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6
016 뉴욕(2)
“좋습니다. 그치만 오늘은 안될 것 같아요. 개리슨이 오기 전에 당장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형도 이야기만 듣고 처음 뉴욕에 처음 와보는 거잖아. 같이 구경하면 좋을 텐데.”
아쉬워하는 태경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태선은 잭에게 부탁했다.
“태경아, 걱정 마. 앞으로 시간은 많잖아. 그럼 잭, 태경이랑 도시 구경 좀 부탁할게요.”
“물론이지. 태선의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그렇게 조식을 먹고 나서 태경이와 잭을 보낸 뒤 태선은 방에서 종이와 펜으로 해야 할 일부터 정리해봤다.
A. 현지 은행 인수
B. 제이 쿡의 국채 판매 건 개입하기
C. 추천서 전하고 인맥 쌓고 백업 받아내기
D. 태경이 장래 결정하기
E. 호텔에서 계속 지낼 수 없으니 살 곳 구하기
이 중 D(태경의 장래)와 E(앞으로 살 곳)는 나중으로 미뤄둬도 된다.
C(추천서 전달)는 B(제이 쿡의 채권 건)가 해결된 다음으로 미뤄도 괜찮거나 오히려 그 다음이라야 추천서의 이득을 최대로 뽑아낼 수 있다.
또한 B(제이 쿡 채권 건)는 자신에게 뭐라도 간판이 있어야 협상의 여지가 생긴다.
‘물론 지금도 유니온 뱅크의 파트너 타이틀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약하단 말이지.’
역시 든든하게 이곳 동부에 거점을 둔 은행을 있어야 뭐가 비빌 데가 있어도 있다.
그러니 결국, 최우선은 현지 은행 인수.
“팔려고 내놓는 은행이라면 당연히 실적이라거나 상태 좋은 은행은 아닐 거야.”
그렇다고 빚만 떠안았다거나 대출해주고 압류한 건물이나 광산이나 그런 것들이 나중에도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쓰레기라거나.
그런 은행을 인수하는 건 망하기를 자처하는 꼴일 터.
스스슥── 스슥─
지금 평가 가치는 낮더라도 추후 반등 가능성 있는 그런 은행을 인수할 것!
태선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그렇게 적어 봤다.
“흠··· 가진 자본의 가치 상승 가능성 있는 은행이라.”
솔직히 이렇게 행동 방침은 정했어도 당장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고 떠오르는 방안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일단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그런 고로 어떤 은행 물건이 있는지도 모르니 애초에 반등 가능성 있냐를 따지기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이런 막막한 상황은 전생에 이미 많이 겪어봤다.
“맨땅 헤딩하는 이런 시추에이션 오랜만이네. PD하면서 자주 겪었는데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뭐든 떠오르는 대로 적어두면서 양을 불리는 것이 좋다.
“은행, 자금, 자본, 가치, 가능성, 투자, 신용, 전망······.”
태선은 브레인스토밍하듯 종이에 뭐라도 생각나는 대로 적어나갔다.
처음에는 막연한 개념을 적어보고 거기서 새끼치듯 구체적인 단어로 확장해나간다.
“신용평가, IMF, 인수합병, 무디스, 포브스, S&P···S&P? 스탠다드 앤 푸어스? 어, 잠깐만?!”
그러다 불현듯 뭔가 빛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는지 태선의 눈이 번뜻 뜨여졌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기는 한데···뭐 고민할 필요 없잖아. 지금이 1861년이니까 바로 확인해보면 되겠군.”
태선은 중얼거리기 무섭게 곧바로 방을 나오더니 아예 호텔을 나섰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서점을 근처에 있는 서점으로 찾아들어가 물었다.
“실례합니다. 「History of Railroads and Canals in the United States」 있습니까?”
질문하고 나서 주섬주섬 찾아보는 서점 직원의 반응.
······.
혹시 자신이 헛다리 짚었나 싶어 살짝 긴장도 됐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작년인데.’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 책은 있을 것이다.
“이거 운이 좋으시군요. 여기 마지막으로 한 권 남았네요.”
‘역시는 역시!’
직원이 책을 가지고 나오자 태선은 돈을 지불했다.
“돈은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표지를 보며 서점을 나서는 태선. 하지만 솔직히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History of Railroads and Canals in the United States」
이름만 보면 알 수 있듯 이 책은 미국 철도와 운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철도 사업을 할 것이 아닌데 철도의 역사에 대해 알아서 어디에다 써먹을 건가.
물론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역사만 다룬 건 아니고 철도 회사의 재무 및 운영 상태에 관한 정보까지 수집해서 그걸 책을 엮어냈으니.
팔랑팔랑────
호텔로 돌아가며 책을 대충 넘겨보면서 과연 예상대로 그런 내용들이 있었다.
그러자 태선은 입가에 한껏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특히 책의 첫 페이지에 저자 이름을 보자 나직이 되뇌었다.
“헨리 바넘 푸어, 어감 좋고!”
이 사람과 연결고리를 놓을 수만 있다면 은행 인수를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연결고리 놓는 일은 자신으로서는 무리였다. 첫 만남에서는 역시 개리슨의 백업을 받아야 일이 쉽다.
‘사실 그걸 위해 개리슨을 지점장으로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밀어줬으니.’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타이밍이 좋았다.
“오, 여기서 있었군. 도시 구경이라도 나갔을 줄 알았더니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딱 만나다니 반갑구먼.”
호텔 카페테리아에 들어가는 차에 마침 볼일을 보러 갔던 개리슨도 돌아온 모양이었다.
“네, 저도 반갑네요. 잘 오셨어요. 안 그래도 개리슨과 급히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던 참이었거든요.”
“호오, 그런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자네가 그런 말을 꺼낼 때면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곤 했었지. 카페 가서 커피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세나.”
이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지 종업원은 개리슨을 알아봤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개리슨, 내일 같이 가줬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만.”
“보아하니 어디 구경시켜 달라는 눈치는 아닌 것 같고 은행 일인 모양인데 일단 어디인지 들어보지.”
“예, 메인 주 뱅고어라는 도시입니다.”
“뱅고어라. 그리 멀지 않은 곳이구만. 거긴 왜 가려고 하나?”
태선은 일단 대답 대신 스윽 책을 내밀었다.
“허허, 벌써 책을 산 겐가. 하여간 자네 학구열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보자, 무슨 책··· 음? 갑자기 철도라고?”
의아해하면서도 개리슨은 관심을 보였다.
하기야 철도왕 밴더빌트와도 인연 있고 동업하는 개리슨이니 그럴 수도 있었다.
뭣보다 철도는 이 시기에도 앞으로도 사업적으로 굉장히 유망한 분야.
“일단 간략하게라도 한 번 보시죠. 이미 잘 아시겠지만 철도업은 국가의 기반이며 앞으로도 유망한 분야죠.”
“그렇지. 그리고 돈이 되지.”
그래, 맞는 말이다. 태선이 석유업을 시작하더라도 파이프로 수송을 대체할 기반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그 운송을 철도업에 의존해야 한다.
물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그리고 이를 위해 실제로 역사에서는 석유왕 록펠러는 철도사에 리베이트를 주게 된다.
‘물론 나중에는 자체 파이프라인을 깔아서 밴더빌트와 경쟁에서 이기게 되지만.’
그거야 나중의 일이고 당장 태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 지금 그 부분부터. 철도회사에 대한 재무 분석을 다루었는데 아직 미진한 제 안목에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분석이 훌륭하더군요.”
“그래? 흐음, 그렇구만. 자네 말대로군. 분석도 그렇고 이런 정보들은 어떻게 다 구했는지 수완이 좋군.”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분이더군요.”
태선은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가리켰다.
“헨리 바넘 푸어. 거기 적혀있지만 뱅고어의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분이고 동시에 재무분석가이기도 합니다.”
척하면 척이라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눈치챈 개리슨이 미소를 띠었다.
“그거였구만.”
“예, 바로 그거입니다.”
태선은 개리슨을 마주 보며 같이 미소로 화답했다.
잠시 말이 없었으나 서로 쳐다보며 웃기만 하는 걸 보면 마치 둘이 뭔가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
다음날 뉴욕에서 뱅고어로 향하는 기차.
비즈니스로 가는 것이니 개리슨이나 잭과 같이 가는 건 당연했지만 태경이도 함께였다.
“와, 여기 기차는 파나마에서 탄 것보다 훨씬 좋아요!”
어른 셋이 다 가버리면 태경이만 혼자 호텔에 남겨두고 갈 수도 없으니.
더구나 태경이는 자기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배짱도 있으며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이런 아이에게 벌써 견문을 많이 넓혀준 것 같지만 지금도 기회 있을 때마다 더 넓혀주면 좋지 않겠는가.
뿌욱─ 뿌우우우욱──!
이윽고 증기기관차의 우렁찬 경적음이 들렸다.
태선 일행이 탄 기차는 이미 달리고 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엔진을 달구는 증기기관차가 있다는 뜻.
다시 말해 뱅고어역에 거의 다 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태선, 그나저나 내 브리핑을 커버해줄 때부터 생각했지만 자네는 진짜로 대단해.”
이제 창으로 뱅고어 시내가 보이는데 불현듯 잭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어제 뉴욕에 온 김에 돌아다닐 생각만 했는데 자네는 어떻게 그런 책을 찾아냈나? 더구나 저자를 찾아갈 생각까지 했는지 도저히 나 같은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어.”
“하하, 그건 나도 동감이야.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태선 자네는 마치 벤저민 프랭클린에 비견될 정도의 천재 같군.”
둘의 칭찬이 이어지자 동생 태경이는 괜히 제가 뿌듯해하며 으쓱거렸다.
“운이 좋았죠. 그리고 그저 태경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형이 되기 위해 뭐라도 열심히 할 따름이고요.”
“하하, 겸손하기는. 태경아, 들었지. 너 같은 형을 둔 네가 부럽구나.”
“네, 저도 우리 형 동생이라 너무 좋아요. 조선에서 나와 미국에도 올 수 있었고요, 헤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일행은 마차를 타고 미리 알아본 푸어 법률사무소로 향했다.
네 사람은 신사처럼 옷을 잘 차려입고 있었기에 푸어 법률사무소에 들어가자 귀빈으로 대접 받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있어야 변호사님이 오실 텐데 커피라도 들면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우리가 예약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이니까요. 기꺼이 기다려야지요.”
이 자리에서 가장 연장자인 개리슨이 차를 내온 비서에게 웃으며 화답했다.
태선은 차를 한 모금 홀짝 마시며 머릿속으로 이제 곧 만날 사람에 대해 생각을 되짚었다.
‘···헨리 바넘 푸어.’
쉽게 말해서 이 사람은 그거였다. 현재 미국에서 경제 혹은 주식 하면 딱 떠오른 단어를 꼽으면 뭐가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S&P가 빠질 수는 없을 터였다.
사실 S&P는 비공식적인 약칭이며 정식 명칭은 스탠다드 앤 푸어스였다.
무디스와 핏치와 나란히 3대 신용 평가 기관의 한 곳이며 시쳇말로 해보자면 삼대장.
‘그 S&P의 P가 바로 헨리 바넘 푸어의 P지.’
즉 S&P의 창업자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태선은 이 자리의 의미를 사뭇 다시 생각했다.
‘물론 은행 인수 건 정보도 중요하지. 중요하지만······.’
기왕 만나게 된 이상 이후 사업을 위해서라도.
동업자 혹은 친구 혹은 그 이상으로 서로 신뢰하는 관계로 만들자고.
‘헨리 바넘 푸어, 꼭 내 사람으로 만든다.’
태선은 결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