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7
017 보물찾기(1)
푸어 법률사무실의 분위기는 훌륭했다.
깔끔하고 세련되고 심지어 비싸보이는 가구나 장식품도 여기저기 많았다.
돈 좀 쓴 티가 팍팍 난다.
“흠, 변호사 일은 역시 돈이 제법 되나보구먼.”
개리슨이 짐짓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물론 미국에서 변호사를 잘하면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지만 헨리 푸어는 그것만으로 이 사무실을 꾸민 건 아니었다.
‘스탠다드 앤 푸어의 전신이 되는 푸어 출판을 세우기 전에 목재업에 투자해서 돈을 꽤나 벌었다고 했어.’
이건 그렇게 번 돈이리라. 아울러 이건 추측이지만 투자의 성공은 운빨은 아닐 터였다.
아마도 그의 정보 수집력과 분석력 덕분이겠지.
그 외에도 태선은 자신이 뭘 알고 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려 노력했다.
‘최대한 정보가 많아야 어떤 식으로 대화를 끌어갈지 전략을 짜기도 수월할 테니.’
일단 헨리 바넘 푸어에게는 자녀 중에 아들이 있다.
헨리 윌리엄 푸어. 하버드 대학교를 나와서 나중에 아버지의 동업자가 되지만···이때쯤이면 태경이 또래려나.
이건 도움이 별로 안 되는 정보이므로 스킵. 아니, 태경이와 윌리엄이 비슷한 나이란 걸 잘 살리면 친교적으로 접근해볼 수도 있으니 킵.
‘이건 그래도 장기적인 관계로 갔을 때나 이용할 수 있을 거 같고···.’
또 뭐가 있나. 그가 미국 독립전쟁의 에녹 푸어 준장의 후손이라는 거?
나름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라는 건데 헨리와 대화할 때 세심하게 살필 요소일 것이다.
그리고 삼촌이 하는 법률사무실에서 경력을 시작해서 나중에 동생 존 알프레드 푸어와 함께 개업하는데 여기가 거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있고.
똑똑─
“변호사님들 오셨습니다.”
그때 아까 차를 내온 법률사무소 직원이 접객실에 들어와서 기별을 줬다.
이윽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아니, 세 사람이었는데 일단 두 사람만 이쪽으로 왔다.
“뉴욕에서 오셨다고요. 뉴욕에도 좋은 변호사들이 많을 텐데 여기까지 오셨네요.”
“에이, 뉴욕에서 오신 손님들한테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
하나는 헨리 푸어일 것이고 다른 하나가 존 푸어겠지.
“아참, 샬롯! 방금 가져온 그 문건들 시청에 제출할 서식대로 처리 부탁할게.”
“알았어요. 에효, 하여간 변호사가 할 일까지 귀찮은 건 다 나한테 떠맡겨.”
푸어 형제 중 아까 뉴욕에 변호사 많다느니 타령을 한 쪽이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접객실에 들어오지 않았던 여자는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신기하네. 시청에 낼 서류 처리라면 간단한 일은 아닐 텐데 그걸 여자한테 시키다니. 이 시기에서는 흔한 일은 아닌데.’
다만 거기에 더 신경쓰기 전에 이쪽에서 개리슨이 움직였다.
과연 경험 많은 사업가답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푸어 형제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코넬리우스 킹스랜드 개리슨이라 합니다.”
“개리슨 씨였군요. 헨리 바넘 푸어입니다.”
먼저 악수를 받는 눈이 깊고 머리가 좀 벗어진 중년 남자가 형인 헨리였다.
“존 알프레드 푸어입니다.”
뒤이어 동생 존이 소개를 한 이후 태선과 잭도 차례로 푸어 형제와 인사를 나눴다.
나름 중견 법률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람들답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우린 재무 분석을 전문으로 합니다만, 사업하시는 분 같은데 상담이라도 하시려는지요?”
그렇다면 이쪽도 본론으로 들어가줘야지.
태선은 대표로 말해도 괜찮겠냐며 양해를 구하듯 예의상 개리슨을 쳐다봤다.
‘물론! 그리하게나.’
그는 눈으로 곧장 그런 답을 보내왔다.
“사실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유니온 은행에서 왔습니다. 동부점을 설립을 위해 은행을 인수하려고 하고 있죠.”
그걸 하려는데 왜 법률사무소로 왔냐는 듯 푸어 형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선은 말을 이어갔다.
“견실한 은행은 안 팔겠죠. 저희는 인수할만한 은행을 알아보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 정보는 여기라면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찾아왔고요.”
“흠, 은행에서도 의뢰가 오긴 합니다만 알다시피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정보를 팔지 않습니다.”
“예, 그야 당연하죠. 그런 정보를 넘겨달라는 말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태선은 자신이 가져온 책을 그들 앞으로 스윽─ 밀었다.
「History of Railroads and Canals in the United States」
“재무 정보를 아주 잘 다루시더군요. 저 개인적으로는 푸어 씨의 팬이 됐을 정도입니다.”
“허허, 팬이라니 이거야 참. 이거 오랜만에 낯간지러운 말을 듣는군요.”
책 이야기를 꺼내자 헨리 푸어는 못내 기뻐했다.
칭찬에 약한 타입? ···아니, 그보다 자기가 쓴 책에 애착이 깊은 것 같은데.
‘하기야 엄연히 변호사라는 본업이 있는데 책 낼 정도라면 당연히 애착이 있겠지.’
좋다, 공략 키 하나 얻었다.
“아, 이것도 이번 건과는 무관하게 제 사견입니다만 나중에 생각이 있으시면 아예 이런 책을 내시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보면 어떻습니까?”
“하하, 지금 보다시피 본업은 변호사인데요.”
‘얘 봐라. 말은 이래 하면서 은근슬쩍 좋아하네.’
어찌 보면 변호사 일은 그만두고 책이나 내라는 건데 불쾌해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헨리는 이걸 좋아한다.
하기야 그러니 나중에 푸어 퍼블리싱을 차리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의 호감을 산 듯하니 단추를 나쁘지 않게 꿴 것 같다.
“변호사이지만 재무 분석가이기도 하시죠. 뭐 어디까지나 제가 너무 팬이 돼서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사견은 이 정도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평소 책에 대해서 대화 나눌 상대가 잘 없었는지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헨리였다.
태선은 피식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아까 하던 주제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아무튼 의뢰인 정보를 넘겨달라는 게 아니라 인수할만한 부실 은행이 있다면 저희와 연결시켜달라는 것이죠.”
“인수할만한 은행과 연결만 시켜달라······.”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은행들도 새로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돈 맡긴 이들에게도 은행이 그냥 파산해버리느니 훨씬 좋을 거고요.”
태선의 능란한 말에 푸어 형제는 잠시 말없이 서로 눈빛만 교환할 뿐이었다.
잠시 후 나지막이 형 헨리가 입을 열었다.
“그렇죠. 다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위험성이 오히려 성장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은행일 경우에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헨리 바넘 푸어 씨, 역시나 이런 책을 쓰신 분답게 안목이 예리하시군요.”
잠시 잊었다 싶으면 책을 언급하면서 훅 들어가는 칭찬에 헨리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입가도 꿈틀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떠오르는 미소를 억누르는 듯 싶었다.
“예, 방금 그 말대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여길 찾아왔고요.”
마지막 말로 준비한 용건은 모두 꺼내보였다.
동시에 태선은 확신했다.
‘솔직히 이건 은행에도 푸어 법률사무실에도 나쁠 것이 전혀 없는 제안이지.’
딱 하나 리스크를 지는 쪽은 있기는 했다.
인수할 곳이 나중에 떡상할 은행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일단 믿고 돈을 배팅하는 쪽.
그런데 그걸 이쪽에서 감당해주겠다는데 법률사무실로서는 중간에서 수수료로 떡고물이나 주워먹거나.
혹은 인수할 곳을 소개하고 은행에게는 자기가 살 길을 찾아줬다며 빚 지울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걸 그냥 날려버릴 리 없다.
“지금 당장 결정해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사실 우리도 시간이 널널한 건 아니라 오래 기다리지는 못하고 내일이면 답변을 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렇기에 태선은 강요하기는커녕 그쪽에게 맡기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덧붙였다.
“저희는 뉴욕 홀츠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그럼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저기···성급했던 게 아닐까?”
뱅고어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그랬지만 호텔에 와서도 잭은 초조해했다.
태선은 호텔 식당에서 조식으로 잘 구운 빵을 크게 한 입 베어물고는 답했다.
“걱정마세요. 분명히 오늘 옵니다. 잭, 저 믿으시죠?”
“물론 믿지.”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괜찮은 반응이었다. 그만큼 잭 역시 유니온 뱅크에 진심이라는 증거나 다름없으니.
한편 먼저 식사를 마친 개리슨은 파이프담배를 물고서 자못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후후, 그나저나 자네도 대담하구먼. 자네 같은 젊은 친구가 그런 배짱을 부리다니 말이야.”
확실히 잭과 달리 그에게는 초조해하거나 불안한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침부터 스테이크를 두 그릇째 비우고 있는 태경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태경아.”
“네? 왜요, 개리슨?”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해두거라. 오늘 네 형이 한 일을. 그리고 지금 이 여유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말이다. 너도 형과 같은 자질이 있을 테니 분명히 훌륭하게 자랄 거야.”
“헤헤, 네! 저도 꼭 형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태경은 붙임성이 좋았다.
“물론 개리슨처럼 여러 곳을 다니며 누구와도 친구로 지내는 멋진 사람도요.”
봐라. 이 짧은 순간에 개리슨에게도 저런 말을 잊지 않는다.
“하하, 영어가 느는 게 아니라 아부만 느는구만. 많이 먹거라. 내가 사주는 거다.”
‘녀석, 지금 물주가 개리슨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라도 한 건가.’
녀석이 조금만 더 크면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할 것 같으니 복스럽게 잘 먹는 동생이 든든한 태선이었다.
그러고 보면 할 일이라고 상정해두고 있긴 했지만 아직 물어보진 않았다.
녀석은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아니, 학교부터 보내야 하나. 시민권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학교부터 보낼 수 있으려나.
“개리슨, 생각해보니 이 녀석 학교에 보내야 할 것 같은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참, 생각해보니 그걸 잊고 있었구만. 알겠네. 학교 쪽으로도 지인이 있으니 내 그 부분은 알아봐주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오전을 앞으로 사업에 대해 의논하거나 하면서 보내고.
다시 점심을 먹고 개리슨은 생각난 김에 바로 태경이 학교 다닐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데리고 나갔다.
그로부터 얼마쯤 지났을까. 호텔 입구 근처 카페에서 잭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직접 올 줄이야.’
호텔로 들어오는 한 중년 신사를 보자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태선이 자신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향하자 잭도 돌아봤다.
그도 몇 초 뒤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뭔가 물으려는지 카운터로 가는 신사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컸다.
“헉, 태선 자네가 한 말대로 됐군. 더구나 푸어 씨, 그러니까 형인 헨리 푸어 씨가 직접 뉴욕까지 왔어.”
거절인데 본인이 직접 왔을 리가 있겠는가. 그이 답이 무엇일지는 이미 확실했다.
태선은 자신이 직접 가서 푸어를 데리고 왔다.
가볍게 인사 나누고 헨리 푸어는 오늘도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하신 의뢰를 수락하겠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은행 입장에서는 민감할 수도 있으니 제안하러 가실 때는 저나 우리 사무실의 직원이 동석해서 갔으면 합니다.”
“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죠.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스윽─
헨리 푸어는 서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서 내밀었다.
“일단 대충 추려본 은행들의 목록과 그들의 대략적인 자산 내용입니다.”
“오, 이런 것까지. 정말 고맙습니다, 푸어 씨.”
“어제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셔서요. 하지만 어제 말했듯 민감한 정보는 포함되지 않았으니 참고만 하시죠.”
“그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태선은 감사의 뜻으로 살짝 눈인사를 하고는 바로 서류를 펼쳐서 빠르게 훑었다.
‘가급적이면 상태가 어려운 은행을 인수하면서 재기 가능성 높은 걸로······.’
나중에 평가가 높아질 은행이 있다면 누구라도 바로 사려고 달려들 것이다.
문제는 보통 사람 눈으로는 그걸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태선은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태선은 서류 목록에 있는 은행의 명단 중 하나에 이르러 시선이 멈췄다.
‘호오, 이건?!’
찾았기 때문이었다. 막 남북전쟁이 시작된 이 시기 떡상 가능성 높은 은행을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은행이 담보로 잡은 공장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물만 던졌는데, 첫판부터 대박이 걸렸네.’
태선은 일이 술술 잘 풀리자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