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69
169 그레이트 게임x조선(2)
버킹엄궁에서 티타임을 가진 다음날 빅토리아 연구소는 정식으로 발족했다.
연구소에서 당장 메인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두 가지.
“사장님 이것 좀 보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왁스를 발라 굳힌 원통에 소용돌이 모양으로 홈을 파서 바늘을······.”
그중 하나는 에디슨을 주축으로 하는 축음기였고, 태선은 녀석의 연구가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줬다.
‘기본 원리 자체는 거의 접근했네. 남은 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구체적인 소리를 구현하는 건데.’
별수 있나. 그건 에디슨이 노가다로 해야지.
SGE 영국 회사에서 전화뿐 아니라 자동차 부분 주임기사도 맡았지만 잘해주리라 믿는다.
“크룩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있는데 원래 집에서 나오기 싫어했잖아요.”
또 하나는 윌리엄 크록스의 텔레비전 프로젝트.
“하하, 집이랑 너무 똑같이 해두신 덕분에요.”
그야 그래야지. 집 대신 연구소에 짱박혀서 연구만 하라고 일부러 그렇게 공을 들였거든.
“거기다 진공관 덕에 섀도우 마스크 기술을 드디어 구현해볼 수 있게 됐는데 집에 돌아갈 리 없잖아요.”
거기에 윌리엄 크룩스의 열정에 불을 붙인 또 한 가지는 말할 것도 없이 텔레비전.
아니, 엄밀히 말해 아직 텔레비전은 아직 이 시대에 없는 물건이다.
표면적으로 태선은 자신이 묘사한 ‘그것’을 윌리엄 크룩스와 협의하여 잠정적으로 섀도우 마스크라고 이름 붙여뒀다.
사실 섀도우 마스크는 브라운관에서 빛을 주사하는 기술의 핵심이니 비유일지언정 틀린 말은 아니기도 했다.
‘연구는 궤도에 올랐어. 이 둘에게만 맡겨놔도 문제없겠어.’
회사 운영은 애초에 전화뿐 아니라 자동차 사업도 SGE의 영국 회사를 베이스로 하고 있으므로 존 브라더튼에게 맡겨두면 될 터였다.
‘아, 아니지. 착각했다.’
추후 유럽 내륙으로 사업을 확장하면 존 브라더튼은 그곳의 운영 및 미국과 연락 업무까지 맡길 터라 이번 파리행에 그도 동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브라더튼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괜찮다.
‘가장 든든한 전력이 같이 왔으니까.’
마침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뜻밖에 돌연 한숨을 푹 내쉬어버리는 샬롯의 반응.
낭군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것은 무슨 반응? 더구나 애들이 조금 크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신혼인데.
“기껏 같이 영국에 왔는데 당신만 혼자 프랑스에 보내고 또 저만 남게 됐네요, 하아!”
뭔가 했더니 그거 때문이었나.
“에이, 그날 샬롯도 같이 있었으면서 왜 그래요. 정작 여왕님 앞에서는 저한테 추천한다고 그랬으면서.”
“그건······. 어차피 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면 실리라도 챙겨야겠다고 당신이 생각한 것 같아서 그랬던 거고요.”
“훗, 역시 내 아내답네요.”
태선이 칭찬하며 살짝 뺨을 꼬집어주자 샬롯은 살짝 튕기듯 앙탈을 부렸다.
“우리는 대체 언제쯤 가족이 같이 모여서 살 수 있으려나요.”
“걱정 말아요. 사업 기반만 대충 잡아두고 올 거예요.”
그 말에 그제야 샬롯이 반색했다.
“정말요? 하긴 괜히 브라더튼 씨를 데려가는 게 아니긴 하겠지만요.”
“기술적인 부분은 향후에 브라더튼이나 에디슨에게 출장 보내면 될 테고 사실 제가 동행은 하더라도 라이온스 경도 보통 외교관이 아니잖아요.”
“하긴 솔직히 라이온스 경 혼자서만 가더라도 문제는 딱히 없으리라 싶지만······.”
샬롯은 태선의 뒤로 돌아가 끌어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튼 약속했어요. 너무 오래는 있지 않겠다고. 이제 루이스도 그렇고 클락도 그렇고 걸음마도 하고 말도 하고 쑥쑥 크고 있잖아요. 그런 시간들을 놓치면 엄청 아쉬울걸요.”
‘맞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영국에 사업하러 오면서도, 다른 이유도 있지만 샬롯과 아이들을 데려온 건 가족과 시간을 더 많이 함께 보내고 싶은 것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하거늘 아무리 뜻밖의 사안들이 겹쳤더라도 소홀해지고 말다니.
“이번만 딱 금방 다녀오고 다음부터는 그럴 일 웬만해서는 없도록 할게요.”
자신도 애들 크는 것만은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흥, 다음부터는 제가 혼자 보내주기나 할 거 같아요? 제가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안고 따라갈 거거든요.”
“하하, 그러면 든든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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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도버 해협.
말이 필요 없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가는 길목.
뿌우우우───!
차 타고 런던에서 도버까지 이동하여 배를 타고 칼레로 넘어가는데 불과 30킬로미터가 안 되는 거리.
‘이거, 몇 번 배 타고 대양을 건너다녀서 그런가? 이 정도는 애교로 보이네.’
하기야 도버 해협은 사람이 수영으로도 건널 수 있고, 수영 기록을 세울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니 뭐.
잘만 하면 자신도 될지도?
‘아니지, 그걸 왜 해. 절대로 하면 안 되지. 꼭 그러다 골로 가는 수가 있거든.’
“칼레에 도착하면 기차 타고 바로 파리로 갈 걸세. 자네도 포부를 크게 품은 모양이로구먼. 눈빛을 보니 말이야.”
“예?”
날씨가 맑아서 바다 건너로 벌써부터 보이는 육지를 보고 있으려니 옆에 다가와서 라이온스 경이 말을 붙였다.
“이해하네. 미국에 이어 영국에도 전기, 전구, 자동차에 전화까지 보급한 자네가 아닌가. 거기에 이제는 내륙까지······. 나는 외교로 온 세상에 대영제국의 이름과 여왕 폐하의 은혜를 퍼트리겠다는 뜻을 품었네만, 자네도 비슷한 무언가의 포부를 가슴에 품었겠지.”
뭔가 착각한 거 같은데.
“어떻게 보면 자네만큼 범인류적으로 세상을 밝히는 이도 없겠다는 생각도 하네.”
자신의 기술과 발명품과 사업이 세상과 인류에 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방금 전에 바다와 그 너머 육지를 쳐다보면서는 그냥 빠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새삼스럽겠지만 난 자네를 존경한다네.”
그런 마당에 존경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좀 민망하다.
그렇다고 별다른 반응을 안 해주면 기껏 바닷바람 맞으면서 난간에 나란히 서서 호방하게 대사도 쳤는데 라이온스 경이 무안해지겠지.
“저도 라이온스 경의 탁월한 외교적인 감각과 연륜을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도움과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문득 답이 없다 싶더니 라이온스 경이 시가를 꺼내 입에 물고는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아끼는 건데 한 대 피게나.”
케이스에서 새로 꺼낸 시가 한 대 받아서 빨고 있으니 금새 배는 칼레에 입항했다.
‘프랑스라. 그러고 보면 유럽 내륙은 처음으로 와보네.’
거기다 꽤나 거창한 행렬이 되어버렸다.
대영제국의 프랑스 대사인 라이온스 경에게 딸린 부하만 일곱이니 즉 라이온스 경 본인을 포함하면 여덟 명.
‘거기에 나도 존 브라더튼을 데리고 왔으니 다 합치면 열 명이나 되네.’
그런데 이 중 단 한 명을 제외하면 프랑스어가 가능했다.
프랑스어가 안 되는 그 한 사람은 바로 안타깝게도 태선 본인이었다.
‘다행히 브라더튼이 불어가 되니까 사업 관련으로는 같이 다니면 괜찮겠지만······.’
그래도 시간 내서 불어에 독어는 배워두면 좋으려나.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라이온스 경을 따라다니다 보니 알아서 수속 처리를 다 해서 칼레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일단 난 파리에 가면 전임 대사에게 업무 인계를 받고 이런저런 일부터 처리할 예정인데 자네는 어쩔 텐가?”
“브라더튼 씨가 예약해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몇몇 현지 사업가들을 만나보려고요.”
파리행이 정해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달의 말미 동안 태선은 텔레비전과 축음기 연구만 굴러갈 수 있도록 처리해둔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신경 썼던 일은 따로 있었다.
“브라더튼 씨, 만나볼 사람들 목록은 잘 간추려뒀죠?”
“물론입니다. 몇 주 전에 프랑스어가 유창한 직원까지 보내서 미팅에 차질 없도록 약속도 잡아뒀습니다.”
빈틈없는 일처리에서 약간 샬롯의 흔적이 느껴진다. 아마 자신을 대신해서 프랑스에서는 존 브라더튼이 비서 노릇 비슷하게 해야 할 터이니 이래저래 신경 써줬으리라.
뭐 말이 좋아 신경을 써준 것이지 조련됐다고 봐도 되려나.
‘나야 편하니 좋지만.’
“하긴 결국 현지에서 공장은 현지 인력으로 굴리는 편이 더 유리하겠지.”
“더구나 사업 스케일이 크다 보니 말입니다.”
“하기야 그렇지. 내가 혹시 뭐라도 도와줄 건 없겠는가?”
거기에 라이온스 경까지 백업해주려고 한다.
사실 이건 그저 친분만으로 그런 것은 아니긴 했다.
‘SGE에서 파리에서 벌이며 깔려는 인프라가 정치인들에게 거창하고 대단하게 느껴질수록 나와 연결고리가 있는 라이온스 경의 입지가 더 굳건하게 서게 되겠지.’
이건 처음부터 버킹엄궁에서 티타임 할 때 자신에게 여왕이 비밀 특사 운운하며 협력을 요청했던 부분이니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사양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
시작할 때 작은 일이라도 맡았던 직원에게 아무래도 사업이 안정된 뒤에도 뭔가 일을 맡길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존 브라더튼이 먼저 파리에 보내 일을 준비시킨 눈앞의 직원.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찰리 호프먼라고 합니다!”
“찰리 이 친구의 어머니가 프랑스 분이셔서요. 영어도 되고 프랑스어도 되고 일머리도 좋아서 보냈습니다.”
“그렇군요. 찰리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와 악수를 나누며 태선은 일이 잘 풀리면 찰리에게 파리 사업부의 일을 맡기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실제로 그가 먼저 와서 처리해둔 일처리가 제법 괜찮았다.
‘파리에 사무실 구할 자리도 잘 알아봐뒀고, 뭣보다 파리뿐 아니라 근처 도시에서 매입할 공장이나 회사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했어.’
그리고 그 중 유독 태선의 눈길을 끈 회사가 있었다.
‘르 크루소의 주조소에 슈나이더라는 성씨를 쓰는 사람이 주인이면 가능성 높은데.’
태선이 전생하기 전 21세기 슈나이더 일렉트릭이라는 프랑스계 다국적 대기업이 있었다.
주로 전기, 에너지 분야의 사업을 하지만 그 시작은 200여 년 전 르 크루소에서 제철소로 시작했다던가.
그게 1836년의 일이었고 슈나이더라는 이름의 형제가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만약 거기가 맞으면 마침 조건이 그럭저럭 맞아. 금속 가공 기술부터 확보해서 자동차를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차츰 확장하면 되니까.’
주조소라 전기, 전구, 자동차 등에 있어서는 직원들이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단점?
그거야 어차피 어느 회사를 매입하든 혹은 동업하든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래서 기술은 현지 직원을 영국으로 보내서 교육시킨 다음 돌려보내서 자리를 잡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1836년부터 탄탄히 기반을 쌓았으며 앞으로 150년 이후의 시대까지 유지될 정도로 내실이 있는 제철소라면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그래도 숨은 원석이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다른 회사도 살펴봐야겠지.’
도착한 날부터 바로 태선은 호텔에 짐을 풀고는 존 브라더튼과 찰리를 데리고 회사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당장 시작할 사업뿐 아니라 향후 파리에서 전기, 전구 조명, 수도관, 도로 건설 등을 총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조직 얼개를 짜듯 각각 회사를 부품처럼 대입해본다.
과연 이 회사를 매입하여 재조직하고 직원들을 다시 교육시켰을 때 그 포지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가.
“그럼 추후 다시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런 싹이 안 보이면 말할 것도 없고, 설령 가능성이 보이더라도 대충 이런 식으로 둘러대고는 나왔다.
“어떻습니까?”
“여긴 괜찮네요. A등급으로 표시해주세요.”
“네!”
밀당은 기본 아니겠는가.
거기에 서둘러봤자 아직 현지에서 행정 처리를 맡길 인력도 없었다.
그렇지만 조급할 것 없다. 그야말로 회사 쇼핑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대체재는 얼마든지 있다. 그 회사들이 앞으로 몇 년만 지나더라도 프랑스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되겠지만 그건 자신이 키워줄 예정이라서였다.
‘뭣보다 그쪽은 라이온스 경 찬스를 썼으니까.’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유럽에서 매우 중요하다.
즉 라이온스 경의 전임 주프랑스영국대사 역시 나름 수완가라는 뜻.
더구나 무려 1852년부터 프랑스에 대사로 있었다고 하니 인맥이 무척이나 넓을 터였다.
‘그런 사람이 소개해주는 전문가라면 일단 당장 믿고 맡길 정도는 되겠지.’
추후 인연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따로 실력을 검증하고 충성심 여부도 따져야 하겠지만 당장은 인수 업무를 처리할 정도라면 된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역시 르 크루소의 주조소였다.
“찰리, 모레 미팅 전에 르 크루소 주조소에 대해서 정보를 더 알아봐주실 수 있겠어요?”
다행히 르 크루소 주조소의 사장인 앙리 아돌프 외젠 슈나이더와 미팅이 잡힌 건 이틀 뒤라 말미가 있었다.
“넵, 물론이죠!”
존 브라더튼도 잠자코 있을 수는 없다는 듯 선뜻 나섰다.
“저도 프랑스에는 인맥이 그럭저럭 있으니 한 번 같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