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5
015 뉴욕(1)
샌프란시스코에서 나온 배는 태평양 근해로 나와 중미의 니카라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 아메리카 대륙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산 후안 델 수르를 거쳐서 육로로 좀 가다가 강을 타고 나가는 거고.’
다른 하나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태선이 전생하기 전에도 유명했던 그 파나마 운하······.
‘···가 아직은 없지. 그 전에 운하 뚫으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말라리아 탓에 실패하고 1914년에야 뚫리니까.’
하지만 운하는 없어도 횡단 철도는 있다.
미국으로부터 파나마에 돈을 쏟아부어 1855년에 완공 시켜놓았던 것이다.
이후 철도 맛을 본 미국이 지금으로부터 2년 뒤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륙횡단철도 공사를 시작하지만.
그건 완공되려면 6년이나 걸려서 이용하려면 1869년까지는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물론 전자가 77킬로미터인데 반해 후자는 2,827킬로미터에 달하니 그렇게 시간이 걸릴 만 했다.
‘그렇지만 이유야 어쨌건 동서로 오가는 여정이 이렇게 험난해서야···.’
아직 누나와 매형을 조선에 남겨두고 온 태선이었다.
더구나 앞으로 들어올 조선 이민자들도 다 태선의 힘이 될 터이거늘.
당장에 그들이 아시아에서 유럽을 가로질러 대서양 건너 동부로 오기에는 이유도, 방법도 없다.
물론 태평양을 지나올 때의 항해보다야 훨씬 낫긴 하지만.
“으으으···우웨에엑!”
원래 뱃멀미가 심한 체질인 잭보다 나은 수준이라고는 해도.
“······.”
처음에는 모든 걸 신기하게 바라보던 동생 태경이조차 이제 질려 내도록 멍한 얼굴을 하고 있을 정도이니 어련할까.
“형, 바다를 너무 오래 보고 있었더니 내 머릿속도 파래지는 것 같아.”
“정신줄 잘 붙들어.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동부로 가면 서부하고는 또 다르거든.”
“아··· 저기 갈매기 날아간다.”
그나마─
“하하, 지루하면 내 하나 이야기해줄까? 니카라과가 원래는 스페인 땅이었다는 거 아나? 아, 물론 지금은 독립했고······.”
개리슨이 수다쟁이란 사실이 뜻밖에 다행이었다.
장기간 운전할 때 백색 소음으로 라디오라도 틀어놓듯 그런 느낌 비슷하다.
“또 스페인 이야기인데 바다 건너 유럽에 1529년이었나? 에르난 코르테스란 사람이 있어. 그가 카를 5세 황제한테 여기 파나마를 뚫어서 바다를 잇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거야.”
아니, 어쩌면 개리슨도 자주 동서로 오가는 와중 수다쟁이가 되어버린 게 아니려나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입담과 함께하는 여정은 파나마에서 열차로 갈아타고 카리브해로 나와 다시 배를 타고 뉴욕으로 향하면서도 이어졌다.
“아아, 더워 죽겠네. 캐리어 선생님 좀 더 일찍 태어나시지 그랬습니까.”
사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따름이지 전생에 현대인으로서 편하게 살았던 기억이 있는 태선으로서는 더 힘들었다.
‘···에어컨도 그립고 콜라도 먹을 만하려면 몇십년은 있어야 될텐데···. 하, 인생.’
솔직히 처음 전생했을 때 미국에 건너가려는 생각했을 때만 해도 그저 이 당시 조선의 디폴트인 수탈 당하는 삶만 피하면 좋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미국에 오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졌다.
더구나 아무래도 항해가 길어지니 생각만 많아진다 싶은데 불현듯 태선은 처음 의주에서 눈 떴을 때와 지금의 기분이 데자뷰처럼 느껴졌다.
‘잠깐. 솔직히 그것도 내가 하려면 가능하지 않나?’
다큐멘터리 찍으며 태선은 이런저런 지식, 특히 기술 발전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고 심지어 직접 만들어봤었다.
단적인 예로 지금 절실한 물건의 역사도 마침 딱 떠올랐다.
‘그래, 윌리스 캐리어가 에어컨을 발명한 게 1914년이라 해도, 기화를 이용한 냉각 원리는 1840년에 나왔잖아!’
전기 회사도 19세기 초부터 이미 있었고 뭘 하려고 해도 재료는 이미 다 모아져 있다.
중요한 건 그런 문명 발전은 하나가 다른 하나의 토대로써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그렇게 테크트리가 쌓이며 형성되었기에 뭐가 선행되고 뭐가 따라와야하는지 얼개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카리브해로 나왔는데 어차피 남는 것이 시간 아니겠는가.
‘기왕 시간 보낼 거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앞으로 사업할 청사진이라도 짜보자.’
그렇기에 태선은 배에서도 쉴 새 없이 빡시게 머리를 굴리고 도식도 그렸다.
필요하면 메모도 남겼지만 한글과 한자를 병기한 문자열로 암호화도 철저히 해두었다.
그렇게 시간은 파도처럼 빠르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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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고생했네. 저기 보이는가. 뉴욕에 온 걸 환영하지.”
개리슨의 환영사. 마침내 도착한 것이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살았습니다.”
뱃멀미 지옥에서 마침내 헤어나게 되자 잭은 연신 예수와 마리아를 찾아대었다.
“형님메, 도착했슴메! 여기가 우리 살던 의주에서 지구 건너편이란 사실이 내 참말로 믿기질 않소웨.”
태경의 입에서는 오랜만에 평안도 말이 나왔다.
수다스럽던 개리슨은 둘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만 지을 뿐 달리 말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며 즐기는 듯싶은데 태선을 보자 의외라는 듯 물었다.
“생각보다 태선이 자네는 놀라지 않는구먼?”
놀라지 않기는, 좀 놀랐는데.
‘와, 막상 직접 보니 낯서네. 자유의 여신상이 없는 뉴욕이라니.’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리버티섬에 완공되기에 지금 없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알고는 있어도 직접 자유의 여신상 없는 뉴욕을 보니 뭔가 허전하다.
물론 그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태선은 웃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요. 너무 감동해서 감정 표현이 오히려 쏙 들어가버린 것이죠. 저도 굉장히 설레고 있습니다.”
“허허, 그러한가.”
태선은 항구로 내려서며 개리슨에게 사뭇 감사를 표했다.
“예. 개리슨, 긴 여정을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동부에서 지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지요.”
‘아재요, 뉴욕에서 나 좀 잘 챙겨줘. 당신 여기서 인맥 많잖아.’
“하하, 물론 자네라면 도와줄 가치가 있지. 나 역시 잘 부탁하겠네. 자네는 조선에서 온 유학생이지만 동시에 유니온 뱅크의 파트너 아닌가.”
그리고 개리슨의 답.
‘아, 물론 너 정도 가능성이 보이면 도와주지. 대신 너도 나한테 투자한 만큼 돌려줘야 하는 거는 알지?’
말은 번지르르해도 속에는 둘 다 능구렁이를 채워 넣었다.
즉 오가는 말은 격려를 빙자하여 서로 사업적 우호 관계를 다지는 내용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개리슨은 참으로 사업에 이골이 난 사람이구나 싶었다.
몇 년 전에는 샌프란시스코 시장도 역임한 것으로 아는데 역시나 정치적인 감각도 있다.
‘···음, 그래서인지 이 사람과 같이 있으니 나도 어째저째 그 수완을 배우는 것 같네.’
뭐 석유왕을 목표로 하는 자신에게 나쁜 건 아니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태선은 개리슨을 따라 거리로 걸어나왔다.
이 당시 뉴욕에는 택시로 마차가 다녔다.
개리슨이 마차를 잡자, 일행들도 함께 마차에 올랐다.
“이보시오, 홀츠 호텔 갑시다.”
마차를 타고 가며 태선은 지나가는 뉴욕 풍경을 봤다.
‘센트롤 파크는 지금도 있군. 그나저나 뉴욕 택시하면 역시 노란 택시인데 마차 택시라니 이것도 적응 안 되네.’
박석이 깔린 도로를 마차가 달리고 자전거 타는 이도 더러 보이는 가운데 태선은 어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쿵─ 덜컹─!
‘윽! 으윽···발명할 거에 자동차도 추가!’
사실 자동차는 배를 타고 오면서 구상한 테크트리에 있어서 새삼 지금 추가한 것도 아니고, 필요한 건 엄밀히 말해 타이어였지만.
홀츠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엉덩이가 당한 수난은 태선에게 자동치나 쿠션의 중요성을 잘 상기시켜주었다.
***
홀츠 호텔에서 일행은 방 두 개를 잡았다.
방 하나에는 개리슨과 잭이 묵고 다른 방에 태선과 태경 형제가 묵기로 했다.
“예, 나가신다고요?”
그러고는 꽤 오랫동안 배를 탔는데도 지치지 않았는지 개리슨은 다른 일을 보러 나간단다.
“뭐 그렇게 됐구먼. 그래도 모레는 돌아올 거야. 어차피 밀림이나 오지도 아니고 여긴 뉴욕 아닌가. 근처 돌아다니며 도시 구경이라도 하세나.”
‘하긴, 마당발이고 인맥부자면 저렇게 다녀야 되는 거겠지.’
또 한편으로 운명이란 게 있다면 개리슨은 역마살을 타고난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다.
뉴욕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사했다가 세인트루이스로 이사했다가 파나마로 이주했다가 또 미시시피에서 증기선 운행하다가 니카라과 갔다 샌프란시스코도 갔다가.
‘새삼 생각해보니 홍길동이 따로 없네.’
어쨌든 개리슨이 간다는데 어쩌겠는가.
붙잡아서 묶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개리슨 없이 돌아다녀봤자 제대로 된 중개인도 못 만날 것이고 은행 물건도 못 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물론 연줄을 찾고자 한다면 제이크 벌링게임과 윌리엄 C 랠스턴에게 받은 추천서가 있지만 그건 이번 은행 인수 건에 쓸 것들은 아니었다.
은행을 인수하여 동부점을 설립하고 나면 그 이후 부스터를 위해 아껴둘 아이템들이었다.
‘레이싱게임 할 때도 부스터는 확실할 때 써야지, 괜히 커브길에서 쓰면 사고 난다구. 조금만 기다리면 직진 코스 나온다···!’
그걸 위해 할 일이 무엇무엇 있는지 정리하고.
어떤 우선순위로 그걸 수행해야 하는지.
···등등을 계산하고 안배해둘 필요가 있지만 일단 피곤하니 하루는 쉬고 나서 하기로 했다.
“간만에 진정한 휴식이구나.”
선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침대에 몸을 누이니 그야말로 간만에 태선은 꿀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태선, 호텔에 있을 겐가? 난 밖에 잠시 돌아보고 오려고 하거든. 같이 가겠나?”
“형, 우리도 밖에 나가서 돌아보고 와요!”
아침 조식을 먹으며 잭이 이렇게 물었고 태경이 기대감이 가득 찬 눈으로 쳐다봤다.
같이 가면 좋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금이다.
태선은 아침을 먹으며 조간신문을 체크해봤고 다행히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듯싶었다.
[ 링컨 정부의 채권 매입 요청에 대해서 뉴욕 은행들의 반응이 주목된다······. ]신문에 이 문구가 있다는 건 아직 뉴욕 은행들이 국채 매입 거절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괜히 이런 기사가 나오지도 않았을 테니 슬슬 그 은행의 결정을 주목할 시점이 임박했다는 뜻이기도 할 터.
‘잘 됐어. 잘만하면 숟가락을 얹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파이를 조각 째로 나눠 먹을 수 있겠어.’
물론 그러려면 개리슨이 돌아오는대로 바로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해둬야만 했다.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