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71
171 그레이트 게임x조선(4)
“안녕하세요.”
외제니 드 몬티조 황후는 이쪽으로 다가와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먼저 인사했다.
“카울리 백작은 런던에 돌아간다죠. 빅토리아 여왕님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예, 그리하지요. 그동안 황후님의 배려로 편안히 지나다가 돌아갑니다.”
“새로 오신 분이 라이온스 경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뵙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첫 인사말뿐 아니라 몬티조 황후는 라이온스 경이나 카울리 백작과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영어를 썼다.
‘몬티조 황후가 영어에도 유창한 건 그럴 법도 해.’
그녀는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귀족 가문 출신.
상대와 환경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건 외교에 있어 그 자체가 강력한 무기였다.
아울러 스페인, 프랑스,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그녀이기에 여러 언어가 가능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할 줄 안다는 것이지 이곳은 다름 아닌 프랑스잖아.’
그중에서도 파리, 더구나 베르사유 궁전이 방치되고 엘리제 궁전이 공사 중인 지금, 이곳 튀르리 궁전은 그야말로 프랑스의 심장부였다.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프랑스어를 사용할 만도 했다.
하물며 역사의 라이벌인 영국인을 상대하고 있지 않은가.
‘음, 황후라고 해도 몬티조는 스페인인이라 그런 인식이 덜한 것이려나.’
그렇더라도 주변에 따르는 이들은 프랑스인이니 신경 안 쓸 수는 없을 터인데.
지금 외제니 드 몬티조 황후를 따라온 두 노인만 봐도 그런 낌새가 있다.
그나마 왼쪽 건장한 노인은 그렇게 심하지 않은데.
오른쪽 깡마른 노인은 뭔가 기분 나쁜 일이라도 겹쳤는지 인상을 오만상 찌푸리고 있었다.
‘어라, 잠깐만. 방금 나랑 눈 마주쳤지. 설마 나 때문에?’
여왕을 백으로 업고 기사 작위까지 얻어서 영국에서는 인종 차별을 당하지 않아서 한동안은 잊고 살았다.
그 방패가 이곳 프랑스에는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저 정도 나이 먹고 실권자인 황후의 옆에 붙어있을 정도의 인사라면 인종차별을 패시브로 장착하고 있더라도 딱히 이상한 건 아니기야 한데.
“그리고 그대가 킴 경이죠? 드디어 만났군요.”
이어서 외제니 드 몬티조 황후의 인사가 자신에게로 향했다.
“저를 아시는군요.”
“물론이죠.”
그 반응에 깡마른 노인의 인상이 더욱 구겨진다.
“크흠!”
그에 비해 옆에 있는 건장한 노인이 자중하라는 듯 깡마른 노인에게 살짝 헛기침하며 눈짓을 하는 걸 보고 확신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몬티조 황후가 나를 배려하는 거였군.’
하긴 이 자리에 영어로 배려해줄 이는 한 사람뿐.
그렇다 해도 자신을 아는 건 의외였다.
“내게는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이나 스페인 심지어 미국에도 친구가 많거든요. 여기 라이온스 경이나 카울리 백작도 제 친애하는 친구들이죠.”
“몬티조 황후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 영광이군요.”
자연스럽게 라이온스 경과 카울리 백작에게 한마디씩 던지며 몬티조 황후는 대화를 주도했다.
“특히 킴 경에 대해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전구 조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냉온수가 따로 나오는 샤워시설에 쾌적한 화장실이라거나 보일러는 정말 부럽더군요.”
‘흠, 자동차보다 이 이야기가 먼저 나오다니. 하기야 여자들에게는 그럴 수 있겠어.’
이걸 기회로 살릴 수 있겠다 싶은데 마침 존 브라더튼이 이 자리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잘 됐군요. 이쪽은 존 브라더튼이라는 친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황후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태선이 끌어들이자 존 브라더튼이 재빨리 나서 몬티조 황후에게 눈도장 찍었다.
괜찮은 처세술이다. 존 브라더튼이 실무자가 될 터인데 이 정도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이 친구가 그 분야로 전문가입니다. 영국 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고 몇 년 전에 최초로 앨버트 왕세자님 저택에 방금 말씀하신 냉온수 장치를 설치할 때도 참가했었죠.”
“어머, 그게 정말인가요?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지금 파리에서 사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 전에 먼저 몬티조 황후님이 허락하신다면 거처에 공사를 할 수도 있을 듯싶군요.”
“그건 허락이 아니라 오히려 부탁하고 싶던 일인걸요.”
예상대로 반색하는 반응.
“브라더튼 씨, 아직 회사를 열기 전이라도 런던에서 물자와 기술자를 들여와서 몬티조 황후님의 거처에 방금 말했던 설비를 설치할 수 있겠죠?”
“물론이죠! 돌아가면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특히 제가 직접 맡겠습니다.”
1826년 생 몬티조 황후. 40세이지만 관리를 잘해서 젊은 부인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미용, 외모에 관심이 많다는 뜻.
동시에 유럽에서 내로라할 정도의 귀족 타이틀을 보유한 그녀였기에 밖으로 보이는 위세도 중요하게 여길 터인데.
‘생각해보니 런던에는 이제 웬만한 귀족가는 물론이고 중산층에서도 누리는 걸 파리에서는 못 누리니 기분이 안 좋았겠네.’
그런데 파리 최초로 그런 시설을 누리게 된다.
하물며 이후 태선이 사업 진출을 하면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될 터인데 유행의 선도자라는 포지션도 가져갈 수 있겠지.
그런 면에서 보면 몬조니 황후도 단순히 생활 편의 시설을 누린다는 의미만 있는 건 아닌 듯 싶었다.
수완에 따라 잘만 이용하면 귀족과 왕족의 정점에 서 있다는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때보다 오늘은 파티를 연 보람이 있네요. 이런 선물을 받다니. 뭔가 보상을 해주고 싶은데 뭐든 말씀해보세요.”
어찌나 기뻤는지 몬조니 황후가 이런 말을 한다.
그에 비해 깡마른 노인은 흠칫했다.
“고작 궁궐을 공사하는 걸로 보상을, 것도 아무 부탁이나 들어주는 건 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건 프랑스 기술자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프랑스 기술자도 할 수 있었으면 왜 저는 아직도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쯧, 어차피 나서봐야 찍 소리도 못할 것을.
몬티조 황후가 쳐다보자 깡마른 노인은 이내 입을 닫고 뒤로 물러났다.
다만 정점에 있는 이 한 사람만의 환심을 얻었다고 그 나라 사업이 편해지진 않는다.
‘실권자 중에 누가의 환심을 사고 혹은 척을 지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지.’
저 깡마른 노인네가 재무장관이라거나 상무대신 등 사업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수습해둘 필요가 있었다.
“보상이라니요,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거기에 몬조니 황후님께서 저희 시설을 써주시면 그 자체로도 홍보가 되어 좋은 일이니 괜찮습니다.”
“어머, 킴 경은 말씀도 참 신사답게 하셔라.”
“저야말로 이번 파티에 온 보람이 있군요. 이런 파티를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훌륭한 분을 많이 사귈 수가 있을 듯싶네요.”
황후 뒤쪽으로 시선을 주며.
“마침 황후님과 같이 온 두 분도 소개해주면 어떤지요?”
“참, 킴 경을 만나게 되어 대화하고 싶은 나머지 소개해주는 것도 있었군요. 이쪽은 장 바티스트 세실······.”
‘장 바티스트 세실?!’
사실 태선은 미국인 외에 이 시대의 다른 사람은 잘 모른다. 그나마 한국인이나 그와 관계있는 청나라 사람 일본인이라면 몰라도 유럽인이라면.
다만 그중에서도 건장한 체격의 노인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에 드물게 조선과 인연이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에.
‘김대건 신부를 구하러 조선으로 오려다 돌아간 장군이었지.’
“장 바티스트 토마 메데 세실이요. 반갑소.”
“태선 킴입니다.”
그와 악수를 나누고.
“그리고 이분은 프랑수아 기조 전임 총리이세요.”
황후가 소개하자 별말은 없고 마지못해 악수를 나누었다.
아니, 뭐라고 말은 하는데 프랑스어였다.
“파리에 잘 왔다고 말씀하시는군요.”
그걸 옆에서 라이온스 경이 통역해주는데.
프랑수아 기조 본인의 표정이나 옆에 황후나 장 바티스트 세실의 표정을 보면 그런 뉘앙스는 아닌 듯한데.
거기다 저쯤 되는 자리의 사람이면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닐 텐데 굳이 프랑스어 하는 걸 보면 답이 나온다.
‘어쨌건 전임 총리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 지금은 나이도 있고 해서 공식적으로 어떤 자리를 맡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네.’
그러면 괜찮다. 실무자만 잘 구워삶으면 되니까.
뒷방 늙은이가 입김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막말로 실무자를 이쪽으로 완벽하게 포섭해서 배 째라는 태도로 일관하면 별다른 수도 없기에.
“헌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킴 경은 동양의 어느 나라 출신이십니까?”
그때 장 바티스트 세실이 불현듯 질문을 던졌다.
“제가 해군에 있던 시절에 베트남, 필리핀, 청나라, 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녀봐서요. 성사되지는 못했습니다만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조선이라는 나라에도 갈 기회가 있었는데······.”
“오, 이거 공교롭군요. 제가 조선 출신입니다.”
장 바티스트 세실도 정말로 반가운 표정이 되었다.
“허어, 정말입니까?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인연이 있군요.”
사실 조선인은 이 시대 해외에서 흔히 보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청나라와 일본하고만 교역하며 고립을 자처하고 있었기에.
“제가 방금 언급하기는 했습니다만 조선 사람을 여기서 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조선?”
조선이라는 말에 프랑수아 기조도 반응을 보였다.
“기억 안 나십니까? 20년쯤 전에 외무장관을 하실 때 저와 샤르네르 대령에게 도미니크 레페브르 주교를 구하라며 베트남으로 보낸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김대건이라고 조선 출신 신부가······.”
“기억나네. 하지만 주님의 은총의 불모지와 같은 그곳에서 어렵게 피어난 한송이 꽃이 안타깝게도 지고 말았었지.”
프랑수아 기조가 이번에는 영어로 말했다.
마치 들으라는 듯.
“주님의 은총을 받아들인 그 동양인 청년을 순교자로 만든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구먼. 저 킴 경이 그 조선인이고 말이야.”
“킴 경의 출신이 조선이지 이제는 미국인이며 빅토리아 여왕님께서도 시민권과 작위를 주셨습니다.”
그때 라이온스 경이 나서서 강한 어조로 말했으나 프랑수아 기조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조선이라는 나라와 최근에 또 갈등이 있었다지 않았는가?”
프랑수아 기조의 시선에 장 바티스타 세실은 잠시 잊었던 뭔가라도 떠올랐는지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그것이······. 그렇군요. 얼마 전에 조선에서 탈출한 리델 신부로부터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순교한 소식을 전했죠.”
“참으로 애석한 일 아닌가. 그들은 수교도 그렇지만 엄연히 프랑스인이거늘!”
분위기가 점점 싸해진다.
“지금 그에 대한 보복이 논의되고 있다고 들었네만? 북경의 프랑스 공사로 있는 벨로네로 하여금 항의와 조선에 대한 징벌 서한을 보냈던가?”
“아직 논의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허어, 어찌 그리 미적거리고 있는고! 내가 총리로 있을 때는 단번에 처리했을 것을! 더구나 일본에 우리 프랑스군의 극동함대가 이미 정박해있지 않는가.”
“흠, 고정하시지요. 황후님도 있는 자리에서 좀······.”
장 바티스트 세실의 말에 프랑수아 기조도 아무래도 황후의 눈치는 보였는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때와 달리 후배들의 변변찮은 일처리에 제가 조금 흥분해서.”
“뒤로 물러났으면 뒷일은 맡겨둬야지요.”
“그렇습니다만······. 하, 그깟 동방의 미개한 나라를 상대로 지지부진하게 일을 끄는 것이 답답해서요.”
하지만 자신이 사과하는 건 황후에게 그런 것, 태선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 그는 말을 이었다.
“옆에 붙어있는데 조선과 다르게 일본국을 보시지요. 우리 문물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극동함대가 머무를 수 있게 항구도 내어줬습니다. 거기에 내년에는 제가 알기로 우리 프랑스에서 기술 전수를 위해 군부사절단까지 보내기로 했지요.”
“일본은 개항을 빨리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이유가 됩니까. 조선국 옆에 청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개항했을 뿐더러 우리 프랑스군이 들어가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작은 조선에서 선교사를 아홉 명이나 죽였거늘! 그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 인간 정치인 중에 투사 타입이었나보다.
“미개하면 개항을 시켜서 배워야지요. 그게 주님의 은혜로 근대화한 우리의 의무······.”
거기에 발작 버튼 눌렸는지 열띠게 말을 이어가는데 결국 몬티조 황후가 큰 소리를 냈다.
“지금 손님을 앞에 두고 내 체면을 손상시키고 있다는 걸 아시나요?”
“죄, 죄송합니다. 저는 결코 그런 뜻이······.”
“영국에 망명해 계시는 걸 이따금 이렇게 고국 프랑스에 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게 누군지 잊지 말도록 하세요.”
‘뭐냐, 이 인간? 영국에서 망명하고 있다가 가끔 들어오는 신세였어?’
그런 주제에 참 잘도 큰 소리를 냈구나 싶다.
하지만 덕분에 태선으로서는 귀중한 정보를 얻은 터였다.
‘병인박해는 일어났다. 그걸 프랑스에 당연히 알고 있고. 그렇지만 아직 프랑스 함대의 움직임이 없어.’
병인양요, 시작은 주청프랑스대사 앙리 드 벨로네로부터.
그건 앞서 프랑스아 기조가 말했듯 청나라를 통해서 조선에 이미 항의 및 선전포고 서한이 전달된 듯했다.
다만 원래 역사와 똑같이 흐른다면 10월이 된 지금 이미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공격을 시작했어야 했다.
‘심지어 여기서 아시아까지 메시지를 전할 시간을 감안하면 여기서는 이야기가 이미 끝난 상태여야 하는데······. 저 노인네가 방금 말한 걸 보면 것도 아냐.’
아직 출정하라는 명령도 떨어지지 않은 듯 했다.
즉 일본 요코하마에 프랑스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데도 대기하고만 있는 것.
‘역사 흐름이 바뀌었어.’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지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남북 전쟁이 빨리 끝나고 자동차를 비롯해서 내 잇따른 사업 성공으로 부강해지고 있는 것? 아니면 샬롯 덕분에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 정계와 외교계에 빨리 복귀한 것?’
그도 아니면 자신은 모르고 있으나 그 외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어쩌면 그 모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