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86
186 딜(1)
“용변은 보기 위해서는······.”
태선은 세라믹 변기 뚜껑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걸 이렇게 올리고 여기 앉아서 보면 됩니다. 안에 물이 채워져 있는데 뒤에 있는 단추를 누르면.”
촤르르르르───!
소용돌이치며 내려가는 시원스러운 물줄기에 체면이고 뭐고 흥선대원군이 뒷간을 보며 다시 감탄 어린 표정이 되었다.
“고여있는 물에서 이 정도의 소용돌이를?!”
물이 점차 잦아들며 거기 흥선대원군의 얼굴이 비친다.
“우물에서 수도관을 잇고 압력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장치 등을 연결한 것입니다. 아울러 이전에는 노끈을 썼다고 들었으나 종이를 비치하여 두고 그걸로 처리하면 같이 물에 흘려보내고 그 다음에는.”
계속 남자 둘이 변기통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으면 민망하니 원리를 설명해준 뒤.
태선은 걸음을 옮겨 세라믹 변기 바로 옆의 세면대로 갔다.
“그건 또 무엇인가?”
이제는 흥선대원군이 먼저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심지어 이 뒷간이 원래 흥선대원군이 쓰는 것이 아니라 아랫것들이 쓰는 곳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싶었다.
그래서 그리 넓지 않았는데 흥선대원군에 이어 갤러리들도 자기도 보겠다며 줄줄이 따라 들어왔다.
그중에 우의정 유후조와 좌의정 김병학도 있었다.
‘좌의정은 아직도 선방하네. 변기에도 버티다니 제법이야.’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다. 그래, 잘 버틴다. 인정하지.
그렇지만 이제 슬슬 넘어올 때도 됐다.
어쩌면 변기보다 이게 더 놀랍거든. 무려 영국 왕세자 부부가 감탄한 기술이었기에.
“이 장치는 이 금속 막대를 위로 살짝 들어올리면 물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손이나 얼굴을 씻을 수가 있지요.”
수도꼭지를 올리자 물이 흘러나온다. 빨간색 파란색 표시에 누군가 질문을 안 던져주려나.
‘흠, 아무도 없나. 원맨쇼로 가는 수밖에.’
“그렇지만 지금은 겨울이 아닌지요. 찬물을 쓰면 건강에도 좋지가 않습니다. 이 막대기를 붉은색으로 돌리면 데운 물이 나옵니다.”
“하하, 그건 아무래도 농담으로 들리는구먼. 아궁이에 떼우지도 않았거늘 어떻······. 음?!”
흥선대원군은 말하던 도중 그대로 굳었다.
태선이 수도꼭지를 빨간색 방향으로 돌리고 기다리자 정말로 데운 물이 나와서였다.
옆에 있으니 바로 온기가 훅 느껴진다.
믿을 수 없어 흥선대원군은 직접 손을 대보았다.
“참이군. 정말로 데운 물이 나오다니······. 허허, 이럴 수가.”
“이 역시 전기를 이용한 것입니다. 아울러 이 온수를 이용해 온돌에 특별한 장치를 더하면 난방도 가능하지요.”
아무래도 보일러 설치는 바닥을 들어엎어야 하는지라 그건 못 했는데 그 떡밥을 슬그머니 던져두었다.
“난방까지 된다는 겐가.”
다행히 흥선대원군의 귀에는 들어간 모양이다.
하지만 다른 갤러리들에게는 방금 태선이 보인 퍼포먼스가 워낙 인상이 깊었는지 앞다투어 흥선대원군에게 물었다.
“대감, 정말로 데운 물이 나오는 것입니까?”
“어허, 자네 대원위 대감께서 방금 거짓말이라도 하셨다는 것인가? 분명히 데운 물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나도 들었지만 확인차 여쭤보는 것이지.”
우의정은 전구에 감탄했을 때부터 홀린 터라 화장실까지 들어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좌의정은 무심한 척 물러나 있었거늘.
‘결국 저 양반도 들어왔네.’
뒤쪽이지만 화장실에 들어온 갤러리 무리에 섞여 있었다.
“허어, 막대기만 돌리면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데운 물을 쓸 수가 있다니.”
심지어 자신이 그토록 반대하던 서구의 문물에 감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 못 한 채 중얼거림은 이어졌다.
“놀랍구먼.”
진작 영의정 조두순은 넘어왔었고 우의정에 좌의정까지 전부 넘어왔다.
예조판서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까지, 조정의 주요 멤버는 사실상 전부 넘어왔다. 빼도 박도 못한 체크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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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잘해주었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군. 정말로 밤에도 그렇게 빛을 내다니.”
다음날 바로 흥선대원군은 사랑채로 태선을 불러 공로를 치하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서구의 문물을 고깝지 않게 여기는 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있지. 당장 좌상과 우상이 그러하고 수많은 유생도 그렇겠지.”
“그럼에도 대원위 대감께서 기회를 주신 덕분에 그들에게 문물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하응 역시 태선의 그런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어제 전구라 했던가. 그 전기 등불과 온수가 나오는 뒷간 장치만 하더라도 좌상과 우상이 돌아갈 때 생각이 많아진 눈치더군.”
“앞으로 매일 밤마다 이 운현궁에 불빛이 들어오는 걸 볼 때마다 더 그러하지 않겠는지요.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조선팔도에서 밤마다 이 운현궁에만 불이 들어온다.
그걸 조정 삼정승과 판서뿐 아니라 뭇 백성들까지 보고 우러르게 된다.
“암, 그래. 그렇다마다.”
생각만 해도 흐뭇한지 흥선대원군은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내친 김에 집안에도 전기를 이용한 난방 장치를 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았나?”
“예, 보일러라 하여 전기를 이용한 온돌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만.”
“이제 겨울이니 그것도 설치해주게나. 어차피 이 운현궁은 넓으니 거처는 공사하는 곳을 피해서 내 옮기면 되니.”
‘어제 재미를 봤으니 아예 사랑채까지 서구 문물을 들여서 조정 신료들이 올 때 과시하겠다는 뜻이겠지.’
오히려 태선도 좋다.
“현명하신 선택이옵니다. 운현궁의 구조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누구와 이야기할까요?”
“그건 내가 태평관으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네. 그리고 에디슨이라 했나?”
“예, 토마스 에디슨입니다. 조선인은 으레 처음에는 서양인의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하는데 대원위 대감께서는 잘 발음하시는군요.”
솔직히 이건 진심으로 조금 놀랐다. 한자로 음차한 이름을 부를 줄 알았는데.
“그만한 기술을 지닌 자가 조선에 있음은 기특한 일이니 기억해둬야 하고말고. 아무튼 온돌 일도 그 에디슨이라는 청년 기술자에게 맡길 생각인가?”
“전구 공사처럼 몇몇 군인이 돕겠지만 그럴 예정입니다.”
이하응은 대답 없이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몰래 에디슨을 빼돌릴 생각이라도 하는 거려나.’
추측일 따름이나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염두에 둬야 했다.
전생의 역사에서 이하응은 마음을 굳히자 불도저처럼 쇄국 정책을 밀어붙였다.
지금은 반대로 개화 정책에 적극적이게 됐으니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솔직히 뭐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에디슨은 미국에 웨스팅하우스가 있으니 조선으로 데리고 왔지.’
포섭에 넘어가더라도 결국 에디슨은 조선의 문물과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게 될 터.
처음 의도한 바와 결과는 같으며 오히려 배신의 싹을 미리 잘라내니 어쩌면 일석이조일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정이 있으니 배신하지 않길 바라지만.
‘뭐 에디슨도 영국에서 조선까지 같이 오는 동안 나를 더 의지하게 돼서 배신할 가능성도 사실상 거의 없지만.’
것보다 이 시점에서 정말로 신경 쓸 일은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대원위 대감에게 건의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만.”
“이번 전구 일도 그렇고 자네의 말이라면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지. 뭔가?”
“서양에는 가로등이란 것이 있습니다.”
“흠, 가로등이라? 이름으로 보자면 길에 조명을 설치하여 밤길에도 빛을 밝히는 건가?”
역시 머리는 좋다.
“과연 어제 그랬듯 그런 불빛이 밤에도 길을 비춘다면 상당한 이점이 있겠어. 뭣보다 범죄가 줄어들겠지.”
시각이 좁으면 당장 돈이 들 것만 걱정할 텐데 투자 대비 뽑아먹을 수 있는 걸 큰 견지에서 생각해내다니.
덕분에 설득은 쉬울 듯했다. 아니, 이렇게 되면 더 많은 걸 노려볼 수도 있었다.
“하옵고 제가 듣기로 대원위 대감께서 경복궁 중건에 심혈을 기울이신다 들었습니다.”
“환재가 그 대업을 맡아서 힘써주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도 건의할 바가 있으신가? 얼마든지 말해보게.”
“방금 말씀드린 가로등도 그렇지만 중건한 경복궁에도 전구 조명을 설치하면 왕실의 위엄이 한층 높이 서지 않겠는지요.”
사실 경복궁 이야기를 꺼낸 시점에서 기대하고 있었는지 이하응은 미소를 띠더니 옳다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하하하, 과연 자네는 이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군. 기왕 할 거라면 전구 조명뿐 아니라 화장실이라고 했나?”
“예, 서구에서 부르는 명칭을 옮기자면 화장실이라 합니다. 그것도 설치하면 물론 좋겠으나 자재라거나 비용의 문제가 있어 시간이 소요될 듯합니다.”
“흠, 그런가. 그렇다면 다른 문물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생각해보지.”
사실 화장실이야 바꾼대도 조정 신료들에게 왕실 위엄을 높이려는 의도일 따름.
겉으로 보이지는 않으니 백성들에게는 전구 조명만 하더라도 충분할 것이다.
이걸로 운현궁 보일러 설치, 가로등 설치, 경복궁 전구 조명 설치는 킵.
‘하나 더 나가봐?’
패가 잘 먹히는 날이 있지 않은가. 어제 퍼포먼스를 거하게 보여줘서 그런지 오늘이 그런 느낌이었다.
이럴 때 치고 나가야 한다.
“하옵고 대감의 기지로 좌상, 우상을 비롯하여 조정에 개화를 반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렸다고는 하나 아직 유생들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하아, 그렇지. 하려면 눈 딱 감고 넘어갈 수 있겠으나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니 무언가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가.”
오늘 의견을 몇 개 냈는데 그것들이 전부 마음에 들었는지 이제 아예 이하응이 대놓고 장자방 대하듯 의견을 묻는다.
“운현궁에 설치한 서구식 조명과 화장실을 성균관에도 설치해보면 어떤지요?”
“성균관에 설치···한다? 유생들이 그걸 가만히 받아들이지 않을 터인데.”
“물론 그렇겠으나 좌상과 우상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또 고민할 때 습관 나온다. 흥선대원군은 팔걸이에 손을 까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유생들을 설득하려면 우선 그들이 서구 문물의 기술적인 면모가 유교 정신과 별개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즉 반대를 받더라도 일단 맛보게 한다는 겐가?”
“예. 유생들도 직접 이를 경험해보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 편한 것에 한 번, 두 번 젖어들기 시작하면 명분을 끌어다 합리화할 것이다.
사실 유교를 도구로 빌려 행해진 수많은 정치적인 논쟁이 실제로 그러지 않았던가.
‘이현령 비현령이지 뭐. 자기 편한대로 명분을 끌어오면 그걸 답으로 삼으니까.’
태선은 자신이 있었다. 일단 전구나 화장실은 전의 생활 방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편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뭣보다 이하응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잖아.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유생들 사이에는 뜻이 갈리고 균열이 생기는 반면 그럴수록 이쪽에는 이득이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줬으니 흥선대원군도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았을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군. 이는 추후에 조정 신료들과 의논해보고 다시 알려주겠네.”
“예, 제 말을 잘 들어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서 이를 감히 대원위 대감에게 여쭈어도 될지 저어하군요.”
“개의치 말고 말해보게나.”
흔히 권력자들이 하는 말과 행동 중 하나, 개의치 말고 말해보라면서 자칫 심기를 거슬리면 숙청 대상이 된다.
‘숙청 대상까지는 아니라도 지금부터 할 말이 별로 흥선대원군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렇지만 자신이 막말로 흙 퍼서 장사하고 조선에 막 퍼줄 생각이 아니라면 짚고 넘어갈 문제였다.
바로 돈 문제였다.
“가로등, 경복궁에 도입할 발전기와 전구와 전선 등의 자재, 성균관까지······. 이를 위해 돈과 자원이 많이 소요될 겁니다만 감당이 어려울 듯 합니다.”
역시나 흥선대원군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내 듣기로 자네가 미국에서 제법 큰 돈을 벌었다면서? 해서 베이징에서 환재에게 말하기로 전구 설치 등 비용은 자네가 부담하기로 했다던데?”
여기서 말 한 마디마다 디딜 곳을 잘 정해야 한다.
자신이 파악한 바로 이하응은 철저한 권력자 스타일이다.
권력의 달콤한 과실, 그런 달달한 것은 자신만 누려야 한다는.
“예, 미국에서 올 때 전구 조명의 설치를 위해 자재를 들여왔지요. 다만 그건 어느 것보다 대원위 대감이 계시는 이곳 운현궁이 우선이라 판단하여 그곳에 사용했고 남은 것도 당연히 그럴 예정입니다.”
“크, 크흠! 그랬던가. 하긴 미국에서 자네가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내 집에 전구나 화장실에 서구 문물을 설치한 걸 보니 그렇겠구먼.”
여기서 이을 콤보는 돈이 들기는 하는데 그걸 당신 주머니에서 나갈 필요가 없음을 알려서 안심시켜주는 것.
가급적이면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해주면 더욱 좋다.
“금광채굴권을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금광채굴권, 솔직히 이건 조금 강하게 지른 수이기는 했다.
“금광채굴권을?”
그렇지만 첫 수에 가장 센 것을 둬야 다음 협상이 편해진다.
이걸 저쪽에서 받으면 좋고, 설령 받지 않더라도 다음 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니.
“조선 팔도의 모든 금광 채굴권을 원하는 건 아닐 테지.”
“물론입니다. 대원위 대감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받아야 하겠지요. 아울러 마냥 금광에서 나오는 금을 제가 갖는 것이 아니라 그걸로 자금을 굴려 모든 수익을 조선의 발전에 쓸 생각이옵니다.”
“호오, 조선의 발전에 쓸 생각이다? 구체적으로는?”
호락호락 넘어오지 않고 구체적인 계획을 묻는다.
달리 말하면 첫 수에 세게 부른 금광채굴권을 잘하면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태선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다음 시나리오대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