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85
185 불빛(2)
끼리릭── 끼리릭───
에디슨은 전구를 연결하고 유리 구체를 끼워넣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방금 한 것과 같은 작업을 한 전구가 담장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오, 멋있어. 아름다워. 이게 동양의 멋인가.”
그 디자인은 미국과 영국에 설치한 전구와 꽤 달랐다.
전구 자체는 같으나 동양의 등을 본딴 것처럼 그 위에 다시 하늘거리며 속이 비치는 천을 드리웠기에.
전구 조명을 그냥 설치하면 한옥 분위기에 겉돌까 싶어서 태선과 궁리한 것인데 다 해놓고 보니 에디슨은 기대보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전선도 없고.”
뭐 정확히 말하자면 전선이 없는 것은 아니고 땅속으로 매설해서 감추었다.
어쨌거나 만족스러운 결과에 슬쩍 뒤를 돌아봤다.
“빨리 갤러리들에게 이 몸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지는군.”
갤러리들이란 집주인 흥선대원군을 포함해 10여 미터 뒤에 떨어져 조선식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흥선대원군 바로 옆에는 태선도 있어 말을 주고받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에디슨은 나름대로 짐작했다.
“사장님께서 전구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계시겠지. 사장님 말빨이라면 기대감이 엄청 높아진 상태겠고.”
머나먼 동쪽 아시아 땅에도 겨울이 왔기에 벌써부터 어둑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조선에 머무른 경험으로 보자면 이쯤 어두워지면 금방 캄캄해진다.
자신이 살던 뉴욕과 달리 그야말로 이곳에는 자신들이 오기 전에는 전기도 전구도 없는지라 더욱 그런지도 몰랐다.
“밤이 되면 가끔 횃불 정도 보이고 완벽한 어둠이었지. 훗, 그런 곳에 최초로 밝히는 전구 빛이라.”
에디슨으로서는 그날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안 살았지만 자신의 인생이 극적으로 바뀐 그날, 설령 앞으로 얼마나 더 살고, 무슨 일을 겪을지라도 결코 그 날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리라.
“멘로파크 공원에서 태선 사장님이 처음으로 전구를 켜서 불빛을 보여줬던 그날······.”
그 감동, 설렘, 가슴 벅참!
“그리고 이제 그 빛, 아니 그 감동을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전해주게 되는 것이군.”
그 희열을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못해 마치 벌레가 기어다니기라도 하는 듯 근질거려서 긁고 싶어졌다.
“에디슨, 다 됐느냐?”
그때 뒤에서 태선이 소리쳐 물어왔다.
“아, 넵! 설치는 다 됐지만 마지막으로 점검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그래, 철저하게 해. 중요한 자리니까 말이다.”
자신에게 빛을 보여준 사람, 뭘 하든 구박이나 받던 인생을 건져준 구세주가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좋았어, 여기도 이상 무. 여기도 이상 없고, 여기도······.”
에디슨은 직접 발로 뛰어 돌아다니며 전구 상태를 점검하고 마지막에는 발전기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동안 작업을 도와준 승무원들이 먼저 점검 중인 이곳은 겉보기에는 기와도 얹혔고 운현궁 내의 작은 한옥처럼 보였으나 원래는 창고였다.
마침 발전기를 그냥 두면 흉물스럽기에 어디 둘 곳이 마땅찮았는데 낙찰된 장소였다.
“좋았어. 모든 게 완벽해.”
하지만 점검할 것은 전구 조명만이 아니었다.
“필립 아저씨, 수도관 매설 작업도 확실히 했겠죠?”
“그야 물론이지. 하아, 몇 번이나 물어보는 거냐. 우릴 못 믿는 거 아니지?”
“에이, 믿죠. 그치만 이렇게 물어보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잖아요.”
“말은 잘한다. 어차피 그러면서도 직접 테스트해 볼 거잖냐.”
“헤헤, 잘 아시는군요. 바로 가보죠.”
그렇게 점검 작업이 끝나자 마침내 에디슨은 태선과 갤러리들이 있는 곳에 돌아왔다.
자연스레 태선과 눈과 눈이 마주친다.
말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에디슨은 태선과 눈빛으로 말이 오간다고 느꼈다.
-준비는 다 됐냐?
마치 사장님이 그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예, 준비는 완벽합니다!
그래서 에디슨도 그런 속마음을 눈빛에 실어서 보냈다.
분명히 사장님이라면 자신의 뜻이 통했을 거다.
그리고 역시나 방금 전의 눈빛의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눈빛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 하지만 기술적인 완성도 좋지만 권력자가 만족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게다가 오늘은 구경꾼도 많으니 흥선대원군의 기도 살려줘.
-옙, 알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또 제가 전문이죠.
공사하는 동안 이 댁의 하인이나 여러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배운 예에 따라 흥선대원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전보다 능숙해진 조선말로 말했다.
“그동안 시끄럽고 소란이 컸는데도 대원위 대감께서 허락해주신 덕분에 공사가 이제 막 끝났습니다.”
“오, 그렇다면 전구 조명을 당장 볼 수도 있다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에디슨은 발전기를 설치한 창고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저곳의 발전기를 가동시키고 버튼을, 아 그러니까 조선말로······.”
“단추라 하면 된다.”
에디슨이 버튼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맬 때 흐름이 자칫 끊기기 전에 바로 태선이 나서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단추만 누르면 바로 빛이 들어올 것입니다. 조선 팔도에 처음으로 불을 켜는 일입니다. 그 영예는 당연히 대원위 대감이 하셔야 하지 않겠는지요. 후대의 역사에도 이 사건이 길이 남을 겁니다.”
흥선대원군은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으나 ‘역사에 남을 것이다’라는 말에 눈썹이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그게 제대로 취향 저격한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걸 노리고 태선이 던진 말이었다.
“허허, 그렇다면 모두가 기다리고 있으니 더 시간을 끄는 것도 할 일이 아니겠지.”
흥선대원군의 발걸음이 발전기로 향했다.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서는 석유라는 연료가 필요한데 일단 우리가 가져온 걸 썼습니다. 발전기가 지금은 꺼졌지만 이미 예열해뒀으니 바로 이걸 올리면 켜집니다.”
“그래, 이걸 올리면······.”
위이잉───!
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허어, 기이하고 복잡하게 생긴 쇳덩어리에서 뭔가 울림 같은 소리가 나는구려.”
“저게 그 전기라는 걸 만들어낸단 거지요?”
“나는 당최 아직 그 전기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갤러리들이 뒤에서 설왕설래하는 사이 흥선대원군은 설명을 듣고 나더니 마침내 전구 스위치를 올렸다.
달칵──!
고작 스위치를 켜는 작은 소리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희한하게도 어째서인지 유독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건 아마도 저녁도 깊어져 어둑해져서 그런지도 몰랐다.
팟─팟─팟──파파팟──!
그 어둠 속에서, 운현궁의 담장을 따라서 설치된 전등에 하나둘씩 빛이 들어오는데 마치 그 효과음인 것처럼 착각이 들어 그런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자아내듯 작은 손짓, 작은 효과음이었을망정 그 결과는 빛줄기가 담장을 따라 내달리듯 운현궁을 환히 밝혔다.
“······.”
처음에 발전기 켜는 흥선대원군만 보고 있던 갤러리들은 등 뒤에서 빛이 갑자기 쏟아지자 불이라도 난 줄 알고 얼른 돌아섰다가 순간 말을 잃었다.
“허, 이건?!”
간신히 입을 먼저 뗀 건 박규수였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연행사신으로 북경을 자주 다녀왔어도 이건 처음 보는 것일 테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허?! 저, 정말로 대낮처럼 환해졌습니다!”
뒤이어 다른 이들의 반응도 하나둘씩 나왔다.
“어찌 이런 일이?! 횃불과 비교도 되지 않는군요.”
“세상에······. 놀랍군요. 운현궁에 빛이 들었습니다.”
“경하드립니다, 대감!”
처음에는 최초로 전구를 목도한 것에 대한 놀람을 숨기지 못하는 반응이었으나, 차츰 정신이 돌아오자.
“대원위 대감이 세도정치를 몰아내신 위업에 과연 걸맞는 빛이로군요.”
“이를 말이겠습니까. 마침내 빛이 주인을 찾은 것이지요.”
이걸 아부할 기회로 보고 흥선대원군의 공으로 돌리는 반응들도 이어졌다.
다만 그런 반응은 개화를 추진하는 흥선대원군이나, 그걸 이용하려는 태선에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거나 전구로 대표되는 서구 문물이 공식적으로 이 운현궁에 설치되면서 흥선대원군의 일부가 된 셈이야.’
그러니 밤이면 어두워야 순리이거늘 밝게 하다니 불경하다며 그런 소리를 지껄인다? 그건 흥선대원군이 불경하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누가 감히 그러겠는가.
‘우의정 유후조와 좌의정 김병학이 반대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당장 아무 말이 없군.’
물론 그 두 사람이 말이 없는 건 근본적으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전구의 빛에 놀라서 그렇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지. 기왕 시작한 김에 쐐기를 아예 박아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뜰에 전구만 설치하고 더 빨리 작업을 끝내 지금 이 이벤트를 터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간이 좀 더 길어지더라도, 흥선대원군에게 부탁해서라도 공사 스케일을 키우고 기간을 연장시켰다.
이제 그 결실을 볼 때였다.
“대감, 전구 조명은 마음에 드시는지요?”
“허허, 당연하지 않겠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랍군. 아, 그러고 보니 전구 조명을 안채에도 설치하지 않았었던가?”
마침 흥선대원군도 그걸 기억하는지 묻는다.
기실 그도 다른 신료들은 물론이고 개화에 반대 입장을 내비치던 우의정과 좌의정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서일 것이다.
“예, 것도 여기서 바로 켤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능하다고? 아하, 아까는 이걸 눌렀으니 설마 이걸 누르면 되는 겐가?”
“그렇습니다. 이 단추는 사랑채이고, 이 단추는 안채, 이 단추로는 부엌쪽······.”
“신기하구먼. 집 안에서도 구역을 나누어 켤 수도 있다니.”
달칵─ 달칵─ 달칵─!
흥선대원군이 연달아 전구를 켜자 불빛을 따라서 집들이가 이어졌다.
“다음은 이쪽으로 와서 보시겠습니까. 여기는······.”
그걸 안내하는 건 태선.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안내할 것도 없기는 했지만 태선이 자처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어서 도착한 곳은 뜰에 따로 지어놓은 화장실이었다.
‘전구가 대놓고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면 이쪽은 숨겼다가 뜻밖에 먹이는 한 방이지.’
흔히 말하는 똥간, 그나마 대감집이라고 그럴싸한 겉모습만 달랐을 따름이나.
미국에서 모닝 글로리호에 실어서 가져온 제한된 자재 중 일부를 여기에 사용하게 했다.
“그리고 제가 일전 수도관과 화장실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지 않았는지요.”
“흠흠, 그랬었지.”
아무래도 뒷간 이야기라 흥선대원군은 체면을 구긴다 싶어서인지 조금 애매하게 답했으나 그러면서도 관심을 보였다.
솔직히 권력자라고 똥을 안 쌀 수 없지 않은가.
이런 똥간이 불편한 것도 마찬가지고.
설마 전구로 불을 밝혔듯 화장실에도 뭔가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기대감!
그리고 그건 갤러리들 역시 같았다.
“직접 보시지요. 어쩌면 전구보다 이게 더 건강이나 실생활에는 유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내 태선을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다들 보라는 듯 옆으로 물러섰다.
“참고로 뒷간의 경우 밤에도 편히 이용하게 하기 위해 전등 켜는 단추는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전등을 켜면.”
달칵──!
그러자 바로 보이는 하얀색 타일들.
으레 뒷간에는 불쾌한 냄새부터 확 풍기기 마련이거늘.
시야를 가득 채운 하얀색이 전구의 불빛과 어울려 뭔가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구나 냄새도 안 난다.
“여기가 뒷간이 맞는가?”
흥선대원군이 의문을 표했고.
“너무 깨끗하군.”
“그래도 방이 신기하기는 합니다. 이런 곳에서 서책이 잘 읽힐 듯하군요.”
‘화장실에서 책 읽으면 잘 읽히기야 합니다만······. 안 그래도 좌식 문화인 조선에서 그러면 엉덩이에 안 좋을 텐데.’
갤러리 중 누군가의 반응에 태선은 속으로만 응수하다 뒤늦게 방금 중얼거린 사람을 보고 뜻밖이라 느꼈다.
‘어, 방금 말한 저 사람 우의정이잖아.’
칭찬인지 아닌지 애매한 발언이기는 했으나 굳이 말하자면 칭찬도 섞였다.
그렇기에 우의정 본인도 자신도 모르게 말했는지 급히 입을 닫고는 흠칫하는 모습이었다.
‘슬슬 넘어왔군.’
반면 좌의정 김병학은 아직 무표정을 유지하며 방어전에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수세식 화장실 사용법을 보여줄 건데 말이지.’
이건 좌의정 할애비라도 안 넘어올 수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