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23
023 기반(2)
태선이 마지막으로 가방에서 꺼낸 것은 옷이었다.
다만 평범한 옷은 아니었다.
“제복···인가?”
샬롯이야 같이 준비해서 왔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체이스와 에드윈은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개인에게 국채를 팔 계획을 잘 설명해놓고는.
갑자기 옷 한 벌을 꺼내는데 것도 그냥 옷이 아니라 의장용 같았기에.
“앞전 뵀을 때 군복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불 런(Bull run)에서 겪은 패배를 인용하면서 말이야.”
“예,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해서도 군복은 필요하지만 통일된 복장이 있어서 얻는 이득은 그뿐이 아니라 봅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겠다는 듯 체이스는 이내 수긍하면서 말을 받았다.
“소속감을 주거나 사기를 진작시키거나. 또 장교들에게는 권위를 세워주며 책임감 고취시킬 수도 있고. 예로부터 장교에게 의장용 군복이나 검을 지급해준 것도 그래서일 테지.”
“아울러 민간인에게 제대로 갖춰진 군대라는 걸 보여줘서 은근한 신뢰감을 주기도 하지요.”
그래, 군복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구나.
그랬으면 아무리 민병대 위주로 군대를 꾸렸어도 통일된 군복 정도는 마련할 것이지 왜 그걸 안 해서 불런 전투에서는 그런 사단을 냈을까.
아무튼 말이 통할 것 같으니 잘 됐다.
“앞서 개인에게 국채를 파는 데 있어 애국심에 호소하는 걸 중요한 전략의 하나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과 같은······.”
“···군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에이전트들이 가정에 방문해서 국채 판매를 호소한다?”
제이 쿡의 말에 태선은 바로 그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 이 또한 그럴듯하군요.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젊은이가 직접 호소하는 느낌도 들지 않겠는지요.”
“그렇군. 이거 이렇게까지 된다면 군복 납품에 대한 자네의 제안을 거부할 수도 없게 되지 않겠나. 치밀하구먼.”
사실 에이전트가 영업할 때 제복을 입고 하는 건 태선이 살던 21세기에는 그리 새롭지도 않은 전략이었다.
하다못해 미국에서 군인들 모집하거나 한국에서 ROTC 모집 때도 그러하지 않던가.
‘하지만 것도 이 시기 오면 획기적이게 된다는 말이지.’
뭐 남북전쟁 초기는 인식이 허술했으니.
첫 전투 때는 그걸 구경하겠다고 도시락 싸서 피크닉 간 시민들이 한 무더기였다는 충격적인 일화가 있을 정도.
거기에 환장의 콜라보로, 군인들도 자기가 속한 민병대에서 지급해준 의복이나 집에서 가져온 옷을 챙겨입었다.
“그러면 군복 납품을 허락하시는 건지요?”
“이 계획을 다 냈는데 자네 아닌 다른 누구에게 맡기겠나.”
“감사합니다. 이건 임시로 제작한 시제품이고 기능성과 비용까지 최적화한 모델로 다시 디자인하여 빠른 시일 내 보여드리겠습니다.”
“허허, 비용이야 그렇다 쳐도 기능성까지 잡겠다고?”
“물론이지요. 전쟁 중인 군인들이 입을 옷이 아닙니까.”
곡절곡절 맞는 태선의 말에 체이스와 에드윈은 이제 아예 변론가의 말을 듣는 청중이 된 듯 경청했다.
“전비도 중요하지만 뭣보다 현장에서 군인들이 쓰는 용품도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요. 그런데 군인이 쓰는 걸 자기 재산을 불리겠다고 불량으로 납품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지. 자네 진정한 애국······.”
체이스도 평소 맺힌 게 어지간히도 있던 모양이지만.
“암만!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시민권 따위 별 건가. 시민권을 가졌다는 놈들이 오히려 전쟁에 나간 젊은이들 목숨을 자기 돈 벌 수단으로 삼다니! 킴, 자네가 훨씬 낫지!”
돌연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체이스의 말을 끊어먹을 정도로 에드윈이 흥분했다.
‘이해도 가긴 해. 전쟁에서 삥땅쳐서 자기 재산 불린 인간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야.’
일단 원래 역사에서 군복 납품한 브룩스 브라더스가 허접한 군복을 납품했다.
그 결과 나중에는 군인들이 무릎이 다 헤진 군복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그 유명한 JP 모건은 불량 소총을 싸게 사서 되파는 짓으로 군인들이 막상 전장에서 제대로 교전하기도 전에 사고가 나서 부상을 입게 되는 일이 수없이 많았다는 일화는 굉장히 유명했다.
뭐 이 시점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안 봐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알려지지 않았을 따름이지 각자 영역에서 각자 방법으로 해먹고 있겠지. 전쟁 관련으로 해먹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구한 역사니까.’
“그건 반역 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전쟁 끝나면 그런 작자들에게 제대로 묻고 여기 킴과 같은 공로가 있는 자들에게는 제대로 상을······.”
그건 분노의 열변이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에드윈의 반응으로 잘 알 수 있었다.
“큼! 에드윈, 너무 흥분하지 않았나. 진정하게나.”
보다못해 체이스가 말렸다.
‘아니, 말리는 건 좋은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인가요. 분명히 방금 나한테 상을 줘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아, 죄송합니다. 킴, 그리고 샬롯 양. 내 흥분했었네. 정말 미안하네.”
“아닙니다.”
물론 태선은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시민권 없는 검은머리일망정 진정으로 이 나라를 걱정한다는 듯한 반응을 연기했다.
“저도 괜찮아요. 에녹 푸어 장군님의 핏줄을 이은 입장에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걸요.”
이어지는 샬롯의 대답.
“그렇지만 저야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것이 있더라도 여기 태선은 오롯이 보고 겪은 걸 기반으로 이 나라를 위해 그런 결심을 한 거예요. 부디 그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해요.”
다만 이어지는 말에 태선은 속으로 따봉을 보냈다.
‘나이스, 샬롯! 역시 비서로 뽑길 잘했어.’
솔직히 저걸 자기 입으로 말하기 난감하지 않겠는가.
“흠, 확실히 그렇긴 하군. 분명히 말하지. 자네가 이렇게나 공을 들였다는 걸 내 결코 잊지 않을 걸세.”
“나도 물론일세. 자네가 손해 보는 만큼 어떻게서든 만회할 수 있도록 내 돕겠네.”
“아닙니다. 이 나라 시민이 되려면 응당 할 일이지요.”
물론 그냥 하는 말이었다. 자신이 손해 본다? 이득을 챙기면 챙겼지,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뭐 그래도 챙겨주겠다는 걸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역사가 보증하는 이기주의자들보다 자신이 받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그럼 본론으로 돌와와서.”
분위기가 진정되자 체이스가 좌중을 돌아봤다.
“이 건은 킴이 짠 계획대로 추진하면 될 것 같은데 모두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재무장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걸 마치 킴이 구현한 듯합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체이스 재무장관의 말에 에드윈과 쿡이 동의했다.
“그럼 결론 났군. 그럼 국채 파는 일의 전권은 자네들 두 사람에게 맡기겠네. 공문서도 곧 보내도록 하지.”
***
제이 쿡의 은행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었다.
“오, 먼 길 와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와야죠.”
쿡의 집무실. 접객용 소파에 앉은 뒤에도 쿡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말을 이었다.
“유니온 은행 동부점은 얼마 전에 설립됐다며. 조직 편성만 해도 바쁠 것인데.”
“기반은 대충 갖춰뒀습니다. 거기에 저 없어도 부지점장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같이 온 잭이라는 분이 있어서 운영을 잘 해주셔서요.”
“큼! 으흠, 크흐흐흠!”
짐짓 옆에서 샬롯이 헛기침하자 태선은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업무가 차질 없이 되도록 행정이나 법적인 처리를 잘 해둔 샬롯의 공로를 잊을 수 없고요.”
“이거야 로렌스 양은 외모도 예쁜데 혈통도 좋고 일까지 잘하다니 너무 부럽구만.”
“후후, 그거 말고도 매력이 한가득인데 못 보여드려서 너무 아쉽네요.”
넉살 좋은 샬롯의 반응에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태선도 티키타카처럼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저도 샬롯을 데려오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노력을 말인가?”
“무려 조선에서 태평양을 건너오지 않았는지요. 이 정도 안 하고는 샬롯의 관심을 끌 수 없거든요.”
“하하하, 도저히 나는 안 될 일이로구먼.”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어느 정도 분위기가 예열되자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이게 현재 우리 은행 인원들과 대략적인 업무에 대한 개요인데······. 사실 자네 쪽과는 달리 이미 조직으로서 골격이 완고해진 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구먼.”
체이스, 에드윈과 두 번째 만남에서 태선은 자신이 준비한 계획을 설명했고 그중에는 조직 구성에 대한 것도 있었다.
사실 태선에게야 어려울 게 없었다.
유연하게 작동되는 조직의 구성과 운영은 태선에게는 쉬운 개념이었기에.
유니온 뱅크 동부점이 막 설립된 터라 아직 조직 구성이 형성하는 시점이란 것도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제이 쿡의 은행은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조직 개념에 대한 이해도는 둘째로 치더라도 중견 은행이라 오히려 어려웠겠지.’
사실 세상만사 단단해지면 그만큼 유연해지기가 힘든 것은 당연한 게 아니겠나.
“일단 전반적인 업무 경험이 있으면서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업무가 가능한 묶음으로 사람을 나눠보겠습니다.”
다만 전생에 행정학과 출신.
“그리고 마치 은행 안에 또 다른 작은 은행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팀을 만들어서 이들을 속하게 하고······.”
거기에 PD로 일하며 조직이 유연하게 굴러가려면, 아니 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소 체험한 태선이었다.
“판매해야 할 국채의 정리, 에이전트들이 판매한 국채를 정리하는 업무, 이자 지급에 관한 업무를 분리해서 이런 식으로······.”
단기간이었지만 보자마자 태선은 대략적인 조직 리빌딩··· 까지는 아니고 전담 팀을 꾸릴 컨설팅을 내놨다.
조직도를 그림으로 그려준 덕분에 쿡은 잠시 쳐다보더니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흠, 확실히 이렇게 보니 잘 정리가 되는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오히려 잘 모르는 게 도움이 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가. 하긴 내가 배웠고 해왔던 상식들······.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구먼. 덕분에 하나 배웠어. 이것을 부분적으로 잘 응용하면 조직을 훨씬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와, 벌써 응용하다니 무서운 양반일세.’
같이 일할 사람이 이렇게 응용을 잘한다면 좋다. 이제는 경쟁자가 아니라 한 배를 탄 입장이니까 말이다.
“그럼 서로 피차 에이전트의 면접도 있고 그들에게 매뉴얼을 가르칠 일도 바쁘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런, 벌써 가려는가?”
짐짓 아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제이 쿡이었다.
“다른 곳도 둘러볼 곳이 있어서요. 그리고 어차피 오지 말라 하셔도 이곳에는 자주 찾아올 예정입니다.”
“오, 정말인가? 그리 멀지는 않다고 해도 기차 타면 한두 시간은 걸릴 텐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연락 업무가 중요하니 뉴욕과 워싱턴 사이에 있는 필라델피아가 지리적으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말로 하면 거점은 분산되어있더라도 필라델피아를 콘트롤타워로 쓰자는 말.
다만 이건 핑계였고 태선으로서는 다른 뜻도 있었다.
‘펜실베이니아주에는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서 자주 와야지.’
일단 뉴욕에 거점을 잡기는 했지만 솔직히 거기서는 석유가 거의 안 나온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부터 동쪽에 있는 주로 갈수록 사정이 달라진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골드 러시가 있는 것처럼 이때 동부는 오일 러시가 있는데 그 중심이 바로 이곳 펜실베이니아주.
‘석유 뽑겠다고 하도 사람이 몰려들어서 작은 마을이 시로 승격한 타이터스빌도 바로 여기 펜실베이니아에 있지.’
어차피 국채를 팔기 위해 에이전트들과 함께 직접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는 와중 각 지역의 유전 정황도 살피고 등유를 빼내고 찌꺼기 취급 받는 석유를 싹 쓸어모으면 좋지 않겠는가.
그저 찌꺼기가 아니라 그것들이야말로 진짜 보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