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48
148 수확(2)
태선이 눈짓하자 사라가 연주를 시작하며 다시 자유롭게 마시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다라랑───!
어느새 근처 숲에서 잘라 온 나뭇잎으로 악기를 만들어서 체로키 부족원까지 합류했다.
“화이트하우스 씨, 잘 즐기고 계십니까.”
“킴 사장님, 좋은 연설이었습니다, 하하핫!”
코넬리우스 화이트하우스.
KSO에서 운반 및 파이프사업부를 맡고 있으며 펠킨슨 로날드의 건축회사의 자문역도 겸하고 있었다.
동시에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 영국 법인을 책임지고 있는 존 브라더튼의 삼촌이었다.
“요새도 브라더튼과 자주 연락하지요.”
“물론이지요.”
“화이트하우스 씨를 통해 브라더튼에게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랄 거 있습니까. 그냥 편하게 말씀해주십쇼.”
“영국에 가면 샬롯과 제 아이들 그리고 집사와 하녀들도 데리고 갈 예정입니다.”
이건 의외였는지 놀라는 화이트하우스의 반응.
“그렇게까지요?”
“그렇게 됐습니다. 사실 몇 년이나 있는데 신혼인 입장에서 아내와 애들과 오래 떨어져 있으려니······. 하하하!”
“아, 예. 이해합니다. 그럼 부탁하실 일이라는 건 혹시 집을 구하는 것인가요?”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서두르실 건 없습니다. 몇 달이나 남았고 또 런던에 가서도 호텔에 묵을 수도 있으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호텔에 묵으시는 동안 살 집을 살필 수 있도록 괜찮은 곳을 현지에 있으면서 추려달라는 말씀이신 거지요?”
태선이 끌어모은 인재는 저마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자들이었다.
천재도 있고 설령 천재가 아니라도 나름의 수재.
그런 만큼 일머리가 뛰어나거나 눈치가 좋았고 그건 화이트하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집 조건은 조만간 다시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1866년 새해가 밝고 며칠이 지난 날.
태선은 예고한 대로 화이트하우스를 사무실로 불렀다.
“이 조건이군요. 알겠습니다. 브라더튼 녀석에게 제대로 찾아보라고 전하겠습니다.”
용건은 런던에서 살 집의 조건을 전한 것이었다.
간단한 전달에 불과했기에 이대로 헤어지기는 좀 밋밋했다.
“모처럼 오셨는데 오랜만에 같이 식사나 할까요?”
“식사요? 그러고 보니 그럴 시간이네요.”
사실 시간이 여유로운 저녁에 약속을 잡은 터라 같이 식사할 것도 예정에 둔 안배였다.
“평소에 수백 킬로미터도 넘는 송유관을 보러 직접 다니시느라 고생하는 거 잘 압니다.”
“에이, 고생이라뇨. 파이프 관련된 일을 하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 킴 사장님 회사로 들어온 건데요.”
“그러고 보니 첫 인연이······.”
태선은 화이트하우스와 함께 월가를 가로질러 한 주점 겸 식당으로 들어갔다.
3, 4층 남짓한 붉은 벽돌의 건물은 네모반듯하여 아주 튼튼해 보였다.
「Fraunces Tavern Restaurant」
대들보 아래 매달린 현판을 지나면 자리마다 손님들이 삼삼오오 왁자지껄했다.
적은 인원이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있지만 공간을 대부분 차지하는 건 가로로 긴 원목 테이블이었다.
북적대는 틈바구니 속에서 태선과 화이트하우스는 별수 없이 다른 일행과 합석했다.
“프랜시스 태번이라, 여기 들어봤습니다.”
부대껴 앉으면서도 화이트하우스는 이런 분위기가 그리 싫지만은 않은 눈치.
“미국과 대영제국의 협상 장소였다죠.”
“알고 계시는군요. 더 재밌는 건 당시에도 선술집이었지만 독립전쟁에서 조지 워싱턴의 본부이자 독립한 뒤에도 여러 부처의 사무소 역할을 했답니다.”
“선술집이 사무소라······. 같이 술 마시다 의기투합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군요.”
잠깐 잡담을 나누는 사이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했다.
식사를 겸해서 왔기에 빵을 곁들인 스테이크를 시켰지만 분위기가 이럴진대 맥주 한 잔이 빠질 수는 없었다.
“크흐, 너무 좋군요! 더구나 이런 장소에서 태선 사장님과 같이 마시니 의미가 더 각별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사실 우리 첫 인연도 평범하지는 않았죠.”
“아, 그때 생각 나네요. 저한테 편지를 보내주셨었죠. 석유를 옮길 파이프 건으로 자문을 구한다면서 편지가 왔는데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국에서 뜬금없이 저한테 편지를 보내오질 않나 하물며 내용이······.”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었는지 화이트하우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수백 킬로미터 넘는 거리에 파이프를 연결해서 석유를 운송하겠다는 발상이라니! 근데 그게 또 전문가로서 접근해보면 안 되는 건 아니더란 말입니다. 오히려 흥미가 일었죠.”
“그러면서도 막상 제가 동업하자고 제안했을 때는 빼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거야······. 이것도 지나고 나서 일이지만 사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때 앨버트 왕세자님 의뢰 때문에 곤란했던 거.”
태선은 빙긋 웃었다.
‘맞아, 그랬지.’
다만 앨버트 왕세자의 의뢰 덕분에 개입할 틈이 생겼으니 자신으로서는 새옹지마였다.
덧붙여 런던에 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을 유행시키면서 앨버트 왕세자와 친분을 다졌을 뿐 아니라.
‘알렉산드라 왕세자비와 함께 샬롯이 윈저성으로 가면서 빅토리아 여왕님과도 인연을 맺을 수 있었지.’
따지고 보면 얼마 뒤 영국으로 가서 벌일 사업에 그 인연들은 큰 힘이 된다.
그러니 그때의 인연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앨버트 왕세자님 의뢰를 덜컥 수락해서 저를 곤란하게 만든 장본인이 브라더튼 녀석이었네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화이트하우스는 더욱 흥이 올랐는지 이야기를 술술 풀었다.
“저도 그렇지만 사장님 덕에 녀석도 위기에서 벗어났으니 집 알아보는 이번 제안은 각별히 신경 쓰도록······.”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러다 같은 테이블의 옆자리에 있던 일행이 나가고, 다른 일행들이 합석했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예, 그러죠.”
식사는 충분히 했고 맥주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셨기에 지금이 딱 타이밍이었다.
‘어차피 브라더튼이 답신을 보내오면 화이트하우스와는 또 만나야 하니.’
증기터빈을 장착한 선박을 건조했어도 대서양을 왕복하려면 시일은 걸린다.
거기에 브라더튼이 런던에서 집을 알아보는 데 걸릴 시간도 감안하면 한 달 뒤에나 다시 만나겠다고 예상하면 되려나.
“···또 돈을 빌려달라더군. 자네한테도 그러던가?”
“안토니오 메우치 그 작자 그러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참으로 한심해.”
나가려는데 그때.
‘어라, 안토니오 메우치?’
본의 아니게 엿들은 대화가 이목을 끌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인데.
“그 작자, 요새 양초 회사는 어떻다던가? 그거라도 잘 되면 나중에 담보로 잡으면 되니 몇 푼은 빌려주겠는데.”
“잘 될 리가 있겠나. 침실에 누운 아내 타령만 하는데.”
“그래도 애처가인 건 알아줘야 하지 않나.”
“것도 모르는 일이지. 자네들한테만 하는 말인데 전기를 이용해서 멀리 있는 상대와 대화 나눌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는데 그걸 특허 낸다고, 풉!”
‘전기로 멀리 있는 상대와 대화? 아!’
그 말을 들은 순간 태선은 떠올려냈다.
‘맞아. 왜 이걸 진작 생각 못 하고 있었지.’
“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잠시만요. 조금 볼 일이 있어서 그런데 먼저 나가 있으실래요? 금방 나갈 겁니다.”
“예.”
태선이 화이트하우스를 먼저 내보낸 사이에도 그들의 메우치 뒷담화는 이어졌다.
“더 가관인 건 그걸로 자기 사무실에서 침실에 누운 아내와 대화를 하다더구만.”
“쯧, 미친 게로구먼. 에효, 사람은 괜찮았는데 아내가 아파서 그리된 게야.”
“그러게 말일세. 갖고 있던 양초 회사나 잘 운영해서 약값이나 벌 것이지.”
약간은 동정하기도 했지만.
“그런데 그게 정말로 되기는 하는 건가? 전기로 자기는 사무실에 있으면서 침실에 있는 아내와 대화한다는 거 말이야. 정말 사실이라면 꽤 돈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되겠는가, 그게?”
“하하하, 하기야.”
결론은 비웃을 따름이었다.
“실례합니다만.”
태선이 접근한 건 그때였다.
“누구요? 아, 아까 이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구먼. 뭐 놓고 간 거라도 있으신가?”
태선은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르더니 바로 지폐 몇 장을 건네주었다.
“이 자리에 앉은 신사분들께 맥주 한 잔씩 돌리겠습니다.”
갑자기 돌아와서 자신들에게 공짜 술을 돌리다니?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일단 공짜로 받는 술이라 그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하하하, 형씨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나보구먼.”
“고맙게 잘 먹겠소. 그런 기념으로 형씨를 위해 건배나 하지.”
“아뇨, 건배는 됐고 방금 하시던 이야기에 약간 흥미가 있어서 말입니다.”
“방금 하던 이야기라면? 아, 혹시 메우치 그 친구 말인가?”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안토니오 메우치라는 분의 댁이나 공장이 어디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
안토니오 메우치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며칠 동안 한 가지 생각이 줄곧 맴돌았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지.’
등잔 밑이 어두웠다.
평소 연락 업무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전화만 있으면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걸.
그 해결책이 멀리도 아니고 바로 여기 뉴욕에 있었다.
‘세간에는 1876년 그레이엄 벨이 최초로 전화를 개발했다고 알려졌지만 것보다 21년 먼저 만든 발명가······.’
그게 바로 이탈리아 피렌체 출생으로 1850년 미국 뉴욕에 건너온 안토니오 메우치였다.
4년 뒤 그는 전화기를 발명하고 실전 적용도 끝냈다.
애초에 전화를 발명한 건 아파서 침실에 누워있는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돈 빌려서 10달러씩 겨우 내면서 임시 특허만 갱신했지만 그마저 못 하게 돼서 결국 벨에게 특허를 빼앗기게 됐다지.’
전보 회사에 전화의 상업화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으나 거절 당했다고 한다.
‘참 묘해. 다른 곳도 아니고 전보 회사에서 전화의 잠재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다만 이건 21세기의 역사를 알고 있는 태선이기에 그런지도 몰랐다.
“태선, 그런데 나는 아직도 믿기지를 않는군.”
당장 바로 옆에서 조셉 스완이 하는 말만 들어봐도 그렇다.
“정말로 전기와 전선으로 멀리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말을 주고받을 수가 있다고? 전보 신호도 아니고 말을?”
스완 제너럴 일렉트로닉스 사장으로 조셉은 나름 선구안이 있는 이였다.
하물며 전기 회사라 전선도 다루기에 전보 및 전화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안토니오 메우치를 만나기 위해 스태튼 아일랜드로 향하는 페리선에 같이 타고 있는 것이지만, 그런 조셉조차 이런 반응이라니.
“가능합니다. 며칠 동안 직접 조사원을 보내서 검증도 하지 않으셨는지요.”
“그렇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에디슨에게 전구를 빼앗겼던 당신과 비슷한 처지라고요.’
구태여 긴 말로 설득할 필요는 없다.
스태튼 아일랜드도 뉴욕이기에 금방 도착한다.
직접 가서 보면 다 해결된다.
‘대신 그 다음을 위해 조셉 스완과는 미리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있겠지.’
안토니오 메우치를 영입하고 특허를 인수하며 전화 사업부는 SGE 밑에 넣어둘 생각이니까.
“것보다 바다를 보니 그 기사가 생각나는군요. 해가 바뀌었으니 이제 작년이네요.”
“작년에 워낙 많은 일이 있었으니 말이야.”
하긴 링컨 대통령 암살부터 시작해 많은 일이 있긴 했지.
그중에서 태선이 말하고자 하는 건.
“사일러스 필드 씨의 영미전신회사(Anglo-American Telegraph Company)가 해저 케이블 연결에 실패한 거 말입니다.”
“그거 말인가. 나도 명색이 전기 회사 사장인데 알고 있지. 몇 번이나 실패하고도 포기는커녕 대서양전신회사(Atlantic Telegraph Company)까지 인수했다며.”
바로 해저 케이블.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생각보다 오래된 기술이지만 뒤집어 보자면 이 시대에서는 최첨단 기술인 셈이지.’
최초로 대서양 건너 해저 케이블이 연결된 건 1858년.
즉 이 시점에서도 6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해저 케이블 개통을 기념하여 전보로 축사를 보냈고 미국 뷰캐넌 대통령도 그에 화답했다.
다만 케이블 성능이 좋지 않아서 교신에 18시간이 걸렸고 내구성에도 하자가 있어 2개월 만에 망가졌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것.
‘사이러스 필드란 양반도 참 대단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계속 시도해서 원래 역사대로 된다면 올해에는 성공하지.’
어쩌면 걸린 돈이 많아서 물러날 수 없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도 간단히 볼 건 아니었다.
당사자 입장에서 실패만 거듭하는 이 시점의 심경이란 죽을 맛일 것이다.
그걸 극복한 오뚜기 정신은 존경할 만하다.
“헌데 갑자기 왜 해저 케이블 이야기를 하는가?”
“예, 우리는 원래 전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죠. 그리고 해저 케이블 이야기를 꺼낸 건 간단합니다.”
페리선이 입항할 부두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내릴 준비를 하는 가운데 태선은 웃으며 말했다.
“지상에서 전화가 되면 해저 케이블로 바다 건너서 전화도 가능해질 테니까요.”
물론 양질의 통화를 하려면 케이블 교체가 필요하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과 되기는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