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56
056 함무라비의 법(2)
“만약 내 신변에 뭔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동생 태경을 언급하자마자 태선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니 약점을 제대로 짚었다고 착각하기라도 한 걸까.
“또는 사업에 있어서도 허튼 저항을 계속하면 아끼는 동생이 무사하지는 못할 거요, 크큭.”
아예 석유 사업까지 엮어서 협박을 했다.
확실히 놈은 제대로 짚었다. 뒷조사 해서 동생까지 엮다니 태선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일에 성공했다.
문제는 저딴 수작에 굴종할 생각은 없다는 것.
“넌 도저히 안 되겠다. 이 상황에서 누가 위고 누가 아랜지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빡!
태선은 구두 굽으로 녀석의 사타구니를 다시 한 번 걷어찼다.
“꺼흑···끄흐으으······.”
아까 하나 깨졌다면 이번에 하나 더 깨졌을까.
다만 고통을 수습할 시간도 없이 태선은 녀석의 머리채를 잡아서 자신을 똑바로 보게 하곤 물었다.
“이봐, 너 이름 뭐냐?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어디가 더 부러질지는 장담할 수 없어.”
“끄흐, 미친 자식···아악! 아, 알렉스 에드워드요.”
“그래, 에드워드. 사업적으로 수작을 부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다치면 그때는 진짜 야만적인 게 뭔지 보여주도록 하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나?”
자존심이라도 세우려는지 아니면 고통 탓인지 녀석은 입을 꾹 닫은 채 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말로 안 할 거면 일단 혓바닥부터 잘라내고 시작해줄까? 동양에서는 혓바닥 고기도 별미거든.”
“이런 싸이코 자식이···커흡!”
태선이 손으로 우악스럽게 에드워드의 양쪽 뺨을 눌러 입을 벌리고는 나이프를 넣는 시늉을 하자자 그제야 녀석의 다급히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알겠소! 다신 당신 주변 사람들에 신변의 위협을 가하는 일은 안 하겠소.”
“아니, 해도 돼. 그 대가를 치르면 될 뿐이지. 함무라비 법 알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은···아니, 그보다 좀 더 많은 대가를 치러서 말이야.”
말하며 태선은 나이프를 에드워드의 손에 직접 쥐여 주고는 멱살을 잡아 일으켜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이 상태에서 마음만 먹으면 나이프로 태선을 쑤실 수···그런 시도는 할 수 있을 터였다.
“······.”
그렇지만 에드워드는 호랑이 앞의 고양이처럼 그대로 굳어서 아무것도 못 했다.
“자, 이제 가봐. 조만간 사업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당신 친구 다니엘 앤더슨과 같이 만나기로 하자고.”
“아···알겠소. 고맙소.”
스스로 대체 왜 고맙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드워드는 일단 그렇게 말하고는 급히 빠져나왔다.
뒤이어 태선도 느긋한 걸음걸이로 복도로 나왔다.
다만 놈의 앞에서는 싸이코 행세를 하며 칼부림도 아무렇지 않게 할 것처럼 말했지만.
‘샬롯 옆에야 내가 늘 붙어있다지만 태경이한테까지 손을 쓴다면 곤란한데.’
태경이는 지금 개리슨의 도움으로 명문 학교의 기숙사에 들어가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쉽게 손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학교와 기숙사에서만 사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다니엘 앤더슨이나 에드워드가 마수를 뻗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일이 터진 뒤에는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특히 사람 목숨과 관련한 일이기에 더욱 우려가 됐다.
‘젠장, 놈들이 사업적인 수작 부리는 거야 이길 자신도 있고 다소 피해 봐도 복구할 자신이 있었지만··· 조폭이나 마피아 같은 짓을 하다니.’
샬롯을 안심시켜줄 말을 고민하는 한편 태선은 아무래도 태경이에게 붙일 경호원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초조해하지 말아요. 저쪽은 저쪽대로 분할 걸요. 단기간에 우리를 짓누르려고 온갖 수단을 썼는데도 우리가 꿋꿋하게 버티니까요.”
“흥, 그 인간들 뜻대로 해줄 수는 없죠! 오기로라도 끝까지 버텨야죠.”
마차에 치인 그날은 너무 놀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샬롯은 생각보다 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아니면 그 경험이 며칠 사이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는지 모르겠지만.
“이럴 때 보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샬롯도 은근히 반골 기질 있다니까요.”
“에이, 반골 기질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지키는 거죠. 마치 독립전쟁 때처럼 말이죠.”
그녀는 독립전쟁에서 활약한 선조 에녹 푸어 준장까지 언급하면서 전의를 더욱 불태웠다.
“자, 그런 의미에서 저도 쉴 수만은 없겠네요.”
이게 말만은 아닌 게 저번에 말한대로 그녀는 서류를 병실로 가져와서 처리했다.
덕분에 존 엘리스 박사나 새뮤얼 앤드루스나 혹은 조지 웨스팅하우스나 에드슨은 돌아가며 서류를 나르는 심부름꾼이 됐을 정도였다.
‘심지어 며칠 전에 개리슨이 왔을 때도 시킬 줄은 몰랐지. 접수는 다른 사람은 못 미덥다며 그나마 사교 스킬이 있는 개리슨에게 꼭 부탁한다면서.’
회사가 어려운 때 젊은 아가씨가 다쳐서 병실에서도 일하며 이런 부탁하는데 거절하기 쉬울 리가 있겠는가.
결국 개리슨도 얼마 동안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머물며 샬롯을 돕기로 했다.
지금도 개리슨은 심부름을 나가있는 차.
태선으로서는 회사 일도 있거니와 태경의 경호원 고용에 대해서도 의논하려던 터라 잘된 일이었다.
“자, 이것 좀 마시면서 해요.”
앞으로 일에 대해 생각하며 태선은 커피를 타서 샬롯 앞에 가져다주었다.
“아, 고마워요. 원래 비서인 제가 해야 하는데.”
“커피 타는 거야 누가 하면 어때요. 이런 거 말고 정말로 샬롯만 해줄 수 있는 일을 잘해주시면 돼요.”
태선의 말에 쑥스러움을 느끼면서 샬롯이 커피를 홀짝이는 와중, 테이블 위 커피 한잔이 더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응? 왜 한 잔을 더···아, 깜빡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었나요?”
“예, 오늘이었죠.”
태선은 답하며 커피 한 모금 다시 마시고는 회중시계를 보고 시선을 문으로 옮겼다.
사실 여태 많은 지인들이 병문안을 왔지만 아직 태선이나 샬롯과 친한데도 오지 못한 이가 있었다.
그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태선이 석유회사 일로 바쁜 탓에 전구회사 일은 그가 다 떠맡아 분투하고 있던 탓이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했다.
똑똑──!
마침 노크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온 모양이었다.
영국 사람이라 그런지 역시 약속 시간 하나는 정말 칼같이 지킨다.
병실 문을 열어주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눈을 사로잡는 건 덥수룩한 수염.
“미안하네. 샬롯 양이 다치다니 진작 왔어야 했거늘 이제야 얼굴을 들이미는군.”
“에이, 뭘 그런 말을 하세요. 괜찮습니다. 그렇죠, 샬롯?”
“네? 아뇨. 전 조셉 아저씨가 이제야 와서 너무 서운한데요.”
태선 그리고 샬롯과 농담도 하며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는 그는 조셉 스완이었다.
지금 사업화한 전구의 원조 기술을 발명했고 태선과 같이 사업하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 남자.
그는 넉살 좋게 샬롯이 던진 말을 받았다.
“좀 봐주게나, 샬롯 양. 그래도 밖으로 뻔질나게 돌아다닌 덕분에 조명 설치도 내가 꽤 진행시켰다고.”
“흠, 그렇다면야 봐줄게요.”
그 둘의 말을 들으며 태선은 타놨던 커피를 조셉 스완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무튼 조셉이 제 동업자라 정말 다행이네요.”
“에이, 내가 더 고맙지. 사실 전구 조명이 성공한 건 자네 수완이잖나. 조명 시스템도 그렇고 정부 쪽 연줄도 그렇고.”
조셉 스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조심스럽게 태선의 안색을 살피며 덧붙였다.
“그나저나··· 자네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내가 달리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그러지 마세요. 말했듯 제가 없을 때 회사를 지탱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조셉은 할 일을 다 해준 거죠. 그리고 일주일 동안 돌아다닌 일도 샬롯 덕분에 잘 처리했고요.”
“오, 그런가? 다행이구먼.”
조셉 스완은 태선이 위기를 겪고 있기에 감정을 배려해서 억누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지금 태선이 잘 처리됐다고 말하자 웃으며 푸념을 늘어놨다.
“그러면 다시 전구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건가? 사실 나 혼자서 너무 힘들었다네. 특히 설치야 괜찮지만 사업차 미팅은 나하고는 안 맞아.”
“처리됐다고는 해도 당장 복귀하는 건 어려울 것 같네요.”
태선의 말에 조셉 스완의 표정은 다시 조심스러워졌고 이내 샬롯이 입을 뗐다.
“윤활유 사업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유전은 확보했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상대방과 교섭의 여지가 더는 없는 건가?”
“그런 모양입니다. 먹거나 먹히거나 둘 중 하나겠죠.”
조셉 스완은 자신의 속이 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그걸 보자 샬롯은 괜히 반쯤 농담조로 물었다.
“어머, 조셉이 왜 그러세요. 위기를 맞은 건 석유 사업이지 조셉이 활약하는 전구 사업이 아니잖아요.”
“에이, 섭섭하게 왜 그러나. 내가 석유 사업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태선에게 걱정거리는 내게도 걱정거리라네.”
“···그러시다네요, 태선?”
그 말을 이런 답으로 받으며 샬롯은 태선을 봤다.
기실 병실에서 서류 처리를 한다지만 어쨌든 샬롯이 다쳐서 발이 묶인 차에 태선은 짊어질 부담이 늘었다.
그런 차에 시간이 남아 돌아 여기서 병문안 오는 사람을 맞이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실은 우리 사업을 두고 조셉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태선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자못 진중하게 화두를 꺼냈고 조셉은 그 역시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동시에 수염 속에서 치아가 보일 정도로 미소를 띠었다.
“우리 사이에 어려워할 것도 없지 않겠나. 자네 뜻은 다 존중하니 기탄 없이 말해주게. 석유 사업 관련인가?”
말하는 걸 보면 말만 하면 언제든 도우러 나설 기세였다.
“석유 사업이 관련된 것도 맞지만 전구 사업과도 관련이 된 것입니다.”
“석유 사업과 관련됐으면서 전구도 관련됐다···? 하기야 자네라는 중심점을 통해 아예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
태선은 옅게 웃으며 이내 샬롯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샬롯이 얄팍하게 간추려진 보고서를 가져와 조셉 스완게게 건넸다.
“이건 잭 바이든 그 친구가 작성한 보고서로구만.”
“전구와 전기 사업의 영국과 유럽 진출, 아직 그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장차 아시아 진출까지 염두에 둔 바탕이기도 합니다.”
“영국 진출···이란 말인가.”
영국 진출이란 말을 듣자 그 다음 말은 안 들리는지 조셉이 말을 되뇌었다.
하기야 그럴만 한 것이 그는 원래 영국 출신이었었다.
하물며 전구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었고.
그러던 터에 미국 와서 다름 아닌 전구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는데 필시 금의환향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터였다.
“정말로 이게 가능한 건가? 영국으로 진출하는 것이?”
“예, 쉽지는 않겠으나 조셉의 영국 연줄을 이용하고 몇 가지 조건만 갖추면 충분히 됩니다.”
“그 조건이 뭔가?!”
조셉 스완은 반사적으로 물었다가 너무 자기 속내가 드러나 민망했는지 웃으며 덧붙였다.
“하하, 꼭 내 명예를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어, 그래. 전구의 불빛은 곳곳에 비출수록 전 세계의 인류가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예, 그렇지요.”
“그래, 그래서 그런 것이야. 물론 내 명예도 높아지면 역시 좋겠지만.”
말이 늘어지는 것이 어째 궁색하다 싶기도 했지만 태선은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조셉이 반대할 일은 없겠네.’
“큼, 그래서 갖추어야 한다는 그게 뭔가?”
“아주 간단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사실 돈 말고 뭐가 더 있겠습니까.”
돈, 즉 자금을 언급하자마자 이내 조셉은 납득했다.
“돈···아, 그래, 그렇겠지. 생각해보니 잭 바이든 그 친구 원래 재무 쪽이 전문인데 보고서를 썼다면···돈이었겠군.”
동시에 조셉 스완은 약간 실망한 듯 보였다.
돈은 단번에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지금 전구 사업이 가파르게 흥하고 있지만 한 가지 고려할 점이 있었다.
전구 조명에는 전기가 필연적으로 병행되어야 하고 여기에는 초기 발전소 같은 막대한 기반 투자가 필요했다.
‘거기에 처음 조셉을 만났을 때도 이야기했지만 민간으로 진출하려면 땅 속으로 매설하든 전봇대 같은 것을 세우든 그런 투자도 필요하다고 말해줬지.’
이건 지금 공공시설 몇 군데 소규모 발전소를 세우고 건물에 전설을 이어서 전구를 밝히는 것과는 스케일이 달랐다.
도시 차원의 공사와 자금이 필요한 사업.
그 고비만 넘어가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영국 진출은 무리이리라.
‘하지만 조셉 씨, 당신 운이 좋았습니다. 그 테크트리를 앞당기는 게 지금 내 이해득실과도 맞아떨어지네요.’
슥──!
“여기요, 태선.”
마침 샬롯이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타이밍이라 여겼는지 다음 보고서를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