짜로 죽습니다. 그래서 허수아비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두고 어디쯤이라고 표시를 해두죠. 그 정도로 큽니다. 특히 우리 옥수수밭은 주변에서도 제일 크죠.”
실컷 자랑하고 머쓱했는지 로드리게스 마리노가 덧붙였다.
“뭐 남부의 목화밭은 이거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노예를 썼나 봅니다.”
‘갑분노예?’
아무래도 이것저것 말을 하다보니 단어를 잘못 꺼낸 모양.
그렇다고 믿고 싶다.
괜히 자신이 정치권에도 입김이 있는 사업가라는 점을 미리 알고 슬쩍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떡밥을 던져보는 건 아니었으면 하는데.
“하긴 그렇긴 하다죠. 그래서 전쟁이 났겠지만 어쨌거나 노예가 아니라 품삯을 챙겨주거나 해서 해결할 문제겠죠.”
일단 정치적인 화제에 대해 태선은 선을 그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거 제 실수로 대화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말았네요.”
다행히 로드리게스 마리노는 우려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가 화제를 피하려고 하면 유들하게 잘 넘어가주는 타입이다.
‘호오, 말솜씨도 괜찮고 인상도 좋고 이런 성격이 지역에서 키 맨이 되기 마련이지.’
한국식으로 하면 이장 타입.
그렇다면 역시나 이런 사람들과는 농기계 판매 혹은 임대 사업을 위해서나 선거를 위해서라도 관계를 잘 맺어두는 게 좋다.
‘뭐 사람들이 얼마나 몰리는지 보면 마리노 씨의 인망이 어떤지는 알게 되겠지만.’
“그래서 일손이 장난 아니게 드는데 당연히 품삯도 감당이 어렵거든요. 그런데 기계로 하면 더 수월하고 시간도 적게 든다고 하니 궁금해서 못 배기겠더란 말입니다. 하하핫.”
“그렇다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고 봅니다.”
“예, 저도 아들 녀석이 기계 점검하는 걸 보면서 미리 테스트하는 걸 봤는데, 허허허! 사실 오늘 테스트가 이미 기능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걸 최종 점검하는 걸로 보입니다만.”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사장님, 점검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시범 주행과 기능 테스트를 한 번 더 해보려고 하는데 보실래요?”
창고 밖으로 나와서 웨스팅하우스가 소리쳤다.
“가실까요, 마리노 씨?”
“그러시죠, 킴 사장님.”
태선과 로드리게스 마리노는 함께 창고로 향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농사는 사람이 하는 겨.”
“암만! 마리노 씨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신기해서 나선 거겠지. 솔직히 자네들도 그래서 왔지 않나.”
“그래도 어느 정도는 쓰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슬슬 시작할 때가 되자 인근 대농장의 주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수군거렸다.
말이 인근 농장이지 미국 스케일이다.
십여 명도 넘게 모여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농장 크기를 다 합치면 웬만한 도시 크기는 쌈싸먹을 터였다.
“참! 여담인데 그 농기계 만든 대표라는 사람이 그랜트 장군님의 친구라고 하더구만.”
“오, 정말인가?”
“연방의원도 온다고 하던데 괜히 오겠나. 그래서겠지.”
“연방의원은 로드리게스 친구라서 오는 거 아닌가?”
로드리게스 마리노의 인맥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점점 더 사람들이 모여 떠들어대는 그때.
“저기 봐, 나온다!”
창고 문이 열리며 자동차의 엔진 소리보다 훨씬 묵직한 진동음이 울렸다.
부르르릉──!
모델t 따위는 빈약하게 보일 정도로 두툼한 바퀴.
그야말로 강골이라는 말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프레임.
중세 기사를 연상케 하는 두툼한 철판까지.
부르르르릉───!
거기에 위로 치솟은 배기관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더욱 묵직하게 울려대는 엔진음.
“···기계로 농사가 되고 자시고 멋있었보이긴 하는군.”
“그러게 말이야. 마리노네 아들이 저걸 만들었다지. 저 디자인을 미리 봤을 테니 저거에 홀렸겠군.”
“멋있긴 한데······. 그래도 겉모습이 농사를 해주진 않지. 괜히 로드리게스 옥수수 농사나 망치지 않을지 걱정이군.”
일부가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농기계의 등장에 대다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그 앞으로 나선 훤칠한 외모의 검은머리 동양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 사람이 저 농기계 만든 사장인 모양이군.”
“그런 모양이야. 검은머리 동양인이라더니.”
“목소리는 화통하네.”
묵직한 위용을 자랑하는 농기계들을 만든 회사의 사장, 그는 바로 태선이었다.
“오늘은 우리 회사 엔지니어이자 여기 마리노 씨의 아들인 팔머 마리노가 동료들과 같이 만든 농기계를 테스트하는 날입니다. 그걸 보러 모두 마리노 씨의 농장에 찾아와주셨겠지요. 모두 반갑습니다.”
크게 인사를 한 뒤 태선은 수신호를 보냈다.
그에 웨스팅하우스와 팔머가 핸들을 조작하자 콤바인이 다시 움직였다.
특히 팔머가 탄 콤바인에는 그의 아버지이자 농장 주인 로드리게스가 같이 올랐는데 갤러리들의 곧바로 반응했다.
“오, 뭐야? 방금 저 커다란 자동차에 올라탄 건 로드리게스 아니야?”
“맞아. 운전하는 건 팔머 녀석이었구먼.”
“하하하, 마리노 부자의 저런 모습을 보다니 온 보람은 있군. 이번에 옥수수밭 뒤엎으면 놀려먹어야겠어.”
놀린다느니 어쩌니 해도 진심이 아니라 친하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즉 반응이 좋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태선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잘 먹혀들어갔군.’
창고에서 로드리게스 마리노는 직접 말했다.
나름 지역 유지에 일대에서 인망이 좋다고.
실제로 많이들 구경 온 걸 보면 그런 듯싶었고, 심지어 친구인 연방 의원도 올 거란다.
‘앞으로 농기계를 팔거나 하다못해 임대해줘야 하는데 이미지가 처음부터 좋게 박힐 수록 좋겠지.’
오하이오주에서도 물론 그랜트 장군은 영웅이다.
하지만 실제로 운영하게 될 농기계 홍보 효과로는 이들에게 친숙한 이가 하는 편이 효과가 좋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직접 만나봤고 이야기도 나눠본 사람, 이후로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이 농기계를 타서 잘 다룬다? 더군다나 농사일이 더 빠르고 편해진다.
‘자기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혹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
그리고 다시 입소문을 타고 오하이오주 전체로 퍼질 거고.
‘그렇게 해서 생산량이 크게 오르면 이제는 그 결과는 수치로 환산되어 다른 주나 지역으로 파급력이 미칠 거야.’
곡물 생산량이 늘어나면 해외 수출도 용이해질 것이고.
그 잉여 생산물을 조선으로 가져가거나 팔 수 있으면 이건 또 다시 큰 영향을 미칠 터였다.
‘물론 그걸 위해서는 지금 농기계 테스트에서 실수가 없어야 하겠지만.’
부르르르릉────!
그런 생각을 하며 태선은 가만히 지켜봤다.
두 대의 콤바인이 막 드넓은 옥수수밭이 시작되는 경계에 접어든 참이었다.
드디어 시작이다.
콰콰콰콰콰──────!
“응?”
“으응?”
“어떻게 돼가는 거야?”
갤러리들의 아리송해하는 반응. 소리고 그렇고 콤바인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갈 때마다 무지막지하게 쓸려나간다.
뭔가 엄청난 걸 하긴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되는 건지 문제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솔직히 여기서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사실 그건 태선도 마찬가지.
물론 콤바인으로 옥수수 수확하는 건 전생에 본 적이 있기는 했다.
다만 여기서 봐서는 제대로 되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
‘그렇다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멈출 순 없고 지켜볼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한쪽 라인을 다 작업하기 전에 30분 정도만 운행을 하고 멈췄다.
팔머와 로드리게스가 내려 옥수수 상태를 본다.
그러는 사이 짐칸을 실은 트랙터가 저쪽으로 출발했다.
‘결과가 대충 나온 모양이군.’
수확한 옥수수 상태를 중간 점검하며 머리를 모으고 있던 세 사람 중 로드리게스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표정이 굳은 걸 보니 뭔가 문제가 생겼나 싶은 순간.
“잘 됐습니다!”
그가 환한 이를 내보였다.
“오, 잘 됐다는데?”
“진짜로 그렇게 밀고 지나가면서 다 수확한 거라고? 믿기질 않는데.”
“다른 건 몰라도 로드리게스가 자기 수확물로 장난치진 않을 테니······. 더구나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다고!”
구경 온 농장주들이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트랙터가 수확한 옥수수를 실어왔다.
사실 이대로 보관해도 된다. 그렇지만 건조나 가공 혹은 보관을 위해 바인더로 탈곡하는 다음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바인더의 성능을 시험해봐야 하니 바로 바인더에 넣어야 하겠으나.
“왔군. 잠깐만, 옥수수 상태 좀 보세나.”
“잠깐만 보여주게.”
로드리게스 농장의 일꾼들이 접근을 막고 있지만 농장주들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는지 마구 들이댔다.
그때 태선이 나섰다.
“괜찮습니다.”
로드리게스는 일꾼들 중 조장에게 태선의 명령을 잘 들으라 이미 언질을 준 상태였다.
“옥수수를 절반 정도만 바인더로 옮기고 나머지는 보여드리도록 하세요. 차라리 절반 정도는 여기 쏟아놓으세요.”
“알겠습니다.”
태선의 명령에 따라 일꾼들이 옥수수 절반 정도를 바닥에 쏳아놓고는 물러났다.
농장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옥수수를 직접 만져보거나 하며 상태를 살폈다.
“어엇, 정말 괜찮잖아.”
“그러게 말이야. 놀랍군. 저렇게 막 밀어벌이는 것처럼 가면서도 수확이 되다니.”
“정말로 이게 기계라 수확한 거라고?”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놀라는 반응들.
태선도 옥수수 상태를 보며 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품질이 괜찮군. 하지만 아직 바인더가 남았다. 그거까지 잘 되면 100퍼센트 성공인데.’
탈탈탈───!
마침 옥수수를 바인더에 넣은 첫 결과물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갤러리들 관심은 이제 바인더로 쏠렸다.
“저기도 나온다.”
“설마 기계로 옥수수 알 걸러내는 것까지 할 수 있다고?”
기계로 옥수수 탈곡까지 되면 그야말로 혁신.
농장 주인들로서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