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49
149 수확(3)
“여보, 오늘은 공장에 안 나가봐도 괜찮아요?”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 에르테르 모치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생명의 불씨가 다해가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써 웃어보인다.
“아, 오늘은······.”
그렇기에 안토니오 메우치도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다.
“회사 사정이 많이 어려워요?”
“아냐, 그런 거. 오히려 큰 회사에서 인수하고 싶다면서 보고 갔었는데.”
“거짓말 말아요. 당신 얼굴 보면 속내가 훤히 보여요. 저만 없었으면 당신 인생이 훨씬 편해졌을 건데.”
“무슨 소리야. 아냐, 당신 없이는 내 인생도 없었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페르고라 극장의 무대 기사로 일할 때 그녀를 만났다.
에르테르 모치라는 여자는 한눈에도 병약해 보였다.
그렇지만 묘하게도 생기가 있었다. 약한 몸을 타고 났기에 오히려 그런 운명에 저항하는 강인함을 지닌 여인.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당신이 극장 앞에서 화단을 가꾸고 있었잖아.”
“물론 기억나요. 무슨 꽃이냐면서 저한테 끈덕지게 물었죠.”
피렌체 미술원부터 세관원에 극장 무대 기사를 전전하며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던 인생이었다.
그러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 가냘픈 여인이 꿋꿋하게 꽃을 가꾸는 모습에 반했다.
“난 어디서 뭘 하든 당신 목소리만 들으면 힘이 나. 그러니 괜히 당신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는 생각은 말아.”
그저 엷게 웃는 아내의 반응.
자신을 위로하려고 해주는 말이라고 여기는 듯한 반응에 안토니오 메우치는 가슴이 아렸다.
자신이 뭐라고 하든 마음이 여린 이 여자는 자신의 병든 인생이 남편의 삶을 좀먹어간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 생각을 덮기 위해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다.
문제는 좋은 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뭐가 있던가.
“그런데 큰 회사에서 양초 공장을 보고 갔다는 건 진짜예요?”
그때 아내가 먼저 물었다.
“아, 그거. 그럼 물론이지.”
“어쩐 일이래요. 요새 양초 쓰는 곳도 거의 없을 텐데.”
“실은 양초를 보러 온 건 아니고······.”
힐끗 시선이 아내 옆에 놓인 전화기에 닿는다.
“저걸 보러 온 거였어요?”
“으응.”
“어머, 특허를 낸다고 고생하더니, 이제 좀 괜찮아지는 거예요?”
“아, 그게······. 하하, 그럼! 특허가 잘 처리돼서 큰 회사에서 보러 오는 거야. 그러니 당신은 걱정하지 말라고.”
반은 진실, 반은 거짓.
큰 회사에서 전화기를 보러 온 것은 맞았다.
다만 전화기에 대한 특허는 처리되지 않았다. 그럴 돈이 없어서였다.
‘젠장, 기술은 확실한데. 왜 알아주지 않는 거냐고.’
사람 목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꾸는 자신의 아이디어는 획기적이었다.
전화기에 삽입된 알루미늄 합금 진동판에 대고 말을 하면 그 미세한 자극은 뒷부분의 탄소가루 층에 시시각각 변하는 압력으로 작용하며 전기저항, 즉 음성전류를 일구어낸다.
그것이 전선을 타고 상대편 수화기에 반대의 작용을 거쳐 진동판이 음성을 재현한다.
‘음성이 불안정하지만 그건 소재가 좋지 않아서 그런 거고.’
자신에게 충분한 자금과 시간과 재료만 있었다면 훨씬 양질의 음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더 먼 거리까지 전화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기술에 적용된 이론적인 완성도는 그런 수준이었다.
다만 그렇기에 안토니오 메우치는 더 불안했다.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에서 나왔다고 했지. 괜히 전화기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나.’
만약 그들이 나쁜 마음 먹고 자신이 알려준 걸 힌트로 전화기를 만든다면?
자신은 돈이 없어서 특허를 못 내고 있지만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 정도 되는 회사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역시 경솔했어. 양초 공장으로는 돈도 안 되고······. 유일한 희망은 전화기 특허뿐인데.’
그들이 왔다 간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소식이 없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자신이 헛된 기대로 방심한 동안 철저하게 기술을 빼돌릴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당신, 표정이 안 좋아요? 왜 그래요?”
“아, 그냥 속이 안 좋아서.”
부르릉──!
초조한 기색을 애써 감추려 어색한 웃음을 짓는 그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죠?”
“자동차 엔진 소리인데······. 다시 온 건가?”
“그 큰 회사 사람들이요?”
“뭐 그렇지.”
요새는 마차 대신 자동차 택시가 주로 돌아다니지만 그마저도 자신이 집이 있는 곳에 타고 올 사람은 없었다.
자동차 택시는 마차보다 요금이 비싸니까.
그러니 틀림없이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에서 나온 엔지니어들이다.
‘다시 왔다는 건 좋은 징조로 봐도 좋지 않을까.’
제대로 특허 협상을 하려고 그런 것이면 좋겠다.
억만금 같은 건 안 바란다. 그저 아내를 충실히 간병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질 수 있는 돈만 되도 만족한다.
“잠깐, 나갔다 올게.”
아내에게서 등을 돌리자마자 안토니오 메우치의 표정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드디어 자신이 바라던 기회가 오는 건가 싶으면서도 여태 그런 행운이 찾아온 일이 없던지라 안 좋은 예감이 엄습했다.
‘혹시 헐값에 기술만 넘기라면서 후려치면 어쩌지? 어차피 내가 안 넘겨도 이미 기술은 카피했다고 하면······.’
단순한 망상이 아닌 게 괜히 도둑 남작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특허 낸 기술조차 교묘하게 훔쳐 가서 상업적으로 팔아먹는 작자도 있다.
하물며 자신의 기술을 아직 특허도 못 냈고 상대는 무려 이 나라에서 한 손가락에 꼽는 대기업인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
‘부자라는 놈들이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댔어.’
똑똑──!
“안토니오 메우치 씨 계십니까? 스완 제너럴 일렉트로닉스에서 나왔습니다.”
역시나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에서 나왔다.
꿀꺽!
마른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문고리를 잡긴 했는데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만에 하나 자신이 우려한 그런 사태가 기다리고 있다면, 저들이 준비한 말이 특허를 뺏겠다는 그것이라면?
도망치고 싶다, 피하고 싶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메우치 씨, 안 계십니까?”
‘어차피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저들이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자신이 없는 척을 한다고 음흉한 계획을 멈추겠는가.
안토니오 메우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문고리를 쥔 손에도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무슨 결과가 되었든 맞서야 한다. 직면해야 한다.
달칵──!
“제가 안토니오 메우치입니다.”
문을 열자 그의 앞에는 저번에 방문했던 엔지니어와 다른 두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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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장님이시라고요?”
안토니오 메우치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의 사장 본인이라니?
“이쪽은 저와 공동 대표이면서도 계열사의 정점에 있는 태선 킴 사장님이십니다.”
“예? 어, 그러니까······. 조셉 스완 사장님보다 이 분이 더 높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야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의 사장일 뿐이지만 여기 태선 킴 사장님은 킴 스탠다드 오일에 스완 제너럴 모터스를 비롯해서 여러 회사를 거느리고 계시는 분이시거든요.”
안토니오 메우치는 태선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반갑습니다, 메우치 씨. 만나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이렇게 만나는군요.”
“예······. 저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특허를 뺏어갈지도 모른다는 걱정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대체 이런 거물들이 왜 찾아왔단 말인가.
“얼마 전에 우리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방문했었지요. 전화 건으로 말입니다.”
“아, 네. 그랬었죠.”
“저는 그 기술을 매우 높이 사고 있습니다. 알아보니 돈이 부족해서 특허도 못 내고, 전보 회사에 제안도 해봤지만 사업화 아이디어를 묵살당했다고 그러더군요.”
“제가 부족한 탓이겠죠.”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상대가 거물급이라 주눅이 들어서인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텐데요?”
하지만 그런 속내를 꿰뚫어 보기라도 했다는 듯.
아니, 실제로 그 속내를 들켰기에 안토니오 메우치는 흠칫 어깨를 떨고 말았다.
“이 기술을 직접 발명한 분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습니다. 이걸 알아보지 못한 이가 멍청한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슥───!
태선은 서류 가방에서 직접 계약서를 꺼내 내밀었다.
“긴말은 필요 없겠죠. 바로 계약 조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안토니오 메우치가 주저하자 태선은 계약서를 살피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보면서 들으시죠. 계약과는 별개로 제가 대신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특허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이 계약서에 따라······.”
“특허는 제게 있지만 그 특허를 사용한 전화기 사업권은 계약 기간 동안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에 전속되는군요.”
“저희도 자선사업가는 아니라서요.”
옆에서 조셉 스완이 한마디 거들자 안토니오 메우치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한테는 너무 좋은 조건이라 한 말이었습니다.”
스윽────!
그리고 또 한 장의 계약서가 안토니오 메우치의 앞으로 놓여 졌다.
“특허의 사업권 계약과 별개로, 아니 엄밀히 말해서는 별개는 아니죠. 같은 기간으로 메우치 씨를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로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저를 고용까지 해주신다고요?”
‘그럼 당신이 지금 전화기 관련으로 최고 실력자인데 당연히 고용하고 싶죠.’
흔히 있다. 처지가 너무 어려운 나머지 자기 실력에 비해 가치를 잘 모르게 된 이들이.
안토니오 메우치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단순히 기술 하나 이용할 생각이라면 그걸 이용해서 가스라이팅하고 등쳐먹을 수도 있다.
‘단순한 기술자는 얼마든지 키워낼 수 있어.’
하지만 이상을 품고 그걸 향해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영감, 창의성, 천재성······. 선천적일 수도, 후천적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뭔가가 있다.
그리고 역사에 길이 남을 무언가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에게 그런 요소가 없을 리 없었다. 안토니오 메우치도 마찬가지.
잠시 날개가 꺾여있고 본래 역사에서 저 날개는 끝내 펼 수 없었지만.
‘내가 밀어주면 가능하다. 그리고 전화 사업이나 회사도 메우치가 이끌어주는 만큼 더 크게 성장하겠지.’
“전화는 더 많은 곳과 연결할수록 가치가 뛰는 사업입니다. 생각해보시죠. 뉴욕의 집집마다 전화기가 있다면 어떨까요?”
전화기를 직접 발명한 이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더 나아가 뉴욕이 아니라 워싱턴, 필라델피아, 트렌턴······. 아예 미국 전역의 사람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전화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요?”
태선이야 21세기에서 이미 누리던 삶이었지만, 전화가 아직 없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해볼까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이미 해저 케이블이 놓였고 대서양 건너 영국과 미국 사이에도 해저 케이블 사업이 진행 중인 건 알고 계시는가요?”
“예, 들어는 봤습니다.”
페리선에서 조셉 스완이 그러했듯 갑자기 전화 이야기를 하다가 그 이야기는 왜 꺼내냐는 안토니오 메우치의 반응.
“케이블의 소재와 음성전기 신호를 잘 개량하면 그 해저 케이블을 통해 바다 건너 전화 통화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예? 제 기술을 높게 사주셔서 정말 감사드리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안토니오 메우치는 거듭되는 칭찬에 기쁘면서도 민망한 듯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다 건너서 전화를 하다니.
“아뇨, 됩니다!”
그때 태선이 단호하게 말했다.
“선이 있고 전기 신호를 흘려보내서 반대편에서 받는다. 이론적으로 문제 없습니다. 사소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고쳐나가면 됩니다.”
힘이 실린 강한 목소리에는 강렬한 설득력을 띠고 있었다.
“저는 그걸 위해 이 기술을 사업화하려는 것이고, 메우치 씨를 스카우트하려는 겁니다. 만약 메우치 씨만 좋다면 평생 뜻을 같이할 동료로요.”
“평생 같이 한다고요?”
“저는 누군가를 제 사람으로 받아들이면 그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 이상 평생 책임집니다.”
안토니오 메우치는 앞에 놓인 두 장의 계약서를 다시 봤다.
“그건 그런 의미의 계약서입니다. 추가로 함께하기로 뜻을 정하시면 바로 아내분과 같이 지내실 좋은 저택을 마련해드리고 최고의 의료 서비스도 받을 수 있도록 해드리죠.”
드르륵!
태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장 정하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계약서 내용을 찬찬히 보시고 마음이 정해지면 언제든 찾아오십쇼.”
“이건 인생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일 겁니다.”
조셉 스완도 한마디하고 태선을 따라 나가는데 안토니오 메우치는 어정쩡하게 일어선 채 배웅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는 말이 더 맞을 터였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그야말로 넋이 나간 상태였기에.
“······.”
몇 분 지난 뒤에야 안토니오 메우치는 정신을 차렸다.
다시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들었다.
찬찬히 보고 또 보고······. 몇 번이나 정독했다.
“없어. 독소 조항 같은 건 하나도 없어.”
의심할 나위 없이 최고의 기회. 살면서 자신에게 이런 기회가 오는 날도 있다니.
“됐어. 됐다고! 이제 됐어, 하하하하하!”
안토니오 메우치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아픈 아내를 데리고 고생하며 자신의 노력을 보상받기는커녕 무시당한 과거 일이 떠올랐는지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