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66
166 크룩스관(1)
“오늘 만나러 가는 분이 프레보스트 아저씨의 아버지, 찰스 배비지 씨가 추천해주신 분이라 하셨죠?”
윌리엄 크룩스를 만나러 가는 태선은 조수석에 에디슨을 태우고 있었다.
“그래, 배비지 씨에게도 들었지만 따로 알아봤는데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이더구나.”
“하긴 그런 분이니 배비지 씨가 추천했겠지만 직접 만나러 가는 사장님도 역시 보통 분은 아니시구나 싶어요.”
태선은 에디슨에게 삼국지의 삼고초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다가 꼰대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만뒀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인지도는 낮아도 삼고초려에 빚댈 정도로 윌리엄 크룩스의 업적은 여러 기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안 그래도 앞으로 사업화하려고 염두에 둔 기술이나 발명품으로 텔레비전, 축음기, 라디오, 무전기 등이 있었는데······.’
특히 텔레비전은 수많은 기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기본적으로 여러 색감을 조합하여 영상으로 만들어 전기로 송출할 수 있고.
그걸 ‘화면’이라는 물리적인 수단으로 내보내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
여기서부터 발전하여 훗날 컴퓨터, 스마트폰 등 온갖 분야에 쓰이는 액정이 발전하는 것.
따지고 보면 인간 감각의 70퍼센트를 시각이 담당한다고 하는데 화면은 기계의 출력물을 사람에게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 도구이다.
‘그렇게 브라운관이 인류 과학이나 문물의 발전에 끼친 지분도 결코 작지 않지.’
브라운관은 1897년 독일의 페르디난트 브라운이 발명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당연히 무선 통신에 엄청난 기여를 한 바.
무선 통신의 또 다른 거장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와 함께 노벨상을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브라운관의 원조가 바로 윌리엄 크룩스거든.’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크룩스관을 만든다.
원리적으로 크룩스관에 약간 가공과 개량을 거치면 브라운관처럼 텔레비전 화면을 송출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었다.
그에게 부족한 건 상업화를 위하여 한 끗 손길을 더하는 것이었으니.
‘마침 내 밑에 그 분야로는 전문가가 있어서 다행이야.’
“저도 데리고 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맞다, 이분이 Chemical News이라는 과학 잡지를 발간하신다고 하셔서 제가 오기 전에 찾아봤는데······.”
바로 조수석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에디슨.
‘거기에 어떤 기술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하는지 아는 나도 있고.’
“크룩스 씨는 집에서 연구를 한다던데 그럼 댁에 가면 연구 결과물도 볼 수 있겠네요. 대체 어떤 발명품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전생의 역사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상업화에 도가 튼 재능을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개화한 에디슨이었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걸 마치 자기 것인양 가져와서 상업화해버리기도 했으니.
하지만 이번 역사에서 그런 일은 없다.
‘쓸만한 기술이 있으면 내가 정식으로 사들이면 되니까.’
처음에는 에디슨이 배신하지 않을까 우려도 했지만.
이제 와서는 그럴 염려도 할 필요가 없었다.
웬만해서 거두기 힘든 부와 명예가 자신을 따라오기만 하면 약속되었다.
에디슨 본인은 모르겠지만 전생의 전성기에 거둔 부와 명예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하물며 그마저도 전생에서는 말년이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바보 아닌 이상 배신할 유인이 없었다.
반면 만약 배신하면 철저한 응징과 보복이 따를 것이고.
‘약삭빠른 녀석이라 수지 안 맞는 선택을 할 리 없지.’
아랫사람들 중에 충성심과 신의로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견고함과 무자비함에 권력적으로 복종하는 이도 있다.
전자가 이상적이지만 모든 부하를 그렇게 채우는 건 불가능하며, 후자가 더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
‘특히 힘든 일을 맡길 때는 말이지. 가령 예를 들면 조선에 데려가서 굴린다거나······.’
태선은 옆에 있는 에디슨을 보면서 옅게 웃었다.
“크룩스 씨는 왕립학교에서 수학했다던데 엘리트라서 혹시 저를 무시하면······. 사장님, 왜 그렇게 보세요?”
태선의 시선에서 본능적으로 약간 불안감을 느꼈는지 녀석이 흠칫했다.
마침 윌리엄 크룩스의 집에 다다른 참이라 태선은 주차하며 에디슨의 어깨를 다독여줬다.
“그냥 영국까지 같아 와줘서 고마워서 그러지.”
‘조선까지 나랑 같이 가자. 열악하고 힘들겠지만 굴린 만큼 보상은 해줄게.’
예를 들면 태평양전신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을 맡긴다거나?
물론 그렇게 되면 에디슨이 결국 미국과 아시아에 해저 케이블을 잇는 과업을 떠맡게 되는 것이지만.
사장 자리를 준다는 약속을 지키는 셈이기도 했다.
“헤헤, 알아주시는군요!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웨스 형 못지않게 제가 사장님에 대한 충성심이······.”
그런 태선의 속내도 모르고 녀석이 열심히 자신이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어필하는 동안 크룩스가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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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매력적인 제안입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크룩스가 응접실에 마주앉은 자리에서 윌리엄 크룩스는 바로 답했다.
“이거 기왕 찾아와주신 킴 경이나 추천해주신 배비지 씨에게 죄송하게 됐지만 괜히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요.”
그는 완곡한 거절도 아니고 대쪽 같은 거절의 뜻을 밝혔다.
‘뜻밖의 복병을 만났네.’
“불쾌하진 않으시지요? 결코 킴 경에게 악감정이 있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인종차별자는 더욱 아니고요! 이거 진담입니다.”
그런데 말하는 걸 보면 막상 거절해놓고는 자기가 안달복달 못하고 있었다.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바로 알겠다.
할 말은 다 하긴 하는데 그러면서도 혹여 타인의 심기를 거슬렀을지 걱정 많은 유형.
“솔직히 첫 만남이 이런 양상이 되었지만 바람으로는 킴 경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전구와 전기와 샤워 시설을 보급하신 분이잖습니까! 거기에 이번에는 자동차에 전화!”
거기에 더해 윌리엄 크룩스에게도 자신의 업적은 큰 감흥을 줬던 모양인지라 오히려 호감을 가진 듯했다.
“솔직히 집에 틀어박혀서 연구에 전념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구세주이십니다. 삶이 정말 쾌적해졌어요. 특히 이번에 전화야말로······.”
‘약간 히키코모리 기질도 있었네. 그러면 자동차는 몰라도 수세식 화장실, 샤워 시설에 전화는 GOAT겠지.’
그렇기에 더 궁금했다.
“혹시 거절하시는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는지요?”
아니, 묻는 순간 살짝 어떤 예감이 들었다.
본래 역사에서 나중에 기사 작위도 받고 이런저런 상에 훈장까지 많이 받는 발명가가 설마 그런 이유로 부소장 자리를 거절하는 건 아니었으면 했지만.
“이런 말씀을 드리기 부끄럽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야겠죠. 이것이 저니까요. 집이 아니면 연구가 안 됩니다.”
예상이 맞다. 이 인간, 생각 이상으로 하우스키퍼였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자기 세계의 틀을 정해놓고 그 밖에 나오지 않으려 하는 극강의 마이페이스.
찌르릉──찌르르릉──!
“어쿠, 시간이 됐군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지금도 보라, 그의 연구실로 짐작되는 한쪽 방에서 종소리 들리자마자 바로 일어섰다.
“질소 비료를 만드는 실험을 하는데 이 시간에 잘 저어줘야 해서요. 아시죠? 변수를 똑같이 해야 해서 시간을 잘 지켜야 하거든요.”
그러면서 이 무슨 변종인지, 자기 루틴은 지켜야 되겠고.
“가지 말고 계세요. 저 금방 돌아옵니다.”
그렇다고 나름 호감도 있고 평소 대화하고 싶었던 상대인 태선이 그냥 돌아갈까봐 걱정하며 신신당부하는 34세 윌리엄 크룩스였다.
하는 행동만 보면 사교성 떨어지는 중학생 같지만.
‘성격 자체가 나쁜 건 아냐. 성향이 그럴 뿐.’
물론 성향도 저렇고 능력도 없으면 대인 관계가 좀 고달파지기는 할 거다.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났다. 윌리엄 크룩스가 음극선관을 연구하면서 심령 현상에 심취했었다는데······.
방구석 기질에 심령 현상? 이거 조합이 대충 보이지 않나.
“저기, 사장님? 저분 정말 괜찮은 걸까요? 저도 성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저분은··· 어째 좀 음침하다고 할까요.”
에디슨이 이렇게 평가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윌리엄 크룩스는 그 성격을 커버할 수 있는 재능과 자질이 분명히 있었다. 애초에 그러니 배비지가 자신에게 추천했을 터.
“에디슨, 뒷담화는 좋지 않아.”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가 이룬 업적이 무엇의 밑바탕이 되는지 알기에 태선은 포기할 수 없었다.
‘무려 텔레비전이라고!’
거기에 무선통신 기술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힌트를 주면 무선전화는 무리여도 라디오를 만들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원래 역사에서 에디슨 녀석이 축음기로 재미를 쏠쏠하게 봤었지.’
이걸 조합하면 이 역사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장을 훨씬 빠른 시점에서 거나하게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고로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윌리엄 크룩스는 무조건 데려간다.’
“···일단 크룩스 씨의 연구 결과를 한 번 보자꾸나.”
태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에디슨도 졸졸졸 따라왔다.
“크룩스 씨,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연구실을 구경해봐도 괜찮겠습니까?”
“아, 킴 경! 물론이죠. 그러고보니 진작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하하하! 킴 경이 같이 연구실에 들어오면 루틴도 지키고 시간 낭비할 것도 없이 같이 이야기도 나눌 수 있던 것을요.”
다행히 윌리엄 크룩스는 거부하지 않았다.
‘일단 첫 코는 잘 뀄고······.’
태선은 윌리엄 크룩스의 성격이나 성향을 분석하고 어떻게 구슬릴지 전략을 짰다.
뭣보다 우선 고려할 건 윌리엄 크룩스가 마이페이스가 강한 성격인 것.
즉 제안을 거절한 것도 집이 제일 편해서 그랬고, 연구소가 집이 아니라서 그런 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연구에 대한 열정은 진짜다. 뭐 이런 성격들이 하나에 꽂히면 진심으로 파는 편이지만.’
시간 정해놓고 기계식 종이 알람을 울리자마자 비료 실험을 하러가는 루틴만 봐도 지극 정성 아닌가.
하물며 연구실에 직접 들어와서 보니 더욱 그랬다.
흔히 생각하는 이리저리 막 어질러진 환경이 아니었다.
“와, 여기 정말 깔끔하네요!”
에디슨이 들어서자마자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그렇구나.”
실험 중인 게 아니라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설정샷 찍어놓은 거라고 해도 믿겠다.
“하하하, 이거 부끄럽군요. 원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데 킴 경이라 특별히 보여드리는 겁니다. 아, 그래도 물건 위치를 함부로 바꾸진 마세요. 제가 이것만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크룩스를 영입하려면 아예 이 사람 저택을 연구실 별관으로 쓰거나, 아니면 개인 연구실 자체를 이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줘야겠군.’
다만 이건 기본을 까는 조건에 불과하다.
그저 연구 환경을 똑같이 만들어줄 뿐이라면 그냥 집에서 하던 대로 하면 되지 굳이 연구소 부소장으로 갈 필요가 있음?
물론 있지. 자원도 빵빵하게 지원되고 다른 연구자와 의견 교류도 원활하게 되고 개인적인 보수도 따라오고.
문제는 윌리엄 크룩스에게는 그게 그리 매력적인 유인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에 그를 끌어들일 수 있는 당근을 제시해줘야 한다.
‘역시 연구뿐인가. 이 연구소가 아니면 안 된다, 이 연구소의 사람들과 같이 하지 않으면 연구할 수 없다······. 그런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만 해.’
다만 말이 쉽지 그게 그렇게 간단하겠나.
‘간단하군. 저거면 되겠어. 다행이다. 마침 있었어.’
아, 물론 윌리엄 크룩스가 발명한 어떤 물건이 나중에 브라운관이 된다는 걸 미리 아는 태선에게는 간단했다.
하물며 것도 다름 아닌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이 없는 시대에 텔레비전 같은 것이 가능한데 그게 네가 만든 기술로 이렇게 하면 만들 수가 있어요! 라고 하면 넘어오지 않고 못 배기겠지.
“오래 기다렸습니다, 하하.”
그때 마침 할 일을 마쳤는지 윌리엄 크룩스가 이쪽으로 오다 태선의 앞에 있는 물건을 보곤 반색했다.
사실 이건 태선은 물론 에디슨에게도 그렇게 낯선 형태의 물건은 아니었다.
“오, 역시 이걸 알아보고 이 앞에 계셨군요! 제가 음극선을 연구하려고······.”
“이거 진공관 아닌가요?”
대뜸 던진 에디슨의 질문.
“어, 알고 있구나?”
여태 에디슨은 조용히 있었던지라 뜻밖이라는 윌리엄 크룩스의 반응.
그에 비해 에디슨은 고삐 풀린 듯 입을 열었다.
“그럼요. 저도 엔지니어인데 영국에도 SGE의 주임기사로 온 거라서요.”
“응, 그래? 너무 어려서 몰라봤구나. 미안하다. 난 그냥 킴 경의 비서나 기사인 줄 알았지.”
케이블 공장에서 무시당한 일로 한층 성숙했는지 에디슨은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에이, 뭐 괜찮아요. 아무튼 이거랑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프레보스트 배비지 아저씨랑 조셉 스완 아저씨가 만들었거든요.”
“진공관을 만들었다고?”
“네. 더 자세한 건 아무래도 연구소 기밀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요.”
말하며 에디슨은 태선에게 시선을 슬쩍 옮겼다. 그 기밀을 말할지 안 할지, 말해줘도 얼마나 말해줄지 태선에게 달렸다는 뜻이었다.
‘에디슨 녀석, 원래 좀 약삭빠르기는 했지만 샬롯 옆에 붙어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옆에서 지원해주는 말솜씨가 늘었어.’
아치볼드와 또 다른 느낌의 서포트였지만 어쨌건 태선에게 잘된 일이었다.
“오, 그렇다면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닌 겁니다! 안 그래도 벽에 막힌 제 음극선 연구를 도와주시려고 운명이 킴 경을 제게 인도한 게 틀림 없어요!”
윌리엄 크룩스가 이 반응이 뜻하는 건, 그에게 당근이 될 무언가를 자신이 쥐고 있다는 증거였으니.
그리고 태선은 일단 당근이 있으면 그걸로 누군가를 조련하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다.
“예,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그 전에 음극선 연구에 관해서 듣고 싶은데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아, 그야 물론이죠!”
하물며 그에 비해 윌리엄 크룩스는 그 당근에 너무나 약한 인물이었다.
“일단 음극선이란 게 뭐냐 하면은, 이걸 먼저 아셔야 하는데 유리관으로 방전관을 만들어서 금속 전극 두 개를 거리를 떨어트리면······.”
그 결과 당장 태선은 그저 듣기만 하고 열심히 말을 하는 건 윌리엄 크룩스였지만.
시나브로 윌리엄 크룩스는 태선이 짜둔 구상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