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71
071 여행 준비(2)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투자하는 세 가지 조건.
그걸 언급하자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는 역시나 올 것이 왔다는 듯 잠자코 기다렸다.
“첫 번째는 이겁니다.”
탕──!
짐짓 태선이 지도를 때렸다.
“조만간 석유 운송을 위한 파이프를 설치할 겁니다. 그걸 위해서는 최선의 루트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중요한 건을 이렇게 말해줘도 괜찮은가?”
태선은 피식 웃었다.
“괜찮습니다. 조만간 공사를 시작할 거고 숨길 수 있는 스케일도 아니니까요.”
“하기야 파이프를 그렇게나 길게 연결하는 공사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겠군. 그리고 최선의 루트······. 거기에 우리의 노하우가 요긴하게 쓰일 법도 하군.”
평소 투자자를 구하려고 자신들의 강점을 어필하고 다닌 이들이었다.
여기서 허심탄회하게 풀자니, 막상 이들도 회의감을 가졌던 모양이나 지금 태선의 제안에서는 그야말로 마스터피스와 같았다.
“첫 번째 조건에는 기꺼이 응해주겠네.”
“유전에서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파이프로 석유를 나르는 공사라. 성공하면 자랑할만한 업적이 되겠구먼.”
하물며 이는 납득 가는 조건이라 이제 두 사람의 경계심도 크게 누그러들었다.
“두 번째 조건은 사실 더 간단합니다. 제가 두 분의 비전을 들어보겠다고 했죠.”
“혹시 두 번째 조건이 우리 회사의 비전인가?”
태선이 바로 그렇다며 한 번 말해보라는 듯 다시 소파로 돌아와서 앉았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두 대표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윽고 헨리 웰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은행업이라네.”
조심스레 말문을 떼며 헨리 웰스는 괜히 자기 먼저 너털 웃으며 덧붙였다.
“하하, 그래. 꽤 의외겠지. 운송업을 주로 하던 우리가 은행업이라니.”
‘역시 그랬었나.’
하지만 헨리 웰스의 반응과 달리 21세기에서 전생한 태선에게는 금융업 하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더 익숙했다.
사실 21세기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면 블랙 카드가 근본 아니겠는가.
로마군 백인대장의 옆모습 박아놓은 카드 말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더니 역시 이 시점에는 이미 구상하고 있었구만.’
“···운송업과 금융이 아예 무관하지가 않거든.”
“그래, 최근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네만 우체국에서도 우편환어음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하지 않던가.”
잠시 태선이 침묵하고 있던 것을 오해했는지.
“사실 유통망이나 배달원 인원으로 치면 우리가 우체국보다 못할 건 없지. 지급 능력만 갖춘다면 서비스는 우리가 더 유리하다는 뜻이지.”
헨리 웰스뿐 아니라 윌리엄 파고도 지원 사격을 했다.
태선으로서는 본의 아닌 밀당으로 이 두 사람이 얼마나 절박한지 진심을 볼 수 있어 썩 만족스러웠다.
태선은 두 사람이 더 조바심 낼세라 웃어보였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조건도 마음에 드는군요. 사실 끼워만 주신다면 그 아이템에는 장기적으로 동업자가 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 즉시 한 시름 놨다는 듯 헨리 웰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인가? 우리 아이디어에 그리 좋게 이야기해준 건 자네가 처음이군.”
“아니, 있기야 했지. 다만 투자금 걸고 진심으로 해준 건 킴 사장님이 처음이었지.”
거기에 대고 윌리엄 파고가 특유의 약간 틱틱 거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헨리 웰스에 비해서 윌리엄 파고의 태도는 조금은 딱딱했었다.
그러나 이제 태선을 옹호해주느라고 윌리엄 파고가 헨리 웰스에게 타박할 정도였다.
‘성공적이군. 하지만 아직 세 번째 조건이 남았어.’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앞의 두 조건을 보아서는 그리 무리한 조건을 내걸지 않을 것 같지만.”
“예, 당연히 무리한 조건은 결단코 아닙니다.”
태선은 웃고는 입을 열었다.
“다만 조금 낯설 수는 있을 겁니다. 마치 두 분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운송업에서 금융업으로 확장하신 아이디어를 내신 것처럼요.”
“그런 아이디어라면 흥미가 생기긴 하네만······.”
말끝을 흐리는 건 혹시 몰라 들어보자는 뜻이겠지.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배달부들의 능력을 유연하게 활용하자는 겁니다.”
“유연하게 활용···? 철도가 활성화되며 의뢰가 줄기는 했지. 전쟁으로 잠깐 일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것도 끝물이고 말일세.”
사뭇 관심을 보이는 걸 보면 흥미 유도는 성공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지금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보다 전투력이 훨씬 뛰어날 겁니다. 용병업을 해보시죠.”
그리고 태선이 마침내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
전혀 예상 밖의 말이라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가 멍하니 있더니 뒤늦게 놀라 소리쳤다.
“요···용병?!”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지나치게 극단적이지 않나.”
“그래, 내 생각도 그러네. 용병으로 쓰는 건 이야기가 전혀 달라져.”
이 반응은 예상했다. “너희 직원들로 용병해보지 않을래?” 그러면 “지금 우리 직원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라고?” 이런 답이 돌아오는 게 당연하지.
‘사실 그걸 노리고 다소 극단적인 단어를 고르기도 했지만.’
크게 질러놓고 조금 덜한 조건을 다시 내걸면 설득하기 용이하니 말이다.
“걱정하지 마십쇼. 전쟁터로 보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용병이라도 직접 싸우는 일만 맡지는 않잖아요.”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용병이라는 것 자체가······.”
“돈 받고 대신 싸우는 이들이잖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주저하는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의 반응에 태선은 납득이 되기도 했다.
이들이 지금 받아들이 건 전통적인 용병의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안하려는 건 현대적으로 진화한 민간군사기업이거든.’
약칭 PMC라 불리는 조직, 전투에 직접 나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공격보다 방어나 경비를 위주로 하기도 한다.
또한 군사 자문 혹은 군납을 주력으로 파는 곳도 있고.
능력과 기술 그리고 돈만 있으면 이런 무력 단체의 운용은 어려울 것이 없고 현대적으로 기반이 잡히지 않았을 따름이지 각지에 많았다.
단지 열강 본토가 아니라 무력이 필요한 식민지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더구나 살짝 조직의 색깔만 바꾸면 이게 마피아인데 지금으로부터 2, 30년만 지나도 마피아들이 설친단 말이지.’
솔직히 따지고 보면 다니엘 같은 놈들이 지금도 무력으로 설치고 다니는데 마피아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고.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런 이 시대에 사업체를 확실히 지키려면 무력은 있으면 좋고···가 아닌 필수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파이프 공사를 할 때 분명히 협잡질로 공사를 방해하는 작자들이 나올 겁니다. 다니엘 씨의 소문 들어보셨는지요?”
“앤더슨 다니엘이라면··· 그래, 자네와 문제가 있었다지.”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가 업자들을 협박해서 유전을 가로챘었다던데.”
“전부 사실입니다. 그리고 파이프 공사를 방해하는 건 그냥 부수면 되니 더 매력적인 먹잇감으로 보이겠죠.”
거기에 이제 적이 앤더슨 다니엘 외에 거물급 록펠러까지 가세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 뒤에 모건과 듀폰까지 버티고 서있으니.
“해서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킴 스탠다드 오일에서 경비병으로 고용할 생각입니다.”
경비병으로 고용한다는 말에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의 두 눈에 빛이 감돌았다.
“그 대금은 킴 스탠다드 오일에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 지급될 거고 월급으로 직원들에게 분배하는 형태로 가면 고정적인 자금줄이 생겨 회사에도 도움이 되겠죠.”
“오오, 확실히 그렇군. 경비병이라면 부담도 적고 말이야.”
“거기에 킴 스탠다드 오일은 자네 회사 아닌가. 동시에 우리 회사의 투자자이니 신뢰성도 의심할 필요 없군.”
처음에 용병이란 말을 꺼낼 때는 반신반의하더니.
이제 아예 태선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투자자 된 걸 기정 사실로 여기며 대화를 잇는 두 사람이었다.
태선으로서도 반가운 반응이었다.
‘말도 잘 통하고, 시원시원하구만!’
더구나 이야기가 잘 풀리면 꺼낼 안건이 하나 더 있었다.
‘원래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내 영향력이 좀 더 세지면 실행에 옮기려고 했는데 지금 이야기해도 되겠어.’
“따로 의논할 것도 없군. 세 가지 조건에 나는 전부 다 찬성이라네.”
“나 역시 헨리와 같아. 그럼 지체할 것도 없이 서둘러 일을 진행하세나.”
“윌리엄 이 친구 보게나.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며 굴더니 이제는 킴 사장님과 같이 사업을 하고 싶어 안달이구먼.”
“쳇,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둘이 티격태격하자 태선은 중재하며 나섰다.
“자자, 진정하시죠. 저도 같습니다. 두 분과 조금이라도 빨리 같이 사업을 하고 싶군요. 여기 비서실장 샬롯을 통해서 조만간 투자를 비롯해서 오늘 논의한 안건에 대한 서류를 꾸려서 찾아뵙겠습니다.”
이제 용건은 끝났고 슬슬 일어나려는 분위기.
그래서인지 일이 잘 풀려서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는 안도하는 기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워했다.
그런 기색을 캐치하자마자 태선은 곧바로 말을 꺼냈다.
“조만간 다시 만나겠지만 그렇다고 사업 이야기만 하고 이대로 헤어지기는 좀 아쉬운데···혹시 저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오, 킴 사장 자네도 그랬나? 실은 나 그렇다네.”
“큼, 그럼 온 김에 같이 술이라도 한잔 걸치겠나?”
말 꺼내자마자 사무실 한켠 선반에 놓아둔 럼주를 가져오는 윌리엄 파고였다.
같이 술 마시자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여기서 저걸 거절하면 기껏 잘 풀어놓은 실타래가 헝클어질 터.
더구나 윌리엄 파고는 같이 부대끼고 술 마시고 뒹굴어야 친해지는 타입으로 보였다.
“예, 한 잔 주십쇼.”
“하하, 역시 킴 사장은 정말 사내답구먼.”
“크흠, 저도 한 잔 주세요!”
거기에 조심스레 분위기를 보더니 샬롯이 돌연 나서자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가 의외인지 흠칫하며 놀랐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샬롯이 귀엽다는 듯.
두 사람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특히 윌리엄 파고는 아예 태선보다 이제는 샬롯이 마음에 든다는 듯 직접 잔을 주고는 럼주를 따라줬다.
“하하하! 마음에 드는 아가씨로구먼!”
“로렌스 양이라고 했나?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게.”
헨리 웰스는 약간 걱정을 해주었고 이내 네 사람은 같이 럼주를 마셨다.
제법 독한 술인데 태선이야 피지컬이 좋았고 헨리 웰스나 윌리엄 파고는 원래 술꾼인 듯싶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크으으으!”
샬롯도 단숨에 잔을 비웠다.
“오, 이 아가씨 보게나!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이거 내가 30년만 젊었으면 청혼을 하는 건데 말이야!”
“자네···아내에게 그 말 전해줘도 괜찮겠나?”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더구나 킴 사장이 있는데 내가 그러겠나?”
두 사람의 반응도 좋았지만 내색은 안해도 태선 역시 내심 제법 놀라고 있었다.
‘샬롯, 의외로 술 세네? 아, 그러고 보니 샬롯과 제대로 술 마셔본 적은 아직 없었네.’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동업자이자 동반자인데 날을 잡아서 같이 마셔봐야지.
다만 여기가 안방도 아니고 같이 마실 자리가 지금 이곳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직 영업은 끝나지 않았다.
“더 마시고 싶지만 이 다음 일정도 있어 다음 잔은 나중을 기약해두지요.”
“아쉽지만 그러세나. 사실 우리도 그럴 생각이었어.”
“대신 잔도 나눈 김에 친목 단체를 만들어보면 어떠신지?”
친목 단체? 사실 뜬금없는 제안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샬롯이 스스로 나서 잔을 받고 원샷까지 해서 지금 분위기는 뭘 해도 전부 받아줄 흐름이었다.
“오, 그거 정말 좋구먼!”
“따로 생각해둔 모임이라도 있는가?”
물론 있지.
“사실 이번 전쟁을 통해 이런저런 안타까운 소식을 많이 접했었지요.”
“···뭐 그렇지. 전쟁에서 어찌 반가운 소식이 있을 수 있겠나. 따지고 보면 비극이지.”
“특히 총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제대로 적을 맞기 전에 총기 사고로 다친 이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숙연한 소리를 하니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어 두 사람은 더 끼어들지 않고 일단 경청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시민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기를 없애버릴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안전하게 총을 사용할 수 있게 알려주고 교육하고 연구하는 단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그 생각을 하던 차였거든요.”
“아, 그랬었나. 난 자네가 이 좋은 분위기에 왜 그런 소리를 하나 싶었네만 취지가 좋군.”
일단 이야기를 다 듣자 헨리 웰스가 크게 동감하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총기라면 사실 우리 배달원들보다 더 잘 다루는 이들이 없다고 봐야지. 그런 거라면 이 나라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으니 좋구먼.”
“사실 전쟁이 아니라도 야생 동물 사냥할 때도 총은 필수지.”
윌리엄 파고도 같은 반응을 보이자 용은 다 그렸고 눈을 그리는 일만 남았다.
“하하, 두 분 모두 뜻을 같이 해주시니 너무 기쁘군요. 그럼 총기에 대한 모임이라는 점에서 착안해서······.”
그리고 그것은 흉악해질 수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는 이름의 용.
“총기협회로 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바로 총기협회였다.