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60
060 협잡꾼들(3)
제이 굴드는 앤더슨과 에드워드가 앉은 소파 상석에 앉더니 다리마저 꼬았다.
밴더빌트 앞에서 예의 바른 청년처럼 굴 때하고는 180도 달라진 모습.
“원래 이쯤이면 석유 분류와 윤활유 제조 기술에 남은 30퍼센트 유전까지도 다 접수해야 했어. 그런데 지금 어떤가?”
한 번 대답해보라는 듯 제이 굴드가 번갈아 쳐다봤다.
앤더슨과 에드워드는 시선을 피하며 답을 못 하는 사이 그가 말을 이었다.
“태선 킴 놈이 잘도 버티고 있군. 왜냐? 그건 자네들이 미적거렸기 때문이겠지.”
“우···우리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네.”
“최선을 다했다느니 하는 건 중요하지가 않아. 중요한 건 최고의 결과거든.”
그는 시가를 꺼내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최고의 결과는 놈의 기술도 빼앗고 남은 유전과 석유회사도 접수하는 것.”
자신이 지금 하는 말을 마음 속에 잘 새겨두라는 듯 제이 굴드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전구회사 지분도 확보하는 것. 그 아시아 놈이 가진 분에 넘치는 것을 우리가 죄다 가져오자고. 응? 뭐야, 왜 둘 다 답이 없어?”
“···알겠네. 그야 물론이지.”
뒤늦게 앤더슨이 답했지만 제이 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들 똑바로 차리라고. 빈민가를 전전하던 인생을 내가 건져서 사업가로 떵떵거리게 살게 해줬지.”
“자네 은혜는 늘 잊지 않고 있다네. 지금도 자네가 신경 써주는 덕분에 사업이 잘 풀리고 있으니 말이야.”
“그게 바로 나는 최고만을 추구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방금 전에 자네들이 추구할 최고의 결과가 뭔지는 말해줬지?”
이번에는 다행히 앤더슨과 에드워드의 답이 늦지 않았다.
“말해줬지! 태선 킴 그놈의 과분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업을 우리가 가져오는 것.”
“우리가 좀 해이해졌었네.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다니엘과 에드워드가 대답에 그제야 그는 흡족한 듯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 바로 그거라네. 이제 말귀를 좀 알아듣는군.”
하지만 제이 굴드는 꿈에도 모를 터였다.
태선도 배후에 제이 굴드가 있다는 걸 모르지만.
제이 굴드 역시 태선의 친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
“···됐어요, 태선! 녀석들이 움직였대요!”
사무실에 들어오며 샬롯은 평소답지 않게 소리쳤다.
자신이 공들여 판 함정이 있기에 샬롯이 누구를 말하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태선은 대충 짐작되었다.
‘후,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그렇지만 다니엘 앤더슨과 알렉스 에드워드의 수작질에 어지간히도 분했는지.
이제 그걸 되갚아줄 생각에 샬롯이 저렇게 들떠있는데 직접 소식을 말하게 할 기회를 줘도 좋지 않겠는가.
“샬롯, 차근차근 말해보세요, 누가 움직였는데요?”
“후훗, 뭐긴 뭐겠어요. 우리 유전 훔쳐간 그 도둑놈들 있잖아요. 유전과 석유회사 담보로 대출했대요!”
역시나 그 소식이었다.
“잘 됐군요. 그럼 철두철미한 샬롯 성격에 그냥 소식만 달랑 가져왔을 리는 없고 가져온 서류들은···?”
“역시 태선은 제 행동을 다 꿰뚫고 있으시네요. 자요, 아직 정확한 건 아니지만요.”
들고 온 서류를 태선의 앞에 펼쳐 보이며 샬롯은 한껏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놈들이 대충 어느 유전과 회사를 담보로 어느 은행에 담보 냈는지 추렸어요.”
“와, 설마 했는데 벌써 이 정보까지 가져오다니 샬롯이 발이 넓긴 하네요.”
“솔직히 수합하는 작업만 아니었으면 어제 알려드릴 수도 있었는데 조금 더 걸렸네요.”
그녀 본인의 수완에 더불어 푸어 법률사무소의 인맥까지 총동원한 덕분이겠지.
거기에 뉴욕 일대의 금융업계에서 태선의 인맥도 꽤 깊이가 있으니 그 덕도 봤을 것이고.
“그런데 서두르느라 제대로 정리가 안 돼서.”
“에이, 그 정도야 괜찮아요. 대충 훑어보는 거니까.”
태선은 한쪽에 샬롯이 건넨 서류를 두고.
서랍에 넣어두었던 전체 유전과 석유회사들을 정리한 목록도 함께 꺼냈다.
“아직 놈들이 사들인 유전과 석유회사가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군요.”
나란히 대조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놈들이 매입했을 때보다 유전과 석유회사의 값이 더 떨어져서 액수도 안 크고요.”
“네, 그렇죠. 심지어 더 떨어지고 있죠.”
그 말과 함께 태선과 샬롯은 잠시 말없이 웃었다.
녀석들이 유전과 석유회사로 담보를 낸 이유를 알고 있기에.
‘스완 제네럴 일렉트릭이 곧 상장하면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서겠지.’
기실 자신이 대놓고 속이진 않더라도 그렇게 움직이게끔 정보를 흘렸기에.
‘문제는 이 정도 자본으론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 주식을 많이는 못 산다는 거겠지.’
“놈들은 분명히 남은 유전과 석유회사도 추가로 내놓을 텐데 혹시 그 정보는 없었어요?”
“에이, 설마요. 없기는 왜 없었겠어요.”
복수의 달콤함에 눈을 뜨기라도 한 건지 샬롯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는 듯 말했다.
“풋, 담보를 낼려고 했는데 은행에서 안 받아주나 봐요. 그래서 지금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찔러보는 모양이더라고요.”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몇 군데에서 안 받아주면 다른 데도 차이 없을 건데.”
처음 뉴욕 왔을 때 태선은 유니온 은행 지점장 대리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동시에 당시 국채 판매나 석유업계 조사를 위해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이 시대 이런저런 행정적인 맹점을 많이 봤다.
‘다니엘 앤더슨이나 알렉스 에드워드 같은 사업가 탈을 쓴 사기꾼들이 꼭 시대를 막론하고 그런 건 꿰고 있지.’
십중팔구 이번에도 그걸 악용하려고 할 터.
“샬롯, 앞으로 놈들이 어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지가 정말 중요해요.”
“앞으로 대출 낼 곳은 더 철저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봐달라는 말이죠?”
“네, 분명히 놈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을 낼 수 없으니 편법 같은 걸 쓸 겁니다.”
마침 자기도 그 생각 했다는 듯 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대출 거절당한 은행에서도 벌써 그런 짓거리를 했나 봐요.”
“아, 벌써요? 그런 면에서는 참 빠른 놈들이네요.”
“유니온 은행에도 대출 신청했다던데 생산량을 크게 속였다더라고요. 다른 은행에서는 유전이 아니라 다른 지목이라 한 곳도 있고요.”
참···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자신이 예측한 틀에서 벗어나지를 않는 건 좋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대놓고 사기를 벌여도 제지가 없다니.
‘참 희한한 시대야.’
하지만 공적인 제지는 미흡하더라도 누가 피해를 보면?
하물며 피해 본 곳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인 행동이 가능한 조직이면?
결코 그냥 끝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포인트겠지. 놈들이 엉성하게 그런 수작질을 벌여주면 벌여줄수록 우리한테는 좋아.’
“···아무튼 녀석들 담보로 걸 유전과 석유회사가 늘어날 것 같아서요. 정리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느니 가능한 빨리 보여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생각하는 사이 샬롯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네, 그렇게 해주시면 돼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놈들을 살피면서 우리도 2차 행동에 들어갈 때가 됐군요.”
“2차 행동이라면 SGE,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의 상장 건 말씀이세요?”
“엄밀히는 첫걸음이죠.”
“첫걸음이라니?”
샬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선은 미소를 띠며 다시 말문을 뗐다.
“상장하되 주식 발행은 몇 차에 걸쳐 할 겁니다. 시간차 공격이랄까요.”
“시간차 공격···아! 놈들이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또 주식을 풀어서 놈들이 더 자금을 확보하게끔 한다는 거···?”
자기 말이 맞느냐 물어보듯 쳐다보는 눈빛.
무슨 유치원생이 선생님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강아지가 주인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해서 똘망똘망했다.
“어라, 왜 웃으세요? 혹시 틀렸어요?”
“정확해요. 그냥 샬롯이 너무 똑똑해서 흐뭇해서요.”
“뭐···뭐에요.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똑똑해서 흐뭇하다니.”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은지 샬롯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러고 보니 샬롯은 조부모님이 키워줬댔으니.’
자립심 강한 척해도 은근히 그런 종류의 사랑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샬롯이 낙담했을 때 사기를 북돋워 줄 키가 될 수 있으니 일단 기억해두고.
“아무튼 주식 쪽은 체이스 장관님과 상의해서 제가 하면 되겠지만 샬롯은 그동안 따로 해줄 일이 있어요.”
“저기요, 태선···방금 전에 앤더슨과 에드워드 동향을 살피는 일도 저한테 맡긴 거 아시죠? 추가로 또요?”
“하하, 그만큼 샬롯이 유능하다는 거죠. 부탁드릴게요.”
태선이 약한 척하자 샬롯은 별수 없다는 듯 한숨 내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겠어요. 저 아니면 누가 태선을 도와드리겠어요.”
“고마워요. 장담하는데 올해 안으로 꼭 온돌을 경험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예? 국밥은 언제 건너뛰고 온돌부터 가게 되었나요? 뭐 온돌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요.”
‘그야 온돌은 보일러로 사업화가 되니.’
샬롯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사업화 이전에 시험 버전으로 제작해서 미리 경험하게 해주려는 것이었다.
센트럴 파크의 전구 전시용 카페를 지을 때 이미 그 기반은 갖춰두기도 했고.
‘그래도 국밥도 조만간 꼭 만들어 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샬롯.’
“아무튼 그래서 저한테 맡길 일이 뭔지 말해주세요.”
“아, 말은 그렇게 했는데 그렇다고 부담 갖지는 말아요. 사실 샬롯이 잘하고 여태껏 해왔던 일이거든요.”
“제가 여태껏 해온 일이요?”
샬롯이 주먹을 턱에 붙이고 잠시 고민했지만.
평소 태선과 스무고개 하듯 대화하는 걸 즐기는 그녀도 얼른 답을 내지 못했다.
“음, 일정 조정? 서류 처리? 미팅 보조? 아니면 태선과 같이 밥먹어주기?”
“···마지막 건 뭔가요.”
무슨 부서장님이랑 같이 밥 먹어주는 신입사원도 아니고.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방금 그녀의 말이 사실이기는 했다. 덧붙여 방금 그녀가 언급한 일 가운데 답이 있기도 했다.
“···를 해주시면 됩니다.”
***
예정대로 약칭 SGE,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이름을 올렸다.
“아니, 그래도 이게···하아, 우선주라는 못 들었단 말입니다.”
다만 우선주였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불만도 있었고 지금도 사무실에 찾아와 불만을 성토하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대응은 간단했다.
“저는 물론 회사에서도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그건 찌라시였기에.
“아니, 그래도···세간에 말이 그렇게 파다했는데.”
“주식 투자는 원래 자기 선택이고 책임이죠. 이게 기본인데 모르십니까. 다 알만한 분이 이러시면 안 되죠.”
딱 봐도 재산가라 큰 돈을 투자한 것 같은 남자는 태선의 말에 아무 답도 못 했다.
기실 이미 돈은 투자돼서 주식이 되었고 칼자루 쥔 사람은 태선이기에.
‘게다가 우선주라고 태클 걸 정도면 애초에 기업 사냥을 목적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니.’
투자한 만큼 배당은 해줘도 시커먼 속내에 대해서는 배려해줄 필요 없으리라.
“경영에는 간섭 못 해도 장기적으로, 아니 장기도 아니고 바로 팔지만 않으면 손해는 안 볼 겁니다.”
“나도 아는데 내가 노린 건 그게 아니었단 말이네.”
“그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슬슬 다른 손님이 올 시간이라서요. 이만 가주셨으면 합니다만?”
단호히 말하자 그는 이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태선은 그 남자가 앤더슨과 에드워드가 직접 항의 못 하니 대신 보낸 사람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들은 바로는 유전과 석유회사로 대출 낸 돈을 거의 주식에 박은 것 같던데.’
총 발행 주식의 10퍼센트에 조금 못 미치는 큰 액수고 그건 물론 맛있게 잘 먹었다.
평소에 나쁜 짓을 많이 한 놈들이고 나쁜 짓으로 번 돈이니 자신이 대신 사람들에게 전구의 불빛을 전파해주는 것으로 잘 써주리라.
“하지만 아직이지.”
왜냐? 그야 아직 놈들에게 털어먹을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멈출 생각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