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82
182 흥선대원군(2)
“그래, 본디 내가 역관이지. 그걸 위해 영어도 공부했고.”
오경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앞으로 나섰다.
“크흠, 알겠네. 그럼 내가 이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지.”
사실 이건 태선이 판을 깔아준 것이었다.
당신과 함께 앞으로 조선을 이끌어갈 개화파 인재들의 본보기를 보이라고.
기실 이 자리에 예부정랑이 나왔지만 그 이하 다른 관료도 나왔다.
“음, 웰컴 투 조선. 벗 투 엔털 더 한성, 아워 캐피탈, 유 머스트 설렉트 피프티 솔져······.
이윽고 오경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생각보다 유창한 영어.
태선이 보내준 서신 외에도 베이징을 오가면서 많이 노력한 모양이었다.
그걸 듣고 대사들은 잠시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더니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오십 명이라. 대부분 인원을 배에 대기시켜야 하는군요.”
“그만한 각오는 했잖습니까. 뭣보다 수교를 맺으러 와서 무슨 일이야 있겠는지요.”
“하긴 문제가 있다면 아예 들이지 않았겠죠.”
“저들이 우리 배를 들어오게 해준 것도 나름 배려한 거라지 않습니까. 여기선 우리도 외교관으로 이를 받아들여 이 나라 법도에 따름을 보여주는 게 맞을 듯 합니다.”
사실 이미 입국한 순간 답은 정해져 있었다. 오십 명만 추리라고 한다고 전권 대사가 돌아가겠는가.
잠시 후 각 대사는 병사들 중 정예로 오십 명을 추렸다.
“배를 잘 지키고 있어라. 조선의 민중들과 괜히 시비가 붙지 않도록 주의하고.”
“대영제국 병사들의 기개를 보이도록!”
“그대들의 행동이 이곳 조선 백성들에게는 처음으로 보는 프랑스 군인들의 모습일 수 있다. 나태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마라.”
그리고 제물포에 남아있는 병사들에게도 당부하는 사이.
“말은 탈 수 있으십니까?”
조선 쪽에서도 예부정랑을 비롯한 관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한성으로 안내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특히 예부정랑을 보좌하여 함께 온 판관은 말을 십여 필이나 끌고 와서 내주었다.
“아, 참! 태선 자네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지 않았는가. 아녀자와 아이에게 편한 길은 아니라 내 가마도 준비시켰다네.”
그리고 오경석 찬스로 태선에게만, 정확히는 샬롯과 아이들에게 주어진 특별 서비스.
“뭐 이런 걸다······. 감사드립니다, 원거 나리.”
“하하, 자네가 해준 일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닐세.”
그렇게 일행은 마침내 한성으로 출발했다.
사실 대사들의 경호 인력을 오십 명으로 추렸어도 영국, 미국, 프랑스를 합치면 백오십 명에 다다랐다.
거기에 조선 관료와 병사를 합치면 무려 삼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이동하는 길.
‘뭐 적어도 이 시대에는 호랑이가 돌아다녔다던데 범에게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겠네.’
지나가는 길마다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는 되어야 했지만, 어떻게 보면 서구인에 대한 민중의 낯설음을 완화시키는 것도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차라리 이렇게라도 노출되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일단 이렇게 공개적으로 간다면 소문은 퍼지게 되어있지.’
그리고 임금이 됐든 실세인 흥선대원군이 됐든 윗분의 선택으로 조선이 서구 국가와 수교 맺기 위해 뭔가를 했다는 걸 백성들이 알 수 있으니.
“워매, 저게 뭔 일이당가? 생긴 게 왜 저렇댜?”
“키가 아주 크구먼. 옷도 특이한데 참말로.”
“내 듣자 하니 이양선 타고 가끔씩 출몰하는 서구인들 있지 않은가? 그자들이 임금님께······.”
조선의 길은 당연히 포장도 안 되어있지만, 길의 폭도 크지 않아서 옆으로 비켜났다지만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이따금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 민심이 나쁘진 않군. 배척심이 크지도 않고.’
그렇게 본의 아니게 민심도 체크하면서 이동하여 마침내 한성에 다다랐다.
사실 여기서 또 하나 걱정 드는 건 대사와 아울러 각국에서 오십 명씩 추린 병사들이 묵을 장소였다.
생각해보면, 그럴 리야 없었겠지만 몇백 명의 인원이 전부 한성으로 왔어도 머무를 장소 문제로 곤란했을 터였다.
“대원위 대감께서 영길리국, 불란서국, 미리견국 대사와 병사가 태평관에서 묵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다네.”
다만 그 문제도 생각보다 간단하게 풀렸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도착하기 전에 이미 풀려 있었다.
“태평관이라면 예로부터 대국에서 온 사신이 묵는 숙소가 아닙니까?”
“그렇지. 그만큼 대원위 대감에께서도 이번 일을 간단하게 여기지 않는 뜻이기도 하고.”
중국 사신은 한성에 오면 궁궐에 들어가 먼저 임무를 행한 다음 태평관에 들어왔다지만 영미프 대사들의 경우는 순서가 다르게 되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이르게 도착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조선 내부에서 아직 설왕설래하며 대응 방법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궁궐에 들어가는 대신 태평관에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가 한동안 우리가 묵을 방이군요.”
“네, 정식으로 수교를 맺으면 따로 공사관을 지어야 하겠고 아마도 우리도 거기서 묵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전까지는 여기가 우리 처소가 되겠죠.”
짐을 풀며 샬롯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직접 태선에게 배정된 방에 안내해준 오경석은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
‘따로 전할 말이 있으신가. 박규수의 전언이라도 있나? 아, 그러고 보니 누나와 매형도 한성으로 불러들였다던데 혹시?’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오경석은 태선이 다시 나오자 바로 말을 꺼냈다.
“이제 막 와서 피곤하겠지만 자네는 갈 곳이 있네. 몸을 추스르면 함께 가세.”
“예? 어디를 말입니까?”
태선의 물음에 오경석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운현궁, 대원위 대감을 뵈러 간다네.”
***
운현궁으로 가는 동안 태선은 양복 차림이었다.
긴 행렬로 올 때와 달리 백성들이 옆으로 물러나 비키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생소한 차림이기에 지나치면서도 돌아보며 작게 소곤거리고는 했다.
물론 오경석이 있기에 감히 경솔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어차피 백성들의 눈이야 익숙해진다. 중요한 건 이제 곧 만나게 될 흥선대원군 이하응······.’
설마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불러오라 할 줄이야.
이하응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
더구나 세도정치기에 열세를 극복하고 아들을 왕위에 올린 입지전적인 인물이거니와 뭣보다 여기는 조선이니 그의 홈 어드밴티지가 작용하고 있었다.
‘날 떠보려는 거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박규수도 운현궁에 와있다지만 신중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회피적으로 굴 생각도 없었다.
기왕 가는 거 어차피 삼국 대사와 관계를 중재하여 조선에 개화의 문을 열고, 발전의 길에 들어서게 하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흥선대원군과 첫 만남이라. 운현궁에서 난 뭘 얻어야 하며 뭘 얻을 수 있는가.’
“다 왔습니다. 들어가시죠. 이리 오너라!”
“아, 원거 나리 오셨군요. 이분이 그 분이시고요.”
이윽고 운현궁, 흥선대원군 거처에 도착한 태선은 그 집 하인을 따라 오경석과 함께 사랑방으로 이동했다.
‘첫 만남에서 중요한 건 첫인상, 마음을 여는 것이겠지.’
이를 위해 그가 원하는 바를 얻도록 해줘야 하고 그건 알기 쉬웠다.
왕권 강화일 터, 그리고 그것을 위해 부와 권력이 필요한데 수교로 얻을 수 있음을 어필함이 좋을 듯했다.
그에 비해 하지 않아야 할 것도 생각해둘 필요가 있었다.
‘수교를 맺지 않으면 청나라 전례처럼 위험하다는 경고를 흘리되 협박이 아닌 걱정으로 비치도록 은근히 해야겠군.’
그리고 전구 조명이라거나 작정하고 마음을 빼앗을 선물에 앞서 당장 줄 약소한 물건도 준비했다.
비단 보자기에 감싸 지금 태선이 옆에 끼고 있는 것.
“대원위 대감, 김태선을 데려왔습니다.”
“들어오시게.”
“예.”
이윽고 사랑채 앞에 다다라 오경석이 기별을 넣더니 답이 돌아오자 먼저 들어가라는 듯 눈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창호지 문이라.’
한옥 문을 열고 태선은 흥선대원군의 사랑채로 들어갔다.
“오, 왔는가, 태선! 오랜만에 만나는구먼.”
“환재 나리도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하하, 여기 대원위 대감과 대왕대비께서 돌봐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지.”
대화하며 자연스레 박규수의 시선을 따라 상석에 앉아있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에게 시선이 옮겨갔다.
“인사드리게나, 이분이 바로 대원위 대감일세.”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태선이라 하옵니다. 아울러 삼국 대사가 화친을 맺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1821년 생 흥선대원군, 것도 빠른 년생이다.
1866년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그의 나이는 어떤 식으로 계산하든 45세나 46세.
‘역사서에서는 나이 먹은 모습만 봤는데 지금은 한창 때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다소 보수적이게 된다는데 차라리 젊다면 아직 젊은 시절의 그를 만나서 다행이라 해야 하려나.
“그래, 자네가 바로 그 김태선이로군.”
다만 그의 첫인상은 총기가 있고 뭣보다 날카로웠다.
“내 자네를 만나자고 한 건 묻고 싶은 게 있어서이네. 처음 자네가 서구로 가게 된 경위는 환재에게 이미 들었네.”
대뜸 본론으로 들어간다, 본 게임이 시작됐다.
“조선의 미래를 위해 서구 국가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 자신하여 갔다지?”
“예, 그러하옵니다. 아울러 그렇지 않아도 그에 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바가 있었는데 먼저 이렇게 불러주시다니 어떻게 찾아뵐지 고민하던 차에 시름을 덜었습니다.”
“허허, 부르지 않아도 먼저 찾아오려고 했었다고?”
요놈 봐라? 하는 표정, 일단 관심을 보인다.
“영길리국, 불란서국 그리고 미리견국, 즉 미국은 강력한 국가입니다. 그 나라 대사가 화친을 청하러 왔는데 조선에서 누구보다 세계 정세에 밝은 이는 저라고 자부하옵니다.”
“자네 옆에 환재가 있는데?”
이하응의 말에 감히 중간에 끼어들지 못하고 박규수는 민망한지 겸연쩍게 웃었다.
“물론 환재 나리가 외교에 밝으시나 그 나라에 살며 관료와 정치인을 여럿 만나본 저도 뒤지지는 않으리라 자부합니다.”
“하기야 당장 서구 국가의 대사들과 같이 배를 타고 왔으니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흥선대원군의 반응, 표정도 살짝 유해진 것이 첫 인상 테스트는 무난하게 넘어간 느낌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댔지. 아무래도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자네가 하고 싶은 말와 일치할 것 같은데 말해보게나.”
“예, 이미 환재 나리에게 들으셨겠지만 청나라는 위태로운 처지입니다.”
“그래, 서구 국가에 수도가 위협 당해서 황제가 직접 피신한 일도 있었고 남쪽에서 일어난 민란은 진압도 못하고 있다지.”
“심지어 그 민란이 그나마 억눌러지는 것도 미국, 영길리국, 불란서국의 용병들의 협력을 구해서라 합니다.”
“대국이 그리되다니, 허허.”
감출 수 없이 이하응의 얼굴에도 근심이 비친다.
그렇겠지. 청나라 바로 옆이 조선인데 그 청나라가 털리고 있으니 위정자, 것도 한 나라의 원톱으로서 걱정이 들지 않으면 곤란하다.
하긴 애초에 흥선대원군은 마인드가 한탕 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통치하여 나라를 바로세워보겠다는 뜻으로 권력을 쟁취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가능성이 있어.’
“지금 세계 정세는 서구 국가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그 팽창이란 청나라에게 그러했듯 침략을 말하는 겐가?”
“예, 그렇습니다. 아울러 그 나라들에는 이미 물자가 많고 새로운 기술 발전을 독려하여 신기하고 유용한 물건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흠, 그래. 들은 바가 있지.”
살짝 시선이 박규수나 오경석에게로 향한 걸 보면 이들에게 들은 모양.
하기야 조선에서 이들 외에 누구에게 그 소식을 들을까.
“이미 알고 계시다니 잘 되었군요. 전구 조명이나 기타 여러 물건을 대원위 대감에게 진상하려고 가져왔습니다만 전문적인 설치가 필요합니다. 서구인 기술자를 함께 데려왔으니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곳 운현궁에 설치해드리겠습니다.”
“호오, 그래? 안 그래도 무척 궁금하기는 하였는데.”
이하응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하기야 전구나 자동차 등에 대해서 말만 들었으면 관심이 생길 수밖에.
‘게다가 흥선대원군도 훗날 쇄국 정책을 펼치지만 서구의 문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다고 듣기는 했으니.’
“흠, 일단 공사가 급하니 그것부터 해결하고 난 다음 내 태평관으로 따로 기별 넣도록 하지. 아무튼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세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마음에 뭔가 강렬한 인상을 박아주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예, 그걸 위해 안타깝지만 서구 국가는 일부 국가를 식민지로 삼고 있습니다.”
구구절절 나오는 말들.
“청나라는 사정이 그나마 좀 낫습니다만 큰 나라를 완전히 집어삼키기에는 탈 날 듯 해서 그렇겠지요.”
“이런 정세를 잘 이용하면 그들의 기술을 배우고 교역 상대국으로 대우를 요구하며 물자를 들이고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영길리국만 해도 본토의 크기는 우리 조선과 큰 차이도 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꽤나 관심을 보이긴 하지만 이 역시 결정적이진 않다.
물론 무슨 말을 한들 당장 흥선대원군의 마음에 ‘당장 쇄국이고 뭐고 문을 열어야 한다!’ 는 파문을 일으킬 순 없을 것이다.
‘대신 일단 박아두면 두고두고 그의 마음을 잠식할 큰 것이 필요해.’
당연히 그건 국가 안위와 관련 있어야 하며 체감할 수 있는 위협이어야 했다.
“아울러 서구 국가도 서구 국가이지만 뭣보다 왜를 경계해야 합니다.”
마침 태선은 딱 그에 맞는 아이템을 준비해왔다.
바로 일본, 즉 ‘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