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21
021 채권전쟁(2)
“···놀랍군.”
“허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체이스와 에드윈은 숫제 방청객이 된 것처럼 감탄만 했다.
분위기를 휘어잡아 그 둘을 앉힌 뒤 태선은 전쟁을 화두로 대화를 주도했다.
물론 혼자 잘났다고 떠든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저들 입장에서 나는 무조건 배우는 입장일 수밖에 없어. 애초에 소개를 받으려고 미국에 왔다고 했으니 당연하겠지.’
하물며 이 두 사람이 가진 타이틀이 어떤가.
체이스는 현직 재무장관. 에드윈은 전직 법무장관에 대법관까지 지냈으며 내년에 전쟁부 장관이 되는 터였다.
것도 전쟁 중이라는 시기를 감안하면 책임이 막중하지만 그만큼 실세라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했네만 이렇게나 잘 이해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
“동감입니다. 거기에 중간중간 내보인 예리한 분석은 솔직히 말해서, 예상보다 이 나라나 이 전쟁을 잘 이해한 것도 같아 놀랐습니다.”
그렇기에 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리액션을 했고 그 결과가 지금 반응이었다.
뭐 리액션이 그냥 리액션이 아니긴 했다.
남북전쟁은 미국사에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1세기에 남북전쟁에 대해서 심층적인 분석이 나온 건 그래서였다.
그리고 태선은 그런 분석을 이따금 툭툭 던져줬다.
“놀랍구먼. 자네 미국 온 지 몇 개월밖에 안 됐다면서?”
“부끄럽지만 의원들 중에 뭣도 모르는 멍청이 같은 작자들보다 여기 킴이 훨씬 이 나라나 전쟁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전적으로 동감일세.”
그 결과 단순히 이야기나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도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정세가 더 잘 파악되었다.
감탄할 만도 했다.
“허허, 그래서 제가 말했잖습니까. 태선, 이 친구 아주 비상하다고 말입니다.”
그 두 사람의 반응에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시절 자신의 반응이라도 보는 기분인지 개리슨이 옅게 웃었다.
“에이,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랠스턴이나 개리슨이 제 견문을 넓혀주셨고, 오늘은 또 체이스 장관님과 에드윈 씨가 제 안목을 키워주셨습니다.”
슬슬 만남이 마무리될 이 시점에서 자신의 비상함은 충분히 보여줬으니 태선은 공로를 두 사람에게 돌렸다.
다만 이대로 끝나면 이번 만남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만나서 반가웠고, 잘 가.’가 끝이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기껏 왔는데 그렇게 끝내고 가면 좀 섭섭하지.’
방점을 찍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실체 있는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걸로.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느꼈습니다만 이 전쟁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전쟁은 전비의 싸움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번 전쟁은 채권 전쟁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돈이 들어올 구멍이라 해야 세금, 관세, 채권인데······.”
“세금을 올리는 건 무리지. 관세는 남쪽에 쥐고 있고 솔직히 우리 북쪽에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남는 건 결국 채권인데, 하아! 망할 은행놈들 그렇게 강짜를 부리다니.”
대화 흐름을 채권으로 다시 틀어놓자 예상했지만 어김없이 푸념이 이어진다.
더 놔뒀다가는 자신이 본래 하려던 말을 꺼낼 타이밍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특히 에드윈이 입을 열면 십중팔구 그렇게 될 것이다.
“그······.”
체이스에 이어 에드윈이 뭘 말할 조짐이 보이자 태선이 재빠르게 말을 가로챘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이번 전쟁의, 채권 전쟁의 기수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냥 말한 것도 아니고 목소리와 눈빛에서는 짐짓 단호한 의지마저 드러나보였다.
“······?”
“······?”
다만 그 말에 대한 체이스나 에드윈의 첫 반응은···예능 방송사고가 될 법한 긴 침묵이었다.
하기야 그렇지 않겠는가. 아무리 이 전쟁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어도 태선은 결국 외국인이니 말이다.
다만 이 신분의 한계는 언제가 됐든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기만큼 그 벽을 넘기 쉬운 순간은 없을 테고 말이다.
“제가 이 나라에 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회와 능력만 된다면, 여러분과 같은 미국의 구성원이 되고 싶을 정도로요.”
법적으로는 시민권을 얻어야 하리라. 이 시기에도 시민권 제도는 정립되어 있지만 다행히 아직 그 자격이 엄격해지기 전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 명의 평범한 이주자와 국가가 나서서 환영할 인재는 다른 법.
비록 총과 칼로 함께한 전우가 아닐지라도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원자 중 한 명이라면?
‘내가 사업을 하든 석유왕을 하든 정치판에 나서든 아무도 태클 못 걸지.’
물론 그 와중 큰 돈을 버는 것과 더불어 인맥 쌓는 것도 빠짐없이 챙길 수 있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고 보니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군주 중심의 왕정제에 신분제 국가라고 들었는데 이해도 되는군.”
체이스과 에드윈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심정적으로 납득하는 게 아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은 실전’이라고.
이들의 이해와 감정도 잠깐이다. 자신이 이 판에 끼려 제대로 된 뭔가를 내놔야만 한다.
“그래서 말인데 채권을 은행들에게 한 번에 많이 파는 게 아니라 개인들에게 파는 전략으로 가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본래 역사에서 전비 문제를 돌파한 방법을 말했다. 일단 체이스나 에드윈은 서로 쳐다보며 미묘한 반응.
그러더니 계속 해보라는 듯 태선에게 시선을 옮겼고, 태선은 왜 이 방법을 취해야 하고 어떤 득이 있는지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체이스나 에드윈의 반응은 미묘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태선은 눈치를 챌 수 있있었다.
‘반응이 애매한 걸···. 제이 쿡에게 이미 들은 모양이야.’
“재밌군. 자네와 같은 방법을 제안한 사람이 이미 있었거든. 에드윈 자네도 아마 그 자리에 있었지.”
“예, 필라델피아의 은행가가 같은 말을 했더랬죠.”
“그래. 뭐 솔직히 은행들이 거절한 터에 길은 그것밖에 안 남기는 했지.”
‘역시나, 한발 늦었군. 그치만 뭔가 반기는 방법은 아닌 걸 보면··· 아직 방법은 있다.’
다만 체이스와 에드윈이 주고받는 말에는 어쩔 수 없이 택하는 방법이라는 뉘앙스가 배어 있었다.
‘당신들이 반기지 않는 그 방법이 최선이겠다만··· 지금 말해봤자 알 턱이 없지.’
좋게 쌓아가는 이미지를 예언가 따위의 사이비로 떨어트릴 순 없다.
대신, 준비한 또 하나의 전략을 꺼낼 뿐이다.
“참! 불런 전투 말입니다만.”
문득 생간난 척하며.
“아까 두 분께서도 말씀해주셨지만 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가 군복 때문이라고 하지 않으셨는지요.”
“···하아, 그랬지.”
태선이 이 이야기를 꺼내자 체이스와 에드윈은 씁쓸히 한숨 지었다.
놀랍게도 이 당시 북군이고 남군이고 둘 다 통일된 군복이 없었고 그 탓에 피아 구별이 굉장히 어려웠다.
하물며 수적으로 북군이 더 우세인데 그런 식으로 난전이 되어버리는 건 좋을 게 없었다.
“이번에 유니온 은행 동부 지점을 설립하면서 인수한 곳이 담보로 피혁 공장을 받았더군요. 허락만 해주시면 군복을 납품하겠습니다.”
“군복 말인가? 하긴 그때는 민병대 위주여서 막 입었다지만 전쟁이 길어질 듯하니.”
즉 말하자면 채권 판매 받고 군복까지 따블로 가!
···가? ···가냐?
체이스는 에드윈과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이윽고 태선을 보며 말했다.
“자네 식견에는 놀랐네만···. 이야기를 다하고 보니 아무래도 마지막 말에 본래 목적이 있던 모양이군. 그래도 내 주의를 끄는 일에는 성공했어.”
···오, 가나? 가는 건가?!
“말했듯 채권에 대한 문제는 제이 쿡이란 은행가가 먼저 제안했었다네. 그와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듯하군. 다시 사람을 보내지. 답은 그때 주도록 하겠네.”
뭐 말하자면 삼자대면을 해보자는 거였다.
이 정도 성과라면 나쁘지 않았다. 일단 말미가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더 철저한 준비를 하기에 충분하니까.
***
역사를 안다는 건 굉장히 큰 힘이 된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어떤 사건이 진행됨에 있어 결과적으로 열매 맺는 형태를 안다는 것.
“홀홈 부지점장님, 사람을 모집해야겠습니다.”
전에 펜&홀홈 은행이었으나 이제 유니온 은행 동부점이 된 건물의 점장실.
파트너이자 지점장인 개리슨 대리로 일을 맡은 태선이 업무 보는 곳이기도 했다.
“사람을 모집한다고요?”
이곳에 부지점장으로 고용한 홀홈이 들어와서 태선의 말을 듣고는 의아함을 표했다.
“딱히 일손이 부족하거나 하지는 않는데······. 어떤 사람들 말씀이신지요?”
어찌 되었건 사람을 뽑는다고 치자. 은행에서 사람을 뽑으니 하다못해 셈을 잘한다거나 그런 사람일 것이다.
묻기는 했지만 그런 답이 나오리라고 예상한 홀홈 부지점장이었다.
전격적으로 은행을 인수한 것처럼 아마 규모를 확장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예상하면서.
“잘생기고 언변이 좋은 사람들로 공고를 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잘생기고 언변 좋은···예?”
그렇기에 태선의 말을 듣자 홀홈은 사뭇 놀랐다.
잘생기고 언변 좋은 사람을 뽑으라니 설마 은행을 극단으로 바꿀 생각인가.
“아, 이런. 단어 선택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군요.”
“하하,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 위주로 모집을 하면 됩니까?”
“잘생겼다기보다 외모가 믿음직스럽게 듬직한 사람들, 물론 언변은 좋아야 하고요.”
다만 이어지는 말에 홀홈은 재차 어이가 없었다.
이건 잘생겼다는 기준이 세밀해진 것이지 그다지 바뀐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홀홈은 뭐라고 더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숫자는 어느 정도나 모집하면 될는지요?”
“많을수록 좋습니다. 사업의 규모를 수백만 달러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정도면 감이 오시요?”
“수···수백만 달러라고요?!”
홀홈이 눈을 부릅뜨며 기절이라도 할 듯 놀랐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수백만 달러가 뉘집 애이름도 아니고 엄청난 거금이었다. 어떤 물건을 비교 대상으로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21세기와 이 시기는 대략 200~300배 물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어마어마하다. 하기야 무려 미국 전체가 남과 북으로 갈려 싸운 전비이니 그럴만 하긴 하다.
“것도 시작이 수백만 달러인 것이고 차후 수억 달러까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체이스 장관이 제이 쿡에게 5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신규 발행하도록 주문했으니 이 또한 허언이 아니었다.
“수···수억 달러라고요. 와, 저로서는 감도 잡히지 않는군요.”
혹시 지금 이 사람이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드는 홀홈이었다.
허나 태선의 진지한 눈빛을 보니 결코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당장은 일의 규모가 커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일은 중요합니다.”
“아,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지점장 대리님 하시는 일에 차질이 없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준비 하나는 이걸로 안배를 깔아뒀고.’
홀홈이 나가자 태선은 새삼 구상을 되새겨봤다.
본래 역사에서 제이 쿡은 잘생기고 언변이 좋은 이들을 모집하여 각 가정에 방문케 하여 채권을 팔았다.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하여 영업원의 숫자가 2,500명을 넘을 정도였다.
‘제이 쿡···미안하지만, 사업 아이디어 좀 빌려 씁시다. 그래도 전쟁을 끝내려면 누가 됐든지 최종 테크 트리를 빨리 완성하는 게 좋잖아요.’
그걸 위한 첫 번째 준비가 가정마다 방문하여 채권을 팔 에이전트의 모집.
다만 유닛만 뽑으면 뭐하나. 유닛이 공격력을 짱짱하게 올려줘야 잘 싸울 수 있을 터.
사사삭── 사사사삭───
태선은 펜을 놀려 빠르게 적어내려가는 건 에이전트들이 가정마다 채권을 팔기 위해 쓸 전략이었다.
본래 역사에서 에이전트들은 애국심에 호소한다거나 하는 전략들을 사용했다.
그것도 물론 시간이 흐르며 수정하고 진화하고 좋은 건 덧붙이고 결과가 나쁜 건 빼고 한 결과였다.
다만 태선은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바로 최종 형태의 메뉴얼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뭐 잘 만든 사업 전략 그대로 갖다 쓰는 것도 미안하니, 내 숟갈 하나만 더 얹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