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98
198 궤도에 올려놓다(2)
“드디어 시작인가.”
개화승 이동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왜냐하면 조선 팔도에 철로 놓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시작’보다는 ‘속행’이나 ‘확장’이라 하는 편이 더 맞았다.
“에디슨 사장님이 직접 맡으셔서 경인선을 바로 얼마 전에 완공하셨지.”
자료 수합에 실사 조사가 끝나자마자 착수하여 불과 8개월 만에 철로를 완공했다.
“사다리를 바닥에 깔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기다란 지네를 납작하게 눌러놓은 것 같기도 한 이상한 형태였는데.”
하지만 그 위로 기차란 것이 달리면 하루만에 부산, 원산, 의주까지도 갈 수 있단다.
믿기 어려웠지만 그 기차를 조만간 들여올 예정이라니 직접 볼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동인을 비롯한 조선토목회사에 1기로 입사한 멤버들은 참관했다.
공부하고 지도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행이야. 사장님께 직접 받은 이 수첩과 만년필 덕분에 필기하기가 한층 수월해서.”
설명을 들으며 그걸 뭐라 적을지 요약하는 건 두뇌로 하는 일이라 치자.
먹과 붓 그리고 화선지로는 도저히 보고 들은 내용을 실시간으로 적을 수 없을 터였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만약 기차까지 놓이면 얼마나 편해질지.
그것이 이동인의 가슴에 더 열정의 불씨를 지폈지만 한편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인부나 자재야 회사에서 준비해주었지만 자신의 일은 감독.
“에디슨 사장님이 하시는 걸 봤지만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러나 약한 마음은 곧 치워버렸다.
“그래, 열심히 공부했잖아. 그동안 에디슨 사장님은 물론 우담 사장님께도 물어가며 배웠고 동료들끼리도 같이 의논하고 토론하기도 했었고······.”
뭣보다 에디슨을 비롯하여 고문을 맡은 웨스팅하우스나 맥심이라는 분이 직접 돌아다니며 공사 상태에 따라서 조언을 해준다고 했다.
오히려 이 또한 다음 사업을 위한 큰 공부로 여기라는 말을 우담 사장님이 직접 하면서 격려해주기도 했다.
어쩌면 그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그래, 뭐가 됐든 최선을 다하면서 하자. 철로 공사가 됐든 그걸로 경험을 쌓든 우담 사장님께서 따로 맡긴 일이든!”
설령 잘못되더라도 뒤에서 사장님과 고문들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잘못을 바로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봐, 동인이. 늘 일찍 나오더니 아직도 안 나오는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
“지금 나가네.”
마음을 다잡은 이동인은 조선토목회사 기숙사에서 나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벌써 1년 넘게 기숙사에서 묵고 있는 대다수가 저마다 씻거나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의복을 다듬거나 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자신처럼 마음을 다잡았는지 표정에서 의연한 결의가 보였다.
‘처음 수합 작업을 할 때는 확신을 못 가지던 동기들도 지금은 나 전혀 달라졌군.’
이제 그 수합 작업의 결산을 보는 또 다른 시작의 날이라 그런지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기들도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인지 이동인의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붙였다.
“허, 처음 왔을 때 누구보다 가장 확신을 가지고 열중하던 자네가 지금은 거사를 앞두고 긴장한 듯 보이네만?”
질 수 없지. 이동인은 그 농담을 너스레로 받았다.
“당연히 이런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하지 않았겠나. 자넨 반대로 태평하군.”
“하여간 말로는 당해낼 수 없구만. 가세나. 회사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출발하세. 자네와 난 영남 쪽으로 가야 하니, 같은 방향이 아닌가.”
“그러세나. 그나저나 오늘 조식이 뭔지 아는가?”
“아, 오늘은 서양식으로······.”
그렇게 앞으로 몇 년은 보지 못할 동기들과 함께 식사하고 준비를 마친 뒤 마침내 담당 받은 공사 지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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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시지요.”
“허허허, 뭘 이런 걸 다. 흠, 그래도 성의가 있으니 내 챙겨놓기는 하겠소.”
“그야 물론이지요. 안 받아주셨으면 제가 섭섭했을 겁니다.”
자신이 맡은 지역인 부산에 내려가 이동인이 가장 처음 한 일은 사회 통념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방금 동래현감에게 넘어간 궤짝에는 엽전 꾸러미가 들었다.
즉 뇌물이었다.
“안 그래도 내 한성에서 대원위 대감이나 여러 정승께서 직접 보내신 서찰도 받았소. 조선토목회사랬나. 철수레 달리는 길을 만든다면서요?”
“예, 그러하옵니다. 편지를 받으셨다니 잘 아시겠지만 대원위 대감께서도 아주 신경 쓰시는 대업이지요.”
당근과 채찍, 거기에 이곳 동래현 현감은 안 좋게 말하면 기회주의적이고 좋게 말하면 이런 쪽으로 말이 잘 통하는 부류의 원님이었다.
“하하하, 알겠소. 내 향리나 토호들에게도 잘 말해두리다. 그래도 뭔가 불편한 것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시오.”
“살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제대로 한번 자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크흠, 뭘 또 그렇게. 허허, 동래의 정세는 내가 잘 아니 손님을 맞는 예로 일단 내가 대접하외다.”
그렇게 일어나려다가.
“아, 깜빡할 뻔했군요. 우리 회사의 사장님이자 대원위 대감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우담 사장님으로부터 특별히 부탁드리는 일이 있습니다만.”
“오, 그래요? 그래, 내 무슨 일을 도와주리까?”
“특별히 뭘 도와달라는 말은 아니고 몇 달 전부터 서양인 선교사가 왔을 겁니다.”
“아, 그 코쟁이들 말이지요. 그래, 왔었지.”
“잘 살펴주시지요. 그냥 하는 말은 아니고 그들을 살피시려면 노고가 이만저만 아닐 테니 사장님께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도움 될만한 것들이면 말할 것도 없이 뇌물이었다.
“에이, 그런 걸 안 주셔도 괜찮은데. 그래도 성의가 있으니 주면 안 받진 않겠지만······.”
선교사들은 일반 백성들마다 가슴 속에 중세적인 마인드를 깨트리게 해줄 씨앗을 심어줄 이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뇌물이 잘 통하는 이라 다행이다.
‘청렴결백한 자가 현감으로 있었다면 뇌물을 안 받았겠지. 조선 백성들에게 널리 근대적인 인식을 교육하는 일도 더 요원해졌을 터이고.’
“아무튼 그 일도 내 각별히 신경을 쓰겠소. 아, 그러고 보니 과거 시험에서 낙방하던 놈들 가운데 괜히 선교사들을 괴롭히는 젊은 놈들이 있던데 안 그래도 내가 혼쭐을 내주려 했거든.”
그렇게 동래현감을 만나고 나온 뒤 이동인은 직접 향리와 토호들을 찾아갔다.
동래현감은 향리나 토호에게 자신이 챙겨준다고 했었지만 정말로 그럴지 혼자 다 먹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 종종 찾아뵙고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허허, 한양에서 와서 그런지 과연 예의가 바르구먼. 언제든 오게나.”
그렇게 뇌물을 또 한바탕 돌리면서 지역 유지들에게도 눈도장을 제대로 박았다.
마지막으로 동래에 내려온 선교사를 찾았다.
“우담 사장님께서 선교와 아울러 백성들에게 근대적 교육과 위생에 신경 써주시길 부탁하며 드리는 자금입니다. 요긴하게 써주십시오.”
“사장님이요? 아, 혹시 태선 킴 사장님 말씀이십니까?”
서양에서는 성과 이름을 반대로 말한다는 건 이미 들었다. 어눌한 한국말로 묻는 선교사에게 이동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이곳은 제 거처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곳으로 연락주시죠.”
알려준 건 동래에서도 꽤나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개인 재산이 아니라 조선토목회사의 소유였지만 아무튼 이동인이 철로 공사를 맡는 동안 묵을 곳이었다.
‘후우, 이걸로 우담 사장님께서 맡긴 일은 일단 해뒀고.’
동래현감과 지역 유지들에게 뇌물 뿌리고 선교사에게 자금을 전하느라 정작 며칠 동안 공사 현장도 못 가봤다.
‘내일부터 진짜 제대로 일을 시작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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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동인은 결심대로 현장에 나갔다.
당연히 오늘부터 작업을 할 거라고 미리 인부로 동원될 자들에게 통지를 했다.
그랬더니 제법 많은 자들이 나와서는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뇌물 효과 한번 확실하군.’
“오셨습니까요, 나리. 쇤네는 부산관아 소속 관노비인데 여기 공사에 동원되는 노역자들을 통솔하여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요.”
개중 수염이 덥수룩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자가 동굴처럼 울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칼 하나 차면 산적을 해도 어울리겠지만 교육을 잘 받았는지 예의는 깍듯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하오. 자재는 어디 있소? 회사에서 미리 내려보냈다고 들었소만.”
“예, 원래 관아와 몇 군데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을 오늘 여기로 옮겼습니다. 저기 쌓아뒀으니 보시지요.”
가서 보니 자재 수량이 딱 맞지는 않았다.
‘쯧, 슬쩍 해먹었구먼.’
그래, 뇌물도 넙죽넙죽 받아먹는데 안 빼먹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사실 보내면서 태선도 그걸 알려줬었다.
동시에 공사에 차질이 없을 정도라면 일단은 눈감아 주라고 일렀다.
당장 그들의 협력이 없으면 공사 자체가 어려울 수 있으니 모른 척하자는 것이었다.
‘대신 공사가 끝나고 나면 제대로 털어먹을 거라고 하셨지. 하나씩 하나씩 갈라쳐서. 후우, 일단은 넘어가주자.’
“그럼 무슨 일을 할깝쇼?”
“이곳 지리에 밝은 자를 포함하여 몇 사람만 뽑아서 자네는 나를 따라다니며 길에 말뚝을 박으면서 밧줄로 연결해서 표시를 하세나.”
“알겠습니다요. 말뚝, 밧줄은 얼마나 준비할까요.”
여차저차 해서 철로 공사를 시작했다. 첫 작업은 지도에 표시한 철도 경로의 표시.
“자, 이제 인부들더러 우리가 표시한 이 선을 중심으로 폭이 최소한 열 자쯤 되도록 땅을 파도록 해주시오.”
그런 다음 땅을 깊게 파게 하고 자갈을 채우고 일정한 길이로 자른 나무를 박도록 하고.
“거기 쇠를 연결하는 부분은 조금 느슨하게 하도록.”
까앙──! 까아앙───!
대장장이 일을 아는 자들은 쇠를 운반하여 맞추도록 하고.
“치수는 정밀하게 재서 다 표시를 해두게나.”
목수를 하던 자들은 치수를 재게 하여 나무토막 위쪽으로 철로를 놓으며 대충 모양이라도 갖추고.
한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거기서 교정해나가고.
‘이 부분은 에디슨 사장님 작업을 보면서 기록해둔 걸 봐도 헷갈리는데.’
“나리, 여기는 어떻게 할깝쇼?”
“거긴 그냥 두게나.”
“알겠습니다요.”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부분은 나중에 에디슨이나 고문이 왔을 때 묻기로 하고 남겨두었다.
이렇게 대구까지 예정된 경로에 따라서 이어가야 한다.
‘대구로 간 동기 녀석은 잘하고 있으려나 모르겠구먼.’
그렇게 작업을 감독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물론 낮에만 일하고 저녁이 되면 쉬었지만 이따금씩 밤에 특별 이벤트가 발생했다.
아니, 이따금도 아니고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이벤트였다.
“오, 어서오시게, 천호. 하하, 일단 한 잔 받으시게나.”
“이거 전 출가한 몸이라 술 마시면 안 되는데요.”
“예끼, 이 사람! 이미 그 목구멍으로 넘어간 술이 몇 말인지 다 아는데?”
“그럼 현령님이 주시니 부처님께 잠시 용서를 구하지요. 아미타불······.”
“하하하, 역시 천호 자네와 같이 술을 마시면 재밌다니까!”
바로 술자리였다. 특히 동래현감은 술을 좋아했는데 마치 이러한 일이 있으리라 예상했다는 듯 한성에서 내려갈 때 사장님이 일러줬다.
그러니까 에디슨 말고 우담 김태선 사장님이.
‘이 술자리 또한 일의 연장이라고 하셨지.’
조선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일이라고, 그리고 이동인 역시 체감했다.
동래현감과 술자리를 가지면 가질수록 일이 더 수월해지고 아울러 그가 술자리에 부르는 사람들이 죄다 인근 지역 유지라서 들어오는 정보가 많았다.
“크, 술맛이 좋군요. 이런 좋은 술은 어디서 구하셨는지요?”
물론 그에 더해 아까 말은 출가했다고 하지만 정작 이동인도 술을 좋아했다.
그러니 결국 이건 업무에도 유리하고 명분에도 맞고 개인 취향에도 딱 맞는 삼위일체.
“하하, 그게 일본 술이라네. 밀무역을 하는 놈을 잡았는데 제발 용서해달라면서 이것저것 내주는데 이 술맛이 어찌나 기똥차던지 내 자네와 마시려고 벼르고 있었다네.”
“허, 그랬군요. 왜놈들이 생선만 잘 낚는 줄 알았더니 술도 꽤 잘 빚는가 봅니다.”
“근데 또 들어보니 왜놈들이 빚은 술도 아니라더구먼. 서양 술이라던데.”
“예? 아, 그러니까 서양에서 들여온 걸 또 밀무역하던 술이 방금 제 목구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까?”
“그래, 바로 그거지, 하하! 그러고 보면 요새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일본으로 들락날락하는 서양배들이 많다고 하던데.”
‘일본에 가는 배들이 많다?’
일본 이야기로 화제가 길어지고 있다.
다만 이건 이동인이 술을 마시면서 동래현감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그 화제를 계속 물고 늘어져서였다.
왜냐하면 부산에 내려올 때 이동인은 태선으로부터 세 가지 명령을 받았다.
철도 공사 진행이 하나요, 현감을 비롯한 토호나 유지에게 뇌물을 주어 공사는 물론 선교사 활동을 돕는 것이 둘.
여기까지는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내려진 명령이고 동래를 맡은 이동인에게만 특별히 어떤 명령이 추가됐다.
‘일본에 대한 정보를 가능한 모아서 보고하라 하셨지. 사실 그걸 위해서 나를 믿고 일부러 동래로 보내셨다고 그러셨고.’
“참, 왜에 대해 이야기하니 말인데 그 소문 들었나? 그 뭐시더라, 아무튼 간에 작년에 에도 막부가 무너져서 왜놈들이 난리 났던 모양이거든.”
“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흥미가 생기는데 더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겠는지요?”
“왜? 거기서 돈 냄새라도 좀 나는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주자 자기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질까 싶었는지 동래현감의 입에서 정보가 술술 나왔다.
“하긴 나라가 뒤엎어질 때는 비집고 들어가서 돈 벌 구석이 많은 법이지. 지금 왜놈들이 딱 그런 모양일세.”
‘이거 우담 사장님께서 말한 정세 그대로인데 미래라도 보신다는 말인가. 참으로 놀랍군.’
“그 일본왕인가 하는 자가 천황을 칭한다던데 이건 사실인지 모르겠는데 영길리국과 불란서국에서 군사고문단을 초빙해서 육군과 해군이라며······.”
그렇게 이동인은 왜에 대한 정보를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귀담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