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57
057 함무라비의 법(3)
“···으음? 뭐가 또 있나?”
태선의 눈짓에 따라 샬롯이 건넨 보고서.
보고 조셉이 의문을 표하자 태선이 말문을 뗐다.
“영국 진출을 길어야 몇 년, 더 짧으면 몇 개월 정도로 앞당길 방법이 있습니다.”
“짜, 짧으면 몇 개월이라고?!”
방금 전의 기간은 나름 보수적으로 잡은 건데.
작정하고 밀어붙이면 더 앞당길 수 있는 것도 말할 걸 그랬나.
아니,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
태선은 일단 걸리는 시간에 대해서는 잠자코 말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업을 우리 돈으로만 하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우리 돈만 아니라···라는 건 투자를 받는다?”
“예. 더구나 상장하면 알음알음으로 파는 것보다 더 크게 끌어모을 수 있겠죠.”
조셉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닌지 이내 수긍했다.
“하기야 우리 사업은 초기 비용이 크지만 일단 그 기반만 갖추면 숨통이 트이니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하지만 조셉 스완의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만큼 많은 돈을 끌어모으려면 주주도 많아지고···회사에서 우리의 영향력이 많이 약해질 걸세. 더구나······.”
“괜찮습니다. 무슨 말씀이든 해주시죠.”
“알겠네. 불쾌하게 듣지는 말게나. 지금 자네에게 협잡질을 부리는 것처럼 누군가 대량으로 주식을 매입해 빼앗으려 하면··· 곤란하지 않겠나.”
“예, 맞는 말씀이십니다.”
자신 역시 같은 이유로 저스틴이 제안했을 때 단칼에 거절했으니 말이다.
다만 석유회사든 전구회사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말씀하신 우려 때문에 우리 회사의 상장에는 차별성을 둬야 합니다.”
“차별성? 경영권에 영향력을 주지 않는 주식을 발행하는 걸 말하는 것인가?”
“그런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우리가 바라는 수준의 투자금을 모을 수 없으니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닐 겁니다.”
“그렇겠지······.” 라고 납득하면서도 그러면 무슨 방법이냐고 묻듯 조셉 스완이 쳐다봤다.
“전구의 불빛을 밝히면 누구보다 국민들에게 이득이 됩니다.”
“그렇지.”
“그리고 국민들 자신을 제외한다면 국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큰 이 나라의 조직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야···주정부와 연방정부가 아니겠나···잠깐만, 자네가 말한 방법이?”
샬롯은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괜히 뿌듯한 미소를 머금었고.
태선 역시 조셉을 보며 웃는 채로 말을 이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도 끌어들이는 겁니다. 물론 정부 외에 투자자도 받겠지만 큰 손을 받고 시작하면 여러 면에서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정부가 끼었다는 소문 나면 그걸 보고 달려드는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고.
아울러 자신은 체이스 재무장관이나 스탠튼 전쟁장관 등과 연줄이 있다.
그때 잘 설득하면 경영권에 간섭할 수 없는 우선주만 발행하면서 정부에 지속적으로 빨대를 꽂을 수도 있다.
그러면 전구 조명 사업은 나날이 무서운 기세로 커지겠지.
‘그리고 석유산업은 점점 더 심하게 침체에 빠질 거고.’
그나마 자신이야 전구와 포지션이 겹치지 않는 윤활유라는 아이템이 있지.
그것도 없이 막무가내로 유전이나 석유회사만 매입하면 도트딜이 찍힌 듯 시간이 흐를수록 손해다.
즉 태선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유전과 석유회사들을 무지성으로 매입했으면 그만큼 손해 보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이 노림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건 그냥 밑바탕으로 깔고 가는 것일 뿐.
‘뭐 지금도 유전이나 석유회사들이 시세가 폭락한 판이니 손해를 봐도······. 저스틴의 모임에 참석할 정도의 사업가라면 버틸 만하겠지.’
더구나 다니엘 앤더슨이나 에드워드가 하는 짓을 보면 여태 비슷한 짓으로 엄청나게 재산을 불렸을 터였다.
그런 탐욕이라면 닥치는대로 돈 되는 건 뭐든 했으리라.
하지만 이번에는 그 탐욕이 그들을 태선이 판 함정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도저히 기껏 매입한 유전과 석유회사를 저가에 팔지 않고는 못 배길 떡밥을 주지.’
스완 제네럴 일렉트릭 상장 건은 그걸 염두에 둔 한 수였다.
***
‘하아, 샬롯 없이 혼자 일정 체크하려니 정말 빡세네.’
동생 태경이 재학하는 더머 아카데미 교장실에서 태선은 속으로 푸념했다.
원래 샬롯이 처리하는 일이 많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다니엘 앤더슨이나 알렉스 에드워드로 인해 바쁘게 움직이는 터라 더 그랬다.
“걱정 말게나. 이야기는 내가 미리 해뒀으니.”
다만 같이 있는 사람들도 있는지라 그 생각은 마음 속에 갈무리해뒀다.
“물론 자네가 기부금을 내준 덕분이지만 아무튼 문제는 없을 거야. 의례적인 거지.”
“고마워요. 역시 개리슨의 인맥은 언제나 든든하네요.”
나름 명문으로 꼽히는 더머 아카데미에 경호원을 마음대로 들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여기는 기숙 학교이기에.
하지만 태선은 짧은 사이 어떻게든 길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 실행에는 개리슨이 역할이 컸다.
“슬슬 올 때 됐는데 하여간 옛날부터 늦장이군.”
하나는 개리슨이 아카데미 교장과 친분이 있어서 태경의 경호원을 고용인이라는 명목으로 꽂아준 것이었다.
다만 고용인이라도 시커먼 남자였다면 사정을 봐주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해서 유사시 태경을 지킬 역량도 지녔으면서 가급적 여자로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
그 이가 지금 태선과 개리슨 뒤에 있는 여자.
이름은 사라, 인디언과 백인 혼혈이며 원래 우편 배달 일을 했단다.
공교롭게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소속이었다고 했다.
‘이 당시 우편 배달부는 엄청나게 빡신 직업이지.’
총과 칼로 우편을 빼앗는 사건이 비일비재했으니 자기 몸은 물론이고 우편물을 지킬 실력이 있어야 했다.
물론 인디언 출신은 부족의 영역에서 프리미엄은 있다.
다만 그래도 여자의 몸으로 그걸 버텼으면 실력은 확실히 보장된 셈이었다.
“사라, 앉지 그래요. 마틴 교장님이 늦는 모양인데.”
돌아보다 눈이 마주친 김에 태선은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짤막한 대답이 언뜻 들으면 귀찮아하는 것 같지만.
“하하, 사라 저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러네. 솔직히 자네에게 대답해주는 것도 난 놀랐다니까.”
개리슨의 말에 따르면 원래 저런 대답도 잘 안 한다고.
그걸 감안하면 자신이 동양인이라서 어느 정도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려나.
“···개리슨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사라는 군인처럼 열중쉬어 자세로 시선은 개리슨에게 둔 채 태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편한 대로 있어요. 그렇지만 동생을 지키는 일만 잘 부탁······.”
“미안합니다, 늦었군요. 큰 기부금을 내주신 분을 기다리게 하다니 이런 결례가!”
사라에게 당부하는데 그때 호들갑을 떨며 초로의 남자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아닙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야, 태선이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이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내가 저번에 말해줬지!”
예의를 갖추는 태선이 비해 개리슨은 껄껄 웃으며 막역지우처럼 말했다.
“알다마다! 철도에 쓰는 윤활유에 전기···거기에 이번에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활약은 내 신문에서도 봤었지.”
마틴 교장 역시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개리슨과 주거니 받거니 만담을 하는 듯했다.
이후 인사를 주고받고 태경이의 진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는 등 말이 오갔다.
태선으로서는 좀 더 오래 머물면서 당부하고 분위기도 파악하고 싶기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 태경이 다니는 학교이기도 하고 경호원으로 사라를 꽂았으니.
‘거기에 더해 나중에 이름이 커버넌스 아카데미로 바뀌지만 여기 더머 아카데미에서는 많은 인물이 배출되니까.’
어떤 싹수 있는 학생들이 있는지 봐두고 태경이가 잘 지내두라고 말하면 좋지 않겠는가.
‘···이 다음에 바로 미팅이 있어서 별수 없네. 다음에 다시 오는 수밖에.’
뭣보다 동생 태경이 얼굴도 못 보고 가는 건 아쉽지만 여긴 보스턴.
이 다음 미팅은 재무장관 체이스와 만남인데다 사안도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 상장 건이라 절대로 늦을 수 없었다.
“그럼 죄송하지만 이 다음 약속이 있어서 먼저 좀 일어나보겠습니다.”
“벌써 가십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태경의 수업이 끝나서 만나고 가실 수 있을 텐데.”
“예,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 다음 미팅이 무척 중요해서요.”
기왕 말하는 김에 동생의 어깨를 세워주려고 태선은 조금 과장해서 말했다.
“전구의 불빛을 더 많은 민중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인지라······. 부디 태경이에가 잘 말해주십시오.”
“오, 그런 일을 위해서라도 가셔야죠. 저도 잘 말해두겠지만 태경이도 형이 하는 일을 이해해줄 겁니다.”
“나도 가보겠네.”
이어서 개리슨도 일어섰다.
“아니, 자네도 가는가? 그 미팅에 깉아 가나?”
“미팅은 아니고 같은 건의 처리인데 나는 달리 맡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태선은 마틴 교장 그리고 사라에게도 태경을 재차 당부하고 더머 아카데미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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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내리겠네. 워싱턴에서 고생하게.”
“예, 그럼 부탁드립니다. 샬롯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시고요.”
“하하, 샬롯은 걱정말게. 경호원도 구해뒀고······. 오히려 그 아가씨 등쌀에 시달릴 내 처지가 걱정이구먼.”
보스턴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개리슨은 뉴욕에서 내리고 태선은 워싱턴까지 갔다.
거기서 마차를 타고 재무부 청사로 향했다.
그 안에서도 그렇고 체이스 장관의 집무실에 먼저 와서 기다리면서도 쉴 틈도 없이 서류를 점검했다.
‘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샬롯이 빈 자리가 실감되네.’
돌려서 보면 샬롯이 그만큼 혼자서 많은 업무를 떠맡고 있었다는 것이리라.
무심했다. 아무리 일 중독자라도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 언젠가 탈진할 수 있는데.
‘잭도 있지만 잭도 재무 관련으로 바쁘니······. 나중에 샬롯을 보조해줄 비서 한두 명쯤 더 고용하는 편이 좋겠어.’
“오오, 이게 누구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반가운 기색이 넘쳐나는 목소리로 부르며 체이스 재무장관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게티즈버그 전투의 숨은 영웅이 내 집무실을 다시 찾아와주다니 영광이구먼.”
“에이, 실제로 전투를 치룬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제가 다 민망합니다.”
“민망할 게 뭐 있나. 꼭 게티즈버그 전투만 아니라도 자네가 전쟁에 기여한 공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네.”
몇 마디 나눴을 뿐이지만 태선은 체이스 장관의 분위기가 밝아진 걸 확실히 읽을 수 있었다.
‘승기가 연방으로 확실히 기울었기 때문이겠지.’
1861년 4월에 시작한 남부전쟁은 본래 역사에서는 1865년 끝난다.
하지만 게티즈버그 전투와 빅스버그 전투를 기점으로 1863년부터 이미 전세는 북부의 연방정부로 기운다.
하물며 태선의 덕분에 게티즈버그에서 더 큰 승리를 거뒀을 뿐더러 전구, 보급 등에서 그 유산이 계속 이어지는 지금.
‘전쟁이 더 빨리 끝날 길이 보이는 모양이군.’
그게 아니고서 체이스 재무장관의 피곤에 절어있던 얼굴이 이렇게 필 리가 없었다.
거기에 올 때마다 회의에 참석하느라 붙박이로 여기 있던 전쟁부 장관 스탠튼도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몇 년 동안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지. 전쟁을 이용해서 자기 배나 불리려는 은행가며 사업가며 심지어 군인들까지······.”
다만 스탠튼이 이 자리에 없으니 늘 그의 억제기 역할을 도맡던 체이스가 오히려 지금은 한풀이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 버리고 싶은 때도 많았었지. 이런 인간들과 함께 이 전쟁을 이기라고?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 그렇지만 그때 자네가 나나타났거든.”
“그동안 말은 안 했어도 자네에게 의지를 많이 했네. 다른 나라에서 온 동양인이 이 나라의 정신을 말하며 그 가치는 보존되어야 한다며 이런저런 지원을 하는데······. 내가 포기하면 안 되겠다고 싶었지.”
“자네 같은 진정한 애국자가 있어서 다행이야.”
술자리도 아닌데 마음속의 온갖 말을 쏟아내는 걸 보면 허언이 아니라 정말로 내심 자신에게서 위안을 받은 듯싶었다.
‘···이 정도까지였는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잘됐군.’
이런 분위기라면 자신이 뭔 말을 하더라도 말빨이 잘 설 것 같으니.
다만 기왕 하는 김에 그 이미지를 강화시키면 재건 사업에 있어서도 좋을 터.
태선은 이내 입을 열었다.
“실은 오늘 장관님께 만남을 부탁드린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