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92
192 시속 11킬로미터(1)
전생의 역사에서 조선에서 선교사의 포교가 합법화된 건 수교 조약의 결과였다.
‘애초에 전생의 역사에서 그 조약은 조선에게 일방적으로 불평등했지.’
심지어 최혜국 대우 조항도 있었는데 포교 합법화 같은 조항이야 있을 법했다.
그럼에도 조선 지도층이 종교적인 문제를 가볍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독교나 천주교의 교리는 조선의 신분제 규율과 유교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면모가 있었다.
우상 숭배로 보아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나 모든 사람을 평등하다고 하는 것이나.
‘반대로 그 덕분에 백성들 사이에는 일파만파 번졌지만······. 조선 지배층에게 눈엣가시인 건 이번 역사에서도 같을 거야.’
솔직히 조약을 맺을 때 포교 자유를 허락하는 조항을 흥선대원군이 눈감아주고 넘어간 것이 의외였다.
‘병인박해 때 이미 선교사를 여럿 죽여서 외교적 부담 탓에 그런 것 같지만 이제부터는 또 이야기가 다르지.’
조약에서는 허락해주고 막상 실제 적용에서는 제약을 거는 편법이 동원될 수도 있다.
“제가 말한 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더 많은 길 잃은 양에게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 때로는 덜 말하는 것이 미덕일 수 있음을요.”
그렇기에 태선은 운현궁의 사랑채에 선교사들 중 대표 둘을 데리고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당부 사항을 전했다.
“자네가 포교의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걸 알고 있네.”
“그래, 나도 라부르스트 대사에게 들었네. 그 기회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없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은 가급적 피하도록 하겠네.”
운현궁 뜰을 나란히 걸으며 영어로 답하는 둘은 오메르트 신부와 베드로 신부였다.
이 둘을 뽑은 건 영어가 가능하기에 자신이 동석하면 따로 통역이 필요하지 않기도 했지만 센스가 있달까.
말귀가 통한다고 할지 선교사임에도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감각이 있어서였다.
“여기에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이자 왕의 아버지인 대원위 대감이 계십니다. 그럼 따라서 들어오시죠.”
두 신부를 데리고 사랑채로 들어가자 늘 그렇듯 안쪽에 팔걸이에 비스듬히 기댄 이하응이 앉아있고 그 외 박규수와 오경석 등도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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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나중에 내 따로 연락을 줄 터이니 이만 가보도록 하게. 코쟁이들도 가보라고 하고.”
한동안 대화하고 난 뒤, 태선이 보기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그다지 심기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선교사들을 직접 대면하고도 폭발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긴 한데.’
따지고 보면 이런 박해 저런 박해로 선교사를 학살한 전례가 있었다.
선교사들은 애초에 포교하러 왔고 태선이 미리 입단속도 시켰다지만, 조선에서는 박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선교사들을 잡아서 족친 것도 이유가 있어서 그러지 않았겠는가.
‘사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사람들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색깔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기독교나 천주교 계통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이슬람교 수준은 아니겠지만 이들도 아무리 티 내지 않으려고 해도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뭔가 예수가 어쩌고 하는 색이 묻어났다.
거기에 심지어 흥선대원군도 듣는 귀가 있는지라 은근슬쩍 선교사들에게 제사나 인간 평등에 대한 부분을 떠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간에서 내가 통역을 해서 희석시키고 완곡하게 이야기를 전했다는 거.’
그리고 조선인으로 사랑채에 같이 들어온 사람 중 오경석과 박규수도 영어가 가능했지만 이들도 개화를 바라는지라 굳이 태선이 의역한 부분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않았다.
“으흠! 뭘 하고 있는가. 어서 가보래도.”
그 결과로 흥선대원군이 선교사들의 무슨 활동을 하는지 들었는데도 이 정도 불쾌한 기색만 띠고 끝났다.
“이만 일어나세, 우담.”
혹여 흥선대원군의 심기를 거스를세라 미적거리는 태선에게 박규수가 말했다.
오경석은 이미 두 선교사를 직접 데리고 나간 후였다.
‘예상한 결과보다는 낫긴 한데··· 그대로 이대로 그냥 물러나기에는 리스크가 있어.’
갑자기 말을 바꿔서 선교는 없던 일로 하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물론 이미 수교를 맺고 각국 대사들이 들어온 마당에 이제 와서 그렇게 말을 바꾼다고 간단히 끝나지는 않을 거다.
그야말로 서구 열강이 더욱 명분도 섰겠다 힘으로 밀고 들어와 버릴 수 있지만 그건 태선이 바라는 결과는 아니었다.
‘그 선물이 준비된 시점이 지금이라 다행이야. 살짝 노린 것이지만.’
“제가 미처 전해드리지 못하였는데 이제야 대원위 대감에게 특별히 진상할 물건이 준비되었습니다. 오늘 가져왔는데 혹시 보시려는지요?”
가보라는 신호를 대놓고 두 번이나 받았는데도 태선은 나가지 않고, 오히려 같이 나가지 않겠냐는 듯 물었다.
다른 이라면 감히 흥선대원군에게 할 수 없는 언동이었다.
“······.”
당장 박규수만 해도 옆에서 흠칫 굳었다.
조대비에게 신임을 받아서 초고속 승진을 한 박규수다. 흥선대원군에게 경복궁 중건을 맡으라는 특명을 받을 일을 비롯하여 신임 받는 신임받는 그조차도 이러했다.
“이 물건은 지금으로서는 불란서국에서도 보급되지 않은 물건입니다. 만들려고 하고 있을 테지만 몇 대나 있으려나요.”
그럼에도 태선은 주눅 들거나 사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그 선물을 어필했다.
“우, 우담. 그만하시게. 송구하옵니다, 대원위 대감. 제가 우담에게······.”
급히 자기가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박규수가 나서는 그때.
“그 불란서국에도 몇 대가 없다는 말인가. 불란서국의 왕도 누리지 못하는 것인가?”
“제가 불란서국을 떠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뜻밖에 흥선대원군이 관심을 보였다.
그런 모습에 박규수는 의외였는지 예의에 어긋날 수 있음을 잊기라도 했는지 잠시 흥선대원군을 빤히 쳐다봤다.
“아울러 이 물건은 가지고 있음을 보이는 건 대감의 위신을 크게 올려줄 것입니다.”
“호오, 보이는 것만으로 내 위신을 올려준다?”
“예, 그 탓에 전구, 전기, 화장실 등은 바로 설치해드렸지만 이건 준비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지요.”
그렇지만 선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별개로 이미 서구 문명은 흥선대원군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 터였다.
처음 태선이 건넨 사진첩을 봤을 때만 해도 무척 놀랍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기, 전구, 화장실, 수도관, 보일러 등을 경험하며 직접 목도하니 그 이상이란 걸 체감했다.
하물며 지금 태선이 말한다, 이제 선물할 물건의 감상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하긴 나도 궁금하긴 하군. 준비 기간만 몇 달이나 걸린 선물이라니······. 대체 무엇인고.’
“자동차라는 것인데 미리 에디슨을 시켜 밖에 준비시키라 일러뒀습니다. 혹시 오늘이 때가 아니라 생각하신다면 다시 준비할까요?”
“아니, 기왕 들여왔다 하니 나가보도록 하지.”
이제 와서 슬쩍 빼자 흥선대원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봐라, 태선이 에디슨을 시켜서 무슨 물건을 가지고 오게 하였다는데 왔느냐?”
“예, 궁 밖에 대기하고 있는 것을 대원위 대감에게 진상할 물건이라 하여 일단 안으로 들여놨습니다요.”
“호, 그래? 가보자꾸나. 어서 안내하거라.”
사랑채에서 나오자마자 이하응이 총관에게 물었고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
흔히 흥선대원군이라 하면 나이든 노인을 떠올리고는 한다. 사진이 그런 사진만 남았으니 그러리라.
그렇지만 그도 사람이다. 어린아이였던 시절도 있고 청년 시절도 있었고 남자로서 절정기에 다다른 중년 때도 있었다.
‘1867년 올해로 흥선대원군 이하응 나이가 46세였나. 한창 날릴 때지.’
“호오, 이게 그 물건인가?”
그렇기에 태선이 준비한 선물을 보고 흥선대원군이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바퀴가 달렸군. 거기에 이 재질은 쇠인가? 마치 중무장한 병사처럼 굉장히 두텁고 반듯하고 번지르르하군.”
자동차를 처음 목도한 흥선대원군의 소감이었다.
표정에 감탄 어린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만 이건 그럴 만도 한 것이 모델T만 해도 그럴 텐데 이건 태선이 특별 제작한 디자인으로 뽑은 거라 뭇 남성의 마음을 자극하는 감성이 있었다.
‘그게 바로 지프차니까.’
단순하면서도 터프한 차체 프레임은 바로 지프의 그것이며 타이어 역시 기존보다 더 커서 산악용 오프로드의 스타일이 물씬 풍겼다.
사실 이건 단순히 미관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조선에서 마차가 사용되지 않은 이유, 뭐 말이 비싸서 그렇기도 하지만 길이 험해 바퀴나 차체가 잘 상해서 그렇다지.’
더구나 승차감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터.
태선이 처음 뉴욕에 가서 마차를 타느라 엉덩이를 혹사 당했는데 조선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할 터였다.
그래서 말을 직접 타면 탔지 자연스레 마차는 없어지면서 가마를 운행하게 됐으리라.
‘그렇지만 자동차가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더구나 타이어도 보강하고 내가 특별히 지시해서 웨스 녀석이 서스펜션에도 굉장히 신경 썼으니까.’
“헌데 수레는 말이나 소가 끌어야 하지 않나? 여기 어디 연결하는가?”
외관에만 감탄하며 구경하던 흥선대원군이 그제야 실용적인 면에 대해 물었다.
기다렸던 바이기도 하다. 자동차의 가장 쇼킹한 면이 바로 무엇인가.
그건 자동차란 말 그대로 말이나 소의 힘 없이도 연료를 소모하여 자동으로 동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니.
“말씀드렸듯 이 물건은 자동차라고 하옵니다. 이름 그대로 자동으로 움직이기에 말과 소가 필요 없는 것이지요.”
“?”
태선의 말에 흥선대원군이 태선을 가만히 쳐다봤다.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괜히 또 기분이 상해버릴 수 있으니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정말로 우마 없이 연료를 투입하면 차 내부에서 스스로 바퀴 굴리는 동력을 만들어냅니다.”
“허, 정말인가? 정말 이 금속 수레가 우마도 없이 알아서 움직인다고?”
두 번이나 쐐기를 박아주자 그제야 흥선대원군은 사실을 인식하고는 재차 놀랐고.
“아, 혹시 이 자동차에도 전구를 켜는 그 전기를 쓰는가?”
박규수 역시 물었다. 높은 분들이 있는 자리인지라 입은 못 열어도 운현궁의 하인들도 저희끼리 수군거렸다.
“전기와 다릅니다만 사실 복잡한 장치와 원리가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한 번에 설명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준비하느라 시간이 걸렸지요.”
“하긴 태선 자네 말로는 불란서국의 왕도 이 자동차를 못 구했다면서? 그렇다면 원리가 간단할 리 없지.”
선망과 동시에 열등감을 느끼는지 흥선대원군은 자꾸 서구 국가와 비교를 했다.
특히 선교사와 만난 이후로 병인박해 사건도 있고 그래선지, 이전에는 영국을 입에 담았다면, 이제는 프랑스를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마당에 프랑스에 아직 없는 걸 자신이 갖게 되었다니 뽕이 차오를 만도 하지.
‘엄밀히 말하면 지금쯤 슬슬 프랑스에서도 자동차가 다니고 있겠지만.’
굳이 그걸 말할 필요 있나. 심지어 파리를 떠난 지 몇 달 되었는지라 라부르스트도 모를 터인데 말이다.
자신은 그저 나중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기 위해 지금 흥선대원군 뽕을 채워주면 된다.
“바로 운행할 수 있습니다. 타보시겠는지요?”
그걸 위해서 눈요기는 시켜줬으니 다음 순서는 당연히 직접 타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 지금 바로 자동차를 탈 수 있는가?”
“물론이지요. 그걸 위해 대원위 대감에게 선물로 드리려 가져온 것을요.”
“하하, 그러면 이걸 위해 몇 개월이나 준비했다는 자네의 성의를 봐서라도 타봐야지. 그래, 어떻게 타면 되나?”
“그럼 이쪽으로 오르시지요.”
태선은 직접 뒷좌석에 가서 문을 열었다.
차체 밑으로 깔린 발판을 밟고 뒷좌석에 앉으면 또 쿠션이 여태껏 조선에서 엉덩이를 댄 그 어느 방석과도 다를 거다.
“허어!”
역시나 앉자마자 나오는 흥선대원군의 탄성.
“어, 어떠십니까?”
밑에서는 박규수가 자신은 오르지 못한 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묻는다.
“정말로 푹신하구먼.”
등받이에 편안히 기대며 흥선대원군은 이어서 고개를 젖혀 하늘을 봤다.
그렇다, 이 자동차는 천장이 없는 오픈카였다.
사실 지금 조선에서 고속 주행할 일은 없었다.
‘평소 다니는 길을 생각하면.’
도성 내 비포장길을 적당한 속도로 오가거나 혹은 신기한 문물을 보이기 위해 퍼레이드라도 하듯 다니게 될 건데 자신을 과시하려면 얼굴을 보여주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군. 이게 자동으로 움직이기까지 한다고? 마치 정자에 구름을 깔아서 움직이는 기분일 듯한데.”
확실히 흥선대원군의 취향은 제대로 저격한 것 같았다.
“에디슨, 간단히 드라이브할 코스는 살펴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