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50
150 수확(4)
뿌우우우우───!
맨해튼으로 돌아가는 페리선에서, 방금 떠나온 스태튼 아일랜드를 보는 태선의 표정에 밴 감정이란 뜻밖에도 ‘저질렀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이거 바빠지게 됐네.’
주유소, 농기계, 도로 건설, 자동차 등 다른 사업은 궤도에 올려놨다. 새뮤얼 앤드루스의 석유화학은 늦어지고 있지만 시간 문제겠지.
그렇기에 영국에 가기 전까지는 템포를 살짝 늦추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려 했건만.
바쁘게 움직이느라 놓쳤던 전화 사업을 뒤늦게 발견했고,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사업 기반을 갖추어놓고 싶었다.
‘사실 도로 못지않게 통신은 사회의 기반 인프라잖아.’
나아가서 해저 케이블과 연결하면 영국에 있으면서도 미국과 수월하게 연락할 수 있다.
물론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그걸 위해 할 일은 자명했다.
영미전신회사 대표 사이러스 필드와 만나 협상할 것.
다만 그건 자신이 할 일이고, 그와 병행해서 쌓아올릴 테크트리를 위해서는 조셉 스완이 움직여줘야 했다.
“조셉, 돌아가면 뉴욕 전체에 전화 보급 사업에 대해 계획을 짜보세요. 장기적으로는 미국 동부에서 전역으로 확장하는 걸 전제로 두고요.”
“안토니오 메우치가 계약을 수락한다고 하지 않았는데 벌써 말인가?”
“그는 수락할 겁니다.”
“하기야 상식적으로 거절할 리가 없기야 하지. 알겠네. 바로 준비해서 보고하지.”
조셉 스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 사업이 조셉에게도 나름대로 흥미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뭐랄까. 컴퓨터와 전화가 어떻게든 연결되면 엄청난 게 나오지 않을지 그런 생각도 드는군.”
그러다 불쑥 조셉이 뱉은 말에 태선은 그를 쳐다봤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도 꼭 보고 싶네요.”
“하하하, 그냥 감이 그렇다는 말일세. 다만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뭔가 나올 듯도 싶군.”
‘되기만 하면 당연히 뭔가 나오겠죠. 본래 역사에서는 120년 뒤에나 나올 인터넷이거든요.’
물론 그 전에 라디오나 텔레비전 테크트리부터 차근차근 밟아야 하겠지만.
그런 접근을 해봤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다.
“메우치 씨가 회사에 들어오면 배비지나 웨스팅하우스나 에디슨과 함께 연구소에서 그걸 의논해봐야겠어.”
그리고 조셉 스완이 의견을 교류하고 접촉하는 이들에게도 그런 발상이 번져갈 테니까.
***
일이 되려고 하면 한 번에 몰아쳐 온다더니.
“오, 오셨군요, 태선 사장님!”
며칠 뒤 태선이 방문한 곳은 킴 스탠다드 오일에서 따로 사무실을 분리한 석유화학 및 주유소 사업부.
자동차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만큼 몇 달 전부터 주유소 사업도 급물살을 타고 있어 아주 바쁜 곳이었다.
다만 오늘 방문한 목적은 주유소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주유소는 이제 태선이 내버려둬도 잘 굴러간다.
‘아멕스 지점과 연계해서 주유소를 내고 석유를 운반해서 재어놓고 팔면 되는 일이니.’
“드디어 이걸 보여주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하핫.”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새뮤얼 앤드루스가 태선을 안내한 곳은 석유화학 및 주유소 사업부에 속한 연구실.
본래 새뮤얼 앤드루스도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멘로파크에서 연구했지만 사업부를 옮기며 여기에 따로 연구소를 지었다.
‘뭐 석유 쪽은 내 사업의 근본이니까.’
더구나 석유는 여러 분야에 걸쳐 발전 스펙트럼이 넓다.
따로 연구소를 둘만도 했고 실제로 그동안 컴퓨터나 자동차 등 다른 연구에 비하면 성과는 없었지만 태선은 그 어떤 분야보다 새뮤얼 앤드루스에게 힌트를 줬었다.
‘그걸 드디어 해낸 모양이네.’
이윽고 도착한 연구실에는 태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연구원들이 특정 실험의 세팅을 해놓고 있었다.
“이거 나프타로군.”
세팅해둔 것 중 용기에 담긴 투명한 액체를 보며 태선이 중얼거렸다.
원유를 분별증류할 때 140~180도에서 정제되는 물질.
그리고 고분자 탄소화합물로 플라스틱의 재료가 되는 물질이기도 했다.
“그리고 옆에 이건······.”
“나프타계 탄화수소를 분해해서 나온 물질인데 불 붙기 쉽고 기화하기도 쉬워서 다룰 때 조심해야 하죠.”
‘에틸렌인가.’
새뮤얼 앤드루스는 다른 연구자들의 보조를 받아 에틸렌을 다루기 시작했다.
조심해야 한다는 방금 전의 말과는 달리 새뮤얼 앤드루스의 손은 세심하되 떨림은 없었다.
“샘, 못 본 사이에 손이 거침없어졌네.”
“당연하죠. 그동안 너무 안 와보신 거 아니세요? 눈 감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진 않겠지만.”
실험에 집중하면서도 넉살 좋게 대답하는 여유까지.
“아무튼 사장님이 석유에서 사업화할만한 다른 연료나 물질이 나올지 모른다면서······. 제가 자동차 연료로 쓰는 휘발유와 경유에 집중하고 나프타는 버리려고 할 때 절대 안 된다면서 더 연구해보라고 그러셨잖아요.”
그야 당연하지. 플라스틱 재료인데.
“답도 안 보이는 걸 얼마나 붙들고 있었는지······. 그러면서 가끔 만나서 이건 도저히 쓸 곳이 없다고 말씀드리려고 하면 툭툭 이렇게 저렇게 물질을 반응시켜보라거나 촉매를 써보라거나 힌트를 주셨죠.”
치이이익────!
마치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은 반복해본 듯 능숙하게 새뮤얼 앤드루스의 실험은 이어졌다.
“처음에 이제 경영만 힘쓰고 연구는 나한테만 시키는데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 하려는 거라면서 원망도 좀 했거든요······. 아, 물론 지금은 아니고요.”
에틸렌과 반응시킨 물질에 새뮤얼 앤드루스는 뭔가를 촉매로 투여했다.
“이거 니켈입니다. 사장님이 촉매를 써보라면서 여러 가지 물질을 후보로 들어줬잖아요. 그 후보가 수십 개도 넘어서 고생 꽤나 했지만 특정 조건 하에서 니켈을 쓰니까!”
곧 새뮤얼 앤드루스가 득의만만한 미소를 띠었다.
“후후, 이런 게 나오더라고요.”
밀랍 같은 백색 결정이 만들어진다.
‘정말로 폴리에틸렌이네.’
전생에서 태선은 저걸 본 적이 있었다.
아니, 본 것이 아니라 아예 자신이 직접 만들어봤다.
‘우연히 탄생한 역사적 발명품을 재현하는 과학 다큐멘터리 찍을 때였지.’
수많은 플라스틱 가운데 폴리에틸렌은 가볍고 유연하여 약방 감초 같은 존재.
플라스틱 병이나 포장재나 절연체나 안 쓰는 곳이 없는 이 폴리에틸렌이 인류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때는 1898년.
‘독일 화학자 한스 폰 페크만이 우연히 합성했지.’
문제는 그야말로 우연히 만들어서 어떻게 합성이 됐는지도 모르고 가치도 알지 못했다.
재밌는 건 이 폴리에틸렌을 두고 우연한 발견은 또다시 일어난다.
그것도 두 번이나.
‘1933년 영국 임페리얼 케미컬 인더스트리스사 연구소에서, 그리고 1945년 카이저빌헬름연구소에서.’
시대가 뒤로 갈수록 고분자화학이 발달하면서 더욱 비약적인 발전이 일어났을 테니 폴리에틸렌의 가치를 알아본 건 어쩌면 필연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새뮤얼 앤드루스가 폴리에틸렌을 합성했고, 그 제조법을 명확하게 알고 반복적인 시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이게 고무나 셀룰로오스 같으면서도 다른 물질과 합성해서 가공도 할 수 있어서 유용할 것 같아요. 참, 그리고 하나 더!”
새뮤얼 앤드루스는 다른 연구자들에게 지시해서 전지, 전구, 전선을 연결했다.
당연히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태선의 반응을 살피고는 새뮤얼 앤드루스는 마술사처럼 다시 뭔가를 꺼냈다.
“방금 전에는 나프타로 합성물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드렸는데 이건 그걸 조금 더 가공해서 뭉친 건데요.”
전선 사이에 그걸 끼우자 전구의 불이 바로 사그라졌다.
“보셨죠. 이게 절연체로 딱 좋은데 보시다시피······.”
“유연하군. 전선 피복으로 쓰면 좋겠어.”
“제가 하려던 말인데 그걸 가로채다니 너무 하네요!”
투덜거리는 새뮤얼 앤드루스에게 다가가 태선은 진한 포옹을 해주었다.
“어헉, 미안하셔도 사과로 포옹을 해주는 건 좀······.”
“그동안 마음 고생 많았던 거 알고 있어. 하지만 결국 해냈군. 샘, 자네라면 해낼 거라며 믿고 있었어.”
태선은 포옹을 풀고 물러나서 폴리에틸렌 덩어리에 다시 시선을 던졌다.
“이 물질의 이름은 뭐로 하려고 하는가?”
“음, 글쎄요······. 사장님이 정해주세요. 연구는 제가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사장님이 던져준 힌트 덕분이었거든요.”
“그럼 기꺼이 말하겠네. 나프타에서 추출한 저 물질은 에틸렌이라 하고, 이건 그 에틸렌을 가공했으니 폴리에틸렌이라 하면 어떤가?”
“오, 뭔가 어감이 좋은데요.”
마음 같아서는 새뮤얼 앤드루스의 이름이라도 따서 붙여주고 싶지만.
‘그러면 전생에 에틸린이나 폴리에틸렌이라 알고 있던 내 상식으로는 헷갈려서 말이지.’
“방금 전에는 전선 피복을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 폴리에틸렌은 쓸 곳이 아주 많아. 예를 들자면 자동차 타이어에 쓰면 성능이 더 향상시킬 수 있겠지.”
“오, 그러네요!”
“더구나 유연한 상태일 때 형태를 잡고 경화시키면 물병이나 그릇이나 손잡이나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지.”
“즉 제가 가공하기에 따라서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진다···그 말씀인 거죠?”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당장 샘 자네가 발명한 이 합성법만 해도 바로 사업화가 가능할 거야. 대량생산 체계를 바로 갖추지.”
“대량 생산이라면?”
이렇게 바로 결정할 줄은 몰랐는지 새뮤얼 앤드루스가 약간 놀랐지만, 태선으로서는 새뮤얼 앤드루스에게 석유화학 분야의 씨앗을 뿌려놓을 때부터 줄곧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전략실에 지시해서 바로 폴리에틸렌의 대량 생산을 위한 공정을 마련하고, 그걸 가공해서 사업화할 수 있는 상품을 추려 금형 공장 라인도 지어야겠지. 물론 우선될 것은 전선 피복 쪽이겠지만.”
안토니오 메우치를 영입하고 조셉 스완을 시켜 전화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와 아울러 전신주를 짓고 전선을 잇는 작업을 전격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처음 할 때부터 절연체로 폴리에틸렌을 쓰면 나중을 위해서도 좋을 터였다.
“어우, 이거 저와 연구원들이 갈려나가는 운명이 벌써 눈앞에 보이는데요.”
새뮤얼이 죽는 소리를 하자 태선은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물론 그만한 보상도 줘야지. 저번에 나중에 독립된 계열사로 만들 거던 말 기억나?”
“네. 기억하죠. 지금 그 말을 꺼내시는 건?”
“그래, 생각보다 빨랐지만 지금이 바로 그때야. 주유소만 하더라도 큰데 석유화학 쪽의 성과가 나면서 SGE 밑에 있기에는 사업 규모가 너무 커졌어. 새뮤얼 앤드루스 케미컬 인더스트리라 지으면 어울리려나?”
“내 이름을 딴 회사······!”
태선은 새뮤얼 앤드루스의 뒤에 있는 다른 연구원들에게도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다만 그때는 이미 샘 자네 회사이니 연구원들에게 보상은 알아서 잘 챙겨주고.”
“물론이죠, 헷!”
·
·
·
KSO 석유화학 및 주유소 사업부는 처음부터 계열사로 독립시킬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조직이었다.
하물며 샬롯이 전략실의 수장으로 복귀했다.
그녀가 지휘 아래서 새뮤얼 앤드루스 케미컬 인더스트리, 약칭 SACI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회사 지분은 KSO가 대부분 가진 형태가 되었고, 사업부에서 주유소 사업과 석유화학 연구는 그대로 승계했다.
다만 약간 복잡한 과정도 있었으니.
“여기가 합성 플라스틱 절연체를 만들 공장이군요.”
본격적인 가동에 앞서 설비부터 갖춰놓은 공장.
폴리에틸렌 가공 기술의 원전이나 재료의 공급은 SACI의 몫이었다.
다만 그걸 주로 사용할 곳은 전기 사업을 하는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
그렇기에 이 공장은 새뮤얼 앤드루스 케미컬 인더스트리와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가 공동으로 운영한다고 봐야 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앤드루스 사장님.”
“스완 아저씨한테 그런 말 들으니 낯 간지럽네요, 하하!”
태선을 필두로 조셉 스완과 새뮤얼 앤드루스가 같이 공장을 방문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 둘 외에도 태선의 수행원으로 데리고 온 아치볼드가 있었지만, 또 한 사람의 인물이 동행하고 있었다.
“메우치 씨, 어떻습니까?”
“네?”
그는 얼마 전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에 신설된 통신 사업부 본부장으로 스카우트된 안토니오 메우치였다.
“제가 알기로 메우치 씨는 화학에도 소양이 있다던데요. 이 절연체로 전선을 만들 계획인데 전화 사업도 이걸 염두에 두고 기술을 다듬어야 할 겁니다.”
“아, 넵! 물론이죠. 앤드루스 사장님께 샘플을 얻어서 실험해보고 훨씬 좋은 품질이 나오게 하겠습니다.”
안토니오 메우치는 스태튼 아일랜드 그의 예전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생기가 없던 것과는 달리 기백 넘치게 답했다.
다만 방금 전의 말과 달리 잠시 쭈뼛거리더니.
“음, 그리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아내도 새로운 집을 정말 마음에 들어 하고 의사 진찰도 제대로 받으니 건강이 훨씬 좋아지고 있습니다.”
감사 인사를 했다. 이게 처음도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이런 인사를 받는 것 같다.
“그래요? 그치만 전 말로만 하는 인사는 안 받거든요.”
늘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대답만 해주는 것도 식상하게 느껴지던 차라 태선은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말했다.
“한 달 뒤 전화 사업 관련 회의를 가지기로 했죠. 제대로 준비해주세요.”
앞으로 다가가 태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혹시 모르잖아요. 우리 전화기로 미국 대통령과 영국 여왕님께서 통화하게 될 날이 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