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36
036 리얼 맥코이(2)
밴더빌트의 수행원들은 많은 서류들을 가지고 왔다.
그건 협상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건을 가져가기 위한 자료였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숫자와 문자 나열이 되었다.
“일단 이걸 보시죠. 윤활유로 인한 장비 손실을 최소한으로 계산하여 볼 수 있는 이득의 추산치입니다.”
“즉 이 윤활유를 사용할 때 우리 회사가 볼 수 있는 이득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해서 가져왔다는 말인가.”
“역시 이야기가 빠르시네요.”
밴더빌트의 표정은 묘했다. 기뻐하면서도 착잡한 표정이 동시에 보였다.
왜 그런지는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저 윤활유와 자동분사장치를 쓴다면 회사에 엄청난 이득을 안겨줄 것이다.
그 점은 옆을 지나가는 인부들도 알 것이다. 그런데 이걸 만들어온 사람이 협상 대상자였고, 그가 가져왔다는 추산치의 오차가 10%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쪽이 손해 보지 않는 아슬아슬한 선까지 이득을 나누어 가지겠다는 뜻이로구먼.’
더구나 그에 연계하여 이번 협상의 애초 목적이었던 석유 운임도 엮을 터.
“그리고 이건 본래 이번 협상에서 논의하기로 했던 운임의 할인율에 대한 저희 쪽 제시안입니다만 윤활유 및 자동분사장치와 상호 연동된 가격을 책정하고자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그랬다. 준비한 자료를 들이미는데 그야말로 철저했다.
하물며 교묘한 것은···아니, 교활한 것은 이쪽이 손해를 보는 조건은 또 아니란 것이었다.
“허허, 근래에 먼저 제안하는 자가 없었는데 먼저 상대방의 제안을 받는 건 오랜만이군.”
셈에 빠른 밴더빌트이기에 결과적으로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저 태선이라는 검은머리 놈의 배짱은 젊은 시절 자신에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는 진짜배기였다.
지금 제안을 거절한다면 주저 없이 돌아설 거다.
때문에 밴더빌트의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협상의 주도권은 이미 태선이 쥐고 있다. 거절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조건을 약간만 고칠 수 있다면, 조금만 고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이득이 몇 배는 더 오를 수 있다···!
“밴더빌트 씨 정도 되는 분이시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구태여 밀고 당기고 하는 수작이 얼마나 귀찮고 번거롭습니까.”
다만 이번에는 밴더빌트의 상대가 어느 때보다 만만찮았다. 임자를 만났다고 할지.
“그럴 거 없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을 제안해드렸습니다. 그러니 부디 밴더빌트 씨도 허심탄회하게 답을 주시면 합니다.”
얼핏 예의를 차리는 말처럼 들려도 흥정할 생각 말라고 딱 선을 그어버리지 않은가.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저쪽 제안대로 계약하게 될 거, 얻을 수 있는 것이라도 얻어야 했다.
“알겠네. 그렇게 하세나.”
의미 없이 시간을 끌어서 감정을 상하느니 빠른 승낙으로 호감이라도 얻을 것.
“생각보다 더 빨리 결정해주셨네요. 그쪽 회사에 가져가서 다시 검토해보지 않으셔도 괜찮으십니까? 원하시면 기꺼이 기다려드리죠.”
“아니, 괜찮네. 애초에 자네 은행업을 하잖나. 거기다 그 장치를 만든 걸 보면 철도 쪽에 관해서 자문을 준 사람도 있던 것 같으니.”
“역시 밴더빌트 씨입니다. 알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런가. 허면 윤활유와 윤활 장치를 우리 회사에만 공급해줄 수도 있겠는가?”
그리고 빠른 결정을 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그 흐름을 타서 조건 끼워넣기.
이것만 돼도 다른 경쟁자를 훨씬 멀리 따돌리고 자신들은 더더욱 앞서나갈 수 있으니 큰 이득일 터였다.
싹이 남다르지만 나이로 보아하니 아직 어리다. 더구나 이 밴더빌트를 누른 인생 업적을 이루어낸 순간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 분위기에 취해 자신의 조건을 덜컥 수락해버릴 수도······.
“죄송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어렵겠습니다.”
···없다. 절대로 없었다.
“물론 그냥 해달라는 것은 아니고 리베이트를 주지.”
“감사한 제안입니다만 이 기술로 인해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보길 바랍니다.”
“물론 그것도 좋지. 그렇지만 자네가 이득을 봐서······.”
“철도가 더 자주 다니면 더 많은 사람과 물자가 이동할 수 있으며 이 나라의 서부 개척과 발전도 빨라지지 않겠습니까.”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 태선은 잔잔하게 미소 띠면서도 단호하게 답했다.
무슨 교과서에 실어놔도 될 것 같은 말이나, 과연 사업하는 사람이 바른대로 말하고 곧이곧대로 들을까.
‘다른 데에 팔아도 당신네만큼 팔 텐데, 내가 손해 보면서 그쪽 이득을 보장해주는 것을 해달라고요? 제가요? 왜요?’
언뜻 보면 밴더빌트가 철도업계를 장악한 듯 보인다. 실제로 많은 이가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하다.
다만 그가 록펠러처럼 100퍼센트로 철도사업을 독점했냐?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애초에 철도사업의 독점은 국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하물며 미국처럼 드넓은 땅에서야 더욱 그렇고.
‘즉 철도는 찾으려면 대체할 곳을 찾을 수 있거든.’
실제로 나중에 밴더빌트는 이리호 남쪽 철도 사업권을 두고 친구로 지내던 제이 굴드에게 거하게 당하게 된다.
즉 밴더빌트 외에도 철도에 눈독 들이는 이는 제법 많았다.
‘거기다 록펠러도 처음에는 밴더빌트와 협력했지만 파이프 라인을 깔면서 따로 석유 옮길 방법을 구하지. 나도 당연히 그렇게 할 거고.’
즉 밴더빌트와의 거래는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그나마 밴더빌트가 자신에게 진실하게 호의를 보였다면 어느 정도는 협력해줄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아까 뭐라고 하셨더라.
‘풉, 독점 공급을 해달라고?’
막말로 어린애 떼쓰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거기서 답은 나왔다. 물론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격식을 차리겠지만.
“대신 석유 운임에 대해서 호의를 베풀어주시면 특별 가격으로 제공해드리도록 약속하죠.”
“···그런가. 알겠네.”
사사삭───!
계약서에 사인하고 악수까지 했지만 밴더빌트의 표정은 그리 좋진 않았다.
“그럼 앞으로 운송을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윤활유에 대해 잘 부탁하네. 그리고 리베이트를 섭섭하지 않게 줄 테니 마음 동하거든 말하게. 나중에는 나 역시 같은 제안을 하진 않을 테니.”
···라고 하면서 어째 말투에 가시가 돋혔다.
‘하여간 영감님 욕심도 많아. 지금도 엄청 이득인 걸 알면서도 더 뜯어내려고 하냐.’
뭐 이쪽에서 호구 당해주지 않아서 그런 걸 테지만 그래서 어쩔 건데.
이 거래를 파토낼 건가? 아니지, 끌려갈 수밖에.
물론 그런 관계가 되었기에 앞으로 건수 생기면 또 밀고 당기기를 하게 될지도 몰랐다.
다만 두 번 만나보고 태선은 깨달았다.
이 사람과는 신뢰에 기반한 관계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주저 없이 관계의 노선을 정했다.
‘나를 위해 희생하고 도움을 주는 이에게는 신뢰에 기반해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겠지만.’
반대로 자신을 이용하거나 등쳐먹으려는 자가 있다면 그대로 돌려주겠노라고.
“그럼 먼저 돌아가겠네.”
그런 점에서 태선은 제이콥 밴더빌트와 윌리엄 밴더빌트 그리고 수행원들을 줄줄이 달고 돌아가는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럼 밴더빌트 어르신, 내 사업의 성장을 위해 앞으로 좋은 발판이 되어주십쇼.’
***
밴더빌트와 협상을 마친 뒤 그날 저녁.
태선은 가까운 이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개리슨은 또 어디를 가버려서 없네.’
태경이는 미성년자라 아직 술자리에 낄 수 없으니 방에다 재워뒀다.
있는 사람 중에 일단 샬롯.
“샬롯, 새삼스럽지만 늘 고마워요, 이번에도 샬롯 없이는 힘들었을 거예요.”
“왠지 앞으로 더 굴리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후훗, 마음에 드네요.”
“어··· 예?”
“네, 좋아요. 같이 역사를 만들어가죠!”
“하하···네에.”
가끔 샬롯이 이렇게 중증 일 중독자처럼 적극적으로 나올 때는 무섭다.
태선은 얼른 시선을 옮겨 잭에게 말했다.
“그리고 잭도 고마워요. 만들어주신 자료 덕분에 협상이 유리했거든요.”
“아냐, 나야 수치를 정리하고 계산한 게 고작이었지.”
“에이, 그래도 그게 없으면 차이가 크다고요.”
기실 협상에서 쓴 손익 계산 자료는 잭의 작품이었다.
근본 은행가 출신답게 계산이야말로 그의 강점.
더구나 자신 주장을 잘 내세우지는 않지만, 그 대신 잘 백업해주는 성격은 태선과도 호흡이 괜찮았다.
“그··· 크흠! 그럼 내 자료가 도움이 됐다면 말이야.”
다만 평소답지 않게 오늘은 왠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드물게 생기는 이벤트지만 그렇기에 이럴 때야말로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
“왜 그러세요, 잭?”
“그러니까···태선이 자네가 유니온 은행과 별개로 회사를 만들었잖아.”
“네, 그랬죠.”
“샬롯도 그렇고 개리슨 씨도 얼마 전에 동업자로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괜찮다면 나도······.”
자신도 회사에 끼워달라는 부탁인 모양이었다.
물론 이건 잭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제안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도 도움을 받았지만 계산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잭의 손을 빌리는 편이 나으니까.
“음, 잭. 그건 곤란해요.”
다만 그때가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아···하하···역시 그, 그렇지. 괜히 말을 꺼냈네. 그냥 해본 말이야. 하긴 샬롯이나 개리슨에 비하면 나는······.”
“아뇨, 그런 말이 아니고요. 잭은 지금 유니온 은행의 주요 전력이라서요. 당장 은행 외에 다른 일까지 겸임시는 건 곤란하거든요.”
“그···그래? 하긴 요새 은행 일이 바쁘기는 하지.”
잭은 납득했다. 확실히 재무부로부터 받은 국채 매입 건도 나날이 규모가 커지고 있는 형국이니 그럴 것이다.
다만 비단 그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마침 잘됐어. 잭에게도 지금 말해주는 편이 좋겠군.’
몇 번이나 왜 자신에게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며 삐질 뻔한 샬롯에게는 미리 말해두었던 것.
“잭, 사실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어요. 이거 아주 중요한 이야기거든요.”
“무··· 무슨 이야기인데?”
잭이 자못 긴장했다. 은근히 이런 모습 볼 때마다 괜히 더 놀리고 싶어지는데 일단 오늘은 참기로 했다.
“이번 기간이 다하면 유니온 은행 파트너 계약을 갱신하지는 않을 생각이거든요.”
“어···잠시만. 지금 자네가 지점장 대리인데 그렇다는 건?”
“말 그대로 유니온 은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게 됩니다. 랠스턴 씨에게는 이미 편지를 보내뒀어요.”
“혹시 랠스턴 씨와 관계가 나빠졌다거나 그런···?”
“에이, 걱정 마세요. 그런 거 아니니까. 랠스턴도 저를 아껴주시고 저도 존경하고 있어요.”
“휴우, 그럼 다행이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잭에게 태선은 말을 이었다.
“슬슬 독립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그래봤자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제가 떠난 뒤에도 은행이 굴러가도록 기반은 잡아둬야 하잖아요.”
“하기야 그렇지. 즉, 방금 이야기한 기반을 잡을 때까지는 은행에 같이 있어 달라는 거네.”
잭이 중얼거리며 자신의 턱수염을 어루만지는 사이.
“그리고 제가 은행을 나가는 그날에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안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태선이 잭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1년 조금 넘게 남았겠네요. 그때도 이렇게 손을 내밀 테니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잡아주시겠어요?”
“물론이지! 난 그때만 기다리겠네. 태선 꼭 약속 지키게.”
“잭이야말로 그 사이에 다른 데서 더 좋은 제안 왔다고 가버리면 안 되는 거 알죠?”
왜냐하면······.
‘회사에 재무전문가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잭이 딱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