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69
069 빌드업(3)
최근에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조지 웨스팅하우스였다.
아주 위도 아니고 그렇다고 밑도 아닌지라 여기저기 끼어서 고충을 겪고 있었다.
“웨스, 증권거래소에 전구 설치하러 간 맥클렌 팀이 뭐가 안 된다던데 시간 날 때 가줘.”
“넵!”
일단 웨스팅하우스는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의 일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웨스, 뉴욕우체국에 변압기 이상 생긴 거 미안한데 네가 가줘야 할 것 같은데.”
“넵!”
“웨스, 국회의사당······.”
“넵!”
더구나 직원을 20여 명이나 뽑았고 그들에게 전구공 교육도 해뒀건만.
아직 그들로서는 일반적인 상황이면 몰라도 특별한 상황에서 조처가 무리였다.
“아, 그리고 태선이 영국으로 가져갈 거라던 전구와 발전기 세트도 점검해줄래?”
“넵! 태선 사장님 물건이면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볼게요.”
더구나 실력도 실력인데 책임감도 출중한 인재였다.
그래서 조셉은 웨스팅하우스를 전적으로 믿었고 그만큼 일을 많이 맡긴 것.
보다 못해 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존 엘리스가 반쯤은 농담으로 한마디 할 정도였다.
“이보게, 조셉. 우리 웨스 좀 그만 부려먹게.”
“하하, 웨스가 여간 일을 잘하지 않습니까. 아직 엔지니어들도 숙련되지를 못해서 웨스가 봐줘야 하는지라.”
“그래도 원래 연구소 조수로 뽑힌 아이란 거 잊으면 곤란해.”
다만 사실 그 속사정을 파고들어가보면 연구소에서 조지 웨스팅하우스를 더 굴리기 위한 것이었으니.
“···어디 갔지? 웨스, 보일러 장치 34번 실험 모델의 결과 보고서 어디 뒀는지 아니?”
“보일러 장치라면···아, 태선 사장님이 신경 써서 주력으로 하라고 했던 그 물 끓이는 장치 말씀이죠?”
“그래.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켜지고 꺼지는 걸 34번에서 실험했었는데······.”
“그거 에디슨한테 있는데요.”
그리고 조지 웨스팅하우스 밑에는 후배 하나가 있으니 바로 토마스 에디슨이었다.
“에디슨, 이 자식 어디 갔어? 빨리 튀어나와봐.”
“···커헙, 여기 있습니다. 부르셨어요?”
어디서 뭘 하다 나왔는지 얼굴에 기름때를 잔뜩 묻힌 채 에디슨이 나왔다.
“짜식이 빠져가지고! 연구소 생활 편하지?”
“아닙니다. 샘 부소장님 감압증류로 나온 석유로 신소재를 개발한다며 그거 돕느라 여태 잡혀있었다고요.”
사실 에디슨이 뺀질거리는 구석이 있어서 다그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진짜인 듯싶어 웨스팅하우스는 대충 넘어가줬다.
“알겠다. 고생했고, 그런데 저번에 보일러 실험 모델 34번 보고서 어디 놔뒀어?”
“아, 그거··· 깜빡하고 제 책상 서랍에···헤헤헤.”
“역시 빠졌구만! 에디슨 너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나이 차이 한 살이라도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의 기강을 제대로 잡았다.
사실 서양에서 나이 차이 한 살이야 큰 상관도 없겠지만 아무래도 연구소 선임이라는 사실이 컸는지.
“죄송함돠! 여깄슴돠!”
에디슨은 꼬리를 내린 상대에게는 철저히 복종했다.
물론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웨스팅하우스가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덕분인지 아랫사람 다루는 일에도 뛰어났다.
“너 이 자식,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늘 마치고 형이랑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 좀 하자.”
“헤헤, 그러면 웨스 형이 사주시는 거죠?”
“하여간 공짜 술이라면 정신 못 차리기는. 그래, 짜식아!”
일견 혼내는 것 같아도 웨스팅하우스가 막내라서 치여 사는 에디슨까지 은근히 챙겨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무실만큼, 아니, 오히려 사무실보다 멘로파크 연구소를 자주 들르는 태선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라, 태선. 언제 왔는가? 왔으면 말을 해주지.”
“방금 왔습니다. 저 때문에 방해될까 일부러 조용히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들켰네요, 하하.”
지금 그러하듯 어느새 보면 태선이 연구소에 와있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사실 하나의 사업 아이템을 찾아서 거기에 올인하기보다는, 앞으로 테크트리를 철저하게 계산하고 있는 태선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참, 보일러 연구는 어디까지 되었나요?”
“아, 그거 말이지. 안 그래도 자네 조언대로 연료 탱크에서 석유를 채워서 물 끓이는 건 잘 되는데 온도점에 따라서······.”
몇 개의 보일러 장치 모델을 살펴보며 태선은 존 엘리스의 설명을 들었다.
‘보일러 연구도 잘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네. 사실 이 정도면 당장 실전에 써도 될 정도인데 잘됐군. 전구랑 세트로 올해 겨울에 상업화할 수도 있겠어.’
이렇게 직접 체크하니 연구 중인 기술이나 발명품의 진척 상황을 꿰뚫는 건 당연하고.
“아, 태선 사장님 오셨어요. 오신 김에 에디슨 이 녀석도 좀 혼내주세요. 이 자식이 연구 보고서를 자기 서랍에 넣어놓고 깜빡했다네요.”
“헤헤, 죄송해요. 제 책상과 작업대가 생겼더니 자꾸 거기 뭘 쌓아놓게 돼서······.”
편한 관계를 구축해서 지금 웨스팅하우스가 그러하듯 자주 대화를 나눠서 직원들의 심리라거나 관계에 대해서도 잘 캐치하고 있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뭘 찾다가 없으면 에디슨 책상이나 작업대부터 뒤져보면 되겠구나.”
“오, 역시 태선 사장님! 명판결이십니다!”
“아, 그건 안 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본의 아니게 하도 내리 갈굼 당하다 보니 이제 탱커가 되어버린 에디슨이었다.
“왜 그러냐, 에디슨? 혹시 보고서뿐 아니라 야한 그림이라도 숨기고 있는 거냐?”
“하하하, 이해해줍시다. 에디슨도 한창 혈기가 왕성할 나이가 아닙니까.”
“아, 그런 거 아니라고요.”
조셉 스완뿐 아니라 이제 연구소 소장이 된 존 엘리스나 부소장이 된 새뮤얼 앤드루스도 동참할 정도였다.
‘다른 직원들도 사이가 좋은 듯 해서 다행이네. 특히 웨스팅하우스가 중간 다리 역할을 잘해주고 있는 것 같군.’
기실 그 모습을 보며 태선은 내색은 안 해도 속으로는 약간 의외로 여기고 있었다.
본래 역사의 흐름에서 에디슨이라는 인물은 사업적으로도 그랬지만 가정적으로는 더 문제가 많았었다.
심지어 자식들도 아버지와 대화를 얼마 못 했을 정도라니 어련할까.
그런 에디슨이 지금 제대로 사회 관계를 쌓아가고 있었다.
‘재밌네. 록펠러는 내가 개입했어도 어떻게든 다시 석유업에 이끌려 끼어들었는데······. 혹시 에디슨은 이 역사에서는 운명이 바뀔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웨스팅하우스가 잠시 사라졌나 싶더라니 어느새 뭔가 낑낑대면서 가지고 나왔다.
“사장님, 괜찮으시면 이것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그걸 보자 모두의 관심은 곧 에디슨에서 웨스팅하우스에게로 향했다.
“웨스 저 녀석 그러고 보니 태선 자네 오면 물어본다면서 내도록 기대하고 있었더랬지.”
쿵──!
이내 내려놓으니 바닥을 묵직하게 울리게 한 금속 덩어리는 바로 엔진이었다.
다만 녀석이 전부터 줄곧 붙잡고 있던 성형 엔진의 형태는 아니었다.
원통형이 병렬로 붙은 형태.
‘오, 볼 때마다 훨씬 자동차 느낌 나게 모양이 잡혀가네. 여전히 좀 엉성하지만 그래도 발전하가는 점이 고무적이군.’
태선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녀석을 칭찬해줬다.
“실린더를 나란히 붙였구나. 잘했다.”
“네, 확실히 태선 사장님 말씀대로 하니 더 좋았어요. 그런데 크랭크축으로 손실 없이 동력 전달하는 게 어려워서 자꾸 삐그덕거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웨스팅하우스도 뿌듯한 기색을 얼굴에서 감추지 못했다.
사실 웨스팅하우스가 약방에 감초처럼 여기저기 불리면서도 불평조차 없는 이유.
그건 애초에 웨스팅하우스도 뭔가 만들고 고치고 하는 일 자체를 즐겨서였다.
“···이 부분이 좀 문제인 것 같구나. 그러니까 실린더를 고정하는 크랭크 암을 엇갈리게 배치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음···오! 그렇게 하는 생각도 재밌네요. 마침 다른 일도 없고 곧바로 해보려는데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미안하지만 곧 다른 일정이 있어서 어렵겠겠는데. 중요한 미팅이거든. 봐라, 샬롯도 미팅 때문에 저기서 서류뭉치와 씨름 중이잖니.”
“샬롯 누나는 늘 바쁘네요.”
그나마 저것도 사무실에 남겨둔 서류 처리는 제인이 맡아서 줄어든 것이었지만.
“대신 네가 발명하고 있는 다른 물건들도 한 번 보고 가마. 저것들이었지.”
“아, 그러시면 고맙죠.”
아무튼 웨스팅하우스가 연구소에서 일을 천성처럼 즐긴다는 증거는 하나 더 있었다.
태선이 걸음을 향하는 웨스팅하우스의 자리.
거기에는 바쁜 와중에도 이것저것 만들어둔 잡동사니가 온통 즐비했다.
‘···저건?!’
그리고 그 가운데 또 태선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혹시 저건 제동장치를 만든 거냐? 기차에 흔히 쓰이는 브래이크 슈 밀착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듯싶은데?”
“역시 태선 사장님이세요. 보자마자 이걸 알아봐주시다니!”
웨스팅하우스가 신이 나서 설명해주었다.
모형으로 얼기설기 만든 바퀴들에 이어진 호스, 그것들이 연결된 묵직한 공기 탱크.
얼핏 보면 자동윤활장치와 비슷하지만 사실 웨스팅하우스의 설명이 없더라도 태선은 대충 알만했다.
‘공기압 브레이크로군.’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을 중심으로 라이벌 구도의 발명 다큐멘터리 다룰 때 봤다.
이 시대 브레이크는 주로 바퀴에 부착된 디스크에 브레이크 슈라는 일종의 패드를 밀착시키면서 발생하는 마찰력으로 정지시키는 개념이었다.
효과가 직선적이지만 그만큼 원시적이라 열차를 줄줄이 달고 다니는 이동장치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제동력이 골고루 분산되지 않아서 열차끼리 부딪치거나 심하면 탈선도 났다지.’
1860년대 말 열차 사고를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웨스팅하우스가 제동장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기압 브레이크를 개발했다고 한다.
그 씨앗이 여기서 다시 잉태되고 있었다니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이건 나중에 자동차에도 쓸 수 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바퀴 회전을 억제한다는 발상으로부터 이제는 공기 탱크로부터 동시에 일정한 제동을 거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발로였다.
‘뿐만 아니라 당장 기차 회사에는 협상 카드로 쓸 수도 있고.’
실제로 공기압 브레이크는 현대에도 쓰는 것이었다.
아울러 탱크에 채울 공기를 기름으로 바꾸고 손을 좀 보면 유압 브레이크로 테크 업을 할 수도 있을 터.
“왜 그러세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니, 이건 정말 괜찮구나. 더구나 몇 군데만 손 보면 될 정도로 잘 만들었어.”
“에이, 그 정도는 아닌데.”
웨스팅하우스는 겸손하게 뒷머리 긁적이며 쑥스러워했지만 태선은 재차 말했다.
“이건 철도 회사에 팔면 돈 된다···는 수준이 아니라 사고 발생도 훨씬 줄일 수 있을 거다. 처음에 널 데려올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니?”
“···네! 이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라 하셨죠.”
“넌 벌써 그 길을 걷기 시작했구나. 이것도 주력으로 개발하자꾸나. 기차에 이걸 다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테니까.”
추켜세우는 말에 웨스팅하우스의 코가 벌름거렸다.
“그, 그럼 제 발명품이 그 밴더빌트 씨 열차에 설치될 수도 있는 걸까요?”
물어보는 녀석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떨리는데 그 심정이 이해는 됐다.
밴더빌트라는 이름에는 상징성이 있으니 말이다.
‘밴더빌트라.’
다만 밴더빌트에게 우선 이 기술의 협상권을 넘기는 부분에 태선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파이프 석유 운송도 그렇고 윤활유의 제안도 거절할 테니 앞으로 밴더빌트와 관계는 좀 틀어지게 될 거야.’
즉 밴더빌트와는 원만하게 협상이 안 될 가능성 높다.
더구나 록펠러에게 제안이 들어왔다고 자신에게 줄타기하며 새로운 제안을 하는 걸 보면 그는 신뢰성도 떨어졌다.
아울러 열차 업자가 그 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하···역시 제 발명품이 밴더빌트 씨 기차에 들어가는 건 무리겠죠.”
침묵을 오해해서 웨스팅하우스가 머쓱하게 덧붙이자 태선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밴더빌트 씨의 기차가 아니라 그보다 더 좋은 곳에 장착해도 될 정도니 자부심을 가지거라.”
“아, 넵!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힘이 나네요!”
‘밴더빌트 외에 이 시대 철도업계 거물은······. 그래, 토마스 스콧이 있군.’
태선이 잠시 생각하는 사이.
“아, 참! 태선 사장님이 봐달라고 한 전구 조명도 제가 점검했는데 괜찮았어요.”
웨스팅하우스가 한쪽에 잘 모셔둔 전구를 가리켰다.
엄밀히 말해 전구와 더불어 소형 발전기나 변압기 같은 수반되는 장치도 포함한 것이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좀 특별하네요. 디자인도 장식품처럼 세련됐고 부품도 보니까 공을 들인 느낌이던데요.”
바로 웨스팅하우스가 말한 것처럼, 쉽게 말해 각 잡고 만든 태가 났다.
“혹시 대통령님한테 선물로 드리려는 건가요. 이렇게 신경 쓰신 건 처음이라서요.”
“아, 그거. 대통령은 아니고.”
녀석은 농담으로 말했지만 이어진 태선의 말에 더는 농담이 아니게 됐다.
“영국 갈 때 잘만 성사되면 빅토리아 여왕님에게 선물로 헌상하려는 거란다.”
그 말이 나오자 순간 웨스팅하우스가 깜짝 놀랐다.
“예···예에?! 그러니까 제가 점검한 이···이게 영국 여왕님께 선물로 드리는 거였다고요?”
반면 태선은 별일 아닌 듯 그저 웃으며 답했다.
“아, 내가 말을 안 해줬구나. 미안하다. 요새 바빠서.”
“헉,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왕님에게 드릴 선물이라니······. 아무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점검해봐야겠어요.”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보다 극렬한 반응을 보인 이들은 따로 있었다.
“여···여왕님?!”
“방금 여왕님이라고 했는가?”
동시에 외친 두 사람은 영국 출신의 조셉 스완과 새뮤얼 앤드루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