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35
035 리얼 맥코이(1)
뉴욕의 한 철도회사 차고지.
“이봐, 한스! 지금 3번 차량 바퀴 상태 왜 이래? 기름칠 안 해놨냐?”
“이런 게을러 빠진 자식! 제대로 기름칠 안 해주면 기차 수명이 짧아진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냐!”
“어이, 거기 신입들. 기름칠할 때 조심해라. 빨려 들어가면 시체도 제대로 못 건져!”
본래 차고지란 그렇다. 정비하는 기차가 있고 기름때 묻힌 엔지니어와 조수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곳.
다만 구석에 한 창고만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바로 옆의 차고지만 해도 시장통처럼 분주하거늘.
이 창고에만은 엔지니어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누가 여기서 회의라도 하려는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그 앞에서 기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뚫린 입구 쪽을 보면서.
“이제 두 번째 협상이네요. 긴장은 안 되세요?”
샬롯이 태선에게 물었다. 외부인은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건만 그 두 사람이 여기 와있는 것이었다.
태선은 늘 그렇듯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테이블에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긴장 반 설렘 반···이네요. 그러고 보니 샬롯은 저번에도 안 떨렸댔죠?”
“훗, 그야 당연하죠.”
표정을 보니 확실히 긴장 따위는 아예 안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어쩐지 기대감에 차 있기까지 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전 태선을 믿거든요. 협상에서 그 밴더빌트를 쥐고 흔든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태선을 도와서 준비한 게 있으니까요.”
“이거 중압감 때문에 조금 부담스러워지는데요.”
태선이 반쯤 농담으로 약한 척을 하자 샬롯은 웃으며 받아쳤다.
“부담이라뇨. 제가 소개해준 엔지니어가 저걸 완성시키자마자 뭐라셨더라?”
“예? 제가 뭐라고 했었나요. 기억이 안나서.
“이 협상은 우리가 완벽하게 이겼어! ···라고 하셨잖아요. 도저히 중압감 느끼는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요.”
“제가 그랬나요?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샬롯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태선은 사람을 시켜 차고지 한쪽에다 미리 가져다 둔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저걸 만드는 순간 자신의 사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 단계 올라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 저기 와요.”
태선이 몰래 감상에 젖어있는 와중 샬롯이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오네요.”
수행인들 몇을 데리고 밴더빌트가의 사람들이 온다.
저번 첫 번째 협상 때처럼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를 필두로 제이콥 밴더빌트와 윌리엄 밴더빌트가 있었다.
아직 멀어서 자기들끼리 뭐라는지 들리지는 않지만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짐작은 갔다.
-아니, 협상을 왜 이런 데서 하자고 한대요?
-듣자 하니 뭔가를 우리 차고지로 옮겨놓기도 했다면서요?
-대체 뭘 꾸미는 건지.
입을 벙긋거리는 걸 보니 윌리엄 밴더빌트가 주로 말하고 나머지는 듣기만 하는데 성격을 봐서는 안 봐도 비디오.
“뭘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여드리지.”
“오, 그 말 느낌 좋은데요?”
혼자 중얼거렸는데 그걸 또 샬롯이 들었는지 응원해주듯 조그만 두 주먹을 꽉 쥐어보이며 새삼 따라 말했다.
“저기 밴더빌트 패밀리들이 뭘 기대하든 우리는 그 이상을 보여주자고요.”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샬롯에게 그런 응원을 들으니 어쩔 수 없이 그래야겠군요.”
태선도 한쪽 주먹을 꽉 쥐며 그녀의 응원에 화답해주는데 마침내 밴더빌트가의 사람들이 차고지에 왔다.
“다시 보는구먼. 헌데 장소가 여기일 줄은 몰랐었는데.”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기, 커피 한잔하시면서 숨 좀 돌리시죠.”
“난 바쁜 사람일세. 합당한 이유가 없었다면 자네의 협상 조건으로 내가 입은 손해를 완충시켜줘야 할 것이야.”
먼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와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저번 협상만 해도 충분히 유리하게 됐을 텐데 그걸 만족 못 하다니 킴 씨도 욕심이 제법 많으십니다.”
“그 욕심이야말로 사람을 발전시키는 법이죠.”
저번보다 나아졌지만 그래도 날카로운 소리를 하는 윌리엄 밴더빌트와도 인사하고.
“이보게 조카님. 또 왜 그리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그러나. 다시 봐서 반갑네. 오늘도 기대하지.”
“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지만 은근히 너구리 같은 제이콥 밴더빌트와도 인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는 사이 밴더빌트의 수행인들도 움직였다.
테이블에 저쪽에서 준비한 계약서나 자료 같은 걸 늘어놓는 모양새가 일사불란했다.
“잠시만요, 미안한데 거기는 비워주실래요? 우리 쪽 자료 둘 자리라서요.”
태선이 눈짓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샬롯도 나서서 이제야 세팅을 시작했다.
먼저 와서 어느 정도 이미 세팅을 해뒀지만 그럼에도 굳이 저렇게 나가는 이유.
쉽게 말하면 기싸움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쪽이 세팅해둔 것을 굳이 저쪽 수행인이 치우고 자리를 새로 세팅하려고 하고 있으니.
‘뭐 역사에서도 밴더빌트가 사업적인 성취는 좋았어도 수단에 있어서는 과격하다거나 그런 면모가 많았다고 하니.’
하물며 이 시대는 막말로 리미트가 걸리지 않았다.
저번에 존재감을 보여줬어도 얼마 못 본 사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 다시 얕보게 됐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지금 수행원들로 은근슬쩍 압박하는 전략을 보니 십중팔구는 그러했다.
‘뭐 거기다 내가 검은머리 아시아인이라는 것도 영향을 안 끼쳤다고는 보기 어렵겠지.’
쉽게 말해 인종 차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협상이 끝났을 쯤에는 그런 생각을 앞으로 절대 가지지 못하게 해주지.’
처음에는 나름 격식을 차려 이런저런 밑밥을 깔고 자료를 제시하고 그 장치의 시연을 하는 등의 레퍼토리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태선은 그걸 싹 치워버리기로 했다.
대신 밴더빌트 집안 남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선사하기로 했다.
‘이번 협상은 커피가 식기도 전에 끝날 거다.’
“밴더빌트 씨가 시간이 없으시다니 바로 이것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 시간이 없으면 협상을 해야지. 어딜 갑니까?”
윌리엄 밴더빌트의 당황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태선은 한쪽 구석에 천으로 덮어둔 그것을 끌어왔다.
바퀴 달린 수레에 장치를 올려두었던 터라 그냥 밀고 오면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법 장치가 컸던지라.
구르르르르릉───!
굴러오는 소리가 묵직해서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관심을 끌기는 했다.
이내 태선이 천을 젖히자 드러난 건 커다랗게 만든 통에 여러 밸브와 연결부위가 달린 무언가였다.
연결부위에는 튜브까지 달아놔서 그걸 다 펼치자 상당히 길었다.
못해도 수십 미터는 거뜬히 넘을 것 같다.
“차고지에 있는 안 쓰는 부품들을 좀 빌리겠습니다.”
짤막히 말한 뒤 태선은 차고지에 굴러다니는 고장나거나 안 쓰는 바퀴나 톱니 같은 부품 따위를 늘어놓았다.
정교하게 맞춘 건 아니지만 대충 봐서는 기차 부품을 마치 해부하듯 늘어놓은 것과 비슷한 모양새로.
태선은 소화전 같은 장치의 튜브를 늘어놓은 기차 부품에 연결되도록 다시 위치를 잡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러고는 마치 무슨 쇼라도 하려는 마술사처럼 장치 앞에 서더니 말문을 뗐다.
“듣자 하니 이곳 차고지에 방치된 부품 중 상당수는 심하게 마모되어 더 쓸 수 없는 것들이라더군요.”
“그만큼 많은 승객과 화물을 운반했다는 뜻이지.”
“네, 그렇지요. 그리고 그렇게 마모되는 부품들을 최소한으로 줄이면 그만큼 다시 이득으로 돌아오겠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운임 할인율에 대해 협상하러 왔네만, 내 인내심이 한계에 가까워지는군.”
끼리리릭─끼리릭──!
태선은 말 대신 소화전 같은 장치의 밸브를 풀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잠시 후 튜브에 액체가 흐르는 것이 보이더니 각 부품에 이어진 부분의 구멍에 다다라서 분사되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저걸 도대체 왜 보여주는 건데?
윌리엄이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과 달리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와 제이콥 밴더빌트는 거의 동시에 흠칫했다.
‘역시 1대들은 촉이 좋네.’
태선은 테이블로 돌아와 준비한 그릇에 따로 모아둔 윤활유를 따랐다.
“허, 지금 장난하냐? 뭔 이상한 애들 장난감 같은 장치를 거창하게 크게만 만들어서 보여주고는 이제는 뭔 정체도 알 수 없는 액체를 따라?”
윌리엄 밴더빌트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나불거렸다. 하지만 과연 그는 알고 있을까.
오늘 미팅 전까지 태선은 존 엘리스와 함께 윤활유의 개량을 거듭했다는 것을.
동시에 새뮤엘 앤드루스에게 석유를 감압증류하는 장치의 수준을 더 끌어올리도록 쥐어짜냈다는 것을.
그 결과 이 시대에서는 전례 없는 성능의 윤활유가 나왔다.
‘거기에 그 윤활유를 기계에 칠하는 장치까지 동시에 선보인 참이란 말이지.’
“아니, 아버지. 삼촌! 두 분께서도 뭐라고 말씀 좀······.”
그걸 아직도 눈치 못 채고 윌리엄 밴더빌트는 계속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조용히 하지 못해, 이 멍청한 녀석! 네 눈구멍은 얼굴 가죽이 모자라서 뚫려있는 게냐!”
“예···예에?”
불호령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윌리엄 밴더빌트가 움찔했다.
하지만 지금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는 자식에게 뭘 가르치거나 하는 걸 신경 쓸 형편이 아닌 모양이었다.
대신 곧바로 방금 태선이 그릇에 따랐던 액체를 손에 묻혀 비비며 질감을 느꼈다.
“이거라면··· 그 어떤 기름보다 윤활 작용이 뛰어나겠어···.”
이내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그와 같이 윤활유의 질감을 손으로 느껴보던 제이콥 밴더빌트 역시 덧붙였다.
“예, 저도 처음 보는 윤활유입니다. 하지만······.”
그는 고개 들어 아까 태선이 연결해둔 소화전 같은 장치와 튜브를 봤다.
그것은 아직도 윤활유를 분사하고 있었고 덕분에 부품들은 노후화되었을지언정 기름의 막이 씌워진 것처럼 반들거렸다.
“이거··· 환장하겠군요.”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저 장치라면 기차가 멈출 일 없이 계속 달릴 수가 있을 테니!”
“지금보다 수익을 훨씬 높일 수가 있을 겁니다. 노후화돼서 버리는 부품도 줄일 수 있으니 비용 손실도 줄일 수가 있겠지요. 자, 감상이 어떠시죠?”
“······.”
“······.”
“······.”
이제는 숫제 꿀먹은 벙어리가 된 채로 자기들끼리 눈빛만 주고받는다.
‘원래는 10년 뒤에 어느 철도회사 직원이 저 장치를 만드는 건데 말이지.’
Hydrostatic lubricator.
증기 압력으로 펌핑하는 윤활유 자동 분사 장치.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흑인, 일라이저 맥코이가 만든 기계장치다. 재능 풍부한 기계공학도였으나 고작 철도회사의 엔진 관리원밖에 될 수 없던 그가 만든 맥코이 장치, 그것이 10년을 앞질러 세상에 나왔다.
‘지금은 내가 먼저 특허를 받았지만······. 나중에 스카우트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하게 해줘야겠어.’
여담이지만 아무리 명품에 특허가 있어도 짝퉁은 생기기 마련이라, 맥코이 장치도 그건 피할 수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거의 모든 철도회사에서는 맥코이의 품질 보증을 원했다.
‘이거야말로 진짜’라는 뜻의 리얼 맥코이(Real Mccoy)라는 관용어가 생길 정도로 말이다.
지금 자신은 그런 윤활유에 더해 세트로 그런 장치를 전격적으로 선보인 셈이었다.
꿀꺽!
그 밴더빌트라 해도 마른침 삼키며 긴장하는 건 결코 그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이게 자신이 아니라 다른 철도회사에 먼저 들어가게 되면 입지가 흔들리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석유 운송 할인율 따위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은 누구보다 윤활유와 장치를 보여준 태선이야말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아, 그럼.”
느긋하게 걸어온 태선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적당히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해보실까요, 밴더빌트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