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63
063 역습(3)
더머 아카데미의 고용인 명목으로 들어왔으나 사실 사라에게 누군가 청소를 시킨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태선 킴이라는 사업가가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저 인디언 여자를 꽂아줬다면서?”
“나도 들었어. 근데 왜 굳이 여기에······.”
“앗, 어쩌면 내연녀 같은 게 아니야? 아카데미 고용인으로 위장했다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말야.”
“···그 사람 결혼 안 했대.”
지나가는 하녀들이 소곤대는 말만 들어봐도 그 이유는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카데미 원장과 직접 응대해줘야 하는 사업가가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꽂아줬단다.
실제로 원장이 직접 이따금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하는 모습들이 목격되기도 했었다.
“칫, 겨우 일손 하나 더 늘어나는가 싶었는데 이래선 하나도 쓸모없네.”
다만 그게 다른 하녀들이 사라에게 살갑게 대해줘야 하는 이유는 되지 않았다.
“내 말이! 어휴, 저번에는 저 인디언 년이 뭘 한다고 괜히 나서서는 접시를 깨먹었잖아.”
“이해해줘. 고향에선 나무 그릇 같은 것만 썼겠지.”
“어머, 내가 그걸 몰랐었네.”
오히려 인종차별까지 더해 그녀를 뒤에서 조롱하거나 깔보는 일이 일쑤였다.
하물며 사라는 청력이 매우 좋아서 저만치 멀어져서 다른 하녀들이 뒷담화하는 소리까지 다 듣고 있었다.
“······.”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그저 빗자루로 마당이나 쓸었다.
사실 하녀들은 조롱하려고 말했겠지만 그녀의 손은 그다지 섬세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 시대 여성들에게 요구된 집안일 같은 것 따위에 있어서는.
‘하, 지루해. 웰스와 파고 사장님 우편 나를 때는 신났었는데.’
지금은 아메리카 익스프레스 사정이 어려워지기도 했고 은인인 개리슨의 부탁도 있어 여기 들어오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도 남보다 자신이 훨씬 잘한다며 자부심 느끼는 기술이 몇 가지나 있었다.
말도 잘 타고 길도 잘 찾고 도끼를 던져 사냥감도 잘 잡고, 도적 떼로부터 우편물 지킬 때는 권총 장총 가리지 않고 사격도 잘했다.
‘여기서는 다 필요가 없지만··· 아니, 필요 없는 건 절대 아니지.’
태선 킴의 사업적인 적이 태경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기에 자신이 고용되지 않았던가.
아직 그런 조짐은 없지만 긴장을 풀면 안 된다.
···라고 해도 솔직히 분위기부터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긴장감이 팽팽했다면 이렇게 마음 다잡을 필요 자체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1개월이 넘도록 그런 조짐조차 없으니.
“······.”
본래 말 타고 광야를 달리며 거칠게 살던 사라로서는 답답해 죽을 지경.
거기에 옷은 또 뭐가 이렇게 끼는지.
그나마 이 지루한 시간을 그녀가 버틸 수 있던 건 은인인 개리슨의 부탁이었거니와.
‘슬슬 수업 끝났을 시간이네. 오늘은 그 애가 무슨 이야기를 해줄지 궁금하네.’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과 거리를 두지 않고 첫 만남부터 살갑게 다가와 준 녀석.
자신 역시 그 아이가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릴 적 죽은 동생이 떠올라 내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비록 그런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서 표현은 못 했지만 그 태경이란 아이는 곧잘 자기 먼저 활달하게 말을 걸어왔다.
‘아, 나왔다.’
건물 근처를 맴돌며 비질을 하던 사라는 이윽고 학생들이 나오는 모습을 봤다.
그 중 여느 때처럼 몇 권의 책과 신문을 들고 있는 태경도 있었다.
비질하고 있으면 으레 다가오기에 오늘도 그러리라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태경이 다른 학생 몇에게 둘러싸여 건물 뒤 으슥한 곳으로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들··· 또 태경이를 괴롭히려는 건가.’
더머 아카데미는 명실공히 명문이기에 여러 유력 가문의 자제들도 입학해있었다.
그중 자의식이 강한 어떤 녀석들은 태경의 입학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악랄하게 괴롭혔다.
자발적으로 퇴학하거나 하면 안 될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은밀히 건물 뒤로 돌아가 상황을 지켜보니 지금도 그랬다.
“아시아 원숭이 따위가 무슨 공부냐, 공부가!”
“꼴에 신문도 든 거 봐라. 그래봤자 동양인은 결국 광산에서 곡괭이질이나 하게 되어있다고!”
아주 도련님 티를 좔좔 내는 녀석들이 태경을 둘러싸고 밀치면서 괴롭히고 있었다.
교사들 앞에서는 고상한 척하느라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을 욕도 입에 담았다.
“거기다 봐봐. 이 기사, 너네 형이 협잡질로 백인 회사 뺏은 내용이잖아? 어디 더러운 동양인이 신성한 자유의 나라에서 더러운 짓이나 하고 말이야.”
사라가 이런 장면을 본 것은 지난 1개월여 동안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크게 걱정했다.
사업적인 적인지 뭔지는 고사하고 저놈들 탓에 태경에게 문제가 생길지.
자신이 나서 도와줘야 할지 고민도 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함을 금방 깨닫게 됐다.
“뭔 중요한 말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겨우 그거냐? 어째 멘트가 변하지도 않냐.”
“뭐···뭐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맞받아치는 태경의 기세는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심지어 저 나이 애들 치고는 성인과 견줄 정도로 키도 크고 어깨도 벌어졌다.
저놈들이 숫자도 많고 자기네가 집안 좋고 백인에 마음껏 나댈 뿐.
한 명 한 명 따로 봤다면 태경과 눈도 못 마주쳤으리라.
“한심한 놈들······. 너흰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모르지? 가서 공부나 더 해라.”
실제로 태경이 번갈아 보자 녀석들은 어깨를 떨었다.
뒤늦게나마 반발이라도 하듯 몇몇이 소리쳤다.
“시끄러워! 감히 동양인 놈이 우리에게 감히 이래라저래라 지껄이지 마!”
“그래, 고작 동양인 주제에!”
하지만 녀석들이 열불 내는 것에 비해 태경은 피식 웃고는 돌아섰다.
“됐다. 더 할 말 없으면 나는 이만 가보련다.”
그런 태경을 향해 한 녀석이 분을 못 이기고 어깨를 잡아채 당기더니 주먹을 날렸다.
퍽──!
그 주먹은 산전수전을 겪은 사라가 보기에는 솜방망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 나이 학생들의 눈높이로 보자면 저런 주먹질도 간단치 않을 것이거늘.
“이익···익!”
첫 번째야 불의의 일격이라 맞았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 주먹부터는 태경은 몸을 민첩하게 좌우로 틀면서 전부 피했다.
“헉···허억······허억!”
결국 시비를 먼저 건 녀석이 고작 1분은커녕 10초 안 돼서 지치자 태경은 한숨을 내쉬더니 돌아섰다.
리더인 듯한 녀석의 주먹이 스치지도 못하자 다른 녀석들은 덤벼들지 못했다.
“사실은 너네 형이 아니라 아빠 아니야? 저번에 들어온 인디언 여자랑 붙어먹어서 널 낳은 거잖아, 크큭! 동양인 아빠랑 인디언 엄마면 너는 더한 잡종이네?”
하지만 애초에 녀석들의 주무기는 주먹이 아니었다.
“역시 아시아 놈들은 거의 인디언이랑 다를 바가 없겠지.”
“추잡하기는! 그래, 우리도 너하고는 안 엮이는 편이 차라리 깨끗하겠다.”
“할 줄 아는 거라야······.”
뒤늦게 그걸 깨달은 놈들이 뒤에서 큰 소리로 온갖 험담을 퍼부었다.
여태까지는 잠자코 참았던 태경이었지만 이번만은 역린을 건드리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자식이, 날 모욕하는 건 참아도 형까지······.”
제대로 꼭지가 돌아갔는지 멱살을 붙잡아 들어올리고 다른 주먹을 번쩍 들었다.
“컥···켁!”
그 모습을 보자 사라는 깜짝 놀라서 다급히 말리기 위해 달려나갔다.
저 백인 애들이 태경이를 괴롭힌 것과, 태경이 저 애들을 때리는 건 사건의 중대성이 전혀 달라진다.
다른 건 제쳐두고, 저 녀석들 물주먹은 맞아봤자 태경은 간지럽지도 않겠지만, 저 녀석들이 태경이 주먹을 맞으면?
‘어디서 배웠는지 몸을 제대로 놀릴 줄 아는 아이야.’
치기에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작정하고 패면 뼈 몇 군데쯤은 부서지리라.
문제는 자신이 급히 말리러 나섰어도 거리가 있어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으나.
‘다행이다. 스스로 멈췄어.’
태경이 주먹을 내리고 움켜쥐었던 멱살도 놔주었다.
“꺼져.”
“으으··· 두고 보자! 네가 멱살 잡았다고 다 일러주겠어!”
“저기 인디언 년도 왔다. 흥, 역시나 끼리끼리 통하는 게 있나보지?”
태선을 괴롭히던 백인 도련님들은 이내 도망쳤다.
그리고 대신 사라가 얼른 달려왔다.
“아, 사라······.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민망하네요.”
“아냐, 너는 잘 참았어.”
더 많은 말로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도무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사라는 억지로 쥐어짜낸 몇 마디만 입에 담았다.
대신 녀석이 떨어트린 책과 신문을 챙기는데 그러다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 기사는···?’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태경이 스크랩하려는지 표시를 해놔서였다.
〈 전구가 스캔들을 부르다?!
얼마 전 제재업으로 유명한 뉴욕의 사업가 다니엘 앤더슨 씨가 펜실베이니아주와 오하이오주 법원으로부터 삼십여 건도 넘는 압류 및 경매 처분을 받아서 화제가 되었다. 그로 인해 그는 매입했던 대부분의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 주식을······.〉
시작은 다니엘 앤더슨이라는 사업가로 인한 큰 스캔들이 터졌다는 듯한데.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 ···재밌는 것은 그렇게 경매에 나온 유전과 석유회사를 낙찰받은 것은 젊은 사업가 존 데이비슨 록펠러 씨 그리고 스완 제네럴 일렉트릭의 공동대표인 태선 킴이었다. 〉
〈 특히 킴 씨는 윤활유 사업으로 진작 석유업계에 영향력이 큰 인사였기에 이번에 유전과 석유회사를 낙찰받은 것이 그의 사업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주목된다.〉
“···태선 킴?”
낯설고 발음이 어려운 이름, 거기에 킴이라는 같은 성씨. 틀림없이 태경의 형이다.
덧붙여 원장실에서 만난 그 남자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뭣보다 포부를 사라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구의 빛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했었지.’
마치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하하, 맞아요. 제 형이에요. 오늘 신문을 봤더니 글쎄! 형이 기사에 나오잖아요.”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애들 신문이 어쩌고 하더니 이걸로 시비가···?”
“그랬나봐요. 기사도 사실 타이틀이 스캔들이라고 붙어서···녀석들이 비열한 방법으로 회사를 뺏은 거라고 막 그러더라고요.”
이내 말을 쏟아내는 태경의 모습에서 아까 녀석들에게 나지막하게 으름장을 놓던 의젓한 모습은 없었다.
“···하아, 그래도 형이 절 입학해준 걸 생각한다면 더 참아야 했는데.”
오히려 엄마나 누나에게 이런저런 속을 털어놓는 철없는 남동생의 모습.
뒤늦게 태경도 그걸 깨닫자 멋쩍게 웃었다.
“죄송해요. 고향에 큰누나가 있거든요. 사라를 보니 왠지 큰누나가 생각이 나서.”
“나도 너만 한 동생이 있었어. 지금은 죽었지만.”
“어···동생이 죽었다니 정말 유감이에요.”
“괜찮아. 그리고 나도 네가 그렇게 속을 털어놓으니······.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왠지 이야기를 더 하게 되고 또 즐겁기도 해.”
“아, 정말요? 헤헤, 저 혼자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사라는 예전 어린 동생에게 했듯 격려차 등판을 가볍게 두드리며 덧붙였다.
“그리고 킴 사장님에 대해서 말인데. 저 녀석들이 뭐라고 험담을 했든 기사가 뭐라고 나든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
“네, 저 신경 안 써요. 형이 훌륭한 사람인 건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태경은 자못 신문을 흔들어 보이면서 피식 웃었다.
“게다가 신문 기사도 나쁜 논조로 난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형의 사업이 앞으로 기대된다고 나왔죠.”
***
태선이 대주주로 있는 로건 의류회사에 공동 대표인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
거기에 석유를 저장하려는 명목으로 설립한 킴스 위탁 판매 회사까지.
태선이 경영하는 세 곳의 회사는 전부 뉴욕에 있었다.
딱 한 곳 멘로파크 연구소가 뉴저지주에 자리 잡았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사실상 뉴욕이나 마찬가지.
“킴 스탠다드 오일이라. 이번에도 뜻이 좋네요.”
그리고 새로 설립할 킴 스탠다드 오일도 그러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아예 새로운 것은 아니고 위탁 판매 회사를 석유업으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제너럴 일렉트릭이 그랬듯 스탠다드(standard)···이 시대의 기준점이 되겠다니 너무 멋져요.”
샬롯의 말에 태선은 새로운 사무실 자리에 앉은 채 옅게 웃어주었다.
손에는 애독하는 오늘자 뉴욕타임스를 놓지 않은 채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석유회사를 차렸는데 눈에 거슬리는 기사가 있기라도 한 듯.
아니, 실제로 그랬다.
〈 재밌는 것은 그렇게 경매에 나온 유전과 석유회사를 낙찰 받은 것은 젊은 사업가 존 데이비슨 록펠러 씨 그리고 스완 제네럴 일렉트릭의 공동대표인 태선 킴이었다······. 〉
그 탓에 태선의 입가에 얹힌 미소는 밝지만은 않았다.
‘음, 록펠러가 끼어들 줄이야.’
그 이름은 본래 역사에서 석유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