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62
162 노블레스 오블리주(1)
영어로 정식 명칭 의회금장.
‘멋지군.’
그랜트 장군 말대로 태선과 사이러스 필드의 금장 수여가 의회에서 논의되었다.
업적이 분명한지라 상원과 하원에서 금방 통과되었고 지금 눈앞에 있는 금빛 훈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가문 대대로 명예로운 업적인지라 집안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두면 좋겠지만.
“정말로 훈장을 여기 둬도 괜찮으시겠어요?”
샬롯 대신 전략실 대리 실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안나 암스트롱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선은 황금훈장을 KSO 사옥 로비 중간에 만들어둔 전시장에 두기로 결정했기에.
“어차피 맨션도 처분했고 호텔에 방도 뺐으니 거기 둘 수도 없지 않겠니.”
“그렇지만 영국에 가져가실 수도 있으실텐데. 샬롯 언니한테도 이 황금훈장을 보여주면 좋아할 거고요.”
만약 샬롯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훈장 보고 좋아하기 전에 ‘언니가 아니라 실장!’ 이라며 안나를 꾸짖었으리라.
“아, 알겠다. 여기 놔두면 관리하기 힘들어서 그렇구나.”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진짜로! 조금도 하지 않았어요. 믿어주세요.”
“농담이야. 여기 두면 어느 것보다 경비가 삼엄할 텐데 누가 훔쳐가지도 않을 테고 회사의 위상을 높일 수 있겠지.”
“몰랐어요. 그런 깊은 뜻이 있으셨군요! 그럼 관리 잘해두겠습니다!”
“그래, 거기다 어차피 내가 영원히 떠나는 것도 아니고······.”
회중시계를 꺼내 보며 태선이 시간을 체크할 때 마침.
“사장님, 차 준비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사장님 배웅하러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으시다네요.”
아치볼드가 로비로 들어오며 보고했다.
“그래, 그럼 가야지. 안나, 그러면 아치볼드와 함께 나 없는 동안 개리슨과 다른 분들을 잘 보좌해다오.”
“넵, 맡겨주세요! 그리고 외람되지만······. 샬롯 언니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헤헤.”
“안부야 전하겠다만 곧 전화 연결도 될 건데 목소리도 직접 듣고 연락하도록 해.”
“아, 맞다! 전화 연결됐었죠.”
정식으로 개통된 것은 얼마 전에 미국 백악관과 영국 버킹엄궁뿐이었지만.
회선을 이용하는 기술의 특성상 한 곳이 개통되었다면 기세가 붙는 순간 다른 곳에도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하물며 다른 곳도 아니고 자신들이 그 선 연결하는 당사자 아닌가.
‘뭣보다 나부터 회사에 직접 오더 내리고 보고를 듣기 위해 영국에 가서도 전화 연결에는 박차를 가할 생각이니까.’
물론 영국 가서 할 일은 그 외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치볼드가 운전하는 차로 항구로 가면서도 태선은 기존에 샬롯이 보내온 정보에 따라 영국 가면 처리할 안건을 미리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도착했습니다, 사장님. 벌써 와버렸네요.”
“녀석, 일부러 이리저리 돌아가기라도 한 모양이구나.”
“조금요. 이제 사장님 영국 가시면······. 길면 몇 년이고 짧게 잡아도 몇 개월 동안 안 오신다면서요.”
아치볼드는 몹시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약간 불안해하는 기색도 읽을 수 있었다.
“아치볼드, 넌 이미 제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어. 걱정 마.”
“그치만 태선 사장님이 있고 없고는 심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고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아서······. 후우, 솔직히 너무 불안하네요.”
“그래, 나도 불안한 마음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태선은 차에서 내렸다. 말을 하다가 말고 차에서 내리자 아치볼드는 혹여 뒷말을 놓칠세라 얼른 따라서 내렸다.
항구 쪽에 태선을 마중 나온 KSO, SGE, SGM, SACI, WCSS, 아멕스, 아멕트 등 임원들이 있었다.
손을 흔들거나 알아보고 이쪽으로 오는 그들에게 같이 인사해주며 아치볼드에게는 말을 이어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너를 영입하러 그 먼 곳까지 갔고 직접 데려와서 키운 거였거든.”
“아!”
새삼스레 태선이 샬롯과 함게 직접 데리러 왔던 일이 떠올랐는지 아치볼드가 흠칫했다.
그때 당시야 얼떨떨해서 넘어갔지만.
솔직히 돌이켜보면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이미 태선은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재계의 거물이었고 심지어 정계에도 인맥이 탄탄히 다져져 있었다.
그런 사람이 직접 자신을 데리러 온 것이었으니.
“잘 부탁하마. 회사와 계열사에는 어른들도 많지만 세대를 이어가는 일이 가장 중요해. 기술 분야로는 웨스팅하우스, 경영 분야로는 너에게 기대가 크다.”
더구나 이제 영국으로 잠시 떠나며 자리를 비우면서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뒤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아치볼드로서는 가슴에 뭔가 뜨거운 것이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탓에 자신도 모르게 두 다리가 후들거려 멈추고 말았다. 예의가 아닌 걸 알면서도, 맡은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태선 사장님······.”
다른 임원들을 향해 앞서 가는 태선의 뒷모습을 그저 두 눈동자에만 담아놓고 있었다.
“이봐, 아치볼드, 뭐해? 사장님만 먼저 가시게 둘 셈이야?”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웨스팅하우스가 채근하자 그제야 아치볼드는 움직였다.
“넵, 사장님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 너무 긴장해서 다리가 굳어버렸습니다.”
“녀석아,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이라 하면 말이 좀 이상하잖아.”
“하하하, 아치볼드 녀석, 평소에는 실수도 하지 않다니 혓바닥까지 꼬여버렸나.”
유쾌하게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태선은 항구에서 임원들과 작별의 인사를 했다.
“그래도 몇 개월에 한 번은 온다고 했지?”
“예, 그럴 생각이지만 또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죠. 영국에 가면 급한 일도 있을 거고.”
“하기야 사업이란 게 그런 법이긴 하지.”
“그래도 거기 가면 전화 연결부터 바로 해결할 테니 통화는 자주 하겠습니다. 이쪽에서도 중요한 소식은 바로 연락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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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이 몸을 싣고 뉴욕에서 출항한 배는 WCSS에서 손본 증기터빈 선박이었다.
더구나 그와 연동하여 항해 관련 정보나 항해술에 비약적인 진전이 있었다.
프레스보트 배비지와 조셉 스완의 컴퓨터 발전 덕분에.
‘그러고 보니 프레스보트 배비지가 같이 못 온 건 아쉽네.’
뉴욕항을 떠난지 나흘째, 저 멀리나마 영국이 보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리지날 컴퓨터인 해석 기관을 처음 만든 이는 찰스 배비지. 프레스보트의 아버지.
엄연히 아직 그는 영국에 살고있었다.
프레스보트 배비지는 그런 아버지에게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로 더 달리고 싶어했다.
‘저번에 힌트를 준 트랜지스터에 한창 진전이 있어서 그걸 그만두고 갈 수 없었겠지.’
대신 아버지에게 안부를 잘 전해달라고.
그러면서 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하면 그때는 꼭 자신이 그 성과를 가지고 아버지를 뵈러 가겠으니 그 말도 전해달랬다.
“것도 어차피 전화 연결되면 직접 말할 수 있겠지만······. 하기야 그래도 나로서도 그런 명분이 있으면 찰스 배비지를 만나기가 편하지.”
비록 한때 해석 기관 관련 연구비가 끊기기는 했어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왕립학회 회원이면서 런던통계학회를 설립한 명망 높은 수학자이기도 했다.
전구, 전화, 자동차, 전기, 증기터빈 등에 있어 자신은 많은 것을 사업화했지만 아직 개척하지 못한 영역은 훨씬 많다.
“오셨군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배는 마침내 런던항에 입항.
가장 먼저 집사 알프레드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고, 그 옆에는 샬롯이 있었다.
“먼저 와서 기반 다지느라 고생 많았어요.”
“흥, 알긴 잘 아네요. 먼저 보내서 귀찮은 일은 다 시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몇 개월이나 못 봐서 그런지, 샬롯의 얼굴에 반가움과 재회로 인한 감동 탓인지 눈가가 눈물로 그렁그렁했다.
“어, 샬롯 울어요?”
“당신이 저 운다고 놀릴 처지세요? 여자 울리는 남자가 제일 못난 사람이거든요.”
“아,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버리나.”
“그래도 이렇게 왔으니 용서할게요. 타요.”
항구 한쪽 개량향 모델T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도 런던 현지 생산에 들어갔죠?”
“네. 이것도 런던 공장에서 생산한 거예요.”
운전대를 잡은 건 알프렐드, 태선은 샬롯과 함께 뒷좌석에 탑승했다.
“주택은 이미 매입해뒀고 루이스와 클락은 거기서 마리와 앤이 돌보고 있어요. 일단 집으로, 집이라고 하니 기분 묘하네요. 뉴욕에서도 맨션에 있었는데 런던에서 당신한테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게 되다니.”
“어디면 어때요. 가족이 같이 있으면 그게 집이잖아요.”
태선의 말에 샬롯은 기분이 정말로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그럼······.”
다만 런던에 혼자 보냈더니 여기서 일처리를 감당하느라 일 중독자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고 말았는지.
“그냥 가기도 뭣하고 애들 앞에서 일 이야기를 하기도 좀 그러니 차에 같이 있는 김에 미리 말씀드릴게요.”
바로 그동안 사업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이 시작됐다.
“먼저 보고서로도 보냈지만 자동차는 라이온스 경이 합류하셨고, 그와 함께 전에 태선과 인연이 있던 조지 피보디 씨와 여왕님의 비서이자 개인 자금을 다루는 폰손비 경······.”
“존 브라더튼 씨가 회사 운영을 아주 잘해줬어요. SGE 영국 법인에서 그동안 하던 전구, 전기, 보일러, 화장실 사업을 확장하면서 새로 시작한 전화 사업도 이어서······.”
다만 이걸 논하는 샬롯도 샬롯이지만 태선도 즉시 그걸 다 알아듣고 있었다.
하물며 그동안 샬롯이 보낸 보고 내용을 머릿속에 잘 담아두었던지라 되묻기까지.
“그런데 여왕님께서 영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외로의 전화선 연결에도 관심이 있다면서요? 그 건은 어떻게 됐죠?”
“기억하고 있네요.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대외적으로는 사실 여왕님이 독일 제국에 있는 딸이나 손자, 손녀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거라고 하는데.”
“그게 아닌가요?”
“맞긴 맞아요. 다만 외교적인 목적도 아예 없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슥────!
그래, 왜 안 나오나 했다. 자동차 뒷좌석에 미리 놔둔 서류를 샬롯이 꺼내서 건네주었다.
“영국 의회에서 얼마 전 발간한 보고서인데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을 우려하는 내용이에요. 내륙 국가와 연계를 통해 러시아 제국을 경계해야 하는데 아마 여왕님은 전화를 통해 외교 관계를 다져서······.”
‘러시아의 남하 정책이라.’
샬롯의 설명을 듣고 의회 보고서를 읽으며 태선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올렸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사업이 궤도에 오르며 늘 조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거기에 러시아 문제를 따로 생각할 수 없었다.
‘1855년에 벌써 러시아 제국이 에도 막부와 러일화친조약을 체결했고······. 2차 아편 전쟁 결과로 베이징 조약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가져갔었지.’
즉 러시아가 부동항을 갖기 위한 남하정책은 오스만 제국 방면은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이미 전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은 그런 러시아 제국의 패권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서 나선다.
나중의 일이 되지만 조선의 거문도 점령도 그 연장선.
‘20년 정도 뒤의 일이지만 국제적인 정세는 이미 그렇게 나아가고 있어.’
영국이 조선 근해로 가서 거점을 확보하는 사건이 더 빨리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 사건의 양성이 양국에 관여할 수 있는 누군가 개입으로 보다 평화적이고 온건하고 될 수도 있고.
‘뭐 쉽진 않겠지만 청나라를 이용하면 가능할 거야.’
비록 열강에게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조선에게 있어서는 중화 세계 근본 자체라 할 수가 있는 국가였다.
그 청나라가 지금은 아편전쟁에서 털리는 바람에 영국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바로 이 영국에 있지.’
즉 미국에서 자신의 근본과, 영국에서 외교력을 등에 업고, 그걸 기반으로 청나라를 움직일 수 있게 되기만 하면?
조선에 진출했을 때 자신의 개입은 훨씬 쉬워지게 된다.
‘물론 흥선대원군의 쇄국 모드가 본격적으로 발동하기 전에 가야 일이 쉬워······. 어, 잠시만. 그러고 보니 그 사건은 벌써 일어났겠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8월에 일어난다.
묘한 건 본래 역사에서는 제너럴 셔먼호에 공격 명령 내린 이는 다름 아닌 박규수였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에게 한층 총애를 받고 조선 민중에게도 인기를 얻게 됐다지만.
‘뭐 그건 이미 막아놨어.’
자신이 기드온 웰스 해군부 장관을 비롯해서 골든버러 제독이나 존 로스 대령과 쿠퍼 대위 등의 미 해군 인사들과 인연을 다져뒀었다.
그 연줄을 기반으로 이미 제너럴 셔먼 호의 루트를 알고 조선땅에 함부로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통보해두어서 막아뒀다.
예방책으로 박규수에게 보내는 서신에도 언급해뒀고.
하지만 신미양요의 원인이 되는 제너럴 셔먼 호를 막았어도 병인박해가 있었다.
‘음, 뭐 솔직히 프랑스 쪽은 지금의 나로서는 알아도 막기 어렵지만.’
그러면 필연적으로 몇 개월 뒤에는 병인양요가 일어나고 그 뒤에 흥선대원군이 쇄국 모드 빌드업이 들어갈 터.
2년 뒤 오페르트 남연군 묘 도굴 사건이 터지면서, 자기 아버지의 묘가 털린 흥선대원군은 그걸 명분으로 세워 본격 쇄국 루트를 탄다.
‘조선에 원만히 간섭하려면 더 빨리 움직여야 되겠어.’
조선을 발전시키고, 국민을 미국으로 이주시키고.
그러면 그들에게도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교민 사회가 형성되며 자신도 미국 내에서 입지가 강해진다.
일이 잘 풀려서 걸출할 능력을 지닌 이가 교민 사회를 더 잘 이끌어주면 한인의 정치적인 힘이 강해지니 더욱 좋을 것이고.
‘뭣보다 그렇게 되면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나아가 남북분단까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어.’
“아, 참!”
잠시 그 생각에 깊이 잠겨있느라 샬롯의 말을 놓쳤는데 불현듯 그녀가 탄성을 질렀다.
혹여 집중하지 않은 걸 눈치 챘나 싶어서 뜨끔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말해준다는 걸 깜빡했네요. 여왕님과 영국의회로부터 당신한테 줄 선물이 있대요.”
“여왕님은 샬롯과 친분으로 그렇다 쳐도······. 의회에서요?”
미국 의회라면 몰라도 여기 영국에서는 의원 중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렵게 생각 말아요.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결국 태선 킴, 당신이라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전구, 전기, 보일러, 화장실에 이제는 자동차와 전화까지······. 그 모든 것이 영국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켜줬잖아요.”
뭔지 살짝 감이 온다. 미국 의회에서 황금훈장을 받았듯 여기서도 뭘 주려는 모양.
“그리고 이번 대서양 해저 케이블까지.”
‘맞다. 그러고 보니 사이러스 필드가 미국에서 황금훈장을 받았다면 영국인인 윌리엄 톰슨은 영국에서 작위를 받았었지.’
그렇지만 자신은 영국인도 아닌데 뭘 주려나.
뭐 영국인 아니라도 명예 작위는 주는 방법이 있긴 하다고 들었지만.
“놀라지 말아요. 당신한테 주려는 선물이 뭐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