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25
025 기반(4)
타이터스빌에서 돌아온 뒤 태선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위한 박차를 가했다.
덜컹───!
‘윽, 또 엉덩이! 하, 이러다 치질 걸리겠네. ···그러고 보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가? 항문에 마늘 넣는 민간요법 같은 것만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애초에 치질이 걸리지 않도록 자동차 발명 시기를 앞당겨야 하리라.
생각이 샜지만 아무튼 사업 기반을 위해 태선은 바쁘게 이곳저곳을 오가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일을 해야 하는 만큼 당연히 마차와 기차를 타고 다니는 중에도 쉴 시간 없이 서류를 검토해야 했다.
“저번에 맡기셨던 위탁판매 처리가 다 됐어요. 상호는 ‘킴즈 세일즈 스토어’로 했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샬롯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하다는 점.
···문득 샬롯에게서 위탁 판매 건이 처리가 되었다는 서류를 받아들었을 때,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지만, 내가 정말 해내고 있구나···. 킁, 암튼 지금은 위탁판매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여기서부터 석유와 정유를 쭉 먹어가는 거야.’
물론 그 와중 독점금지법을 피해갈 수 있도록 교묘하게 빌드업도 잘해야 할 것이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위대하리라.”
혼잣말이었지만 자못 태선이 결의 다지듯 중얼거리자 샬롯이 옅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후훗, 그거 우리 사업 두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어디까지 위대해질는지 저도 열심히 같이 달려드릴게요.”
“샬롯이 같이 달려주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죠.”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천군만마라는 동양식 표현을 영어로 풀어 샬롯에게 설명해준 뒤 태선은 혹여 대화가 삼천포로 빠질세라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자료는 아직인가요?”
“아, 지난번에 타이스터빌에서 알아봐달라고 했던 거 말이죠?”
“네, 뭐 그런 조사가 샬롯의 전문이 아니니 구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지만-”
척──!
태선의 말이 무색하게도 샬롯은 가지고 있던 수북한 서류 뭉텅이에서 귀신같이 하나를 빼서 태선에게 내밀었다.
“제가 지금은 태선의 비서로 있지만 원래는 법률사무소에 있었다는 거 있으셨어요? 그쪽 인맥도 이 샬롯이 아직 야무지게 쥐고 있답니다.”
“오, 역시 샬롯밖에 없어요.”
태선은 방금 그녀가 건넨 서류를 면밀히 살폈다.
창고를 매입하고 위탁판매 허가를 냈으나, 이는 구실과 겉치레만 갖춘 셈이었다.
석유업으로 가기 위한 내실을 갖추는 건, 바로 이 서류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번에 석유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고, 초기 사업은 일단 등유를 만들고 남은 것들을 비축한다고 하셨잖아요.”
“네.”
미안하지만 읽는 중이라 건성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냥 한탕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싸이클이 도는 사업을 하시려면 그 물량이 적지는 않을 거고, 그걸 위해 필요한 자금 이야기도 했었잖아요.”
“그랬었죠.”
다행히 살롯도 그건 이해해주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샬롯도 태선과 같이 다닌 지 시간이 꽤 됐고, 지금처럼 답을 대충 해도 다 듣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사업을 하려면 당장 손에 쥔 여윳돈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새 서류를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한 태선은 샬롯을 바라보며 더 얘기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창고 매입하고 의류회사 창립에 남은 돈을 투자금으로 쏟아내면, 태선이 가진 자금은 이제 없어요.”
“지금은 빠듯하긴 하죠. 일단 대출이라도 받는 수밖에는.”
“아니면 지금 너무 무리하기보다는 의류회사 투자는 미루는 것은 어때요?”
조심스레 샬롯이 물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그녀가 이 말을 꺼내는 건 이유가 있었다.
“아직 안 늦었어요. 굳이 회사를 차리지 않아도 로건 공장장이라면 군복 납품은 커버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로건 공장장에게 의류회사 설립에 대해 이미 말해뒀잖아요.”
“네, 그렇죠. 그래서 지금 계약하러 가는 길이지만 조금 미뤄달라고 말해도 로건 공장장은 이해해줄 텐데요.”
일전에 창고 매입 및 위탁판매와 함께 샬롯에게 의류회사 설립도 처리를 맡겨놨다.
지금 그 건의 마무리를 위해 가는 길이기에 샬롯이 말하는 것이었다.
물리거나 미룰 수 있다면 지금뿐이기에.
다만 그건 샬롯 생각이었고, 그런 일반적인 생각은, 태선의 몫이 아니다.
“준비가 좀 늦었는데 슬슬 이걸 보여드릴 때가 됐군요.”
이번에는 태선이 웬 서류를 꺼내서 들이밀자 샬롯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하여간 태선은 꼭 이런다니까. 보아하니 또 뭔가 수를 준비해뒀으면서 저한테 다 말해주지 않은 거였군요!”
“하하,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었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이제 다 돼서요.”
“칫, 준비가 좀 덜 됐어도 나한테는 알려주면 안 돼요? 같이 고민했으면 더 좋았잖아요.”
툴툴거리면서도 내심 궁금했는지 샬롯은 서류를 살펴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태선을 보았다.
“이건··· 특허 서류잖아요?”
“네, 역시 샬롯이네요. 바로 알아보다니.”
“흠, 텐트용 데님으로 만든 바지에다 구리못을 박고 이음매를 이중으로 댄 디자인이라.”
샬롯은 알고 있을까.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그 의류 컨셉이 앞으로 150년도 넘게 패션의 주류가 된다는 걸.
“더러운 게 묻어도 잘 티가 나지 않도록 파랗게 염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뭐 그런 부분은 캘리포니아 의류업자들은 이미 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특허는 우리가 먼저일 겁니다.”
“알겠어요. 돌아가는 대로 이 특허 서류 제출할게요. 이름은 뭘로 할까요?”
샬롯의 질문에 태선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 만약 지금 다른 이름을 부른다면 역사에서 이 의류는 다르게 불리게 될까.
“청바지(Jean)로 해주세요.”
그렇지만 괜히 역사를 뒤틀어버리느니 태선은 무난하게 본래대로 가기로 했다.
‘원래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챙겼어야 할 특허를 내가 가져가버린 건 좀 미안하지만.’
청바지로 유명한 의류회사 리바이스는 이 시기에도 있었다.
심지어 창립자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지금보다 8년 전에 이미 태선이 거쳐온 샌프란시스코에 회사를 냈었다.
청바지 원류인 텐트형 천을 이용한 바지를 지금도 광부에게 불티나게 팔고 있으리라.
‘청바지 같은 질긴 재질을 군용으로 납품한 건 더 나중의 일이겠지만.’
지금 당장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에 태선은 특허를 내는 김에 군납도 함께 하기로 했다.
대신 본래 그의 몫이 될 걸 가로챈 격이 되었으니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언제가 됐든 샌프란시스코에 들러서 제대로 챙겨줄 생각이었다.
다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챙겨주려면 지금은 당장 자신의 사업부터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
사락── 사락──
그 사이 샬롯은 청바지 특허 서류를 다시 훑어보고 있었는데 사뭇 다른 평가를 하게 됐는지 중얼거렸다.
“흠,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적혀있는 대로 질기고 오염에도 강하면 군납으로는 확실히 수요가 크겠네요.”
그야 이를 말이겠나. 질기고 더러워져도 대충 입을 수 있는 그 특성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인데.
“더구나 이거 생각보다 따라하기도 쉬우니 특허를 낼 만한 이유가 있긴 하겠어요.”
“그렇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랍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면 또 뭔가가 있다는 말인데··· 샬롯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자 태선이 웃으며 말했다.
“군복으로 쓰기 전에 우리 사업을 위해 이게 협상의 패로 꽤 유용할 거거든요.”
다만 이어진 말은 오히려 샬롯의 궁금증을 더할 뿐이었다.
***
유니온 은행 동부점의 전신이었던 펜&홀홈 은행에서 담보로 잡았던 피혁 공장.
그곳의 공장장이자, 사장이 도망쳤는데도 계속 남아서 공장을 지켰던, 한 남자.
“미··· 믿기질 않는군요. 제가 사장이 되다니.”
잭 로건 공장장은 방금 막 태선과 계약서를 쓴 참이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투자금은 혼자 다 대셨는데 저를 사장으로.”
“저도 아예 감투 없는 건 아니고 투자자이지 않습니까.”
태선은 옅게 웃으며 서류를 샬롯에게 넘겨주고는 잠깐 같이 걷자는 듯 일어섰다.
같이 거닐며 태선은 그에게 말을 이었다.
“더구나 정작 사장은 도망쳤는데도 로건 씨는 이곳을 지켜오셨습니다. 그런 분이면 믿을 수가 있죠.”
기실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세운 회사, 달리 말하면 회사의 전권을 가진 투자자 또한, 태선 자신이다.
바지 사장은 아무나 세워도 상관없었지만, 굳이 공장장 잭 로건을 택한 건, 사장인 태선보다 더 회사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운영하겠습니다.”
“네, 물론 그러셔야죠. 그건 그렇고 저번에 제가 말씀드린 물건은 완성됐나요?”
“아, 그 청바지 말이죠.”
로건의 입에서 ‘청바지’라는 단어가 나오자, 샬롯이 순간 찌릿거리는 눈으로 태선을 노려봤다.
“호오, 저보다 로건 씨가 청바지에 대해 먼저 알고 계셨던 모양이네요?”
아까 기차에서 한 대화로 정리가 됐을 줄 알았는데 새삼 자기보다 로건이 먼저 청바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니 그녀로서는 서운할 만도 했다.
다만 태선으로서도 하나하나 전부 샬롯에게 일러주기에는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자, 어서 가보죠. 하하하!”
이런 때는 그저 샬롯의 화를 더 돋우기 전에 어서 화제를 돌리는 것이 상책.
“네, 이쪽으로.”
로건도 공장장으로 뼈가 굵었던지라, 그는 얼른 태선을 시제품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재고 창고의 한쪽 구석에 위치한 공장장 사무실로 들어가자 로건이 질기고 질감의 파란 천 뭉텅이를 꺼냈다.
‘오, 투박하지만 청바지 맞네.’
“어떠신지요?”
“훌륭하네요. 이 정도면 됐습니다. 군복도 이 재질로 바지와 재킷을 만들어주시고요, 그리고 그와 별개로 작업복으로 쓸 수 있는 디자인으로 대량 생산에 들어가주세요.”
“작업복··· 오, 그러네요. 이거 작업복으로도 좋겠군요.”
공장 운영에 대해 로건과 더 이야기 나누면 좋았겠지만 그건 미뤄두기로 했다.
여기서 더 시간 쓰기에는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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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의류공장에서 나와서 제이 쿡의 은행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최근에 창고를 하나 매입하고 의류회사를 세웠는데요, 그걸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겠는지요?”
“문제없지. 킴 자네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수표로 주면 되겠나?”
“예, 수표로. 그리고 금액을 작게 쪼개서 여러 장으로 부탁드릴게요.”
제이 쿡도 같이 진행 중인 국채 판매 건으로 태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하지만 태선은 조만간 다시 찾아올 테니 그때 하자고 하고 바로 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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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태선이 도착한 곳은 타이터스빌.
“우와아, 하루 만에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니 피곤하네요.”
여기저기 바쁘게 오간 일정에 샬롯이 많이 피곤하기는 했는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꽤나 강행군이긴 했다.
더구나 샬롯은 따로 서류 작업의 처리도 맡기고 있으니 좀 미안해진다.
“샬롯이 준비해준 서류 덕분에 여기부턴 제가 알아서 할 수 있겠어요. 지금은 좀 쉬어요”
태선은 서류 뭉치를 팔랑거리면서 샬롯에게 말했다.
로건의 사장 임용 건으로 공장으로 가던 길에 샬롯에게 서류, 석유업의 토대를 마련할 서류 뭉치였다.
이 서류에는 타이터스빌에서 석유 회사를 하는 이들 명단과 대략적인 규모가 적혀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등유 뽑고 남은 석유는··· 21세기로 비유하면 폐기물 비슷하겠지.’
조금 과하게 말하면 원자력 폐기물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자원으로 쓸 수 있을지 모르기는 하겠지만, 당장 내가 가지고 있기에는 어디 쓸 데도 없거니와 영 찝찝한 것.
‘그걸 내가 싹 쓸어가준다는 말씀이시지.’
“후우, 피곤하지만 어떻게 태선만 혼자 보내요. 지옥이든 어디든 끝까지 같이 가야죠.”
그때 샬롯이 일어서며 말했다.
‘어, 그래도 지옥은 조금.’
이런 발언은 좀···아니, 많이 무서운데.
“자, 태선. 가요.”
태선은 그렇게 해서 샬롯과 함께 타이터스빌 석유업자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그가 등유 뽑고 남은 석유를 모아둔 창고로 갔다.
“어이고, 두 분 또 오셨네.”
저번에 왔을 때 럼주 한 병 사주며 안면을 익혀둔 덕분에 창고관리인은 이내 태선과 샬롯을 알아봤다.
오늘도 일단 럼주 한 병을 쥐여주자 그의 표정이 펴지면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졌다.
“헤헤, 뭘 이런 걸 다···. 크흠, 헌데 어쩐 용무로?”
“창고 좀 볼 수 있을까요.”
“허허, 참. 딱히 뭐 볼 것도 없는 걸.”
너털 웃으며 창고관리인은 자물쇠를 열었다.
창고는 상당히 컸는데 잡동사니들이 쌓인 한쪽에 제각각 크기이나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오크통이 가득 쌓여있었다.
“여기 사장님에게 연락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으잉, 연락을요? 왜요?”
태선의 발언에 창고관리인이 의문을 표하자.
태선이 손가락으로 오크통이 쌓인 창고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제가 전부 사겠습니다.”
“이, 이걸요? 아니, 전부 다···다요? 아, 알겠습니다!”
소식을 전하려 창고관리인이 급히 나갔다.
“이제 시작이겠네요. 전에 타이터스빌에서 돌아가면서 말씀해주셨던 거.”
“네, 이제 시작이죠.”
이제 시작이라는 샬롯의 말. 그래, 그녀의 말처럼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그 의미는 단순히 물량 확보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
그것은 태선이 이제 석유 사업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