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40
040 길들이기(4)
특약 조건을 보자 계약서를 쥔 다섯 명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건······시장 상황에 따라서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요?”
반면 뭘 그리 놀라냐는 듯 태연히 끄덕이는 태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석유 가격이 앞으로도 폭락하면 지금 가격으로 계속 사줄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렇지만 특약은 조금만 생각해주시면 안 되겠는지요.”
“생각하고 자시고 쌍방 간의 협의로 가격을 바꾼다고 되어있잖습니까. 그때 가서 석연찮으면 거절하면 됩니다.”
당신이 아니면 석유 부산물 사줄 사람이 없지 않냐··· 라는 말을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킨 그들이었다.
사실 가격을 후려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계약서 조건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금 사정처럼 말이다.
“뭐 생각할 시간을 조금 드리도록 하죠.”
“태선, 오후에 미팅이 있어서 금방 나가보셔야 해요.”
“아, 미팅 있다네요. 10분만 드리겠습니다.”
근데 이제는 고민할 시간도 안 준단다.
째깍──! 째깍──!
태선의 회중시계 초침 도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작은 소리가 이들에게는 심장을 옥죄는 듯한 압박으로 느껴지리라.
다만 태선이 몰라서 이랬을 리가 있겠는가.
알고 그런 것이었다. 아니, 심지어 그냥 아는 수준이 아니라 훤히 꿰뚫고 있었다.
‘다섯 명이 나머지 업자들 물량이나 회사를 매입했어도 당장 현금으로 했을 리가 없지.’
즉 여기서 자신에게 받은 돈으로 지분에 따라 나눠 갖게 될 터였다.
그런데 여기서 예전보다 30퍼센트 이하로 후려쳐진 가격에 계약하고 왔다고 하면 돌아가서 뭐라고 또 욕을 먹을지.
‘뭐 애초에 자업자득이지만.’
“태선, 이제 가셔야 해요.”
아직 10분이 안 지났지만 샬롯이 비서실에서 조심스레 들어오더니 말했다.
“그렇다는군요. 아무래도 더 시간을 드리기 힘드네요. 그럼 사인하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는 걸로 알고 그만 저는 나가보도록 하죠.”
태선이 일어나자 다섯 명은 고민하고 할 것도 없이 얼른 계약서에 사인했다.
“아···아닙니다. 지금 합니다.”
아무리 고민해봐야 태선이 아니면 석유 부산물을 사줄 이가 없으니까.
애초에 지금 그걸 모르고 재커리의 꾐에 넘어가서 나대다가 이 지경에 온 게 아니던가.
“그럼 이 계약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잘 부탁드리죠.”
태선은 계약서를 샬롯에게 넘기고는 형식적으로나마 미소를 띠며 그들과 악수를 나눴다.
“하하···네. 우리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앞으로 절대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없도록 할 테니 가격을 부디 지금보다 낮추지 말아주십시오.”
그들도 애써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가격 폭락빔을 정통으로 맞았기에 울 듯한 표정이었다.
·
·
·
사실 정말로 다음 일정이 있기는 했었다.
“그러고 보니 제이 쿡 씨와 만나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는지 잠시 잊고 있었네요.”
그건 바로 국채 관련 일이었으며 그걸 위해 필라델피아행 기차를 탔다.
“하긴 요새 그 사람들 일 때문에 태선이 많이 신경 쓰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해요.”
“뭐 그렇죠. 그런데 아까 왜 국채라고 말하지 않고 미팅이라고 했어요?”
“미팅이라고 하면 다른 석유 거래인가 싶어 그 사람들이 더 놀랄 거잖아요.”
“샬롯도 보통이 아니네요.”
짐짓 반쯤 농담을 섞어 던진 태선의 칭찬에 샬롯은 결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태선이 훨씬 대단하죠. 그 사람들을 그렇게 다루다니! 전 솔직히 태선이 협상은 잘해도 순하게만 보여서 걱정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아니네요. 놀랐어요.”
“하하, 아까도 계속 그 말 하더니 이번에 들으면 삼십 번은 하시는 거 같은데요.”
“아, 그랬어요? 그만큼 너무 인상적이었다는 말이죠.”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는 듯 샬롯은 말하다가.
“음?”
문득 태선을 물끄러미 봤다.
“어, 그런데 태선 표정이 뭘 해냈다는 느낌이 아니네요. 밴더빌트 씨와 협상을 성공했을 때하고는 미묘하게 달라요.”
그녀의 긴가민가하는 말에 태선은 옅게 웃었다.
어차피 이건 딱히 속이거나 극비리로 할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늘 그렇듯 샬롯의 도움도 받아야 했기에 지금 미리 말해놓기로 했다.
“네, 당장은 일을 풀어놨지만 이건 임시방편이거든요.”
“어···그럼 문제가 또 터질 거라는 건가요?”
고민의 여지도 없다는 듯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업자들이 많기에 달리 매물 확보가 쉬웠지만 동시에 업자가 많기에 문제는 또 터집니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 물량 확보는 문제 없잖아요.”
“네, 그거야 물론 그렇겠죠.”
그러면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냐는 듯 샬롯이 쳐다봤다.
“당장은 가격이 폭락했지만 석유의 가능성은 앞으로 나날이 커질 겁니다.”
“네, 전에도 말했죠.”
“그때 저는 적당히 윤활유 파는 정도가 아닌 업계 자체를 쥐고 있고 싶습니다.”
태선은 달리는 기차 차창을 보다가 고개 돌려 사뭇 샬롯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사실 저번에 샬롯이 했던 말이 근본적으로 맞긴 해요.”
“예? 으음···제가 무슨 말을 했던 가요?”
“그날 마차에서 아예 유전을 파보지 않겠냐고 했었죠.”
그 말이었냐는 듯 샬롯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건 그냥 답답해서 한 말이었죠. 태선도 그걸로 밴더빌트 씨에게 줄 물량도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유전이 하나면 그렇겠죠. 하지만 유전과 정유 회사를 싹 우리가 가진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싹···우리가 가진다고요?”
그런 게 가능하냐는 듯 샬롯이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짓사 태선은 미소 지었다.
자신도 이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들릴지 안다. 하지만 가능하다.
실제로 자신이 아는 역사 흐름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물론 록펠러와 내가 같지는 않겠지.’
록펠러가 가졌으나 자신은 가지지 못한 재능, 폭력성이나 무자비함이라거나 그런 것들.
이번에 자신도 술수를 쓰긴 했지만 그건 클리블랜드 대학살에서 록펠러가 벌인 무자비함에 비하면 애교였다.
‘난 역사에 악명을 얻으면서까지 그렇게 할 생각은 없어.’
하물며 클리블랜드 대학살을 자행할 당시에 록펠러가 가진 자원도 자신의 것보다 클 거고.
하지만 그걸 커버할 방안도 없이 태선이 지금 이런 말을 꺼냈을 리 없었다.
“샬롯, 인류 문명이 발전한 배경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
“예? 갑자기 왜···대답하자면 많은 것이 있겠죠. 거기에다 석유에 대해 말하고 있었으니 연관시키자면······.”
샬롯은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답했다.
“빛···혹시 등유에 대해서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밤에도 활동할 수 있으니까?”
“정답! 역시 샬롯은 머리가 좋다니까요. 메모지와 펜 좀 빌려줄래요.”
“갑자기요? ···여기요.”
사사삭───!
“이걸 좀 준비해주세요.”
태선은 메모지를 받아서 뭘 적어서 샬롯에게 다시 건넸다.
“조셉 윌슨 스완, 이 사람을 찾아달라고요? 사람 찾는 일은 전에도 몇 번 시키신 적 있지만 이번에는···영국이라뇨?”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도 대략적인 주소도 적어놨잖아요. 중요한 겁니다.”
태선이 메모지에 적어준 첫 번째 일은 영국에서 한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그 이름은 조섭 윌슨 스완. 영국 선덜랜드 아테네움 거리와 포셋 거리쯤에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첨언을 달아놓았다.
“이 사람을 찾아서는 어쩌실 건데요?”
“편지를 쓰려고요. 방금 이야기했던 일에 그 분이 소양이 있더라고요. 동업할 수만 있으면 일이 수월해지겠죠.”
태선이 부탁한다는 듯 쳐다보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 사람이 동업을 해주겠다는 보장도 없는데······. 일단 해볼게요. 다만 찾을 수 있다 장담은 못 해요.”
“샬롯이 힘써주는 것만 해도 만족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연구소 설립 적힌 것도 봤죠?”
태선이 연구소를 언급하자 샬롯은 안 그래도 그에 대해 물으려는 참이었다는 듯 바로 말을 꺼냈다.
“연구라면 지금도 샘과 존 박사님이 창고에서 하고 있는데 건물을 따로 빌린다고요?”
“예, 앞으로 사업에서 연구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감압증류기술이나 윤활유를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연구소는 전기와 발전기 그리고 전구의 발명을 위한 준비였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발명도 아니었다.
1802년 영국의 험프리 데비라는 사람이 먼저 전구를 만든 바가 있었고.
아울러 방금 전 태선이 찾아달라고 한 조셉 윌슨 스완도 전구를 만들었으니까.
더구나 1860년에 만든 조셉 스완의 전구는 에디슨이 도용했다는 이슈가 있었을 정도였다.
‘전구가 상업화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는 실패했지만 그건 내가 커버해줄 수 있어.’
기실 그걸 위한 준비물은 이 시대에 이미 다 갖추어져 있는 터였다.
최초의 전기 생산 전지는 알레산드로 볼타에 의해 1800년 만들어졌다.
그리고 1816년 미국 최초의 전력회사 볼티모어 가스전기가 설립됐고.
또 1821년쯤에는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 모터를 발명했다.
“흠···좋아요. 최선을 다해 해드릴게요. 다만 무슨 계획인지 말해주셔야겠죠.”
“물론 해줄 생각이었어요. 이 준비는 전구 발명···아니, 보급을 위한 거예요.”
샬롯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혹시 전구로 등유의 인기를 떨어트리려는 건가요?”
“네, 등유의 상품성을 무너트리면 석유값이 떨어지고 더불어 유전과 정유 회사도 그러겠죠. 우리는 타이밍을 노려 회사들을 쓸어담고요.”
“음···전구 보급으로 석유 사업을 위태롭게 한다는 건 납득되는데요. 문제는 우리가 그 석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즉 그렇게 다 망하면 우리가 먹을 게 남아있겠냐?
“어차피 지금 시작해도 단시간에 되진 않을 거예요.”
“어느 정도 예상하시는데요?”
에디슨은 안정적인 전구를 만들기 위해서 수천 번이나 시행착오를 겼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은 에디슨이 무슨 재료로 필라멘트 재료로 썼는지 알고 있으니 훨씬 단축할 수 있겠지만.
···그러고 보니 에디슨도 이 시대의 사람인데 지금쯤이면 청년이 됐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슬슬 에디슨도 인재로 스카우트하면 좋겠군.’
그도 그럴 것이 수천 번의 실험을 하는 근성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못해도 제가 유니온 은행 파트너 계약을 끝날 때쯤은 되야 하지 않을까요”
“짧아도 1, 2년이고 더 걸릴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럼 아까 석유업자들 구슬린 건 임시방편이랬잖아요. 그 몇 년 동안 그들을 계속 잡아둬야 할 건데.”
“몇 년 동안은 제 수완으로 커버해야죠.”
“그리고 아예 전기 사업으로 나갈 게 아니라면 석유사업을 반등시킬 아이템이 있어야······.”
‘예리하네. 역시 샬롯이야.’
솔직히 자신은 전생 치트를 썼지만 샬롯은 순수하게 자신의 통찰력으로 이 문제까지 생각해내다니.
역사에서는 자동차 산업의 발전이 석유사업의 르네상스를 이끌게 된다.
다만 아직 자동차도 없는데 그걸 지금 말할 순 없지.
“그거야 남은 기간 동안 치열하고 고민해봐야죠.”
“칫, 그러면서 이번에도 혼자 미리 생각해둔 아이템 있는 거 아녜요?”
태선은 뜨끔했지만 그저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하하···에이, 그럴 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