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32
032 Lubricant(1)
나가려는 자신을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불렀다.
지금 자신의 뒤에서 돌아봐주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태선의 마음도 바로 돌아서서 협상을 이어가고 싶었다.
다만, 가슴은 뜨겁더라도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그래서 태선은 한 템포를 쉰 채.
여유롭게 돌아섰다.
“혹시 마음이 바뀌셨는지요?”
그렇다고 말해! 자, 빨리!
“성미가 꽤 급하군. 잠깐만 기다리게. 그리 바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세. 조금 의논해보고 돌아오지.”
작전 타임을 부르겠다?
“오래 기다리기는 힘듭니다. 실례된 말씀이나 서둘러주시죠.”
콩닥거리는 속내를 완벽하게 감추고는 끝까지 독촉했다.
“금방 돌아오지.”
그렇게 태선은 다시 앉아서 기다렸다.
응접실에는 샬롯과 개리슨도 그대로 있었지만 기다리는 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개리슨만 해도 자못 굳은 표정에서 긴장한 심중을 여실하게 읽을 수 있었다.
샬롯도 밴더빌트가의 사람들이 있을 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긴장한 개리슨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딸깍──! 딸깍──!
조용히, 시계 소리만 방안을 가득 채웠다.
숨 막히는 정적 끝에 마침내 다시 접객실 문이 열리고 밴더빌트가 사람들이 돌아왔다.
제이콥 밴더빌트와 윌리엄 밴더빌트를 양옆에 세우고 가운데서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무겁게 입술을 뗐다.
“좋네. 자네에게 특별 할인이 적용된 운송을 제공하지.”
“감사합니다.”
“다만 처음부터 70%나 요금을 할인하는 건 곤란하다네.”
이어지는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사족.
사실 협상을 받아들이냐 아니냐가 관건이었지, 받아들였을 때 이런 식으로 사족이 붙을 수 있다는 건 예상한 바였다.
‘어차피 70% 그대로 할인받는 건 기대도 안 했어.’
애초부터 협상의 단가를 맞추기 위한 단순한 강짜부리기였다. 조금 깎이더라도 상관없었다.
대신 운반 물량이 많아져서 요금이 높아질 때는 70퍼센트 할인율을 그대로 받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30퍼센트로 시작하죠.”
70퍼센트였던 걸 대번에 30퍼센트로 깎아주자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철도왕이라고 하나, 그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사업가이기 전에 장사치다. 잔뼈, 통뼈 다 굵은 이 상인에게 태선의 속셈은 뻔히 보이는 것이다.
‘그래, 센 척해도 역시 초조했나보군. 패기는 좋지만 아직 수완이 모자라.’
그리고 그건 태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고작 젊고 치기 어린 놈으로 보이겠지만, 그도 방송국의 PD로서 굵은 뼈가 결코 얇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계속 그렇게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신 운반 물량이 늘수록 할인율을 올려서 마지막에는 70퍼센트가 됐으면 합니다만.”
-나는 이미 한발 물러서줬다. 이젠 당신이 물러줄 차례다. 이것까지 싫으면 난 네 경쟁사로 간다.
“할인율 인상에 대한 논의는 지금이 더 편하신가요, 아니면 다음에 편하신가요?”
-받을 거냐, 말 거냐.
새삼 질문을 하나 더 던져서 그걸 확인시켜줬다.
밴더빌트는 잠시 동안 말이 없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피곤한 친구로군.”
-너, 게임 개같이 한다?
밴더빌트는 칭찬을 담은 긍정으로 답했다.
“하기야 태평양을 넘어와서 이 미국 땅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당연히 만만치 않겠지.”
“에이, 아닙니다. 밴더빌트 씨께서 너그럽게 봐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리 생각해준다면 고맙군. 협상은 당장 진행할 건 아닌 것 같고, 다시 기별을 주지. 다만 하나만은 기억해두게나.”
이 노인네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었는데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난 자네의 배짱과 가능성을 보고 협상에 임한 것일세. 자네 사업이 커져도 오늘 호의를 기억해주면 좋겠군.”
답하며 태선은 밴더빌트의 악수를 받았다.
“하하, 예! 그야 물론이죠.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석유 운송을 둔 철도왕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와 협상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었다.
***
“태선이 자네···. 하아, 난 그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밴더빌트와 협상하고 하루가 지났건만 개리슨은 여전히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개리슨으로서는 했다.
기껏 연결해줬는데, 하마터면 밴더빌트와 자신의 관계가 망가질 뻔하지 않았는가.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로 죄송해요. 그래서 오늘 점심 제가 사잖아요.”
“이게 점심 한 끼로 해결될 일인가! 내 수명이 아마 10년은 줄었을 거야.”
“그도 그럴 게 무난하게 협상하려니, 밴더빌트 씨는 도저히 만만치가 않았잖아요.”
“밴더빌트 씨가 만만찮은 게 아니라 자네가 만만찮은 거지.”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인지, 개리슨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저는 태선을 믿고 있었어요. 해낼 줄 알았다고요.”
반면 자신은 믿고 있었다는 걸 알아달라는 듯 샬롯이 짐짓 말하는데 그때.
“태경이랑 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식당 야외 발코니에 자리한 자리에 잭과 태경도 합류했다. 유니온 뱅크 동부점이 이 근처에 있었다.
오늘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잭을 부른 것이었다.
“개리슨 아저씨, 제가 다닐 학교는 아직 안 정해진 건가요?”
태경은 개리슨을 보자마자 학교부터 물었다.
기실 아직 태경이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태선과 샬롯도 일 때문에 곳곳을 돌아다니는 터라 지금 태경이는 은행에서 잡일을 도와주며 있는 형편.
지금도 은행에서 잭과 같이 오는 것일 터였다.
“녀석, 날 볼 때마다 학교만 찾는구나. 걱정 마라.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금방 좋은 소식을 들려주마.”
“정말이죠. 그럼 개리슨 아저씨만 믿고 기다릴게요.”
“암만. 태선이 그런 공을 세웠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자못 태선의 등을 두드리며 개리슨이 말하자 잭이 슬며시 눈치를 보더니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밴더빌트 씨를 보러 간다더니 잘 풀린 모양이네요.”
그런데 말 꺼내기가 무섭게.
“잭, 들어보게나. 어제 심장 멈추는 줄 알았다니까. 태선 이 친구가 밴더빌트 씨 면전에서 뭐라고 했냐면······.”
기다렸다는 듯 개리슨이 구구절절 어제 일을 풀어놨고 잭은 들으면서도 태선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흠칫 놀랐다.
“어, 그, 제가 밴더빌트 씨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세간에 불리기로는······.”
“철도왕, 동시에 도둑 남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죠.”
잭이 입에 올리기 저어하던 별명을 샬롯이 대신 말해주자 그제야 잭은 말을 이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그렇게 했다고요?”
“저기··· 그 밴더빌트란 분이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신가요?”
태경이 묻자 개리슨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얼마나 대단한 거물인지 설명했다.
“이 나라에서 돈이 많고, 힘이 센 사람이 누구냐를 꼽는다면 무조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지.”
“와, 형이 그럼 그런 사람이랑 싸워서 이긴 거야? 역시 형은 대단해!”
“그··· 아니다. 아무튼! 이 아저씨도 아직까지 밴더빌트 씨가 무서운데, 네 형이 어제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단다!”
그렇게 어제 일로 이야기꽃 피우는 동안 태선은 금칠해주는 말에 취해있지만은 않았다.
‘기본적인 틀은 완성했어.’
사실 기반을 갖추고 어제 밴더빌트와 만나서 수송에 대한 협상을 해낸 지금, 자신의 사업은 돌이킬 수 없는 궤도에 올랐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는 더 치열하게 움직여야 했다.
‘일단 유전지대가 밀집한 펜실베이니아 북부나 오하이오 서북부 위주로, 국채 영업을 하며 돌아다닌다.’
그곳에서 석유 부산물을 매입해둔다.
비단 석유 부산물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유전을 독점해야 하므로 그 주인들과 인맥을 쌓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본래 역사의 흐름에서는 록펠러가 일명 클리블랜드 대학살이라고 명명되는 인수합병 전쟁으로 그걸 해냈다.
‘1872년이었지. 지금 페이스라면 그때보다 훨씬 앞당길 수 있겠어.’
다만 그건 ‘대학살’이라는 이름이 붙었듯 그야말로 무자비한 사냥이었다.
태선은 거칠고 무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할 생각은 없었다.
‘힘을 가지되 폭력적으로 드러낼 필요 없이 해결하자. 그걸 위해 힘도 쌓아야 하지만 친해져 두면 더 좋겠지.’
그걸 위해서는 결국 돈이 있어야 했다.
지금은 국채 인센티브와 청바지를 판 돈을 자금의 베이스로 삼고 있었다.
그 금액이 결코 적지는 않겠으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하물며 창고에 석유 부산물 물량이 늘수록 더 그럴 거야.’
쌓여가는 부산물을 쟁여둘 창고는 아직 한참을 늘려야 하고, 부담은 줄었지만 지금부터 계속 운송요금을 내야 한다.
‘기억해내야 해. 지금 당장 석유 부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뭐였지?’
그렇다.
돈으로 금을 샀어도 가지고만 있으면 소용이 없다.
더 비싸게 팔아야 가치라는 게 생기는 법이다.
그걸 위한 사업이었고, 그걸 위한 앤드루스였다.
태선은 석유 다큐멘터리 제작할 때의 기억을 되짚어봤다.
석유라는 에너지원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 내연기관의 연료로 파는 것이고 그걸 위한 계획도 구상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너무 이른 계획이다.
‘아···. 아!’
순간 번뜻 떠오른 생각에 태선은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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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나자 개리슨은 역시나 오늘 오후에도 스케줄이 있단다.
“며칠 후에 돌아올 걸세. 또 보세나.”
“예, 개리슨의 인맥이 다 사업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되니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개리슨 아저씨, 제가 다닐 학교도 잊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개리슨 먼저 자리를 떠나고 난 뒤.
“잭, 태경이 데리고 먼저 은행으로 돌아가주시겠어요.”
“응? 자네는?”
“시내를 좀 돌아보려고요.”
언뜻 듣기에는 그냥 돌아다니겠다는 말이지만 태선은 종종 이렇게 말하고는 뭔가 큰 건을 물어오곤 했다.
단지 스타일이 확실해지기 전에는 말하지 않을 따름.
“그런가. 알겠네.”
그리고 잭은 그런 경우에 캐묻는 대신, 그저 받쳐주며 기다려주는 타입이었다.
“······.”
다만 간만에 형과 만났는데 오래 있지 못해서인지 태경이 섭섭해하자 태선은 동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태경아, 잭 삼촌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네, 형. 그렇지만 형도 같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 나도 그러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안 될 일이 있거든. 미안하다.”
“아니에요. 제가 빨리 커서 형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되면 더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제가 꼭 도와줄게요!”
“하하, 녀석. 그래, 기다리마.”
잭과 태경이도 보낸 뒤.
“기차역으로 가면 되나요?”
눈치 빠르게 사업을 위해 어딘가 간다고 생각했는지 샬롯이 마차를 잡고는 물었다.
역시 샬롯이다. 사업을 위해 어디로 가는 건 맞다.
하지만 기차역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
“아뇨, 말했잖아요. 시내를 둘러보겠다고요.”
“예?”
샬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전 지대만 쏘다니던 인간이 시내를 둘러보겠다니.
태선은 기껏 샬롯이 잡은 마차를 보내고는 웃으며 말했다.
“걸어서 가죠. 겸사겸사 데이트도 좀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