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54
054 졸렬함(2)
멘로파크 연구소로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의 한 노천 카페.
거기 마주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년 남자와 청년은 바로 존 엘리스 박사와 새뮤얼 앤드루스였다.
“엘리스 박사님, 정말로 우리에게 누군가 접근할까요?”
“태선이 말했으니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조심스레 말을 주고 받는 이 둘은 옷차림에서 제법 신사다운 태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태선 덕분에 연구기 빛을 보면서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기에.
다만 그 탓에 다소 부작용도 있었다.
“이 성냥 좀 사주세요.”
“큼, 지금은 좀 곤란하단다. 그냥 가렴.”
“그래도 한 번만 봐주······.”
조잡한 물건을 사달라고 꼬마들이 들러붙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돈을 벌었더라도 사주지 않았을 터였다.
다만 둘은 성화를 못 이겨 푼돈이나마 건네고 물건을 사고는 꼬마들을 쫓아냈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이 맡은 중요한 일이 따로 있었기에.
“이제야 갔군. 아무튼 태선의 말이라면 신빙성 있지. 그러니 자네도 나온 거 아닌가.”
“뭐 그렇기 한데···후우, 그나저나 그런 수작질을 벌이는 작자들이 있다니.”
“그래, 무서운 일이지. 부디 아니기리를 바라네만 일단 기다려보세나.”
말하며 존 엘리스는 얼마 전 샬롯을 통해 전한 태선의 말을 사뭇 떠올렸다.
-수습하는 중이라 빨리 알려드리는 게 늦었습니다만 최근 유전과 석유회사를 가로채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꽤나 대규모고 노골적으로 움직이더군요. 다만 유전이나 석유회사를 매입해도 기술이 없어서야 소용이 없으니 분명히 존 박사님이나 샘에게 접근할 듯 싶습니다.
-스카우트 제안을 할 듯 싶은데 두 분이 계속 저와 함께 해주시겠다면······.
‘놈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기다렸다가 그 놈의 인상착의를 알려달라고 했지.’
만약 가능만 하다면 신상을 알아내면 더 좋고.
새뮤얼 앤드루스도 그 말을 같이 들었고 둘은 그 제안을 듣자마자 의견이 일치했다.
“그래도 태선이 기탄 없이 우리에게 그 사실을 밝히고 이런 일도 맡겨주니 긴장 되면서도 기쁘네요.”
“나도 동감일세. 태선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뜻이니 말이야.”
태선을 배신하기는커녕 시킨 대로 따르기로 한 것이었다.
아울러 거리를 두고 샬롯도 이곳을 지켜보고 있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날 모임에서 일이 마음에 걸린다며 인상착의를 직접 보기 위해서.
듣기로는 그날 모임에 온 작자들이 십중팔구는 사갈 같은 자들이랬는데 그거야 솔직히 잘 모르겠고.
“이거 문득 드는 생각인데 낚시라도 하는 것 같군요.”
“낚시···자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군. 혹시 낚시 좋아하는가?”
그래서 기꺼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와있는데.
그런 한편 어제도 허탕 쳤고 오늘도 그냥저냥 흘러가는데 정말로 누군가 접근해올지 의심도 드는데 그때.
“실례지만 새뮤얼 앤드루스 씨와 존 엘리스 박사님이십니까?”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남자들이 새뮤얼 앤드루스와 존 엘리스에게 접근했다.
‘···정말로?!’
그 둘은 접근해온 남자들을 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 담담히 쳐다봤다.
“내가 엘리스 박사고 이쪽이 새뮤얼 앤드루스가 맞는데 무슨 일로···아니, 어떻게 우리를 알아보고 찾아온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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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은 거리를 두고 샬롯은 새뮤얼 앤드루스와 존 엘리스 박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태선의 지시이기에 따르고는 있지만 회의감이 아예 안 드는 건 아니었다.
‘지금쯤 태선 혼자 펜실베니아주를 돌면서 업자들과 거래하느라 힘들 텐데 차라리 거기 합류하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이 자꾸만 치고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거리 건너편 노천 카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는 거기 앉은 두 사람에게······. 다만 어제도 허탕이고 오늘도 그런가 싶었을 때.
‘···정말 왔잖아! 거기다 저 얼굴은 낯설지 않은데 어디선가 분명히 봤었어.’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억을 파헤친 끝에 샬롯은 저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떠올려냈다.
‘맞아. 다니엘 앤더슨한테 다가와서 속닥거린 남자잖아!’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저 남자와 속닥거리느라 물류 사업을 한다는 윌리엄 파고 씨와 헨리 웰스 씨였던가.
태선이 그들과 친분을 쌓고 싶어했는데 빈정이 상했는지 돌아갔다.
‘급한 일이 있다더니 급한 일이란 게 이것과 관련된 거였어?’
샬롯이 분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금니를 꽉 무는 사이 그 남자는 어느새 새뮤얼 앤드루스와 존 엘리스 박사와 합석했다.
그 남자는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더니 새뮤얼과 존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일어섰다.
두 사람도 이내 카페에서 나섰고, 멘포파크 연구소로 돌아가려는 것일 터.
‘정말로 태선의 말대로일까.’
샬롯도 곧장 길을 돌아서 연구소로 돌아갔다.
그녀는 들어가자마자 새뮤얼 앤드루스와 존 엘리스 박사에게 물었다.
“그들이 뭐래던가요? 정말로 태선이 말한 대로 그랬어요?”
“예, 허허. 우리더러 태선의 사업은 망할 테니 자기들에게 붙으랍니다.”
혹시나 싶었거늘 설마 했던 그대로였다.
“엘리스 박사님께는 윤활유 제조법, 저한테는 증류법을 내놓으라더군요. 그러면 큰 돈을 주겠다고.”
“···한 치를 벗어나질 않네요. 하기야 뭐 그 두 가지가 없으면 유전을 매입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긴 하지만.”
샬롯이 중얼거리는 사이 존 엘리스와 새뮤얼 앤드루스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자기네가 연구소도 차려서 거기서 일을 하게 해준다는데···단칼에 거절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았습니다.”
“저도요. 태선이 만약 그런 제안이 오면 응해줄 듯 하래서 그랬지만 가당치도 않지!”
“암요. 태선과 우리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고생하고 협동했거늘.”
오히려 두 사람은 그 제안을 받은 것만으로도 불쾌했는지 그 수작을 욕하며 구체적인 제안에 대해 말해줬다.
“그랬군요. 아무튼 둘 다 잘 참으셨어요. 저들은 두 분을 끌여들였다고 착각했겠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죠.”
“그야 이를 말이겠나. 우리가 태선을 배신할 일은 절대 없네.”
그리고 샬롯은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다시 기차 타고 타이터스빌로 돌아왔다.
펍에서 기다리다가 밤 늦게 둘이 돌아오자 자신이 알게 된 정보를 알렸을 때가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
“태선, 제대로 짚었네요. 저 사람···그날 모임에서 우리를 붙잡아뒀던 그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그 다음날 다른 석유업자를 만나려 나가는데 찾아온 남자들이 있었고.
그 중 선두에 선 남자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샬롯이 속삭이는 것이었다.
‘역시 샬롯이야.’
그리고 그걸 듣는 태선은 각 잡고 공부한 역사 지식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지나친 사람들조차 일일이 얼굴을 다 외우는 일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순간 기억력이라거나 통찰력에서 보면 확실히 샬롯이 더 뛰어났다.
뭐 그런 재능이 있으니 법률이라거나.
서류 필요한 걸 죄다 외우고 그도 모자라 자기 스케일까지 꿰고 있겠지만 아무튼.
“그러면 어제 저 사람에게 속닥거렸던 남자가 새뮤얼과 존 박사님께 접근했고 우리한테는 이 놈이 왔으니······.”
“네, 정황상 확실하네요. 모임에서는 아마도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시간을 끌어서 우리를 붙들어두려 작정했었나 보군요.”
“으으으, 정말 치졸하네요!”
속닥이며 샬롯과 말을 주고 받는 사이.
펍에서 막 나온 참인 태선과 샬롯의 앞을 가로막고 선 중년 남자가 말했다.
“하하하, 이거 공교롭게도 여기서 다시 뵙는군요.”
지난 며칠 동안 폭력까지 써가며 남의 밥줄을 끊어놓은 사람치고, 말끔한 차림새의 신사가 아는 체를 해왔다.
“공교롭다······. 유감스럽게도 그쪽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만. 다니엘 앤더슨 씨.”
“최근 일에 대해서는··· 예, 아무래도 충돌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죠.”
“충돌이라. 표현을 고상하게 하시는 재주가 있네요? 일방적인 폭력, 갈취에 협박까지. 사업하는 사람은 맞습니까?”
태선의 말에 이어 마침 문을 닫고 나와서 이야기를 듣던 마이클이 덧붙였다.
“소문이 지금도 계속 들어옵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그 짓을··· 당했다고요.”
순간 앤더슨이 노려보자 마이클이 흠칫했지만.
든든한 태선을 믿고 할 말은 다 마치는 그였다.
“이보시오, 앤더슨 씨. 눈 함부로 그렇게 뜨지 맙시다. 문명적인 나라에 온 덕분에 나 역시 문명적으로 살고 있지만······.”
태선은 말하며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앤더슨은 혼자가 아니라 그 뒤에 덩치가 좋은 서넛을 같이 데리고 온 터였다.
그럼에도 태선이 살벌하게 부릅뜬 눈빛에 저도 모르게 주눅 들었는지 움찔 물러섰다.
“아시아에서도 빈민촌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 두 주먹만 달랑 가지고 태평양 건너오는 것이 보통 각오로 할 일은 아니거든요.”
녀석이 물러선 만큼 더 다가서며 거의 코끝이 맞닿을 듯한 거리로 바짝 붙었다.
“이봐, 당신 앤더슨 씨에게 그렇게······.”
“입 닥치고 있어요. 지금 당신한테 월급 주는 사람과 얘기하고 있잖아.”
경호원이랍시고 데리고 온 용역 깡패가 주인한테 꼬리 흔드는 꼴이 같잖다.
안 그래도 꼭지가 돌 것 같은 태선이라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앤더슨에게 나직이 말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지 맙시다. 저도 당신들이 미개하다고 부르는 곳에서 참 다이나믹하게 자랐거든요.”
“···크흠.”
아직 젊은 놈이라기에 조금 협박하고 밟아주면 통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만찮다니.
더구나 저 흉흉한 눈빛 좀 봐라, 혹시 산전수전 겪으면서 여기로 흘어오는 길에 사람도 죽여본 것일까.
‘젠장, 저런 놈과는 얽히지 않는 편이 원래는 제일 좋은데.’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놈이 가진 황금 보따리를 빼앗기 위해 다방면으로 팔다리를 잘라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터였다.
특히 윤활유라거나 석유 증류 기술을 가진 이들을 포섭하는 작업도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고.
‘그래, 원래 저 녀석이 거의 먹고 있었던 석유 바닥을 내가 기습해서 지금 절반도 넘게 뺏어왔다고. 이 정도면 그동안 비축분을 엄청나게 쌓지 않은 이상 손발은 묶어둔 거야.’
자신의 계획도 이 추세라면 실패할 리 없다.
물론 녀석의 전의를 아예 꺾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기에 혹시 더 쉽게 갈 수 있으려나 싶어서 다니엘 앤더슨은 태선에게 물었다.
“이봐요. 내가 싸우러 온 게 아니니 너무 그러지 마시죠. 나는 서로 잘 협의하자고 찾아온 겁니다.”
“협의?”
“예, 협의 말입니다.”
앤더슨은 태선의 시선을 피해 주변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피차 힘 빼지 말고요, 좋게 좋게 갑시다. 대충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텐데 쓸데없는 저항은 마시고.”
“남은 회사 매입에 손 떼라? 지금까지 매입한 건 팔고?”
“그렇죠! 꽉 막힌 사람인지 알았는데 의의로 말이 통하네. 어떻습니까?”
“더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쪽이 나한테 유전 다 팔고 지금이라도 손 떼세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걸 잘 아는 사람이 그딴 소리를 뱉습니까?”
“좋게 해결하려 했더니만. 당신, 지금 누구하고 경쟁하려고 하는지 알고는 있소?”
“잘 압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잖아.”
···라고 말하면서 태선은 순간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았다.
‘혹시 배후에 누가 더 있나?’
다만 다니엘 앤더슨은 인싸처럼 굴던 어제와 달리 싸늘한 눈빛을 보낼 따름.
그 이상 뭐라고 더 말을 내뱉지 않았다.
태선은 더 캐묻고 싶었지만 이미 다니엘 앤더슨은 앙 다문 조개처럼 뭘 더 말할 기미가 안 보였다.
‘흠, 생각보다 날 삼키려는 놈들의 클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모건, 록펠러, 듀폰이 카르텔을 이루었듯 연합해서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다만 당장은 신경쓰지 않는 척을 하며 말했다.
“됐고. 더 할 말 없으면 비켜주시죠. 누구랑 달리 진정한 사업을 하러 가야 하니까.”
앤더슨의 부하들이 짐짓 막아섰으나 태선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몸과 몸이 부딪쳤고 덩치 좋은 부하들은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태선을 막았다.
···막고 몸으로 버티는 그들이었으나, 태선이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오자 점차 밀리더니 이내 넘어지고 말았다.
“···이익!”
“밟히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비키시죠.”
“칫··· 어리석은 발악입니다. 어차피 이제 와서 남은 유전과 회사들 매입해봐야 그게 얼마나 된다고.”
앤더슨의 손짓에 부하들은 물러섰다.
“아아, 걱정은 안 받습니다. 그나저나 앤더슨 씨?”
태선은 곧 샬롯과 마이클을 데리고 갈 길을 가려다 문득 돌아보더니 말했다.
“졸렬한 협잡질 따위로 내가 멈추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