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80
180 베이징(2)
“믿을 수 없군. 그런 물건이 정말로 있었단 말인가?”
“예, 밤에도 낮처럼 밝게 빛납니다. 가지고 왔으니 나중에 오시면 보여드리죠.”
“미국 공사관에 묵고 있다고 했지? 알겠네. 꼭 한 번 가도록 하겠네!”
만나자마자 서로의 안부도 물었지만 오경석은 전구에 대해 물어봤다.
일전에 편지로 여러 문물을 소개해줬지만 역시 빛을 내는 물건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전기란 것은 이해가 잘 안 가는군. 자네 말만 들으면 전기만 있으면 뭐든 되는 게 아닌가?”
여차저차 답은 해줬지만 오경석은 전구란 것이 있어 ‘빛을 낸다’는 현상은 이해했지만 원리는 도통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만도 하지. 이건 어느 세계에서나 처음 전구와 전기가 전래됐을 때 나오는 반응이니.’
전생 전의 역사에서 조선도 그랬었다.
그렇기에 과학적인 원리를 억지로 납득시키려고 하면 솔직히 어리석은 일일 터였다.
“자연에 있는 일종의 신비한 기운입니다. 모든 것에는 이 전기가 흐르는데 그걸 다루지 못했을 뿐이었지요.”
그래서 이렇게 설명했는데 애매하게 말했을 따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대신 아직 조선 시대 유학자 관념으로는 아직 소화해내기 무리인 주제로 오경석이 더 파고들세라 태선은 화제를 돌렸다.
“어차피 그 물건들은 조선에 가면 대원위 대감께 진상하려 가지고 왔으니 공사관에서 관람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중한 일이 있습니다.”
“그보다 중한 일···음, 하긴.”
태선이 자못 진중하게 목소리를 내자 오경석도 대충 무슨 말인지 짐작했는지 수긍했다.
“그래, 물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물건으로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그리고 그런 대단한 물건이 발명됐으면 필시 무기도 그러할 터······. 그 이야기겠지?”
“예, 사실 지금 청나라의 사정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지요.”
오경석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이들은 마치 자기들이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침묵했다.
조국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으리라.
그럼에도 막상 조선이라는 좁은 우물을 벗어나 베이징에 왔건만 더욱 무력함만 느낄 뿐.
‘그게 아마 지금 이들의 심정이겠지.’
조선은 청나라에 비해 과학 발전이 미비하다.
그런 청나라조차 서구 열강 국가에 처참하게 당했는데 시쳇말로 쪽도 못 쓰고 처발렸다고 봐야 했다.
그러하거늘 얼마 전 조선이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했는데 이를 빌미로 청나라 주재 프랑스 대사로부터 서한이 왔다.
“솔직하게 말해주게. 자네도 알지 모르나 불란서국과 알력이 생겼네. 불란서국이 공격해오면 조선은 버틸 수 있겠는가?”
“그들이 작정하고 공격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애초에 청나라도 버티지 못한 공세이니 무리겠지요.”
“음, 허나 돌아가서 그렇게 보고하면 목이 날아갈 터이거늘.”
오경석이 침음성을 흘렸다.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면 진실을 보고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사실대로 보고한다고 해서 자신의 목숨만 날릴 뿐 뭐가 나아질 것 같지는 않고.
“그 점은 걱정 마십시오. 불란서국의 대사도 저와 같이 입국하였으니까요.”
“뭐라고? 불란서국의 대사가 자네와 같이 왔다고?”
“예, 그뿐 아니라 영길리국과 미국 전령 역시 우리 조선과 동등한 입장에서 수교를 맺으려는 목적으로 들어온 참입니다.”
오경석과 같이 있던 조선인들이 술렁거렸다.
일단 불란서국과 전쟁은 꼼짝없이 피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거늘 뜻밖의 낭보 아닌가.
“제가 염려하는 건 조선 조정에서 그들 국가와 수교하기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통감하는 바일세. 나나 환재 어르신 같이 청나라 정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는 그런 생각을 품지 못할 것이나······. 답답한 이들이 조정에도 태반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도 알고 있네. 그 길을 걸어가면 어찌 될지······. 청나라의 전례가 있지 않은가.”
말하면서 오경석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겠지. 현실을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겠지.
그렇지만 그나마 이 시기이기에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수교를 반대하는 자들은 대체로 아직도 중화 질서를 추존하는 자들입니다.”
“조금 복잡한 면이 있지만 대체로 그렇겠지.”
“그 복잡한 면이란 명나라의 정통성을 중시하면서도, 결국 현실적인 국제 질서에 순응하여 청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된 걸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오경석은 다른 조선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연행사에 따라올 정도이니 대체로 어느 정도 눈을 떴다고는 하나 조선에 돌아가면 또 다른 권력 투쟁의 장이 열리니 혹시 모를 일이다.
사실 지금 태선의 발언은 조선의 꽉 막힌 양반들의 귀에 거슬릴 터.
이 이야기를 어떻게 부풀리고 자신과 엮어서 누명을 씌울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다 이해합니다, 오경석 씨. 그렇지만 말이죠, 지금 제가 그 정도는 커버해줄 수 있거든요.’
조선에서 뭘 하려면 내부 협조자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오경석이 딱인데, 그러려면 일단 먼저 안심하게 만들어줘야겠지.
“제가 청 조정을 움직여서 칙사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음?”
태선의 말을 듣고 오경석은 잠시 눈만 끔뻑거렸다.
뭔가 들었는데 잘못 들은 것 같다는 반응은 동석하고 있는 다른 네댓 명의 조선인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두 개나 섞이지 않았나.
“청나라에서 칙사를 보내서 황제의 칙서로 하여금······.”
다시 확인시켜주듯 태선의 입에서 말이 이어졌다.
“···조선이 영길리국, 불란서국, 미국 대사를 손님으로 맞아서 국제 관계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전하면, 사대 질서에 기대 안주하려는 자들도 마냥 반대하지는 못하겠지요.”
뭐라고 말이 더 이어졌으나 사실 첫 문장을 듣는 순간 비로소 말 뜻을 이해한 오경석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아니, 자네가 청 조정을 무슨 수로 움직인다는 말인가?”
다른 조선인들은 여태까지는 태선과 오경석의 대화에 웬만해서는 주제넘게 나서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더구나 칙사라니요. 그걸 단언하는 건 너무 방자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칙사라 함은 칙서를 지참한 사신이었다.
그리고 칙서란 즉 황제의 명령이다.
물론 그 칙서도 청 황실이나 조정의 사정에 따라 여러 권력자들에 휘둘려서 내려지기도 하고 그래왔다.
비단 지금만 해도 실제 황실에서 권력자는 서태후. 그나마 동태후가 대항마가 되고 있지만 어쨌거나 황제가 허수아비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그리고 이 시대에 권력을 잡았다는 건 시국을 보는 눈이 있다는 건데······. 그러면 모를 수 없다는 말이거든.’
영국, 프랑스, 미국 눈 밖에 나면 황실이고 조정이고 뭐고 청나라는 갈가리 찢어지게 될 운명이라는 걸.
하물며 남쪽에서 태평천국운동이니 뭐니 하며 일어나는 민란조차 감당이 안 되는데 그 진압에도 영미프 연합국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실정이었다.
“믿어주십시오. 영길리국과 미국에서는 제가 직접 여왕과 대통령을 만났고 불란서국에서는 황후로부터 대사를 도와 조선과 수교를 맺게 중재해달라는 부탁을 들었습니다.”
“그 나라들의 수장을 직접 만났다고?”
“허어, 사실입니까? 청나라를 굴복시킨 그 나라들의 수장을 만나고 오셨다고요?”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수장들이 따로 부탁을 했다니?!”
한 번 대화에 끼기 시작한 마당에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태선이 풀어놓자 오경석과 조선인들이 화들짝 놀랐다.
“왜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들과 협력하여 청 조정을 움직여 방금 말한 대로 조선에 칙사를 보내도록 해보겠습니다.”
“흐음, 솔직히 아직도 믿기 어렵네만 자네가 그렇게 확고히 말한다면······. 믿어야겠지.”
오경석은 여전히 얼떨떨한 동시에 앞서와 달리 약간 다른 사람을 보듯 눈빛에 경외감마저 어렸으나, 동시에 태선의 표정에 희망이 감돌았다.
말마따나 거짓말이라면 금방 들통난다.
황제의 칙사라니 이건 사기 치려고 어떻게 꾸며내고 할 스케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만일 정말로 방금 말한 대로 태선이 칙사를 보내게 된다면 게임의 판이 달라진다.
‘조선이 정말로······. 여태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열린다.’
꿀꺽────!
그 생각만으로 가슴 뛰는지 오경석의 목울대가 움직이며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다만 칙서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조선은 자주국입니다.”
“맞는 말이지. 사실 뭣보다 중요한 건 솔직히 말하여 대원위 대감의 의중이겠지.”
청나라는 서구 열강에 이미 털렸는데도 조선은 쇄국 정책 고수한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내가 알기로 서구 열강국도 꾸준히 조선의 문을 두드렸어. 미국과 유럽에서 내가 직접 본 정세도 그랬고.’
서구 열강은 청나라-조선의 관계를 애매하게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은 청나라하고만 외교를 하고 무역을 한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그나마 비유하자면 어떤 소극적인 애가 가장 친한 친구 하나가 있는데 걔를 통해서만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서구 열강에서는 청나라를 통해 조선과 수교를 맺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여기서 청나라의 반응이 또 애매했다.
‘조선은 자주국이니 알아서 수교를 맺어야 한다는 뭐 그런 답을 했다지. 조선을 쉴드 쳐준 거라는 말도 있고 한 발 빼는 거라는 말도 있고······. 어쨌거나 이래저래 서로 미루고 소극적인 결과로 조선은 갇혔었다.’
그것이 태선이 전생하기 전 조선의 역사였다.
‘그렇지만 이번 역사에서는 분명히 달라.’
솔직히 이 시대 조선에 청나라의 입김이 있는 건 사실.
그렇다면 칙사를 보내게 만들어서 확실하게 조선이 서구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걸 독려하는 스탠스를 취하게 하고.
“아까 제가 말씀드린 문물 있지 않습니까.”
“전구라거나 자동차라거나 더운물과 찬물이 따로 나온다는 장치라거나 그런 것 말인가?”
갑자기 그 이야기로 왜 돌아가냐는 오경석의 시선에 태선은 바로 답했다.
“그걸 대원위 대감에게 진상하려 합니다. 아울러 대원위 대감은 왕권 강화를 중시하시는데 이를 위해 경복궁 중건에 힘쓰신다고 들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모드가 켜지기 전에, 왕권 강화를 위한 돈지랄······. 가장 가려운 데를 긁어줘서 환심을 산다.’
“그걸 위한 자금과 자재뿐 아니라 궁궐이 뭇 백성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건축 기술도 함께 지원하려 합니다.”
“선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네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그 자금을 혼자 감당하는 건 무리······.”
무리일 거라고 말하려던 오경석은 태선의 입가에 떠오른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고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설마 가능한가?”
새삼 떠오른 것이었다. 방금 태선이 뭐라고 했던가.
청 조정이 칙사를 보내게 할 거라 했다.
아울러 영국, 미국, 프랑스의 각국 수장을 만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설마 그 옛날 진나라의 여불위에 비견할 만큼 일국을 뒤흔들 정도의 큰 부를 쌓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예, 가능합니다.”
태선은 바로 그렇다고, 아니 그 이상이라는 듯 확답했다.
석유왕 이상의 부를 이룬 태선에게 그 정도는 돈은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담도 아니었다.
오히려 태선은 이 순간 흥선대원군에게 투자를 논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은 조선에 진입하고 기반을 깔기 위해 흥선대원군에게 협력하지만······. 조선의 미래를 생각하면 결국 그도 밀어내야 하겠지. 너무 키워줘도 안 돼. 약점을 잡아두는 거야.’
투자하는 아울러 뒤통수 칠 각을 재고 있는 것.
물론 그건 나중의 일이고 당장은 조선에 진입하는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음, 그러면 나는 뭘 하면 되겠는가? 칙사를 보내고 대원위 대감에게 그런 선물까지 한다면 이미 일은 다 풀린 것인데.”
“예, 그렇겠지요. 다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 조선 내부에서의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조선 내부에서 조력······.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네.”
칙사가 가더라도 듣는 척만 하고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태선이 선물을 주려고 해도 조선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위해 칙사가 갔을 때 조선 조정에서 분위기를 조성할 자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생각해보면 청나라 정세를 파악하라며 연행사로 보낸 오경석이야말로 그 역할에는 제격이었다.
“알겠네. 맡겨만 주게. 그렇지만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건데······. 확실하겠지?”
“뭐가 말입니까?”
“칙사 말이네. 칙사가 정말로 조선에 가기만 한다면 일이 잘 풀릴 것인데 혹여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도 감당할 수가 없어.”
자신이 칙사도 보내고 서구 열강 수장도 만나고 경복궁 중건에 돈도 댈 수 있다고 말한 뒤로 오경석의 말이나 태도가 좀 조심스러워졌다.
“아, 못 믿는 건 아니고······.”
지금만 해도 물으면서 살짝 오경석이 눈치를 봤으니.
그렇지만 이럴 때야말로 예의를 갖추어 대해줘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법, 오경석의 태도를 보면 이미 자신은 충분히 카리스마를 보였다.
“믿어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청나라가 칙서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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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 온 조선 사신은 기본적으로 공식 일정을 제외하면 여기저기 들르거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다만 엄연히 외교 사절이라 공식적인 숙소도 있었다.
【 회동관(會同館) 】
그곳이 바로 이곳 회동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군요. 정말로 김태선이라 했던가요. 그자의 말을 믿으시는지요?”
오경석과 같이 온 관리 중 하나의 목소리에는 불신의 감정이 짙었다.
물론 모든 이거 그와 같이 불신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미국 대사관에 가봐서 자네도 직접 봤잖나. 전구라거나 하는 신기한 물건들이 정말로 있다는 걸 말이야.”
오경석과 함께 대사관에서 전구 등의 물건을 보고는 태선을 믿게 되는 이도 제법 많았다.
애초에 연행사에 같이 올 정도라면 조선 밖의 문물에 눈을 떴기에 그런 것.
“애초에 청 조정에서 정상적으로 칙서가 꾸려져서 칙사를 보내더라도 시일이 걸리는 건 당연하잖은가.”
“그래, 저 말이 맞아. 좀 더 기다려보세. 애초에 칙사가 안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해가 될 것은 없지 않은가.”
“압니다, 알아요······. 그렇지만 초조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다들 불안에 떨고 있는 그때, 문이 열렸다.
덜컥──!
“조선 사신 있소? 오, 마침 있었구려.”
먼저 문이 열리더니 회동관 관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경석을 포함해 안에 있던 이들이 일어났다.
방금 나가려던 이도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고개 숙이고 물러나서 회동관 관리가 들어오게 길을 터줬다.
“무슨 일이신지요?”
예의를 갖추어 묻는 물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였다.
아무리 청나라가 영국, 프랑스, 미국에 두드려 맞는다지만 조선에게는 여포나 다름 없었다.
그것은 외교 사절을 대하는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늘 회동관 관리는 그러한 입장을 잘 알고 있기에 고압적으로 굴었거늘.
“하하, 다른 건 아니고 윗분들의 당부가 있어 말이야.”
어쩐 일인지 오늘은 자기가 먼저 살갑게 군다. 뭘 잘못 먹기라도 했는지.
‘이 인간이 왜 이러지? 뇌물이라도 요구하려고 그러나? 이미 인삼을 몇 근이나 줬거늘!’
괜히 또 어려운 요구를 하려나 싶어 불안해지는 그때 회동관 관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여태 기다렸으면서도.
“조만간 황제 폐하의 칙사가 정해질 걸세. 조선왕에게 황제 폐하의 칙서가 간다는 말이야.”
“?!”
막상 그 소식을 들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놀랐겠지. 별일도 없었는데 칙서가 내려지다니. 자네들은 몰랐겠지만 얼마 전에 영길리국, 불란서국, 미국······.”
대사가 와서 화친 요청 어쩌고 하는 말은 진작 태선에게 다 들은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칙서가 내려진 배경에는 확실히 태선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
‘정말로 태선이 청 조정으로 하여금 칙사를 보내게 한 건가? 태선 그는 대체 미국에 가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된 건지.’
“그러니 자네들도 마침 조선으로 돌아가니 칙사를 안내해주도록 하게. 이봐, 듣고 있는가? 아무리 윗선에서 자네들을 잘 봐주라는 말이 내려왔다지만 그리 무시하면······.”
“아닙니다, 무시하다니요. 갑작스러운 소식이라서.”
“하하, 그렇지? 나도 사실 놀랐다네. 아무튼 그리 되었으니 준비하도록 하게.”
자신이 할 말을 남긴 뒤 회동관 관리는 객사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