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53
053 졸렬함(1)
“태선, 가는 중에라도 좀 자두세요. 한숨도 안 잤잖아요.”
날이 밝자마자 첫 기차로 타이터스빌로 향하며 샬롯이 걱정스레 말했다.
“괜찮아요. 샬롯 눈에는 제가 지금 피곤해보여요?”
“···아니기는 하네요. 오히려 엄청나게 화가 난 티가 나지만.”
어떻게든 설득해서 태선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고 싶었는지 샬롯이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그런 샬롯이야말로 초췌해 보였다.
‘나야 체력이 받쳐준다지만···.’
샬롯은 평소에도 일이 많아 쉬어야 하는데도 워낙 일 중독자라서 무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밤에는 내내 머리를 쓰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사업을 시작한 이래 순탄하게 성장해왔다.
‘2년 전에 타이터스빌 보이콧은 한 때의 불장난이고.’
실제로 그 일은 간단히 제압했다. 하지만 어젯밤 들은 그 소식은 격이 달랐다.
〈 타이터스빌에서 웬 무리 사람들이 유전과 석유 회사를 매입하고 있습니다. 들리기로는 돈으로 매수하기도 하고, 거부하면 폭력까지 써서 강제로 계약을 시킨답니다. 오전부터 펍 문을 열어놓겠습니다. 편지를 보는대로 와주십시오. 급히 대책을 강구하셔야 할 듯합니다.
-펍 주인 마이클 〉
아무래도 급히 쓴 편지라서 그런지 이보다 자세한 내용은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의 사실 여부 자체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타이터스빌 보이콧 이후 현지 정보를 얻기 위해 마이클과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다져뒀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빠르게 정보가 들어온 것은 그런 안배 덕분이었다.
덕분에 태선은 샬롯과 잭을 소집해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거래하는 유전과 석유회사의 명단을 추리고 거래 내역이나 생산량 등을 기반으로 중요성을 재차 검토하고.
자금 사정을 확인해두고.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일단 잭에게는 자금 확보를 맡겨두고 샬롯과 자신은 타이터스빌로 향하는 것이었다.
“전 정말로 괜찮으니 조금 쉬어둬요, 샬롯.”
“그렇지만 태선도 안 자고 있는데······.”
“절 봐요. 지금 제 얼굴은 괜찮잖아요. 하지만 샬롯이 그런 몰골이어서야 이제부터 만날 사람들에게 우리가 곤란해졌다고 광고하는 꼴이에요.”
“음···. 그럼 미안하지만 조금만 자둘게요.”
처음에는 버텼어도 못내 피곤했었는지 샬롯은 이내 창문에 머리를 대고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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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타이터스빌에 도착하자마자 샬롯을 깨워서 마이클의 펍으로 갔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그에게 더 정확한 사정을 듣기 위해서였다.
“오, 이제야 오셨군요.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전이라 원래는 펍을 열 시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마이클은 편지 말미에도 적어두었듯 태선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 같은 걸 할 계제가 아닌지라 마이클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유전과 석유회사가 얼마나 많이 넘어갔는지 아십니까? 대충이라도 괜찮습니다.”
“못해도 절반 정도는 된다는 듯하더군요.”
“···절반이라. 많군요.”
다만 마이클이 말한 저 절반이라는 답은 그렇게 정확한 건 아닐 터였다.
돌연 큰 지각변동이 일어난 상황에서 호들갑 떠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져서 낸 결론일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만큼 큰 충격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결코 부정할 수가 없었다.
“한둘이 아니라 몇 명씩 다니면서 그랬다고 했죠? 그 숫자는 얼마나 되던가요?”
“못해도 이십 명···아니, 삼십 명은 넘는 것 같던데 사실 그 정도의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으니 고작 반나절만에 유전의 절반을 매입한 거겠죠.”
“반나절이라면 오후부터 그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건가요?”
오전이라지만 창문을 다 막아놔서 간신히 빛이 새어드는 어둑어둑한 펍 분위기.
태선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묻자 샬롯과 마이클은 흠칫 조심스레 눈치를 봤다.
그러다 마이클이 입을 열었다.
“예, 유전 주인 중에 안 팔고 버틴 이도 있는데 도망치듯 찾아와서는 그놈들이 두세 시쯤 왔다고 말해주더군요.”
“오후 두세 시쯤이라.”
시간을 되뇌더니 태선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시간이면 샬롯과 제가 모임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던 시간이군요.”
순간 샬롯도 깨달았는지.
“아! 그럼 마이클이 아무리 빨리 출발했어도······.”
탄성을 내질렀고 태선은 그 말을 받았다.
“예, 뉴욕에 도착했을 시간에 우리는 모임에 갔겠죠.”
“실제로 제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심상찮아서 바로 뉴욕으로 갔는데 두 분은 모임에 갔다고 하시더군요.”
“태선, 누구의 짓일까요? 공교롭게도 딱 모임에 나갔을 때 일을 벌인 거면···.”
샬롯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는지 말끝을 흐렸다.
다만 그녀가 끝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자신 역시 지금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에.
‘모임에서 일찍 나왔으면 샬롯이나 내가 더 빨리 그 소식을 듣고 어쩌면 어제 곧바로 왔을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었다.’
그때 태선을 붙잡았던 이가 한둘이 아니기에.
‘누구의 짓이지? 저스틴? 밴더빌트? ···록펠러나 모건일지도 몰라.’
애초에 자신의 사업은 소문이 났다.
그걸 빼앗고 싶어 호시탐탐 눈독 들이며 기회를 엿보는 협잡꾼이 있었다면?
그리고 저스틴의 모임에 자신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그가 입수했다면?
‘나는 요새 화제의 인물이야. 그러니 나를 초대했다는 소문이 퍼져도 이상할 건 없지. 그걸 알아채고 미리 와서 모임에 묶어두려고 작정을 했다면······.’
정황상 추측이지만 앞뒤가 너무나 잘 맞았다.
‘하필이면 모임에 참석해서 내가 몸을 뺄 수도, 정보를 들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수작을 부렸어.’
거기에 동원한 수십 명의 인력은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참석하는 사람 중에서도 거물급이어야 하리라.
심지어 아무리 석유값이 폭락했어도 유전과 석유회사를 싹 매입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적지는 않을 텐데 그걸 준비했다?
뒤탈도 생각 않고 막무가내 폭력을 동원했다?
‘젠장, 이 시대에는 도둑 남작들이 판을 친다더니 이딴 지저분한 짓거리나 하고 있던 거야?’
이건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강도고 도둑이었다.
그리고 태선은 너무 무르게 생각했다. 록펠러가 본래 역사에서 클리블랜드의 대학살을 자행했으니.
록펠러가 아니더라도 다른 인간들이 먼저 냄새 맡으면 필시 그랬을 터이거늘.
‘같이 벌자’가 아니라, ‘빼앗는다’를 기본으로 삼는 인간들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에디슨을 데려와 놓고, 이걸 생각 못 하다니 너무 방심했어.’
“누구의 짓이든, 이렇게 당하다니···으, 이건 너무 교활해요.”
샬롯도 머릿속에서 비슷한 사고의 흐름이 흘러가고 있었는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어제 모임에서 다들 겉으로는 하하호호 하면서 속으로 이런 수작을 부리고 있던 걸 생각하면··· 어제 우리는 하이에나 무리에 있었던 거였네요.”
같은 생각을 해도 태선이야 복수할 생각부터 했다지만.
아무래도 샬롯은 덜컥 겁이 났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부터 이 일의 대책을 위해 자신과 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녀가 동요하면 곤란하기에 태선은 일단 진정시키기로 했다.
“아직은 심증이니 속단하지 말죠.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있잖아요. 지금은 그 일에만 집중하죠.”
“···남은 유전과 석유회사를 매입하는 계획 말인가요?”
태선은 천천히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밤새 논의했던 대로 실행에 옮기죠. 그동안 노력한 걸 무의미하게 만들 순 없잖아요. 잭도 지금쯤 뉴욕에서 움직이고 있을 거고요.”
“하긴 여기서 사업을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네, 해야겠죠.”
일에 대해 생각하자 조금 진정되는 눈치였다.
격려하듯 샬롯의 어깨를 어루만져주며 태선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크흠, 듣자하니 누가 작정하고 일 벌인 거 같은데 화를 참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 태선의 눈치를 보더니 마이클이 조심스레 말했다.
“펍에서 무슨 말을 들었든 무엇을 봤든 간 무조건 비밀을 지켜드리죠.”
“생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이클. 하지만 애먼 사람들에게 괜히 화풀이하면 안 되죠. 이걸 감당할 놈들에게 제대로 풀어낼 겁니다.”
오히려 이제는 미소마저 띠며 말했다.
“대신 마이클에게는 다른 도움을 부탁하고 싶은데요.”
“물론 태선이 도와달라면 도와줘야죠. 그놈들 어제 그렇게 일 벌이는 꼬라지 보면··· 어후, 아득합니다.”
하긴 재커리처럼 먼저 수작 부리지 않는 이상 태선은 신사적으로 상대를 대했다.
하물며 태선은 마이클을 비롯해서 펍 주인들은 특히 더 잘 대해줬다.
그에 비해 어제 그놈들은 폭력까지 썼다고 하니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얼마나 행패를 부릴지.
‘그동안 챙겨준 걸 드디어 수확할 때가 왔군.’
태선은 이내 노트 하나를 꺼내더니 탁자에 펼쳤다.
타이터스빌의 유전과 석유회사들의 목록이 적혀있는데 아직 어디가 팔려나갔는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일단 이 목록에서 어디가 확실히 팔려나갔고 어디가 팔지 않았는지 알려주십쇼. 거기서부터 시작하죠.”
***
유전이나 석유회사 어디가 팔렸고 안 팔렸는지 최대한 빨리 정리한 뒤.
태선은 조금도 지체할 틈이 없다는 듯 곧바로 타이터스빌 업자들을 찾아다녔다.
“아, 킴 사장님! 어제 정말 난리였습니다. 보십쇼, 그놈들이 행패를 부리면서 다 때려부시며 팔라는데······.”
“그래도 태선과 한 거래가 있으니 안 팔았습니다. 딱 봐도 태선이 해오던 사업에 뭔가 수작 부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킴 사장님···저번에는 내가 재커리에게 넘어가 그런 실수를 했지만 이번에는···아이고, 내가 놈들에게 맞아서 다쳐도 끝까지 팔지 않고 버텼습니다.”
만나는 업자들마다 태선에게 앓는 소리를 했다.
사실 아직 팔지 않은 자들은 이런 소리를 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폭력도 저지르는데 팔지 않은 이유가 뭐겠는가.
하물며 그들로서는 어차피 전망이 없는 유전이나 석유회사를 누가 사가든 환영일 터였다.
다만 지금까지는 유일하게 사주는 사람이 태선이었기에 다른 이들은 사겠다고 들이대지 않을 따름이었지.
단지 그동안 거래한 의리로 버텨낸 것이었다.
물론 재커리 때 사건으로 본보기를 잘 보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런 협잡에도 넘어가지 않고 버틴 이들은 잘 대우해줘야 해.’
재커리 때의 일이 벌을 주는 본보기가 되었다면.
자신을 믿고 의리를 지키면 그만한 보상이 따른다는 전례도 세워둘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잭슨 씨의 유전은 제가 매입하죠. 물론 후려치는 가격이 아니라 시세 두 배로 해드리죠.”
“헉, 두···두 배로! 놈들은 후려치는 가격을 댔는데!”
“베커 씨, 의리를 지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석유회사도 물론 제가 매입하고 치료비도 제가 대드리겠습니다.”
“치료비까지···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면 관리인으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드릴 테니 생각이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사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태선은 선심 쓸 때가 아니었다.
사업 밑천이 반이나 털리면 회사가 휘청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기에.
하물며 오늘도 그놈들은 놀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남은 절반마저도 실시간으로 빼앗기고 있을 터.
그럼에도 태선이 이렇게 챙겨주니 더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야 윤활유뿐만 아니라 전구라는 자금줄이 있으니.’
거기에 전구에 비할 바는 아니라도 의류 사업 역시 기반이 잡혀서 나름 쏠쏠하게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전례도 남길 겸 선심 쓰듯 매입해도 지금 워낙 석유값이 떨어져있어서 손해는 아니었다.
그리고 놈들에게 넘어간 업자들이 많아서 남은 이들 자체가 많지 않아서 다 매입해도 손해 지출 자체도 크지 않았다.
‘뭣보다 내가 사려던 유전과 석유회사를 먼저 쓸어간 놈들이 지금보다 더 폭락한 가격으로 되팔도록 만들어줄 생각이니까.’
그리고 그 가격으로 자신이 매입하면 손해···사실 손해도 아니지만 아무튼 소모한 자금은 메우고도 남았다.
“샬롯, 이제 우리가 매입한 유전과 석유회사가 얼마나 되죠?”
“목록에서 20퍼센트가 넘게 매입했어요.”
그렇게 며칠 동안 태선은 타이터스빌부터 클리블랜드까지 펜실베이니아 북동부 전역을 다니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늦게나마 적지 않은 유전과 석유회사를 사들이며 돌아다닌지 사흘째 되는 날.
“언제 오나 했는데 늦었네.”
다시 타이터스빌로 와서 마이클의 펍을 들렀을 때 태선을 기다리는 손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