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62
062 역습(2)
쓰디쓴 현실을 알게 되자 그레이엄 지점장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웠다.
“그···그게 정말입니까? 혹시 은밀한 정보랬는데 킴 사장님이 모르는 건 아니신지요?”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봤지만 밴더빌트와 사적인 친분이 있는 태선이었다.
특히 처음 역사에 전구 설치 사업을 했을 때는 연방정부의 압박으로 어쩔 수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라졌다.
‘지금은 밴더빌트 씨가 전구 설치 단골이 됐지.’
기차 운행은 물론 철로를 깐다고 공사할 때도 밤에 전구 조명을 설치해두는 건 엄청난 메리트가 있었다.
밤이 대낮처럼 밝으니 시간 자체가 두 배로 늘어난다.
‘기차역 전구 설치 건은 몇 개월 치가 벌써 들어왔고 심지어 철로 확장 공사는······.’
전구 조명을 지원해달라면서 나중에 공사할 루트까지 미리 알려줬다.
그런데 앤더슨이 담보로 건 유전은 그 루트에 걸치기는커녕 스치지도 않았다.
비단 이 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에 내건 유전과 석유회사도 마찬가지.
“재차 말씀드리지만 사실무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제가 직접 밴더빌트 씨와 대담하면서 확인한 내용들입니다.”
“이···이럴 수가!”
그레이엄 지점장이 고개를 젖히며 이마를 탁 짚었다.
다만 솔직히 은행 입장에서 지금 상황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앤더슨은 대출을 받아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의 주식에 다 들이부었다.
그리고 3차 증자를 하면서 일시적으로 며칠 혹은 몇 주는 주가가 떨어질지 몰라도 조금만 지나면 무조건 오르게 되어있다.
‘그리고 상환 날짜 돼서 대출금에 이자 제대로 갚으면 결과적으로 그냥저냥 넘어갔을 수도 있었겠지.’
자신이 말해주지 않았으면 그레이엄 지점장을 포함해서 은행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테고.
법제와 정보 통신이 미흡한 시기라서 가능했겠지만 완전 범죄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니 태선을 적으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 태선은 그걸 그냥 눈감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
“그레이엄 지점장님, 하지만 너무 그렇게 심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 하지만 이미 대출금이 넘어갔는데······.”
“그 돈이 아까 지점장님도 말씀하셨듯 다른 곳이 아닌 우리 회사로 들어왔지요.”
태선은 보기만 해도 안도감 드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그레이엄을 다독이듯 말했다.
“일단 앤더슨 그자가 담보 맡긴 유전을 압류하고 서둘러 경매로 넘기십시오.”
“압류에 경매라. 그게 정석 수속이긴 합니다만 그···하아, 유전이라면서요?”
유전을 언급하며 그레이엄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저러는 이유가 쉽게 추측이 갔다.
안 그래도 전구로 인해 내리 쪽박 차는 석유 산업인데 누가 그걸 낙찰받는다는 말인가.
“낙찰 여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경매에 참가할 생각이라서.”
“오오, 정말이십니까?”
그레이엄 지점장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으나.
“아, 그렇다고 빚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낙찰받더라도 구태여 후하게 부르지는 않을 거라. 시세대로 하면······. 죄송하지만 낙찰가는 많이 낮을 겁니다.”
낙찰가에 대해 언급하자 그레이엄의 표정이 다시 어두웠다. 아니, 롤러코스터 태우는 것도 아니 그러기도 전에.
“압류한 담보가 대출금을 청산하지 못했으니 바로 이어서 다니엘 씨가 대출금으로 매입한 재산의 행사 정지 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십시오.”
“대출금으로 매입한 재산···이라면 킴 사장님의 스완 제너럴 일레트릭 주식을 말인지요?”
“예.”
태선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그 돈으로 주식을 구매했다는 걸 입증하느라 힘이 들겠지만 지금 그레이엄 지점장님 앞에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그 회사 공동 대표입니다.”
“그럼 그 증빙에 협력해주시겠다는···?”
“법원을 통해 요청이 오면 대출금에서 유전 낙찰금의 차익을 제한 액수만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죠.”
드디어 롤러코스터는 끝나고 그레이엄 지점장의 표정은 환히 밝아졌다.
“그러면 우리 은행에서도 손해는 없겠군요.”
“아마 다니엘 씨가 보유한 주식으로 받을 수도 있는데 지금 당장은 막 증자한 상태라 일시적으로 주가가 떨어졌을 수 있습니다만.”
“주식으로 들어오면 오히려 환영이죠. 그냥 가지고 있으면 오를 거 아닙니까.”
태선은 이제 할 이야기는 다 했다는 듯 일어섰다.
“주식 투자는 개인 선택이니 제가 어떻게 하라고 말씀을 드리기는 뭣하군요.”
“하하, 그 회사 대표나 되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킴 사장님은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그레이엄 지점장은 태선을 따라서 일어나며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말했다.
“먼저 찾아오셔서 이런 도움까지 주셨는데 대접이···좀 더 있다가 가시면······.”
“아닙니다. 다니엘 그 작자가 하도 일을 많이 벌이고 다녀서 곧바로 다른 은행에도 들러봐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나서주다니 킴 사장님은 정의로우시군요.”
···정의?
태선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런 거창한 뜻이 아니라 단지 본래 자기 것이어야 할 재산을 되찾을 따름이었다.
다만 그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겠지.
“그런 자가 대주주로 있으면 회사 입장에서도 곤란해서 미리 나서는 거죠.”
“하기야 그렇군요. 아무튼 고생하십니다.”
“그래도 그런 자를 엄정히 처벌하면 결국 지점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회의 정의 구현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크게 보자면 틀린 말도 아니지요.”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기꾼들···더구나 권세를 업고 그런 짓거리를 하다니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레이엄 지점장은 바로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니엘 그 작자 눈치가 빨라서 무슨 수작을 또 부릴지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킴 사장님께서 나가시면 저도 바로 움직여야 되겠군요. 아, 그리고 유전 경매에 참가할 거라 그러셨죠?”
문을 나서려는 차에 태선이 돌아보자 그레이엄이 덧붙였다.
“유전 경매 일정이 잡히면 곧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아니, 이렇게 되면 안 됐다.
“뭐라고? 담보 맡긴 유전과 석유회사들이 압류되고 경매로 넘어가?”
에드워드가 가져온 경매 공고문을 벌써 몇 번이나 봤다.
하물며 그런 것이 한두 장도 아니고 책상 한쪽에 수십 장이 쌓여있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수십 장에는 각기 다른 물건지가 적혀있다는 점이었다.
화를 눌러보려 하지만 제이 굴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젠장, 뭔 일이 이따위로 되도록 놔둔 거야?! 한두 곳도 아니고 이건 죄다 경매로 넘어가 버렸잖아!”
눈은 시뻘겋고 관자놀이와 목에는 핏대가 올라 피부를 뚫고 나올 듯한 기세였다.
“······.”
에드워드는 시선을 피하며 잠자코 있자 제이 굴드는 책상을 돌아서 나왔다.
손에 한 움큼 쥐고 있던 공고문을 그의 가슴팍에 집어던지며 윽박질렀다.
“지금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진 않겠지? 단순히 돈푼 얼마 되지도 않는 유전과 석유회사 경매로 넘어간 게 문제가 아니라! 태선 킴 그놈을 옥죄고 있던 포위망이 풀려버리는 거라고!”
“······.”
“아니, 이건 포위망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증발해버리게 생겼군···제기랄!”
제이 굴드는 그렇게 혼자 열불을 내다가 크게 숨을 몇 번 들이마셔 약간 평정심을 되찾고는 여태까지 묵묵히 있던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후, 다니엘 그 자식은 지금 어딨나?”
“그게···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아서 경매에서 유전을 낙찰받겠다고 간다고 했는데.”
“멍청한 자식, 그게 되겠냐!”
일이 이렇게 된 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이쪽이 손도 못 쓰도록 기습적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유전과 석유회사가 압류 잡히고 경매에 나갔는데 그게 누구에게 득이 될까.
‘태선 킴··· 그놈이 배후에서 획책한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 경매로 넘어간 뒤의 일도 손을 써놨을 터였다.
아니, 사실 경매로 넘어간 다음에는 달리 손을 쓰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더 많이 부르는 쪽이 낙찰을 받는다.
문제는 이쪽은 당장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금의 대부분을 SGE 주식을 매입하는데 쏟아부었다.
‘그렇다고 은행 매물이 경매 나온 건데 어중이떠중이들에게 뺏을 때처럼 폭력을 썼다가는 야단날 거고.’
제이 굴드는 마치 본능과도 같이 철저하게 강약약강 논리에 기반해서 어떻게든 타개책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태선이 짜놓은 이 판에는 작은 틈조차 당최 보이지 않았다.
“으아아···젠장! 젠자앙!”
하물며 태선은 나름 승승장구 하고 있어도 강자라기에 아직 입지가 불안정하거늘.
그런 놈에게 꼼짝 못 하도록 당했다는 사실에 제이 굴드는 열불이 터졌다.
하지만 이는 시작이었을 뿐.
“크···크흐흠!”
문이 열리더니 조심스레 들어오는 이는 다름 아닌 다니엘 앤더슨이었다.
그를 보자 에드워드의 이마 사이 깊은 세로 주름이 파였다. 하필 들어와도 이런 개떡 같은 타이밍이라니.
“마침 잘 왔군. 지금 일을 이따위로 되게 해 놓고 콧구멍 목구멍에 공기가 넘어가냐?”
“······.”
“왜 대답이 없어? 지금···자, 잠깐만!”
앤더슨에게 소리치다 갑자기 제이 굴드가 표정을 굳혔다.
“너 그 표정··· 설마 유전과 석유회사가 경매 넘어간 게 끝이 아닌 거냐?”
간 보고 남의 뒤통수 치는 부분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제이 굴드였다.
이를 위해서는 남의 눈치 보거나 심중 살피는 스킬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16살에 퇴학당해서 철물점에 목재소에 양치기까지 온갖 일을 다하는 동안 다니엘 앤더슨과도 함께 해왔다.
그의 표정을 읽는 건 제이 굴드에게 쉬운 일이며 방금 읽은 앤더슨의 속내는···‘좆됐다’라는 것이었다.
“앤더슨, 뭐야? 정말로 무슨 일이 더 있는 거야?”
에드워드도 흠칫하며 묻자 앤더슨은 침음성을 흘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나도 방금 오는 길에 들었는데······. 우리가 매입한 SGE 주식이 압류됐어.”
“뭐?”
“···뭐가 압류를 당했다고?”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에드워드와 제이 굴드가 저마다 한마디씩 되물었다.
“SGE 주식이 압류당했어. 대출해준 은행이 신청을 낸 각 주 법원마다 압류를 걸어서 갈가리 찢기듯 쪼개져가지고···거의 다 압류됐어.”
그리고 한층 상세히 설명한 앤더슨의 말에 제이 굴드는 휘청거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거···거기까지 해?!’
유전과 석유회사가 경매로 넘어가서 길길이 화를 냈어도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사실 태선 킴의 황금거위를 빼앗지 못했을 따름이지 이득은 봤기에.
SGE 주식을 제법 많이 매입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한 수 물려서 석유업을 빼앗으려는 포위망은 버리고 SGE 주식으로 한탕이나 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그러하거늘 SGE 주식이 압류당하면 이득이 아니라 손해 본 것이 된다.
“···어떻게 그게 그렇게 빨리 진행될 수 있지? 우리가 대응할 새도 없이 말이야.”
에드워드가 성질을 내며 성토하자 앤더슨이 한숨을 쉬었다.
“태선 킴 그놈의 수작질이 틀림없어.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법원에 협조해주지 않고는 그렇게 빨리 진행될 리가 없지 않겠나!”
그렇다···지금 앤더슨이 말한 저대로일 터였다.
사실 몇 분 전만 하더라도 앤더슨이 유전과 석유회사 경매에 참석하러 간 일에 아무 기대도 걸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쯤 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마당이었다.
“자네 에드워드에게 들으니 유전과 석유회사 경매 참석하러 갔다지? 그건 어떻게 됐나? 몇 건이라도 낙찰받았나?”
그나마 여기에라도 희망을 걸어서 태선 킴에게 석유업의 포위망을 재구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공사를 설계하리라 생각하며 간신히 의기를 세웠건만.
“···미안하네. 한 건도 낙찰받지 못했어. 동시에 경매가 열린 다른 곳에 부하들도 보냈지만···아무래도 다른 곳에서도 결과는 비슷하겠지.”
앤더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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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더슨의 말을 들은 제이 굴드는 말이 없어졌다.
조용히 일어나더니 사무실 안쪽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책상을 넓게 짚고 섰다.
아까 전에는 소리를 지르고 화가 났다는 기색을 전신으로 표출하더니.
지금 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뭔가 숙고하는 사람 같았다.
으득──!
그렇지만 꽉 깨문 어금니 사이로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 빚은 반드시 갚아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