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87
187 딜(2)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배불리 먹이는 게 아니겠는지요. 그리고 공사에는 노동력이 필요한데 백성들을 동원하되 그 임금으로 식량을 주려고 합니다.”
“백성들을 동원하면 농사에 지장이 있을 테고 그러면 임금으로 줄 식량도 없을 터인데 그게 되겠나?”
‘아니, 그걸 그렇게 잘 아는 양반이 경복궁 중건에 백성들을 데려다가 쓰고 계세요?’
아니, 그걸 잘 알아서 임금이랍시고 당백전을 막 찍어내서 유통했던 건가.
뭐 어느 쪽이든 결국 국가 재정을 파탄내는 방향으로 가게 되지만 그걸 방치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제 인맥과 회사를 이용해 식량을 대량으로 들여오겠습니다.”
“흠, 대량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많은 식량을······.”
“조선 백성이 다 먹고 남을 식량을 들여오겠습니다.”
다음에는 미국 대평원에서 농기계로 농사짓는 사진이라도 찍어서 와야 하나.
미국 농사의 파워를 너무 모르지만 이 시대 조선인이라면 이해해줘야지.
“금광에서 채굴한 금은 우선 그렇게 들여온 식량의 대금으로 지불할 생각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확실히 괜찮게 들린다면 정말 되는 건가? 내 말은 정말로 그리 많은 식량 수입이 가능하냐는 말일세.”
“예, 미국의 땅은 청나라만큼이나 큽니다. 헌데 청나라의 서역에는 사막 지대이지만 미국은 그 드넓은 땅이 마치 호남 지방처럼 비옥합니다.”
“허어, 정녕 그렇다고?”
“늦어야 1년, 이르면 몇 개월이면 탄로 날 거짓말을 제가 왜 고하겠는지요. 다 사실을 아뢴 겁니다.”
사실 식량 운송은 몇 개월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애초에 미국을 떠나기 전에 디젤 엔진과 농기계 테크트리를 서둘러 올린 이유 중 하나가 조선으로 식량을 들여오기 위한 밑작업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수교로 앤슨 벌링게임이 미국에 전선을 보낼 때 KSO에 자신의 전언도 전달해달라고 편지를 부탁했다.
‘지금쯤 전달됐을 거고 WCSS에서 만든 다른 증기터빈선에 물자들과 함께 식량을 실어 오는 중이겠지.’
“알겠네. 그 건도 의논해서 결정한 뒤 알려줌세. 혹시 또 할 말이 있는가?”
오히려 금광채굴권 내주면서 식량을 받고 백성들을 공사에 인부로 쓰는 것이 수지에 맞을 수 있겠다 싶었는지 다른 의견이 없냐고 묻는 이하응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금과 자원을 돌리는 과장에서 슬쩍 빼먹을 구석이 생기면 비자금 조성에 유리하겠다 싶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마침 이쪽도 있었다.
“자꾸 이런 말씀을 드려 송구스럽습니다만 대원위 대감께서 허락해주셨으니 한 가지만 더 말하겠습니다.”
“말해보게. 기왕 들어주기로 했으니 다 들어줘야지.”
“당장은 아니겠으나 전구 조명이나 화장실의 설치를 양반, 사대부나 혹은 추후 여염집에도 설치할 수 있게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흠, 여염집까지 말인가?”
조선에는 신분에 따라서 지켜야 할 규율이 있다.
집이 몇 칸이 넘으면 안 된다거나 옷은 어떤 것을 입으면 안 된다거나 하는 규율인데 당연히 전구나 화장실에 대한 규율은 아직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흥선대원군 집에 이런 것이 설치되었는데 당연히 부럽지 않겠는가.
설치하는 자들, 혹은 설치 의뢰를 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고 그걸 해줘서 당장은 문제없다 치더라도.
나중에 어떤 식으로 또 얽어매서 문제 삼을지 모를 일이다.
“아까 자금 문제와도 연결이 되는 일입니다만 양반, 사대부, 부호의 집에 설치해주고 비용을 받으면 재정 문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의 소지를 남기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양성화하는 것이 낫다.
“아울러 여염집에는 그만큼 편함을 얻을 것이고요. 물론 여염집과 양반의 집에 시설이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와 아울러 당연히 당신은 특권을 계속 누릴 수 있다는 것도 명확하게 챙겨줘야 한다.
“일반 양반의 집에 설치되는 것과 왕실 종친, 혹은 궁궐, 뭣보다 대원위 대감의 댁에 설치한 것이 같을 수 없듯이요.”
그 사실을 딱 꼬집어서 챙겨주자 흥선대원군의 입가에 곧 미소가 걸렸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구먼.”
알아서 사업해서 돈도 벌고 그걸로 공사 자금도 충당하고 그러며 자신의 특권을 가시적으로 보이게 해주겠다니 당연히 기분 좋겠지.
“감히 말씀드릴 바는 이것이 전부이옵니다.”
“그러한가. 알겠네. 모두 타당하고 조선에 도움이 되는 것이로구먼. 내 최대한 빨리 의논하여 자네에게 알려줌세.”
이하응이 오른쪽으로 기울여 앉아있던 자세를 슬쩍 왼쪽으로 기울이는 행동을 보였다.
이건 할 이야기는 끝났으니 그만 가보라는 심중을 비칠 때 나오는 행동.
태선은 일어섰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불러주시지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고 일어나는데.
“아, 잠깐만.”
흥선대원군이 뜻밖에 태선을 불러세웠다.
‘뭐지? 설마 마음이 바뀌었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곤란한데.
“아 그리고 듣자하니 가족들이 있다면서? 미국에서 데려온 처자식 말고 본래 의주에 있다가 환재의 도움으로 한성에 정착했다는 누나와 매형 말이야.”
뭔가 했더니 조선에 남은 가족에 대해서였다.
“예, 환재 어르신의 도움으로 누이와 매형을 안 그래도 몇 년 만에 만났지요.”
“내 아랫것에게 일러 선물을 준비했으니 가는 길에 챙겨가도록 하게.”
선물을 준비했단다.
‘혹시 만일의 상황에 가족을 볼모로 삼겠다는 정치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려나.’
자신이 너무 과민한 건지 모르겠으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차라리 과민할지언정 안일하게 있다가 뒤통수 맞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지 모른다.
‘뭐 나도 개화 초기에만 흥선대원군을 이용하고 나중에는 실각시키고 군주제를 벗어나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서로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이렇듯 챙겨주시니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서 태선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마주 보며 웃었다.
***
태평관으로 돌아오니 샬롯과 가솔들이 맞아주었다.
“다녀오셨어요.”
참고로 가솔들이란 집사 알프레드와 하녀 겸 보모인 마리와 앤이었다.
미국에서 고용했는데 영국에 이어 조선까지 따라왔다.
샬롯과 자신이 가족처럼 대해줬더니 점점 더 친해져 이렇게 친해졌다.
“오늘 밖에 나가서 이 지역 노인들에게 바둑이란 게임을 배웠는데 체스와는 달리 새로운 재미가 있더군요”
이건 알프레드와 나눈 담소.
“역시 킴 사장님의 아들딸이라서 그런 걸까요. 루이스와 클락이 영어도 곧잘 조선말도 따라하셨어요.”
“제가 하도 태평관 주방에서 요리하는 걸 엿보고 옆에서 물어봤더니 이제는 아예 와서 구경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이건 마리와 앤의 잡담. 권위적인 성격이라면 용납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태선은 이렇듯 스스럼 없는 이들과의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가솔이라 칭하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얻는 것이라지.’
그런 면에서 이 사람들과 인연이 이어진 일은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참! 이제 곧 저녁이네요. 오늘은 그 신선로라는 걸 내주신다는데 언제 드시나요?”
마침 태선이 운현궁에서 태평관으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저녁 때가 된 시간.
여느 때였다만 가솔이나 다름없는 이들이나 혹은 에디슨이나 맥심 때로는 존 로저스 대령과 식사를 같이 했겠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막 하려고 했는데 운현궁에서 선물 받아온 게 있는데.”
“어머,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한테 선물을 다 주시고요?”
“아, 그게 실은 우리한테 준 것은 아니고요.”
“우리한테 준 건 아닌데 태선에게 줬다면······. 흠, 심부름꾼 노릇이네요.”
“네, 그런 셈이죠. 제 누이 김태희와 매형인 박말복에게 준 선물이라서.”
“아, 그랬던 거예요?”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간다는 듯 샬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도 태선의 호의를 사려거나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고 줬겠군요.”
‘정치인 같은 생각을 하네. 하기야 원래 KSO에서도 전략실에 있었지. 것도 실장님으로.’
“아하, 그래서 선물도 전할 겸 해서 시누이 집에 가서 저녁 먹는다는 거군요.”
샬롯의 입에서 시누이라는 말을 들으니 참 신기하다.
조선에 들어온 뒤로 샬롯은 이렇게 조선말에 더 익숙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조선말을 주로 쓰고는 했다.
아울러 당연한 일이지만 태선은 조선에 들어와서 처음 흥선대원군에게 불려 가며 바쁜 일을 처리한 이후 당연히 누이의 집을 찾아가 해후를 나누었다.
‘내가 결혼까지 해서 애를 낳아서 온 걸 보고 놀랐었지.’
정작 자기네도 아들 둘을 낳았으면서.
아무튼 그 이후로 자신이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샬롯은 조선에서 그나마 한 다리 걸쳐서라도 인연이 이어진 시누이 김태희와 종종 만난 모양.
그래서인지 친구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처럼 들떠보였다.
“루이스와 클락도 데리고 가시나요? 그러면 사모님 혼자서 돌보기 힘들 테니 누가 같이 가야 하지 않을까요?”
동시에 샬롯이 밖에 다니며 자주 데리고 다녀서인지 앤도 눈동자를 빛냈다.
“하여간 바깥 나들이라고 하면 저러네.”
그러면서도 샬롯은 앤을 데려가도 되겠냐며 쳐다봤고 태선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갈 채비하고 밖에서 봐요. 저는 로저스 대령님에게 말하고 올게요.”
자신의 호위를 위해 존 로저스도 병사들과 함께 태평관에 묵고 있었다.
이번에 운현궁에 갔다 올 때도 그렇지만 그는 매번 선발한 병사들을 호위로 붙여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그렇게 해서 태선은 샬롯과 앤이 끌어안은 루이스와 클락과 함께 뒤에는 호위로 따르는 병사들까지 데리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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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좀 불편하죠? 가마를 타면 옷이 더러워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에이, 괜찮아요. 오히려 가마가 더 불편하거든요.”
자신이 마차를 탈 때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하기야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어쨌건 누이 김태희와 매형 박말복의 집에 도착하여 기별을 넣자 곧 하인이 문을 열었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참 사극에나 나올법한 으리으리한 집을 얻었네.’
물론 운현궁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사는 사람이 누이와 매형이었다.
“어머, 태선이 왔구나. 아, 샬롯이랑 우리 귀여운 쌍둥이 조카들도 같이 왔네.”
“오, 자네들 왔는가.”
매형은 백정으로 일하고 누나는 주막에서 일하면서 의주에서 근근이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곳은 대궐이었다.
“고모부 털 많아, 헤헤헤!”
“고모, 고모부, 안녕!”
때마침 각각 샬롯과 앤애게 안긴 루이스와 클락이 혀 짧은 발음으로 인사하자 김태희와 박말복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혼혈 외모에 조선말로 인사하니 기특하기도 하겠고 뭣보다 이 집에 아들만 둘인데.
“외삼촌,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자신이 떠나고 1년 만에 연년생으로 낳았지만 그래봐야 아직 각각 일곱 살과 여섯 살이거늘 애들이 듬직했다.
“그래, 태형이 태곤이 너희도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구나.”
‘이건 누가 봐도 딱 유전자 몰빵으로 매형 아들이라는 느낌이네. 어릴 때부터 장군감 느낌 팍 오잖아.’
물론 듬직한 아들도 좋기야 하지만 딸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르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특히 이 집안에 오면 루이스가 귀여움을 많이 받고는 했다.
그건 태선에게 조카 되는 저 아이들, 박태형과 박태곤도 마찬가지였다.
“루이스와 클락도 왔구나.”
“약과 줄까?”
물론 어려서 벌써 꽃미남 외모를 자랑하는 클락도 남다른 인기를 자랑하기는 했다.
“허허허, 어쩜 애들이 이렇게 예쁠꼬.”
그대로 두면 이 집안 문턱을 넘으려면 한 세월 걸릴 것이다. 처음에 이 집안에 왔을 때도 그랬으니 경험담이다.
“대원위 대감께서 누이와 매형에게 선물을 드리라는 것이 있어서 전해드리는 참에 식사라도 할까 싶어서 왔습니다.”
그렇기에 태선은 먼저 문을 넘어가며 용건부터 밝혔다.
“하하하, 마침 잘 왔다. 우리도 때마침 하려던 참이었으니 들어오거라.”
그제야 루이스와 클락의 매혹에서 벗어나 집안으로 들이는 박말복이었다.
함께 데리고 온 앤과 미군 병사들에게도 따로 방을 내주고 정성껏 차린 음식을 내주어 식사하게 배려해주었다.
“저희는 호위를 해야 하니 여기서 먹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병사들은 태선을 호위하겠다며 한 사람씩 교대로 먹고 나머지는 태선이 들어간 방의 바깥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태선은 김태희, 박말복 등과 함께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그러고 나서야 이하응에게 받았다는 선물을 꺼내놓았는데.
“이건 현판이군.”
“예, 이 집의 현판으로 쓰라면서 대원위 대감이 직접 써준 거라 합니다.”
“호오, 그런가. 대원위 대감은 소싯적에 글과 그림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세도정치 시절에 생계 유지를 위해서 난 그림을 자주 그렸다죠.’
흥선대원군의 호가 석파, 그래서 석파란이라 불리기도 하는 그것이다.
다만 그는 추사 김정희에게 배워서 글자도 잘 썼다는데 그 필체로 기다란 현판에 ‘금거당(僸岠堂)’이라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 편지도 같이 주셨습니다.”
“안 읽어봤는가?”
“당연하죠. 제게 보낸 것이 아니라 엄연히 매형에게 보내는 선물인데요.”
“크흠, 그렇기야 하구먼. 후, 열심히 글자를 배워둬서 정말 다행이야, 허허허!”
그래, 그건 정말 다행이다. 태선도 한자를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잘하지는 못했다.
하물며 한문 영역으로 가면 더욱 그렇고.
부스럭───!
이내 한쪽에서는 조카들이 루이스와 클락과 놀아주고, 이쪽에서는 태선과 샬롯 그리고 김태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박말복이 편지를 꺼내서 읽었다.
‘뭐라고 적혀있기에 표정이 저렇게 애매하냐.’
흥선대원군의 사랑채에서 나와서 그 집 총관이 전해주는 선물을 받았을 때 현판인 걸 알고는 당황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현판과 함께 편지를 주기에 더욱 그랬다.
‘이건 100퍼센트잖아. 뭔가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
대체 무슨 메시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