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68
168 그레이트 게임x조선(1)
빅토리아 여왕, 더비 백작, 폰손비 경, 라이온스 경.
거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그야말로 영국에서 최정상에 있는 이들이었다.
더구나 1866년 이 시대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렸으니 이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요새 런던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게 어디 요새 일입니까. 조명과 샤워 시설이 들어온 몇 년 전부터 그랬었죠.”
“그래도 그것들과 자동차나 도로 체계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르잖습니까.”
그들과 어울리는 티타임 자리에서 화두로 논하고 있는 것.
“아무튼 그 모든 것이 단 한 사람, 킴 경이 공이란 점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에요.”
하물며 빅토리아 여왕조차 그것이 자신의 공이라는 사실을 추켜세워준다.
“참,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연구소도 세웠다죠? 또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내놓을지 기대가 되네요.”
“안 그래도 여왕님 말씀처럼 저도 그 소식 들었습니다.”
“찰스 배비지와 윌리엄 크룩스라고 했던가 하는 자를 영입했다고 그러던데.”
거기에 일거수일투족을 주목받고 있어서인지.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연구소도 화제로 올랐다.
“실은 그렇지 않아도 연구소 관련으로 여왕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 그런가요? 뭐든 말씀해보세요.”
“연구소에 여왕님 이름을 따와서 그 명예를 함께 누릴 수 있게 허락해주십사 해서요. 결코 여왕님의 명예가 누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흠, 빅토리아 연구소라.”
빅토리아 여왕은 미소를 머금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요. 허락하죠. 정식으로 연구소에 제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폰손비 경이 절차적인 부분을 알아봐줘요.”
“예, 그리하겠습니다.”
폰손비 경에게 명령을 내린 빅토리아 여왕은 시선을 태선과 샬롯에게 옮겼다.
“이런 걸로 선심 썼다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내 이름이 붙게 되었으니 연구소에서 뭘 준비하는지 조금 힌트를 줘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오, 사실 저도 궁금했는데 티타임에 참석하길 잘했군요. 여왕님 덕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듣게 되었습니다.”
내각에서 총리를 맡고 있는 더비 백작도 차를 홀짝이고는 눈을 빛냈다.
솔직히 태선은 상류층과의 관계가 과거의 영광만으로 유지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것도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뭘 해낼지에 대한 기대감.
‘물론 지금 벌인 사업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그렇고 특히 여왕과 샬롯의 개인적인 친분을 감안하면 소원해질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데 안주할 필요도 없긴 했다.
“전구, 샤워 시설처럼 생활에 필수 부분을 편리하게 해주는 발명품은 아닙니다만······. 문화와 관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를 이용해서 음악을 듣거나 움직이는 화면을 보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전기를 이용해서 음악을 듣거나 움직이는 그림을 본다?”
선뜻 무슨 말인지 납득이 안 된다는 듯 여왕, 더비 백작, 라이온스 경, 폰손비 경 등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혹시 그런 것에 대하 들어봤냐는 듯.
그런 걸 들어봤으면 일단 태선이 운을 뗐으나 뭐라도 답을 해서 대화를 이어가보라는 신호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아무도 바통을 이어받지 못했다.
“저도 태선에게 듣기만 했을 뿐이지만 악사를 초대하거나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도 전기적인 신호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다나봐요.”
“간단한 소리라면 기계 장치로도 낼 수 있다고 들었지만 음악이라니······.”
“음악이야 그렇다 쳐도 움직이는 그림은 또 무엇인가?”
그래, 음악보다도 움직이는 그림이야말로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오페라가 있지 않습니까. 극장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특수한 장치를 통해 스크린에 움직이는 그림을 투사하여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만.”
말끝을 흐리며 태선은 여왕 등의 표정을 살폈다.
예상을 했지만 영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들.
만약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며 무시를 당했을 터였다.
“상상도 안 되는구먼. 집에서 오페라를 본다고?”
“그렇지만 태선이 허언을 할 리는 없고.”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자네가 말한 그대로 되기만 한다면 또 큰 변혁이 생기겠구먼.”
그렇지만 태선의 말이기에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반응이었다.
‘거기에 전파를 이용한 무선 통신이나 라디오도 있지만 이것까지 떠벌릴 필요는 없겠지. 텔레비전만 해도 충분해.’
그럴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자신에 대한 약발이 떨어졌다 싶으면 하나씩 추가로 터트려주면 될 것이다.
“아무튼 이제 내 이름도 붙었으니 어려운 점이나 지원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여왕 폐하. 베풀어주신 은혜에 걸맞은 훌륭한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태선이 예를 갖추어 답하는 것으로 연구소를 주제로 한 이야기의 한 템포가 끝맺어졌다.
“그건 그렇고······.”
그리고 여왕이 다시 운을 떼는 것으로 화제가 넘어간다.
‘슬슬 본론인가.’
자신이 먼저 연구소 이름을 짓는 용건을 꺼내긴 했지만 애초에 이 티타임에 자신을 부른 건 여왕이었다.
“이미 킴 경은 연구나 사업 관련해서 잘해주고 있지만 하나 맡기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 자리에 불렀어요.”
티타임에 오기 전에 폰손비 경이 살짝 귀띔해줬었다.
자신이 유럽 정세에 관해서 밝힌 정세에 큰 인상을 받았고 그와 관련 있다고.
그리고 이 자리에 라이온스 경이 동석한 걸 보면 분명 그와 무관하지도 않을 듯싶었다.
“라이온스 경, 그대가 직접 말하겠어요?”
“예, 그러겠습니다.”
발언권을 라이온스 경에게 넘기는 빅토리아 여왕.
“실은 말일세, 이번에 내가 파리 대사로 가게 되었어. 저번에 자네도 말했지만 요새 파리도 그렇고 특히 독일 쪽의 분위기도 심상치가 않잖나.”
“그렇긴 하지요. 확실히 라이온스 경 정도 되는 분이 아니면 그쪽의 외교 정세는 감당이 어렵겠지요.”
파리 대사로 가는 리처드 라이온스 경이라.
‘본래 역사보다 1년 빠르군.’
라이온스는 본래 역사에서 미국에서 귀국한 뒤 오스만 제국으로 간다.
그리고 1년 뒤 1867년 파리 대사로 가는데.
따지고 보면 미국에서 귀국하는 시점 자체가 1년 늦어졌는데 아무래도 자신 때문이려나.
‘그리고 오스만 제국 루트 건너뛰고 파리에 프랑스 대사로 가는 시점이 1년 당겨진 것도 내 영향일 가능성이 높겠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변수밖에 없다.
하물며 직접적으로 지난 모임에서 유럽 정세에 대해 자신이 논하기도 했었고.
‘음,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역사가 크게 변하는 것은 좋지 않은데.’
옳다 그르다 문제 이전에 자신이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정세는 이론의 여지 없이 비스마르크가 주도하고 있네. 러시아 제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도 독일이 지지해줘서 가능한 일이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과연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신뢰하는 외교 통 라이온스 경이구나 싶다.
1813년부터 1907년까지,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러시아 제국과 바다를 지배한 대영제국의 대결 구도를 흔히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일컫는다.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흑해 연안을 걸쳐 극동의 유라시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패권을 두고 벌어진 두 제국의 싸움.
‘그게 끝나는 게 1917년 영러협상이지만.’
사실상 영국의 백업으로 영러협상의 2년 전에 러시아가 일본에게 패한 것이 주요했으리라.
‘그 결과 삼국협상과 삼국동맹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서 독일이 결국 그 대립각의 표면에 부상하게 되지.’
즉 말하자면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추축국의 기둥이 되는 독일은 사실 이때부터 이미 그 국력과 외교 구도 기반을 다지고 있던 셈.
라이온스 경이 나중에 큰 전쟁이 터지는 건 몰라도 그런 구도는 읽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번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전쟁을 종결지으며 독일은 더욱 힘을 결집할 수 있게 되었네. 반면 프랑스는 점점 더 고립되고 있지.”
하물며 무려 영국 사람이 프랑스를 걱정할 정도로.
서로 못 잡아서 먹어서 안달이고 식민지를 두고 경쟁하는 영국과 프랑스이거늘.
“하긴 나폴레옹 3세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가 쿠데타로 다시 황제로 집권하면서 내부에서는 보나파르트당이니 오를레앙파니 혼잡한 와중에 상대가 무려 비스마르크이니.”
“그것도 그렇지만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갔을 것을 미국 전쟁에서도 그랬지만 멕시코 전쟁에서도 그렇고 괜히 이상하게 들쑤셨지.”
‘잘 아십니다만 놀랍게도 삽질은 그게 끝이 아니랍니다.’
결정적으로 또 스페인 왕위 계승에 관여해서 보불 전쟁, 즉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는데 털린다.
사실 여기에는 영국 언론이 부채질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어쨌건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제3공화국으로 정치 체제가 바뀌게 되는 대파란을 맞는다.
당연히 이는 유럽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고.
“비스마르크도 지금 같은 기세에서 이대로 멈출 것 같지는 않고······. 나폴레옹 3세도 그 나대는 성격으로 봐서 뭔가 일을 더 저지를 같다는 말이지. 더 최악인 건 만약 그 두 가지가 맞물리게 되면.”
와, 점집 내도 되겠다. 아주 예리하게 적중한다.
“프랑스가 이겨서 힘을 얻게 되어도 좋지 않고 만약 독일이 이겨서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그건 더 나쁘지.”
“즉 독일이 강성해도 프랑스 역시 잠시 주춤했어도 전력을 온존하여 견제한다······. 는 형세가 유지되는 것이 영국으로서는 최상의 결과라는 것이군요.”
“그렇지. 물론 그건 영국뿐 아니라 미국에게도 그러할 거고.”
태선이 영국 국적을 받기 이전에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라이온스 경이 슬쩍 말을 보탰다.
뭐 이건 맞는 말이긴 하다. 프랑스나 독일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영미는 뿌리가 같으며 외교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가까운 것이 사실.
“어쨌든 유럽 정세의 안정을 위해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그런 균형이 붕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비스마르크의 대척점에서 균형을 잡을 대항마를 심어둬야 한다는 것이 국무회의는 물론 여왕님께서도 내린 공통된 판단이었다네.”
“음, 그래서 이렇게 급히 라이온스 경이 파리에 가게 되는 일정이 정해진 거군요.”
“그렇지. 당장 이번 달 내로 출발할 예정이니 말이야.”
아이러니하다. 유럽 정세는 정적이기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동적으로 변해가며 폭풍을 잉태하고 있다.
톡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지만 겉보기에는 잠잠한 형세로.
“문제는 내가 공식적으로 영국의 대사로 가기에 표면적인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네. 자네도 전화 사업을 위해 곧 내륙으로 간다고 했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느 싸움이나 그렇지만 처음에 진입해서 포석을 어떻게 잡아두는지 중요하네. 그걸 위해 먼저 게임에 참여한 자의 수를 읽는 것도 그렇지.”
“라이온스 경이라면 어느 쪽이든 능히 그 일을 잘해오신 백전노장이 아니십니까.”
“허허, 노장이라니. 아직 쉰 밖에 안 됐다고.”
라이온스 경은 장난스레 답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진지했다.
“자네도 사업이 있으니 계속 붙어있어서 도와달라는 말은 아닐세. 자네 그 식견과 지혜를 파리에서 빌려주게나.”
“이거 의외로군요. 설마 라이온스 경이 외교에 관한 일에 도움을 청하다니.”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군. 자네는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야.”
여왕이 라이온스 경에게 화자를 맡긴 터라 여태 잠자코 듣고만 있던 폰손비 경도 슬슬 입을 열었다.
“라이온스 경의 말이 맞네. 듣자하니 내륙에서 전구, 전기, 자동차, 전화 사업 기반을 잡아둘 예정이라던데 그게 국정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말일세.”
“이미 자네가 런던에서는 우리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사업에도 적극적이니 편히 하는 말이지만······.”
더비 백작도 거들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어디를 통틀어봐도 자네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없어. 즉 자네가 아니면 그런 인프라를 깔아줄 사업가가 없다는 말일세.”
‘잘 아시네. 그리고 즉 그런 지위로 프랑스에서······. 아니,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에도 소문은 퍼질 테니 유럽 내륙에서 라이온스 경의 입지에 힘을 보태달라는 뜻인가.’
“거기에 자네는 사업가로서 능력이나 배경뿐 아니라 저번 모임에서도 감탄했지만 본인의 외교적인 시야다 통찰력도 놀라운 수준이었지.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라네.”
“킴 경, 공식적인 직함은 못 주지만 여왕의 비밀특사로 유럽 정세의 안정에 기여해주세요.”
마지막에는 빅토리아 여왕 본인이 직접 말을 꺼냈다.
‘비밀특사라.’
말이 좋아 비밀특사지 비공식적이란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태선으로서는 더 좋을 수도 있었다.
공식적인 직함이 갖게 되면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반면 비공식적이라도 무려 여왕의 입김이 직접 닿을 테니 필요에 따라서 특권을 휘두르고 사람을 부릴 수 있다.
‘지금쯤 아마 조선에서는 병인양요가 일어나고 있거나 그 직전일 거야.’
생각해보니 그 병인양요도 하필이면 프랑스.
뭐가 됐든 서구 열강에 대한 조선의 태도가 다소 완강해지기 전에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소원하다.
‘그나마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를 도굴하기 전에 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차라리 서구 열강 국가 차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감투를 쓰고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조선에 입김이 강한 청나라에 관여할 수 있는 영국이라면 더 좋을 것이고.
어찌 보면 이 제안은 오히려 태선이 돈이든 뭐든 쏟아부어서라도 받고 싶었던 기회였다.
‘호박이 넝쿨째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게 이런 건가.’
물론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태선은 살짝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
침묵 속에서 모두가 답을 기다리는 가운데 아무래도 샬롯도 이미 마음은 정했으되 최대한 생색을 내려는 태선의 속내를 아내로서 직감한 것일까.
스윽───
샬롯이 태선의 손을 잡았다.
“전 하는 게 좋을 듯해요.”
이렇게 되면 태선은 고민했으나 샬롯의 어드바이스로 결정한 것이 된다.
샬롯에 대한 여왕의 총애는 더 깊어질 터.
그래, 이거지. 그냥 한다고 하는 것보다 이런 모양새만 되어도 샬롯이 ‘그 결정에 뭔가 했다’는 지분을 가져가게 된다.
“샬롯까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게 맞겠죠. 네, 그럼 미력한 능력이지만······.”
태선은 빅토리아 여왕, 더비 백작, 폰손비 경 그리고 라이온스 경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짧은 시간이나마 같이 파리에 가서 라이온스 경을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