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55
155 여왕과 머저리(1)
영국으로 일곱 번째 폴리에틸렌을 수송하는 증기터빈 상선의 앞에 런던이 보였다.
“와, 런던이 보여요!”
난간에서 그걸 보며 호들갑 떠는 청년은 바로 에디슨.
“어머, 제가 태어나서 런던에 와보다니.”
그 옆에는 앤도 벌써부터 감상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시 왔네. 하지만 이번에는 태선 없이 나 혼자······.’
반면 샬롯은 평소답지 않게 약간 굳어 있었다.
태선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미국에서도 애썼지만 역시 그가 곁에 있고 없고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후우, 그나마 알프레드와 마리가 같이 와서 다행이야. 이런저런 집안일은 그나마 둘이 케어 해줄 테니까.’
지금 배에서 내릴 준비를 대신하고 있는 이는 알프레드, 클락과 루이스를 보고 있는 건 마리인 것만 봐도 그랬다.
사실 샬롯도 그 일을 집사와 하녀에게만 맡겨두고 싶지만은 않았다.
특히 아직 한 살배기라 해도 처음 바다를 건너 외국에 오는 날인데 두 아이의 곁에서 함께 추억을 쌓고 싶었다.
“앤 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에디슨 자네는 긴장감 없는 거 아닌가? 우린 런던에 놀러 온 게 아니라네.”
에디슨을 힐책하는 이는 대서양전신회사의 주임기사 중 한 사람인 윌리엄 톰슨.
런던에는 부회장인 새뮤얼 모스가 와있지만, 아무래도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는 모양이라 영국 출신인 윌리엄 톰슨이 동행하기로 했다.
“기껏 킴 사장님이 새로운 소재와 기술도 지원해주셨는데 현장에서 그걸 거부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겨. 우린 그걸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
배를 타고 오면서 내도록 윌리엄 톰슨이 했던 말이 다시 되풀이된다.
다만 이걸로 윌리엄 톰슨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래, 에디슨. 배에서 내리자마자 현장부터 가볼 거야.”
윌리엄 톰슨의 말마따나 런던에서 해저 케이블 제조를 맡은 공장에서 KSO의 새로운 기술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단다.
말이 좋게 해서 부정적인 반응이지 사실상 거부하고 그냥 하던대로 하겠다는 뜻.
“여기 톰슨 씨도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네 역할이야말로 중요해. 톰슨 씨, 너무 서운하게 듣진 마시고요.”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합니다. 계속하시죠.”
“에디슨 네가 KSO의 엔지니어이자 동시에 멘로파크 연구소 출신이니까.”
배 타고 오기 전에도, 배를 타고 오는 닷새 동안에도 이 문제를 내도록 논의했다.
그럼에도 아직 100퍼센트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전략은 짜내지 못했다.
그래서 샬롯이 아이들을 마리에게 맡기면서까지 에디슨과 윌리엄 톰슨과 함께 나와있는 것이었다.
“저, 저도 마리 언니를 도우러 다시 들어가볼게요.”
순전히 구경을 위해 갑판에 나왔다가 분위기 심상치 않음을 뒤늦게 감지한 앤이 슬그머니 물러났다.
앤이 빠지자 에디슨을 향한 샬롯의 어조에 더 힘이 실렸다.
“내가 대표로 왔다지만, 난 기술자도 아니고 심지어 여자야. 그들이 내 말을 우습게 여길 가능성이 높아. 미국과 달리 여기 영국에서 KSO 전략실 실장이라는 직함은 당장은 큰 배경이 되어주지는 못할 테니까.”
“으으, 압박감이 너무 커서 뱃멀미가······.”
에디슨이 앓는 소리를 냈지만 샬롯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에디슨, 허튼 소리 말고 잘 들어. 단순히 이건 이번 일의 문제만이 아냐. 엔지니어로서 네가 보기에 어때? 해저 케이블에 적용되는 기술과 신소재는 큰 비용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 맞니?”
“그야 물론이죠. 거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다면 네가 가진 그 엔지니어로서 주장을 관철시켜. 그것조차 못 하면 앞으로 런던에서 벌일 다른 사업에서 네가 기술주임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하겠니?”
“그건······. 확실히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면 다 소문 날 거고 전부 저를 무시하겠죠. 게다가 저는 나이도 어리니까요.”
슬슬 배가 항구에 가까워져 부두에 닿을 듯 했다.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했다.
알프레드도 짐을 가지고, 마리와 앤도 각각 클락과 루이스를 안고 나왔다.
“그래, 네 약점을 너도 잘 아는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넌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그 어린 나이에도 인정받고 있지. 다름아닌 태선 그 사람에게.”
“음, 맞아요. 태선 사장님에게도 인정받은 제가 여기서 지고 들어가서야 말이 안 되죠!”
샬롯은 그제야 웃으며 에디슨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물론 톰슨 씨도, 나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백업할 테니 잘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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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이미 자동차가 대중화되었다.
물론 그건 태선이 정치인과 관료와 접촉해서 밀어붙이고 사업적으로 투자를 때려 박아서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덜컹───!
그렇다고는 해도 런던에서는 뉴욕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자동차는 찾아볼 수 없고 마차뿐이었다.
그렇기에 알프레드, 마리, 앤으로 하여금 루이스와 클락을 데리고 브라운스 호텔로 보내면서 태운 것은 마차 택시.
덜커덩───덜컹────!
샬롯, 에디슨, 윌리엄 톰슨이 마중 나온 새뮤얼 모스와 함께 케이블 공장으로 향하고자 이용하는 운송 수단도 어쩔 수 없이 마차 택시였다.
“이거 미국에서도 자동차가 보급된지 얼마 안 됐는데 그게 편리하긴 정말 편리했습니다. 마차가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지다니요, 하하.”
새뮤얼 모스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말을 꺼냈지만 그저 농담은 아닌 듯 싶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런던에도 자동차가 다니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무게와 부피 탓에 수출은 어려우려나요.”
윌리엄 톰슨도 말을 보탰다.
사실 부두에서 만나자마자 가장 시급한 문제인 런던 케이블 공장에서 KSO의 신소재와 설계에 거부 의사를 보인 건에 대해서 의논했다.
결론은 KSO에서 파견된 면면들이 왔으니 케이블 공장을 방문하여 부딪치고 보자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이건 승산 100퍼센트라고 장담할 수 있는 책략이 아니기에 분위기는 다운됐다.
“이걸 런던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자동차뿐만 아니라 도로도 그렇고 교통 체계도 그렇고 제가 지금 딱 봤을 때는 뉴욕이 런던보다 못한 점이 단 하나도 없거든요.”
에디슨까지 나서 나름 열을 올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도 새뮤얼 모스나 윌리엄 톰슨과 마찬가지로 공장에 도착하기 전에 사기를 올려보려는 거겠지.
“사실 여태까지는 기밀로 했었는데 내가 런던에 왔으니 더 숨길 필요도 없겠네요. 자동차 사업도 곧 시작할 거예요.”
그렇기에 샬롯도 제법 큰 건 하나를 투척했다.
“오, 런던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합니까?”
“태선도 곧 오겠지만 제가 먼저 와서 조사하고 여건을 조성해놓으려는 분야 중 하나가 자동차였어요.”
“자동차를 배에 싣는 건 무리겠고 여기로 기술 이전을 해서 제작하는 식이겠군요.”
“네. 그리고 라이온스 경도 자동차 사업이나 도로 체계 이전에 관심이 많아요. 벌써 영국으로 돌아오셔서 자동차 사업에 협력해주기로 했거든요.”
“오, 그러면 현지 조력자도 있겠다 자동차 관련 기술자만 들어오면······.”
자동차 기술자 찾는 새뮤얼 모스의 말에 샬롯은 옆자리의 에디슨에게 시선을 던졌다.
“기술자라면 더 올 필요가 있나요. 같이 왔는데.”
“에디슨 군이 자동차 엔지니어이기도 하다는 말입니까?”
“뭐 제가 웨스 형이랑 같이 자동차 조립도 수천 번도 넘게 했었죠.”
“아마 오기 전에는 디젤 농기계도 같이 만들었지? 그거 정말 대단했었다며.”
심지어 에디슨의 너스레에 샬롯은 더욱 기를 살려주었다.
“하하, 디젤 농기계라 정말 대단했죠. 저절로 수확이 됐으니. 거기에 트럭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자 자기 자랑하기 좋아하는 성격인 에디슨답게 썰을 술술 풀었다.
만약 웨스팅하우스나 태선이 같이 있었다면 그런 기술이야 당연한 이야기라 바로 태클이 들어왔겠지만.
“디젤 엔진이라. 그런 것도 만들었나.”
“아, 난 들어본 것 같군.”
이 자리에 같이 있는 윌리엄 톰슨이나 새뮤얼 모스는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에디슨을 전기 기술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자동차 엔지니어였다니.
심지어 단순한 엔지니어 레벨이 아닌데, 그걸 샬롯이 보증해주고 있었다.
“놀랍군. 몰라봤는데 이제 보니 에디슨 군은 보통 인재가 아니었잖나. 하하, 이거 미리 잘 보여야 되겠어.”
“어린 나이에 그 정도의 실적이라니 케이블 공장 녀석들도 이걸 알아야 할 텐데요.”
“걱정마십쇼, 두 분! 그리고 샬롯 실장님. 이 에디슨이 가자마자 바로 기선 제압을 해서 해결하겠습니다!”
***
100여 년 뒤에 한 헤비급 복서가 유명한 말을 남긴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마차가 케이블 공장 앞에 다다라 내리기 전까지 에디슨이 자신만만했던 걸 보면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에디슨은 배에서는 샬롯이 일의 중요성을 새겨주고, 마차에서는 사기를 잘 북돋아서인지 계획을 잘 실행에 옮겼다.
“KSO의 주임 기사 토마스 에디슨입니다. 폴리에틸렌의 절연 효과는 확인해보셨겠죠?”
시작은 예상대로 공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소재를 가지고 화두를 떼기.
애초에 물량을 때려 박은 것부터가 태선의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실무자로서 그걸 유감없이 이용하는 것도 당연히 방책이었다.
“아, 저거 말인가. 그냥 들어오기에 쌓아만 뒀지.”
“절연 효과 같은 건 확인해보지는 않았네만.”
“뭐 재료를 보내주니 추가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어지니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그냥 써주는 거지 뭐 대단한 거라고.”
다만 공장 관계자들 반응은 차가웠다.
절연 효과를 몰랐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자기들도 당연히 소재를 받았으면 실험해봤을 터였다. 만약 품질이 미달되는 재료라면 그걸 그대로 써서 케이블이 끊어지면 자신들도 책임이 전혀 없지는 않은데 미쳤다고 그러겠나.
‘시작부터 기싸움을 하려고 나오네.’
“안 해보셨다니 그럼 제가 보여드리죠. 간단히······.”
“됐고, 우리가 바빠서 그걸 보고 있을 시간 없어. 얼른 케이블 제작에 들어가야 하니 찾아온 용건이 폴리에틸렌인지 뭔지 저거 상태 점검이었나? 빨리 보고 돌아갔으면 하는데.”
샬롯이 보기에는 딱 그랬다. 예상 밖도 아니었다.
“하아······.”
옆에 있는 새뮤얼 모스와 눈이 마주치자 그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마차를 타고 오면서 케이블 공장 관계자들의 태도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저 중 사장인 제롬 브래들리라는 사람······.’
영국 의회에 연줄이 있어 대서양전신회사가 해저 케이블 공사를 할 때부터 단독 계약을 따냈단다.
그리고 첫 번째 해저 케이블 공사를 할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삐딱하게 굴지 않고 협력이 잘 됐다는데.
관계가 틀어진 건 두 번째 공사가 실패했을 때부터.
“케이블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여간 너무 간섭하려 들어요. 그러고는 조사위원회에 사람 불려 가게 만들기나 하고.”
‘그래, 만나면 저 말도 입에 달고 있다고 했지.’
솔직히 입장이 아예 이해 안 되는 건 아니긴 했다.
주문한 대로 케이블을 만들었는데 끊어졌다.
그랬더니 조사위원회에 불려 나가게 됐다.
‘그게 네 번이나 반복되면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엄연히 비즈니스 관계인데 저런 식으로 폭주하는 건 별개 문제지.’
만약 다른 업체라면 그냥 비즈니스 관계를 끊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것도 안 된단다.
“아니, 이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어쩝니까?”
“뭐? 어린 녀석이 말투가 왜 그런 식이야! 모스 씨, 톰슨 씨! 당신들이라면 그래도 대화를 나누겠는데 내가 계속 이 새파란 어린 놈이랑 말상대를 하고 있어야 합니까?”
“그러지 말게. 앞서 밝혔듯 에디슨 이 친구가 KSO······.”
“하, KSO 주임기사고 뭐고 간에 이렇게 얕보여서는 대화할 마음이 안 나는군요.”
마치 노리고 있었다는 듯 에디슨이 어리다며 꼬투리를 잡는 브래들리.
새뮤얼 모스와 윌리엄 톰슨이 나서 에디슨을 추켜세워주려는데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차라리 이참에 제대로 정해두고 가지요. 사사건건 간섭하시면 이번 일은 못 합니다.”
연줄도 연줄이거니와, 해저 케이블에 쓸 수 있는 정도의 퀄리티로 케이블 만들 수 있는 건 여기가 최고라고.
그렇다면 당연히 실력을 논했을 때 KSO의 신소재와 기술을 적용해서 최대한 제대로 해저 케이블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여기뿐이라는 뜻.
‘하기야 그러니 저런 식으로 고자세로 나오는 것이겠지만.’
“솔직히 네 번이나 케이블이 끊어진 건 케이블 만드는 우리 기술력 문제가 아니라 그쪽 대서양전신회사가 변수 계산을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냥 정보만 주면 우리가 알아서 계산해서 만들 테니······.”
더구나 기회를 잡았다 싶었는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디슨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안색이 파리해졌다.
“어, 그래도 KSO가 개발한 신기술은 그런 변수도 전부 계산해서······.”
“자넨 빠지라고 했네. 자네 나이보다 내가 케이블을 만든 세월이 더 긴데 어딜 나서!”
브래들리가 일갈하자 처음의 계획이고 뭐고 에디슨은 기세에 질렸는지 정말로 입을 닫았다.
반면 브래들리가 한층 거세게 말을 토했다.
“주임기사라고 새파란 어린 놈을 보내는 것만 봐도 미국 회사 수준을 알만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